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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복자 에우제니오 3세 교황

Berardus 2022. 7. 7. 15:27
 
    

 
7월 8일
복자 에우제니오 3세 교황

Beato Eugenio III Papa
B.Eugenius III
Born:at Montemagno, Pisa, Italy as Peter dei Paganelli di Montemagno
Papal Ascension:15 February 1145 .167대
Died :8 July 1151 at Tivoli, Italy
Beatified :28 December 1872 by Pope Pius IX (cultus confirm‎‍‍‍!!!ed)
Eugenio = ben nato, di nobile stirpe, dal grecog
 
 
이탈리아 피사 근교인
 몬떼나뇨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피에뜨로 피가넬리인데,
그가 피사 대성당의 성직자가 된 후, 성 베르나르도를 만남으로써
 1135년에 클레르보에서 씨토회원이 되었다.
 
*성 베르나르도아빠스(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축일:8월20일.게시판598번.1324번.
 
그 후, 로마의 성 아나스타시우스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다가,
전혀 예기치 못했던 교황으로 선출되자, 이름을 에우제니오라 하였다.
그러나 그의 선출을 반대하던 브레쉬아의 아르놀드의 농간과
그리고 로마 원로원의 통치를 인정하기를 거부했을 때
그는 로마를 탈출해야만 하였다.
 
그는 1145년 2월 18일, 파르마 수도원에서 비밀리에 축성식을 가졌다.
그 후 몇 가지 조약을 체결한 뒤에 로마로 돌아가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의 초청으로 그는 1147년에 그곳을 방문하였고,
 제 2차 십자군 운동을 선포하였다.
비록 이 십자군은 성 베르나르도의 노력이 지대하였지만,
루이 7세와 독일의 콘라드 2세군의 패퇴로 말미암아 실패로 끝났다.
 
성성을 설치하고 교황청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말타의 예루살렘 기사단을 승인하고 교황궁안에 장발 청소년들의 출입을 금했다.
늘 양털옷을 입고 고행용 피륙을 쓰고 땅바닥에서 잤다.
교황의 휴가에 대한 말을 한 첫 교황이고 세니에도 궁을 지었다
 
 
에우제니오는 1147년에 파리와 트리엘에서 시노드를 개최하고,
다음 해에는 라임스에서 시노드를 열고 아르놀드를 단죄하였다.
 
세상이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았을 때 그는 로마로 귀향하였으나,
1150년에 재차 강제에 의하여 로마를 떠나야 하였다.
이번에는 티볼리에 거주하였고, 프레데릭 황제와 콘스탄스 조약을 체결하였다(1153년).
이 조약은 교회의 권리를 보증하는데 유익한 협약이었으나,
그해 7월 8일에 그곳에서 운명하였으며 바티칸 동굴에 묻혔다.
 
그는 소란스런 재임 기간을 통하여 몇 가지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동방교회와 로마와의 일치를 시도하였고, 성직자의 규율을 재정비하였으며,
명예스럽지 못한 성직자들을 제거하였고, 마니교의 재건을 봉쇄하였다.
 
그는 실로 용기가 많았고 단순하였으며,
항상 성 베르나르도의 영적 권고를 따라 생활하여 덕이 출중하였다.
1872년 10월 3일 시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