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gin and Child with a Rosary-MURILLO, Bartolome Esteban
1650-55 Oil on canvas, 164 x 110 cm Museo del Prado, Madrid
성모성월의 유래와 의미, 올바른 성모신심
성모성월은 동방교회에서 먼저 지내기 시작했다.
이집트 중심의 콥틱 전례는 11세기부터 예수의 탄생과 예수를 낳은 마리아를 찬미하기 위해
12월10일부터 1월8일까지를 성모성월로 지냈다.
이 기간 중 신자들은 성탄을 준비하기 위해
단식을 하고 마리아와 관련된 내용의 기도를 한 달간 매일 저녁에 바쳤다.
비잔틴 전례는 13세기부터 8월을 성모성월로 정해
8월15일 ’성모안식 대축일(오늘날의 성모승천대축일)’ 전 15일간 단식하고
이후 15일은 축제의 연속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 제7권 참조).
서방교회는 일반 민중들의 봄 축제나 5월 축제가 서서히
그리스도교화함에 따라 13세기말부터 5월을 성모성월로 봉헌하는 관습이 생겼다.
5월과 마리아를 처음으로 연결시킨 사람은
카스틸랴의 왕 알폰소 10세(1221∼1284)로
그는 5월이 주는 자연의 풍성함을 노래하며 영적으로 풍요함을 가져다주는
마리아에게 기도할 것을 권고했다.
로마에서는 필립보 네리(1515∼1595) 성인이 젊은이들에게
5월 한달 동안 성모 마리아에게 꽃다발을 바치거나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선행으로 마리아를 공경하도록 함으로써
미약하나마 성모성월을 지내기 시작했다.
5월이 성모성월로 구체화된 것은 17세기말부터다.
피렌체 부근 도미니꼬회 수련원에 1677년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한 단체가 생겨
이 지역의 5월1일 마리아 축제를 지내다가 1701년부터는
5월 한달 동안 매일 축제를 열었다.
이 축제 때 이들은 ’성모 호칭기도’를 노래로 바치고
마리아에게 장미 화관을 봉헌했다. 나폴리나 만토바 성당에서도 5월 한달 동안
매일 저녁 성모에게 찬미가를 바치고 성모를 기리는 행사를 거행했다.
성모성월 신심행사는 그 뒤 프랑스와
스페인·벨기에·스위스·독일 등지로 퍼졌으며
1758년과 1785년 ’성모성월’ 책자들이 출판되면서 이를 정착시키는데 영향을 주었다.
특히 교황 비오 9세가 1854년 12월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반포한 후 마리아 공경은
절정에 달해 성모성월 행사가 장엄하고 공적으로 거행됐다.
역대 교황들도 성모성월 신심을 잘 지켜가도록 권장했다.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교서를 통해 "성모성월 신심이 엄격한 의미에서는
전례에 속하지 않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전례적 예배 행위로 간주할 만한 신심"이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교황 바오로 6세도 1965년 발표한 ’성모성월에 관한 교서’에서
"성모성월은 세계 도처의 신자들이 하늘의 여왕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달"이라며
"교회 공동체와 개인, 가정공동체는 이 기간 동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마리아에게 드리고,
기도와 찬미를 통해 마리아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모성월 신심행사는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돼 있다.
한국교회도 다른 성월에 비해 성모성월 행사를 장엄하게 거행하고 있다.
각 본당마다 성모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성모의 밤’을 거행하거나
매일 성모성월 기도회를 봉헌하고 있다.
특히 성모의 밤 행사 때에는 마리아에게 드리는 시낭송,
성모호칭 기도, 꽃이나 촛불 봉헌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성모에 대한 공경을 드러내고,
성모의 사랑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한다.
이는 한국교회 신자들이 그만큼 성모신심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모에 대한 신자들의 공경을
그리스도께 대한 흠숭을 소홀히 하는 것으로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성모에 대한 사랑과 공경이 크면 클수록 신자들은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마리아 공경이 그리스도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잘못된 성모신심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의헌장은 마리아와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연관성, 마리아와 교회와의 친근한 관계,
마리아와 우리와의 관계(제8항)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교황 바오로 6세도 1974년 발표한 교황 권고
’동정 마리아 공경’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예배의 본질적 요소이므로
마리아 공경을 적절히 가르치면 신자생활에 있어
사목적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리아 공경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해 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를 통해 세상에, 그리고 우리에게 오셨듯이
우리는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께’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일치를 이루는 데 마리아가
옆에서 도와주기 때문이다.
우리 신앙에서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다.
다만 마리아는 예수와 뗄 수 없을 만큼 예수와 합치된 분이어서 마리아와
일치할수록 예수와 일치하게 되고, 예수와 일치할수록 마리아와 일치하게 된다.
결국 성모신심의 핵심은 마리아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마리아와 같은 마음으로
예수를 생활의 전부로 삼아서 살아가는데 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께 가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는
마리아 신심운동이 기적이나 발현에 치우치지 말고
전례적인 공경 안에서 올바로 행해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교회에서 정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도 신자들이 나름대로 믿어
어떤 대상을 공경하면 그것은 잘못된 신심이다.
또 성모신심의 대가인 성 루이 몽포르(1673∼1716)는
마리아에 대한 잘못된 신심과 참된 신심을 이렇게 구분했다.
잘못된 성모신심을 가진 신자들은 마리아에게 신심은 있으나
자기 중심적인 신심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성모를 공경하는 이들을 무시한다.
또 성모 공경이 마치 그리스도께 대한
공경을 감소시키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우려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신심을 가진 사람은 성모에게 드리는 기도가 성모를 통해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심 없이 형식적이고 외적인 신심행위에 치중하고,
현세적 욕망에 빠져 살면서도 외적 신심 행위를 통해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잘못된 신심이다.
항구성 없이 기분에 따라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열렬하다가 냉랭해지는 경우,
자신의 어떤 유익을 위해서나 재난을 피하기 위해 마리아에게 의지하고 기도하는 경우,
위선적인 신심 등도 잘못된 신심에 해당된다.
이같이 잘못된 신심을 극복, 마리아와 일치해
성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와 결합함으로써 완덕에 이르는
참된 성모신심은 무엇보다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또 어린 아기가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듯이
성모에게 완전하고 순박하게 의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모에 대한 참된 신심을 가진 사람은 역경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기도하는
항구한 신심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감정에 따라 사는 게 아닌 예수 그리스도
와 성모께 대한 신앙과 신뢰로 살아가게 된다.
올바른 성모신심을 위해 무엇보다 마리아가 어떤 분이고
어떻게 살았는지 정확히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성모의 겸손, 생생한 신앙, 하느님께 대한 순명, 그리스도께 대한 열렬한 사랑,
인내와 극기, 절제, 지혜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마리아의 성덕을 제대로 본받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이연숙 기자-
그렉치오 동굴 벽화
5월은 성모성월입니다.
그렉치오 동굴에는 두 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하나는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께 젖을 먹이시는 모습(오른쪽)이고,
다른 하나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 장면(왼쪽)입니다.
붕대로 둘둘 말려져 계신 아기 예수님의 모습은 ‘완전한 순종’을 상징합니다.
하느님이셨지만 성모님의 젖으로 양육되셔야 했던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성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인간 완성(구원)에 있어서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더불어서
인간의 협력은 필수적인 것을 드러내 줍니다.
이런 성모님의 역할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신자들에게 보내신 첫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분을 모실 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들이 됩니다.
표양을 보여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할 거룩한 행실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게 됩니다.”(10절)
The Martyrdom of St Florian - ALTDORFER, Albrecht
c. 1530. Oil on wood, 76 x 67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5월 4일
성 플로비아노 순교자
Saint Florian
San Floriano di Lorch Martire
Died:c.304; scourged,
flayed alive, a stone tied to his neck, and dumped into a river;
body later retreived by
Christians and buried at an Augustinian monastery near Lorch;
relics translated to Rome in 1138;part of the relics given to
King Casimir of Poland and
the bishop of Cracow by Pope Lucius III,which led to Florian’s
patronage of Poland and Upper Austria
Patron Saint of: fire fighters, Poland
오스트리아 노리꿈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군의 장교이던 그는 디오클레씨안의 크리스챤 박해 때,
스스로 크리스챤임을 선언하고 집정관인 아퀼리노에게 자수하였다.
그는 온갖 고문을 당한 후, 몸에 큰 돌을 매달린 채 엔스강에 던져지는 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폴랜드와 오스트리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patron saint of brewers and fire-fighters
- by R.N. Schachter
노리코 지방에서 로마군인 장교로 지냈다.
그는 신심이 깊은 열심한 신앙인이였고 생애 선(善)을 많이 베풀었다.
성인은 로크 감옥에 수감된 수많은 신자들을 도와줬다는 죄목으로 온갖 고문을 당했고
마침내 사형언도를 받아 순교했다.
성인은 폴란드 오스트리아 주보성인이며 또한 소방대원과 청소부들의 주보이기도 하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발레리아라는 부인이 성인의 시체를 자기 시골에 안장하였는데
나중에 그 자리에 성당과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지었다.
그후 수도원은 야만인들의 습격으로 파괴되었으나
빳소의 안젤벨또 주교가 재건하여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기증하였는데
아직도 보존되어있다고 한다.
Sts Florian, John the Baptist and Sebastian-STRIGEL, Hans II
c. 1480 Tempera on pine panel, 205 x 110 cm Museum of Fine Arts, Budapest
순교자 殉敎者
라틴어 martyr
영어 martyr
신앙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친 사람. `증인’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증인’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만이 부활의 증인으로서 복음의 내용을 보증한다는
특수한 의미로 사용되며(사도 10:41)
스테파노(사도 22:20)와 바울로(사도 22:15)에게 적용되었고
묵시록에서는 예수께서 증인이라 불린다(묵시 1:5,3:14).
그밖에 묵시록(6:9,12:17,19:10)에는 예언자의 신분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증언을 내는데
위험한 시대에 증언을 한 증인들이(묵시 2:13,11:3,17:6) 순교자가 된 것이다.
2세기 중엽부터 교회는 재판소에 끌려가서 말씀의 증언을 하고도
죽지 못한 자들을 증거자(confessor-es)라 부르고
피로써 증언을 낸 자들을 증인(mar-tyres)이라 불러 양자를 구별하였는데
이는 죽음 자체가 지니는 특수한 의미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순교자를 처음으로 증인이라 부른 것은 폴리카르포 주교의 순교전(165년경)에서였다.
여기서 순교자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 곧 하느님의 아들의 그것임을
피흘려 증거한 자 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한편 110년경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스미르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순교자란 피흘려 죽음을 당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의 실재성을 입증한다고 하여
예수의 죽음을 부정하는 가현주의자(假顯主義者)들의 주장을 논박하였다.
2세기 말엽 이레네오도 순교자를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증인"를 배격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과정에서
교회내 순교자들의 특수한 지위를 확인하게 되었다.
순교자가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초인적 용기는
순교자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 때문에 가능하다
(디오그네토에게 보낸 편지),
순교는 모든 죄를 없애주는 행위이므로 제2의 세례이며(테르툴리아노)
순교자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므로 순교자는 죽은 후
바로 천국의 영광을 누린다(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
신앙 때문에 죽을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순교자는 악의 세력을 쳐
이긴 승리를 증거하고 다시는 고통이 없는 부활을 선포한다(오리제네스).
그러므로 순교자는 완덕(完德)에 이른 자이며 이들로 인하여 역사상
그리스도 교인의 숫자가 놀랍게 증가하였다.
그래서 "순교자는 그리스도 교인의 씨앗이다"라고 테르쿨리아노가 일찍이 설파하였다.
-(가톨릭대사전에서)-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12월26일.게시판1539번.
*성 바오로 사도 축일:6월29일.게시판1248번.1843번.
*성 폴리카르포 주교 축일:2월23일.1631번.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축일:10월17일.게시판1424번.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축일:6월28일.게시판1247번.1841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의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Inscriptio, nn. 1,1-4,1. Funk 1,235-237)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나라와 영광에로 불러 주셨습니다
테오포로스(하느님을 모신 자)라고도 하는
나 이냐시오는 아시아의 스미르나에 있는,
하느님 아버지와 사랑하는 예수그리스도의 교회 곧 하느님의 자비로써 모든 은총의 선물을 받아
신앙과 사랑으로 넘쳐 은총에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고
지극히 하느님의 마음에 들고 은총을 나누어주는
귀 교회가 티없는 영과 하느님의 말씀 안에 온갖 선을 누리시길 빕니다.
여러분에게 이처럼 훌륭한 지혜를 준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찬미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흔들림 없는 신앙 위에 세워져 영혼과 육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사랑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육신에 따라 다윗의 가문에서 나오시고 하느님의 성의와 능력에 따라
하느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를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해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시고 요한한테 세례 받으시며
본시오 빌라도와 헤로데왕 때 우리를 위해 육신으로 십자가에 참으로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와 그분의 복된 수난이 가져다 준 열매들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부활하심으로 세세 대대 당신의 깃발을 내세우시고
유다인이건 이방인이건 모든 성도들과 신자들을
당신 교회의 유일한 몸에서 하나로 모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구원을 얻어 주시려고 이 모든 것을 겪으셨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고난받으시고 참으로 당신 스스로를 일으키셨습니다.
나는 그분이 부활하신 다음 실제로
인간의 육신을 지니셨고 지금도 지니고 계심을 알고 또 믿고 있습니다.
그분은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에게 오시어
"내 손과 발을 만져 보고 내가 뼈와 살이 없는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보아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즉시 그분을 만져 보고 그분이 영혼과 육신을 지닌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죽음을 멸시하고 그것을 쳐 이겼습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영적으로 아버지께 결합되어 계셨지만
살과 뼈를 가진 사람처럼 그들과 함께 잡수시고 마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나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 모든 것을 상기시켜 드리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홈에서)-
성 치쁘리아노 주교 순교자의 편지에서
(Epist. 10,2-3.5: CSEL 3,491-492.494-495)
무너질 수 없는 신앙
지극히 용감한 형제들이여, 내가 무슨 말로 여러분을 칭송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찬사의 말로 여러분의 영혼의 굳셈과 신앙의 충실성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
여러분은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을 때까지 혹심한 시련을 견디어 왔으며,
고통 앞에서 굴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이 여러분 앞에서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괴롭힘이 아닌 순교의 월계관이 여러분의 고통을 끝맺게 해주었습니다.
박해자는 끈질기게 고통을 주었지만 여러분의 견고한 믿음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다만 하느님의 사람들을 더 빨리 주님께로 보냈을 뿐입니다.
관객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싸우는
이 천상투쟁과 영적 전쟁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네들은 하느님의 종들이 이 세상의 무기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신앙인을 보호하는 믿음의 무기를 가지고서
자유에 넘친 목소리와 순수한 정신과 거룩한 힘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이들은 고통을 가하는 이들보다 더 강하게 보였고,
매를 맞아 찢기운 사지는 때리고 찢는 형구들을 이겨내는 것 같았습니다.
잔인하게 때리고 또 때려 이제는 몸이 산산조각이 나 매를 맞는 것이
그들의 몸이 아니라 상처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채찍들도 그들의 무너질 수 없는 신앙을 굴복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박해의 불덩어리를 식혀 버리고
그 유혈로써 지옥의 불을 죽이기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당신 군사들의 충실성과 열성의 이 증거는 주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고귀하고도 엄청난 광경이었겠습니까?
성령께서 우리에게 시편에서 말씀해 주시고 동시에 권고해 주십니다.
"갸륵할쏜 주님의 눈에, 성도들의 죽음이여."
피를 대가로 하여 불사 불멸을 알고 덕행의 궁극적 증거로서
주님의 월계관을 받는 이 죽음은 참으로 보배롭습니다.
신앙의 보호자이시고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받을 능력과 마음가짐에 따라 힘을 베푸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시고,
또 이렇게 훌륭한 종들 안에서 얼마나 기꺼이 투쟁하고 승리하셨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순교자들이 투쟁할 때 함께 계셨고 당신의 이름을 위해 싸우고
그 이름을 옹호한 그들을 북돋아 주시고 굳세게 하시며 또 그들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한 번 죽음을 이겨내신 그분은 이제 우리 안에서
언제나 승리를 거두고 계십니다.
하느님 자비의 영예로 빛나고
우리 시대에 순교자들의 영광스러운 피로 빛나는 우리 교회는 참으로 복됩니다.
교회는 과거에 형제들의 선업으로 희게 빛났고 이제는 순교자들의 피로 붉게 빛납니다.
교회의 꽃 중에 백합도 있고 장미도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지극히 고귀한 이 두 가지 꽃의 영예를 얻으려 애써야 하고 두 가지 중 하나,
즉 선업이라는 흰 화관이나 순교라는 장미꽃의 붉은 화관 중
어느 하나라도 얻어야 하겠습니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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