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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장님 말씀] 사람이 사랑이 되다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 선종 1주기 추모미사 강론)

Berardus 2022. 3. 15. 17:23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 선종 1주기 추모미사

 

2022. 03. 14(월) 11시 가톨릭군위묘원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신 지 오늘로서 1주년이 됩니다.

작년 3월 14일 주일 새벽에 떠나셨는데,

올해는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이 대주교님께서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계시겠지만

이 미사 중에 대주교님을 위하여

정성을 다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미사를 ‘위령미사’로 봉헌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추모미사’라고도 부릅니다.

‘추모追慕’라는 말은 돌아가신 분을

그리워하며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 그리고 추모하는 그 대상을 바라고

따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 대구가톨릭평화방송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질문 중의 하나가 이 대주교님과 있었던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하나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1998년부터 교구청에 들어와서 살았고 이 대주교님께서

2007년 은퇴하신 후에도 가끔 찾아뵙고 했으니까

많은 기억들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질문은 받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1998년 교구청에 들어가서 처음 맞이한

저의 본명축일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교구청에 근무하는 신부님들의 축일 회식을

밖의 식당을 예약하여 하였는데,

축일을 맞이한 사람이 식사비를 지불해야 하였습니다.

10월에 제 축일이 되어서 열댓 명의 사람이 어느 횟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식사 값이 많이 나왔지만

제가 지불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제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이 대주교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어제 많이 나왔지요!”하시면서 봉투를 하나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으로 그 비싼 식사 값이 보상을 받았던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이 대주교님께서는 그런 데까지 마음을 써 주시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넓고 따뜻한지를 가늠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대주교님께서는 제가 부족하고 잘못하는 것이 있어도

지켜봐 주시고 기다려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대주교님께서는 교구장으로 계시는 동안에

두 차례 보좌주교님(서정덕 알렉산델 주교님,

최영수 요한 주교님)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두 분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내어야 했던

그 때가 참으로 힘드셨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대주교님께서는 2007년 4월에 교구장직에서 은퇴하시고

그 다음 해에 식도암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힘든 수술이었는데 다 잘 이겨내셨습니다.

<사람이 사랑이 되다>라는 제목의

이 대주교님의 유고집을 발간하여 지난 수요일

범어성당에서 있었던 추모음악회 때 나누어주었는데,

그 책 13페이지에 실린 사진을 두고

사람들이 언제 찍은 것이냐고 묻곤 하였습니다.

너무 젊게 나와서 묻는 것 같은데,

당시 사진을 찍어 보내준 사람한테 물어봤더니

2014년 4월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대주교님께서는 건강하신 모습으로 보입니다.

사실 대주교님은 운동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등산을 가자고 하면

“내려올 것을 뭐 하러 갑니까?”하고 말씀하시곤 하였습니다.

운동도 하시고 몸 관리를 더 잘 하셨다면

좀 더 오래 사셨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그래서 올해가 이 대주교님께서 주교품을 받으신 지 50주년,

즉 금경축이 되는 해인데, 참으로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대주교님께서는 2017년부터

급속하게 쇠약해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주로 병원에 계시던 일이 많으셨는데,

그래도 번역도 하시고 글을 쓰는 작업을 계속 하셨습니다.

유고집 74페이지를 보면,

2017년 8월 7일자로 쓰신 <어머니...>라는 시가 있습니다.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만났다.

“내게 와서 밥을 먹어라.

그러면 너는 밥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말하고 돌아 나왔는데

어머니는 천당에 가신 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나도 천당에 가느냐 아니면

세상의 밥을 지어먹느냐는 문제가 나타났다.

눈을 뜨고 생각해 보아도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겠다.

 

그럭저럭 날이 밝아서 꿈은 밤과 함께 사라졌다.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서 어머니의 모습을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어머니와 함께 살 때를 생각했다.

어머니의 밥을 먹고 정답게 살 날을 생각했다. 엄마!

 

이 대주교님께서는 은퇴하신 후에

혼자서 밥을 해 드실 때가 많았습니다.

식복사 한 사람을 붙여드리려고 해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혼자 사셨던 분이 어느 날부터

한 집에 누구와 같이 산다는 것이

그렇게 마음이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대주교님의 첫 시집 <일기>에

‘어머니’라는 제목의 시가 여덟 편이 실려 있습니다.

2015년 9월 14일에 이 대주교님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 미사 때

제가 축사를 하면서 ‘어머니7’을 낭송했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 전에 낭송한 시의 마지막 구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어머니의 밥을 먹고 정답게 살 날을 생각했다. 엄마!”

지금은 혼자 밥을 지어 먹고 있지만 천국에 가면

어머니가 밥을 해주는 것을 먹고

정답게 살게 될 날을 그리워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엄마!”하고 불러보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나이가 많다하더라도 마음 한 자리에는 부모님,

특히 어머님이 자리하고 있어서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제부터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수개월째 거의 비가 오지 않았던 가뭄 때문에

바짝 말라있는 대지 위에 참으로 반가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은총의 비입니다.

봄비가 온다는 것은 부활이 가까이 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난 열흘 간 울진 삼척 동해 등에서 발생했던

그 엄청난 산불이 이제 완전히 진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사람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살 때는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지혜 3,9)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2)

 

자비로우신 주님,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