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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주교 말씀] 사제 양성의 첫 관문에서 (대구가톨릭대학교 대신학원 입학미사 강론)

Berardus 2022. 3. 6. 06:08

대구가톨릭대학교 대신학원 입학미사

 

2022년 3월 1일

찬미예수님,

2022학년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신학원 입학미사에 함께하신 분들 반갑습니다.

 

신학교에는 대신학교와 소신학교가 있습니다.

소신학교는 예전에 소신학생들을 위한 중고등학교 과정이었고,

대신학교는 대학 과정과 대학원 과정으로 신학을 공부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신학생 양성과정에 대하여,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교황권고 ‘현대 사제의 양성’에서,

지적 양성과 함께 인간적 양성, 영성적 양성, 사목적 양성,

모두 4가지 양성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신학 공부의 지적 양성에 덧붙여,

인간적 영성적 사목적 양성도 잘 이루어지도록

기숙형 양성기관으로 마련된 것이 신학원입니다.

그래서 우리 대신학원에는 양성의 요람인 신학원과

학문의 요람인 신학대학이 함께 있으며,

사제양성과정의 신학생들과, 통학하며

신학을 전공하는 수도자들이 함께 공부합니다.

올해의 신입생은 대구 신학생 8사람,

부산 신학생 3사람, 분도회 신학생 1사람,

통학하는 수녀님 6사람. 총 18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하신 말씀에 따라서,

신자들은 하느님 제대에서 봉사하도록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성소자들이 이어지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기도의 힘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이 여러분에게 닿았고,

그때 여러분들은 오늘 제1독서 사무엘기 상권 3장의 소년 사무엘처럼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하고 응답하였기에,

오늘 이렇게 입학하는 것입니다.

 

사제 양성은 1차적으로 신학교에서 사제성품을 향합니다.

사제성품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개인의 응답과 교회의 선택,

이렇게 3가지가 합해져 이루어집니다.

최근에 교회는 사제서품이후의 지속적 양성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예비자교리과정의 끝이 세례성사가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랑하는 예수님을 뒤따라가

십자가의 죽음을 뚫고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향하는 신자생활로 이어가야 하는 것처럼,

신학교의 양성과정도 성품성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부님들이 평생토록 하느님 마음에 드는 목자로서,

평신도들과 달리 하느님 은총의 전달자가 되며,

백성의 기도를 하느님께 올려 드리고, 미사성제를 봉헌하며,

또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요

유일한 대사제이신 예수님을 대리하여 하느님의 현존을 말씀을 통해,

성체를 통해, 성사를 통해, 강론을 통해,

병자 방문을 통해,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는 사제생활로 이어가도록.

지속적 사제 양성의 과정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수도자들도 하느님께 드린 수도 서약을

충만한 축성생활로 이어가도록 10년 혹은 일정한 주기로

재양성의 과정을 밟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입학하는 신입생 여러분,

그리고 모든 신학생 여러분,

여러분들께서 여러분들이 응답하셨던 그 첫 마음을 잘 간직하신다면,

평생의 사제생활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느님께서 불러주셨을 때 응답하였던 그 첫 마음을 잘 간직하십시오.

그 첫 마음으로 서품식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렸을 때 ‘네 여기 있습니다.’하고 응답하십시오.

그리고 나중에도, 라틴어 격언에 ‘백성의 소리는 하느님의 소리’라고 하듯이,

신자들이 ‘신부님’하고 부르면서, 병자성사를 청하고,

고해성사를 청하고, 레지오 훈화를 청하고 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나누어 주도록

바로 그 한 사람을 통해 부르시고 계심을 상기하고 거기에 응답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를 부르시며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하신 것처럼 부르시고,

대신학교 교가의 가사 ‘나를 따르라. 내 양을 치라.’처럼 부르십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그 부르심에 귀 기울여 더욱 잘 응답하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