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신앙살이]
말벌과 신부님 마음(상)
“석진아, 지난봄에 다 못한 소나무 전정 작업을 하려고 내일 고창 내려갈께.”
며칠 전 토요일 저녁에,
서울에서 특수 사목을 하는 동창 신부님의 반가우면서도,
휴- 걱정스런 전화가 왔습니다.
‘왠 걱정?’이냐면, 동창 신부님은 늘 그렇듯,
작업할 땐 즐겁게 하는데, 한 가지! 내가 노는 꼴(?)을 못 봅니다.
그래서 그 신부님과 함께 있으면 나는 모든 일을 다 멈추고,
일주일 내내 그 신부님과 기쁘면서도, 힘겨운 노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순간, 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 신부님과 일주일 동안 작업하는데 그 주간 월요일,
나는 ‘백신 2차 접종’이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2주 전에 접종을 할 예정인데, 백신 공급 사정상 2주가 미뤄진 것입니다.
이에 백신 접종 핑계로 주사를 맞은 다음 날,
화요일은 쉴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헤헤 거리며 동창 신부님을 기다렸습니다.
주일 오후,
서울에서 출발한 동창 신부님은 저녁 6시 즈음에 공소에 도착했고,
컨테이너에 짐을 푼 후 수사님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식사 도중에 나는 동창 신부님에게 빙그레 웃으며 물었습니다.
“나 내일, 백신 주사 맞는 날인데,
조경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음 한 주를 연기할까?
백신 주사 맞으면 2-3일 쉬어야 하는데 그럼 일을 못 할 텐데.”
“아냐, 내일 백신 맞는 날이면 맞아야지.
그리고 주사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아.
그냥 편안하게 맞고 와. 그런 다음 아무 일 없는 듯 일하면 돼.
그러다 보면 주사 맞은 것도 잊혀지고.”
순간, 괜히 말했구나 싶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한 후 우리 일행은 성지로 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성지 창고에서 전정에 사용될 장비를 모조리 챙겨서
야외 정자 쪽으로 가지고 가는데, 드디어… 터졌습니다, 그분의 잔소리가!
“야, 석진아.
너 그동안 여기 주변 정리를 하나도 안 했네.
나는 그저, 지난번에 못한 소나무 전정만 하려고 왔는데,
이게 뭐냐. 성지가 폐허 같네.
그리고 부활 동산에 있는 잡풀들을 하나도 정리를 안 했어.
온갖 잡풀들이 나무들을 감싸 쑥쑥 자라고 있구먼.
잔디를 깎았으면 예초기가 닿지 않는 부분은 전정가위로 잘 마무리를 해 주어야지.”
동창 신부님의 폭풍 잔소리를 듣다보니,
그동안 수도원과 순례자 쉼터 건축비 마련하느라
정신없이 살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내 자신이 처량해졌습니다.
그래도 서울서부터 내려와 준 동창 신부님 마음을 생각해서,
신부님의 잔소리를 고분고분 잘 듣고 난 후,
우리는 부활 동산에서부터 주변 정리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흘러 어느덧 백신 주사를 맞으러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랄라라라! 그래서 나는 신부님들에게 병원 다녀오겠다 말한 후
근처 면 소재지에 있는 의원으로 가서 백신 접종을 하고 성지로 왔습니다.
돌아와서 보니,
동창 신부님과 함께 사는 신부님은 일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순례자를 위한 미사 시간’이 다 되어,
나는 외양간경당으로 가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런 다음 작업복을 갈아입고,
해가 짧아진 탓에 2시간 정도 남은 시간 정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순간, 어디선가 ‘아-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동창 신부님과 함께 사는 신부님이 무작정 뛰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부활 동산의
‘피에타 성상’ 뒤 가시 장미 넝쿨 속에 말벌들이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 사실을 몰랐던 동창 신부님은 산발적으로 뻗쳐있는 가시 장미 넝쿨을 보고,
조심히 모양을 내며 전정 작업을 하다가 말벌 집을 건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20마리 정도의 말벌이 신부님을 향해 전투 대형으로 날아오른 것입니다.
세상에….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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