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쏘는 영성]
구원관
스스로 엄격한 기준 안에 가두고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는
종교적 자격지심과 구원 불안증
자캐오가 하느님을 통해 변화하듯
주님 말씀 통해 내적 자유를 얻는
구원의 참된 의미 생각해봐야
종교마다 영혼이 사후에 구원받는다는 구원론이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스승을 주님으로 모시는 가톨릭과 개신교는 구원관이 다릅니다.
개신교의 구원관은 좀 뻔뻔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예수님의 이름만 불러도 구원받는다는 구원관,
살아서 무슨 짓을 했건 간에 주님의 이름만 부르면 된다는 구원관은
얼핏 들으면 주님의 사랑을 강조한 듯 하지만
그 속내에는 무책임하고 뻔뻔함이 보입니다.
실컷 죄짓다가 죽기 전에
회개하면 된다는 식의 무식한 사고방식을 만들 위험도 크고
사람의 마음을 잘 모르는 무지함도 엿보입니다.
심지어 자기 교회에 나와야 구원을 받는다는
철면피한 종교 영업(?)을 하는 목회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반면 가톨릭의 구원관은 어떠한가?
반대로 지나치게 엄격합니다.
티끌만한 죄도 짓지 않아야 천당에 가고 죄를 지은 자들은
그 죄를 다 씻을 때까지 연옥에서 시간을 보내야합니다.
또 대죄를 지은 자들은 여지없이 지옥으로 가야 한다는 구원관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신자들은
하느님을 사랑하지만 자신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는
종교적 자격지심과 구원 불안증에 시달리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구원을 천당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시험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심리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구원을 포악한 독재자의 관점에서 봅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천당에 가고
하느님 보시기에 덜 차는 사람들은 연옥,
하느님 보시기에 꼴 보기 싫은 놈은 지옥에 간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심한 경우 길거리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외치는
병적인 믿음을 가진, 심한 신경증환자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을
가학성 성격장애를 가진 신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들의 신앙이 학대적 신앙인지도 모릅니다.
왜 모르는가?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병적인 종교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심리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죽어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중요시하는 구원론은
말 그대로 유물론적인 구원론입니다.
참 구원이란 주님의 말씀을 접하고 내적인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마치 자캐오가 주님을 접하고 내적인 변화를 가진 것처럼,
마음 속 자아를 괴롭힌 소리들에서 벗어나게
자유로움을 주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참된 의미의 구원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부동산으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세대들이 천당도 평수 넓은
아파트를 얻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합니다.
주일학교 교리시간에 보좌신부가
아이들에게 “구원이 무엇일까요?”하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여러 대답을 하는데 한 개구쟁이가 빙긋이 웃더니
“10원에서 1원을 빼면 9원이요!” 했습니다.
그 아이는 하느님을 놀린 벌로 신부가 돼서 구원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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