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영성 이야기]
선물 같은 오늘 하루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탈출 3,12)
요즘 어머니가 아프시다.
몇 주씩 입원도 자주 하고, 응급실도 여러 번 들락날락했다.
평소 건강하신 분이었는데, 갑작스레 찾아온 병 때문에
어머니와 가족들의 충격은 컸다.
게다가 입맛까지 변하셔서 식사도 잘 못하신다.
뭐라도 먹길 바라는 가족들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식욕을 잃은 어머니 몸은 점점 말라갔다.
게다가 검사는 왜 이리 많은지,
매일 같이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일 년에 한번 할까 말까 하는 컴퓨터 단층 촬영(CT)도 매주 했다.
촬영 전에는 금식도 해야 해서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하셨다.
가뜩이나 못 드시는데, 금식까지 하는 날은 마음이 정말 편치 않았다.
얼마나 힘드실까, 언제쯤 병이 나을 수 있을까,
왜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성서 속 여인(마르 5,21-34)처럼,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간절히 청했다.
제발 어머니 병을 낫게 해달라고….
최근에는 CT 촬영과 검사,
시술이 연달아 있었는데, 그 바람에 거의 3일을 금식하셨다.
해 질 녘에야 모든 시술이 끝났고, 금식도 끝났다.
입맛 없다고 또 안 드시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는데,
웬일로 어머니가 먼저 비빔면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좀 더 영양가 있는 걸 드셔야 하는 거 아닌가 했지만,
드시고 싶은 게 있다는 것 자체가 더 반가웠다.
병원 매점을 한걸음에 달려가 비빔면을 사왔다.
어머니는 정말 맛있게 드셨다.
절반도 채 못 드셨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듯 맛있게 드셨다.
어머니에게서 오랜만에 생기가 느껴졌다.
너무 기뻐 눈물이 났다. 비빔면이 뭐라고,
그거 잘 드시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다.
때마침 창 너머 노을이 번지고 있었고,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때 그 짧은 순간이 꿈처럼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걱정 없이 평화롭고 행복했다.
그날 저녁 성찰 기도를 통해 하루를 돌아보는데,
그때의 감동과 행복, 감사함이 다시금 느껴졌다.
메마른 사막에 한줄기 소나기처럼, 마음 졸이며 슬퍼하던 내게
하느님께서 선물을 주신 것 같았다.
당신께서 다 알고 있다고, 함께하고 있다고,
걱정 말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아픈 상황 자체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 하느님께서 함께하고 계시고,
그분께서 행복과 기쁨을 주시고자 하신다는 것이 다가왔다.
아주 가끔씩이라도 그것을 느낄 수만 있다면,
비록 그것이 찰나일지라도,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바라보며
베드로는 초막을 짓고 계속 거기 머물고 싶어 했다(마르 9,5).
그러나 찬란히 빛나던 예수님의 옷은 금세 빛을 잃었고,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녹록지 않은 사명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은 베드로에게 오래도록 특별하게 남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며 매일 마주하는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진면목을 잊지 않게 하고,
하느님께서 그분을 사랑하시고 함께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각인이 되었을 것이다.
살다보면 힘든 일을 겪으며
왜 이런 것을 겪어야만 하는지 질문이 올라오고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답이나 원인을 하느님에게서 찾으려 하기도 한다.
그럴 때 오래도록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고,
하느님에 대한 원망으로 끝나 버릴 수도 있다.
하느님이 뜻하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그 상황에서 한발 물러나 나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깊이 만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내 아픔과 슬픔을 잘 아시는 하느님,
내게 위로와 용기를 건네시는 하느님을 더 깊이 느끼고,
그분을 통해 힘과 자유로움을 얻는 것,
그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아닐까.
어머니의 투병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선물 같이 주어진 하루하루에 깊이 감사하면서
작은 것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도록 더 애써야겠다.
그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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