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공간 ▒▒ /∞ 말씀♡묵상

[금주의 말씀묵상] 2021년 8월 15(일) [백] 성모 승천 대축일

Berardus 2021. 8. 14. 07:09

[금주의 말씀묵상]

2021년 8월 15(일)

[백] 성모 승천 대축일

제1독서(묵시 11,19ㄱ;12,1-6ㄱㄷ.10ㄱㄴㄷ)

제2독서(1코린 15,20-27ㄱ)

복음(루카 1,39-56)

 

어머니와 함께 걷는 생명의 길

 

 

성모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은 신약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상징

하느님께 겸손히 순종하고 기도하며 구원계획에 참여하신 성모님

교회는 자녀다운 효성으로 신앙과 사랑의 모범 되신 마리아를 공경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이 축일은 교회 역사상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공경하는 전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림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지상 생활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은 하늘에 올림을받으십니다.

 

비오 12세 교황은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1950.11.1.)을 통해

‘성모님의 승천’을 믿을 교의로 선포하십니다.

천상 모후의 관을 쓰신 어머니는 저희가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도록협력하시는 ‘교회의 전형’이십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고

고백하는 우리는 성모님과 함께 걸으며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복음사가요 신학자인 요한 사도의 묵시록(제1독서)은

“신약은 구약에 숨어 있고 구약은 신약 안에서 의미를 드러냅니다.”

(계시 헌장 16항)라고 밝힙니다.

천상 성전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 하느님께서머무시는 ‘계약 궤’와 큰 표징들이 예형으로 등장합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은 모든 민족을 다스릴 아들을 낳습니다.

 

이 여인은 영육 간의 수고 외에도

악(용)의 세력의 도전을 받으며 극심한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찬송하듯 들립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묵시 12,10)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원천(제2독서)이심을 단언합니다.

아담의 원죄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의

‘맏물’이 되신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수액을 받아 많은 열매를맺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선물을 받은 우리는

성삼위와 친교를 이루어 영원한 생명의 유산을 받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재림하실 때

모든 나라와 권능과 영광을 하느님께 넘겨 드립니다.

인간이마지막으로 물리쳐야 할 원수는 죽음입니다.

우리는 자녀다운 기도인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바치며

죄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소망합니다.

 

오늘 복음(루카 1,39-56)은

동정 성모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전합니다.

유다 산악 지방에 아인카렘

(예루살렘 서쪽 6㎞)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요한이 태어나 살던 이 마을 안에는 성 요한세례자 성당이 있고,

마을 밖에는 마리아 방문 성당이 있습니다.

두 성당을 잇는 길에는 마을 이름을 딴 ‘포도원의 샘’이 있습니다.

 

아인카렘에서 두 분의 만남은

구약 시대가 저물고 신약 시대가 열리는 세상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인사를 할 때,

성령이 충만한 엘리사벳의 태 안에 아기가 즐겁게 뛰어놉니다.

‘주님의 어머니’가오심을 알아본 엘리사벳은 경탄하며 하례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찬미가를 부르듯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 루카 1,46~55)로 화답합니다.

‘마니피캇’은 이 노래를 라틴어로 번역한 첫째 단어입니다.

성모님과 인간 역사에 큰일을하신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 노래입니다.

 

노래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첫 부분(46~49절)은 만세가 행복하다 할 정도로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비천한 마리아에게

베푸신 큰일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다음(50~53절)은 거룩하신 하느님의자비는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교만과 부와 권세를 누리는 자들은 내치시고,

비천하고 가난한 이들은 돌보십니다.

마지막(54~55절)은 주님의 자비는 이스라엘은 물론

인류 역사에서 주님을경외하는 이들에게 영원히 미칩니다.

 

원죄 없고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는

하느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fiat)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참여합니다.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주님의 어머니’가 되게 해주신

하느님의 은총에감사하면서 나이 든

친척 엘리사벳에게 석 달가량 봉사합니다.

예수님의 강생, 유년 시절, 공생활, 부활의 산증인인 마리아는

주님의 승천 이후 오순절을 기다리며

다락방에서 공동체와 함께 한마음으로기도합니다.

 

세기 초부터 오늘까지 교회는

자녀다운 효성으로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를 공경합니다.

초대교회는 마리아 생애와 관련된 장소를 순례하고,

카타콤(지하무덤)에 가서 마리아상을 봅니다.

동방교회는축제 행사 때 찬미가를 부르고, 대관식과 행렬을 가집니다.

 

교회의 전승이나 관습을 보면

성모님 승천축일에 행렬, 촛불 봉헌, 화관 증정 외에도

‘약초축성’과 포도 맏물 봉헌 등으로 공경합니다.

교회는 ‘병자의 치유’이신 성모님께 인류를 위해

코로나19 극복을청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중재기도에 함께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성모님은 ‘교회의 어머니’십니다.

‘천주의 성모님’을 공경하는 우리는 성모 호칭기도로

주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고, 세상의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전구를 청합니다.

침묵의 묵주기도를 바치며 주님 말씀을 묵상하고,

사랑의 삶으로 복음의 빛을 세상에 전하게 하소서.

아멘.

 

-김창선-

 

△ 제주 용수 성김대건신부님 표착지 성모상

 

 

[한주간 전례]

 

 

2021년 8월 16일 (월) [녹]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19,16-22

 

어떤 청년이 질문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계명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부자 청년이 이미 그런 것들은 잘 지켜 왔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자신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준 뒤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완전한’이라는 형용사는

네 복음서 가운데 오직 마태오 복음에만 세 번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제자들과 군중을 대상으로

이웃 사랑을 넘어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완전해질 수 있다고

이미 가르치셨습니다(마태 5,43-48 참조).

유다인들은 율법을 완전히 지킬 때 완전하게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완전은 전심전력을 다해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몸과 마음을 전적으로

다 바치는 데 있습니다”(박영식, 『마태오 복음 해설』, 157면).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을 뛰어넘는훨씬 더 큰 사랑이 요구된다고 하십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은

‘수도자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막의 안토니오 성인입니다.

성인은 어느 날 이 말씀을 듣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사막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성경을 읽고 기도함으로써 하느님을 닮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것이 수도 생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안토니오 성인과 똑같이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각자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이웃을위하여 헌신함으로써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2021년 8월 17일 (화) [녹]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19,23-30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건강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둡니다.

건강을 위해서 무엇이든 먹고, 무엇이든 합니다.

혐오 식품을 먹기도 합니다. 돈이나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인생의 최고 가치로 둘 때,

그 사람은 돈을 벌고자 무엇이든지 하고,

그 돈을 쓰는 데에서도 무엇이든지 합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다치게 하는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건강이나 돈, 권력 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라나서는

제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최고 가치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최고 가치인 하느님의 눈으로세상 것을 보아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백 배의 상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을 얻게 됩니다.

하느님을 삶의 첫 자리에 둘 때 건강과 돈,

권력을 제대로 볼 수있습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돈을 보면,

돈을 얻기 위해서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방법을 이용하게 됩니다.

돈을 쓸 때에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방법 안에서 사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최고 가치인하느님이라는 기준이 명확해지면

세상의 가치를 하느님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건강이나 권력 그 자체를 좇지 않고

‘그것들이 나를 하느님께 인도하는가,

아니면 멀어지게 하는가?’를 올바로식별할 수 있습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2021년 8월 18일 (수) [녹]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20,1-16

 

오늘의 묵상오늘 복음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한 시간 일한 일꾼과

똑같은 품삯을 받게 된 맨 먼저 온 일꾼들이

자비한 포도밭 주인에게 투덜거리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하늘 나라에 관한 이야기라고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포도밭 주인은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시며,

품삯은 하느님을 믿고 따른 신앙생활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인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투덜거리는 일꾼들처럼

우리도 하느님께 불평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 저는 당신 마음에 드는 신앙인이 되고자

평생을 얼마나 조심하며 살았는데,

죽기 바로 전에 세례 받았다고 똑같이 천국에간다니 말이 됩니까?”

 

그런데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물로 받게 되는 ‘영원한 생명은 관계의 문제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는 생명이신

하느님과 맺는 관계를 통해 살아 있는 이가 될 뿐아니라,

죽음도 빼앗을 수 없는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 『나자렛 예수 2』, 114면 참조).

따라서 죽기 바로 전에 하느님의 이름만 알고

죽은 사람이 하느님과 맺은 친교의 깊이와,

한평생 하느님 안에서 울고 웃으며 그분과 함께 살아온 사람이

하느님과 맺은 친교의 깊이는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느님과의 친교로 이루어진,

그분을 알고 그분을 닮고자 내어 주는 삶을통하여

맛보게 되는 행복의 크기와,

마침내 이 세상을 마치고 하느님 앞에 나서서

그분과의 일치로 얻게 되는 영원한 행복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지만,

우리가 받아들이는 선물의 크기와 깊이는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한 시간의 양이 아니라,

하느님과 얼마나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2021년 8월 19일 (목) [녹]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22,1-14

 

십여 년 전 위령의 날 미사에 참례하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에게 인사를 더 잘하고 싶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거울 보고 웃는 연습도 하였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반갑게 신자들을 만날 생각을 하며 식당쪽으로 갔는데,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복잡해서인지

막상 인사를 건네는 분이 없었습니다.

어깨를 부딪혀도 가벼운 눈인사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길을 내려와 마당에 이르니 저쪽에서

큰 가마솥을걸어 놓고 국밥을 퍼 주고 있던 몇몇 신자가

국자를 내팽개치고 달려와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신부님, 제 딸이 시집을 갔어요.”

“신부님, 남편이 냉담 중이에요.” 하며제 어깨를 쓰다듬고

손을 잡고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러고는 기쁨에 넘치는 얼굴로 다시 국밥을 퍼 주러 뛰어갑니다.

그분들은 첫 본당 신부 시절에 만난 신자들이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어깨를 스친 신자들은 고개만 끄덕하고,

국밥을 퍼 주던 신자들은 멀리까지 달려와 인사를 하는가?’

그러다가 ‘아, 사람과 사람이 맺은

인격적 관계의 깊이때문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신부라도 서로 인격적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으면 데면데면하지만,

아픔과 기쁨을 함께한 사람을, 그런 신부를 만나면 그리 반가운 것이구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혼인 예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입니다.

힘들 때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고, 울고불고 난리를 친 뒤

그분에게서 힘과 지혜와 용기를 얻어 하나하나 극복해 나갔던 일.

내어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닮고자 나 또한 내 것을 내어 주고,

그래서 그 사랑이 되고자 한 노력들 …….

그러한 노고의 땀방울들이모여서 만들어 낸

하느님과의 친교의 깊이가 바로 우리가 마련해야 할 혼인 예복입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2021년 8월 20일 (금) [백]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베르나르도 성인은

1090년 프랑스 디종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뒤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었다.

성인은 몸소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저서도 많이 남겼다.

1153년에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830년 비오 8세 교황은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복음묵상] 마태오 22,34-40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율법은 모세가 하느님께 받은 십계명에서 시작됩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2) 약속하시고,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 충실하라.’고 율법을 내려 주십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율법 조항이 613개로 늘어나게 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점점 법의 준수 여부에 더 큰 의미를 둡니다.

기본 정신은 잊고 법의 준수에만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고

가장 큰계명이 무엇이냐고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고 답하십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유다인들은

날마다 두 번씩 ‘쉐마 기도문’을 낭송하였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

그럼에도 이들은 왜 하느님을 잊었을까요?

 

이는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40)는 말씀처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잊어버리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 여겼기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21).

 

-(서철 바오로 신부)-

 

2021년 8월 21일 (토) [백]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858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20년 가까이 본당 사목자로 활동하다가

만투아의 주교와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를 거쳐,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비오 10세 교황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교회법을 현대화하여 새 법전을 편찬하고,

성무일도서도 개정하였다.

또한 그는 참된그리스도인 생활을 해치며

교회를 위협하는 오류들에 대항하여 싸웠다.

1914년에 선종한 비오 10세 교황은 1954년에 시성되었다.

 

[복음묵상] 마태오 23,1-12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

유다교 지도자들의 하느님 말씀에 대한 사랑은 놀랍기만 합니다.

양피지에 구약 성경의 핵심 구절(탈출 13,1-16; 신명 6,4-9; 11,13-21)을 적어

양피지로 만든작은 갑에 넣습니다.

이것이 ‘성구갑’입니다. 이를 이마와 왼팔 윗부분에 묶는데,

머리로 율법을 생각하고 왼팔 윗부분이

맞닿는 심장으로 율법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또 겉옷의 네 귀퉁이에 흰실과 푸른 실을 꼬아 술을 만들어 달았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주님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그대로 지키도록 하라는 말씀(민수 15,38-39 참조)에 따른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왜 심판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지우고는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까딱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입법자인 모세는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느님을 만났고,

백성이 그분의 뜻을 법으로 지키게 하였습니다.

“나는 ……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들었다.

…… 그래서 내가 …… 내려왔다”(탈출 3,7-8).

유다인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께서 백성의 울부짖음을 듣고

내려오셨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이는 우리 자신에게도물어보아야 합니다.

장 바니에는 “하느님은 ‘파라클리토’라고 합니다”(『눈물샘』, 159면).

그리스 말인 ‘파라클리토’(Paracletos)는

‘곁에’(para)와 ‘부르다’(kleo)가 합쳐진단어로 일반적으로 보호자,

변호자로 번역되며 ‘곁으로 불려 온 이’, ‘부름에 응답하는 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가장 중요한 모습은,

도움을 청하는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된다는 것은 마치 아이가 엄마를 부를 때

이에 응답하여 파라클리토 엄마가 되듯이,

우리도 다른 이의 울부짖음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섬기는 사람이 되는 방법이 아닐까요?

 

-(서철 바오로 신부)-

 

************************************

 

코로나 상황이 점차 확산 일로에 있습니다.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길이 떨어져 있는 것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그 기간이 길어진다 하더라도

나부터 우리를 위하여 견뎌 내어야 하겠습니다.

 

-Berard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