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저희 가족을 한 사람씩 따로 부르시고는
“우리 집안에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단다.” 하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전해 들었습니다.
모두에게 같은 말씀을 하셨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만,
저마다 모두 그런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셨던 것이 이 집안을 지켜 오시다가
마지막 작별을 하시는 할머니의 진심이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동안 그들을 지켜 주셨습니다.
이제 그들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시면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나약함을 잘 아셨으나
하느님께서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기도하지 않으시고
시련과 유혹에서 지켜 주시도록 간청하셨습니다.
아울러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하나이듯이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주시고
또한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시도록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힘만 믿고 인생을 살아갈 때 좌절과 실망을 체험하겠지만,
우리를 위해서 늘 아버지께 간청하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궁극적인 위로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그가 에페소에 머무는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신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이 그들을 돌볼 수 없기에 그 교회의 원로들에게
양 떼를 잘 돌보라고 간곡히 당부하면서 작별 인사를 합니다.
오늘 독서를 묵상하면서 ‘만남과 이별도 성령의 이끄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바오로 사도처럼 남김없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려면 시련이 따르기도 하고 책임을 져야 할 일도 많을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만남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작별이 필요 없는 영원한 만남을 신앙 안에서 기약하면서
바오로는 에페소 교회 원로들과 뜨거운 눈물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집니다.
이와 같이 오늘 독서와 복음의 간절한 말씀 안에는,
맡겨진 이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배어 있습니다.
온 정성과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들을 위해 헌신하신 다음 떠나가시면서
그들의 앞날을 염려하시는 예수님과 바오로 사도에게서,
자녀를 낳아 기르는 부모와 같은 모습이 보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권고하듯이,
교회 안에서 공동체를 돌보는 이들의 모습도 이러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에페소 교회에서 보여 주었던 모범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종으로서 교회의 직무를 맡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과 같은 ‘착한 목자’의 정신과 자세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