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사도의 밀레토스 설교를 묵상하다 보면 늘 부러움을 느낍니다.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내어 주었기에 아쉬울 것도 후회할 것도 없는 삶,
이것이 그의 삶이었습니다.
이 설교에서 바오로 사도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예수님께 받은 직무”인데 그 내용은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그에게는 이것이 삶의 의미였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왔고, 이것에 자신의 삶을 후회 없이,
남김없이 다 바쳐 왔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목숨을 아까워해야 할 이유도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살면서 겪은 시련과 눈물,
그리고 앞으로 닥칠 투옥과 환난과 죽음마저도 그 직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할 일을,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을 완수했으니
하느님 앞에 가서 자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1코린 9,16)이며
자신에게 맡겨진 당연한 직무라고 밝혀 왔기 때문입니다.
‘직무’는 그 일을 해서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셨듯이,
바오로도 자신이 행한 모든 것은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라는 직무는 바오로에게 덧붙여지거나 부과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기도’가 봉독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님의 구속 사업을 종결하는 최대의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에,
십자가는 그분에게 일생의 영광이었고, 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분께 순종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에게서 오신 예수님께서
그분께 되돌아가셨기 때문에 십자가는 영광에 이르는 문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시는 직무는 서로 다릅니다.
평생 이루어야 할 사명도 있고,
오늘 만나야 할 사람도 있으며,
지금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한 순간 한 순간에 정성과 최선을 다하여 바오로 사도처럼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에 기쁜 마음으로 길을 나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오늘 하루에도 우리는 수없이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겠지요.
그때마다 “이 십자가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자문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