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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殉敎)의 넋을 찾아] 청주교구/ 배티 성지

Berardus 2019. 10. 12. 09:42

청주교구 / 배티 성지

▲배티성당외부 천혜의 피신처라 할 수 있는 배티는 충북 진천군과 경기도 안성시가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위치한 깊은 산골이다. 현재 진천에서 배티를 거쳐 안성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말끔하게 포장돼 있고, 좌우의 경부 고속도로와 중부 고속도로 그리고 둘을 연결하는 평택 제천 고속도로가 성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이 지역은 서쪽으로 안성, 용인, 서울, 남쪽으로는 목천, 공주, 전라도 그리고 동쪽으로는 문경 새재를 지나 경상도로 이어져 박해 시대에는 내륙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배티 성지 최양업 신부 성당터 최양업 신부 가족 흉상 이처럼 각 지역과 쉽게 연결되면서도 깊은 산골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1830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우촌이 형성돼 왔고 최양업 신부가 이 지역을 근거로 전국을 다니며 사목 활동을 해 왔다. 배티 인근의 교우촌으로는 은골, 삼박골, 정삼이골, 용진골, 절골, 지구머리, 동골, 발래기, 퉁점, 새울, 지장골, 원동, 굴티, 방축골 등 배티를 포함해 모두 15곳이나 된다.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에 위치하고 있는 배티는 동네 어귀에 돌배나무가 많은 배나무 고개라서 ‘이치(梨峙)’라고 불렸고 이는 다시 순 우리말로 ‘배티’라고 불리게 됐다. 배티 인근에는 명승지와 성지들이 많이 있어 시간과 여건이 허락된다면 함께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안성에서 미리내 성지를 거쳐 용인 민속촌과 자연농원 또는 죽산 칠장사를 거쳐 양지에 있는 골배마실과 은이 성지를 갈 수 있다. 또 남쪽으로는 유관순 기념관과 독립 기념관 그리고 온양 온천이나 현충사를 가는 것도 가능하다. ▲배티 성지 최양업 신부 성당터 순교자 유 데레사의 묘 대중교통을 이용해 배티를 가기 위해서는 우선 진천으로 가서 백곡을 거쳐 양백리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거나 안성에서 석남사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백곡 공소가 있는 백곡에서 배티까지는 약 4km 정도이므로 도보로 순례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배티 성지 입구 표지석과 쉼터 진천에서 18km 정도 지점에 ‘삼박골 비밀 통로 순교자의 묘’라는 푯말이 나오는데 그 중간에 백곡 공소가 길 왼쪽에 서 있다. 여기에는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윤 바르바라와 박 바르바라의 묘가 있는데 이들은 친시누이올케 관계이다. 순례객은 여기서부터 순교선조들의 향기를 조금씩 느낄 수 있다. ▲배티 성지 최양업 신부 성당터 최양업 신부 성당 겸 사제관 ‘삼박골 비밀 통로’라는 푯말을 지나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면 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여기서 배티까지는 약 2km 정도로 걸어서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 길은 박해 시대에 배티로 넘어가던 비밀 통로였는데 무성한 수풀 사이로 난 좁다란 길은 믿음 하나로 험한 산길을 마다하지 않던 당시 선조들의 가쁜 숨결을 느끼게 한다. 삼박골은 베르뇌 장 주교와 페롱 권 신부가 박해를 피해 은신했던 교우촌으로 현재 공소는 없어지고 순교자 이 진사의 부인과 딸의 묘소만이 남아 있다. 푯말이 서 있는 곳에서 안성 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드디어 배티 성지가 나온다. 입구 들머리에는 2012년 4월 15일 축복식을 가진 고딕 양식의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성당이 넓은 광장과 함께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성당 맞은편에는 아담한 배티쉼터도 새로 마련되었다. 성당 오른쪽으로 오르막 길에 들어서면 ‘순교 현양’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먼저 순례객을 맞는다.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꺾지 않았던 선조들의 굳은 정신이 단단한 비석을 통해 느껴진다. 100m 정도 올라가면 왼쪽으로 1997년 6월 봉헌된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이 있고, 그곳에서 시작되는 오솔길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십자가의 길 14처가 세워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각 처가 모두 하나씩의 커다란 맷돌에 새겨져 있어 순교자들이 겪어야 했던 박해의 육중한 무게를 보여주는 듯하다. ▲배티 성지 최양업 신부 성당터 최양업 신부상 14처가 끝나는 곳에는 자연석 그대로의 제대와 함께 나무 밑동을 그대로 잘라 만든 야외 성당이 있고 산기슭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다. 제대 위의 촛대 역시 14처와 마찬가지로 맷돌로 만들어져 있고 제대 앞과 주위에는 나무 등걸로 이루어진 좌석들이 늘어서 있다. ▲배티 성지 최양업 신부 성당터 십자가의 길 최양업 신부가 머물던 사제관과 무명 순교자 묘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성모상을 지나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등산로를 넘어야 한다. 이것이 어려울 경우에는 성지 입구로 다시 내려와 배티 고개를 향해 약 400m 정도 올라가면 길가 오른쪽에 '최양업 신부 성당터'라고 쓴 입간판이 서있는데, 이곳에서 103위 성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우측에 최양업 신부가 여름 장마철이면 머물던 성당 겸 사제관이 말끔하게 복원되어 있다. 1년에 5,000리에서 7,000리까지 걸어 다니며 심할 때에는 한 달에 겨우 나흘밖에 못 잤다는 최양업 신부는 전국을 앞마당처럼 다니다가도 장마철에는 여기에 머물며 “천주가사(天主歌辭)”를 집필했고 기도서인 “성교공과(聖敎功課)”를 번역했다. 그러나 그가 기거하며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하던 두 칸짜리 옛 초가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배티 기념성당 외부 1999년 최양업 신부가 머물렀던 성당 및 사제관 터를 확인한 후 그 부근에 있던 농가를 매입해 철거하고, 2001년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한 후 최양업 신부 동상도 세웠다. 이 집은 이미 1849년 페레올 주교의 명으로 다음해 다블뤼 신부 (후일 제5대 조선 대목구장)가 설립하여 페낭 신학교 유학생을 준비시키는 조선교구의 소신학교로 사용했었고, 최양업 신부뿐만 아니라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제들의 사제관과 성당으로도 활용했었다. 여기서 잘 포장된 배티 고개 길을 따라 900m 정도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면 ‘14인 순교자 묘역 입구’라는 푯말이 서 있다. 이곳은 배티에 숨어 신앙생활을 하던 선조들이 포졸들에게 잡혀 안성으로 끌려가다 집단으로 순교한 곳이다. 이곳에는 모두 14기의 무명 순교자 묘가 있다. 이 외에도 배티 성재골에 6인 무명 순교자의 묘가 있으며, 신원이 알려진 순교자 묘로 백곡 공소에 2기, 인근 교우촌에 6기가 더 있어 배티 인근에는 총 28기의 순교자 무덤이 산재해 있다. ▲배티 성지 순교현양비 배티를 중심으로 진천 일대에서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 때에 60여 명의 순교자가 났는데, 그 가운데 교회 순교록과 관변 기록에 그 순교 행적이 전해지는 순교자는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8명을 포함하여 모두 34명에 이른다. 나머지는 배티 일대에 이름 없는 묘소들로 산재해 있다. ▲최양업 신부 성당터 잔디광장과 야외제대 청주교구는 이처럼 유서 깊은 배티 성지를 성역화하고 한국교회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영성을 본받고 현양하기 위해 최양업 신부 사제 서품 150주년을 맞은 1999년 양업 교회사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선교 활동과 신앙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현양 활동과 시복시성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배티 성지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성당 성모상 2002년 12월 3일 ‘양업 영성관’(피정의 집)을 신축해 봉헌식을 거행했으며, 복원된 최양업 신부 옛 성당 입구에 103위 순교 성인 계단과 양업 영성관 입구의 시복시성 대상 순교자 묵주알 계단도 함께 조성하였다. 양업 영성관은 지상 2층 규모로 3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어 개인이나 가족 단위의 피정이 가능하다. 또한 청주교구는 2009년 교구 내의 대표적 성지인 배티와 연풍을 잇는 84.6km의 도보성지 순례길을 마련하여 순례객들을 돕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