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 곡성 성당(옥터)
■정해박해의 진원지이자 교우들을 가둔 옥터 ■
▲곡성 성당(옥터) 전경
성춘향이 그네 뛰던 남원에서
17번 국도를 따라 20km 남짓한 거리,
파란의 역사를 간직하고 수려한 자태를 보이는
지리산 국립공원 산자락 아래 자리한 곡성은
1827년 정해박해의 진원지이자
교우들이 붙잡혀 와 갇힌 옥터가 있는 곳이다.
1801년의 신유박해 이후
비교적 대규모의 박해는 없었으나
전국 각지에서 국부적으로 행해지던 박해는 끊이지 않았다.
곡성 지방에 복음이 전래된 시기는 1815년경
을해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이 일대에 정착하면서부터이다.
그러던 중 1827년
전라남도 곡성 덕실 마을의
한 옹기점에서 일어난 조그만 사건이 그만
교난으로 확대되니 그것이 정해박해이다.
곡성은 정해박해의 진원지로 그 시초는
일부 행실이 좋지 않은 신자들과의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됐지만
그 박해의 끝은 순교의 영광으로 물들었다.
▲곡성 성당 옥터 성지 옥사(獄舍)
옹기굴의 직공들은
대부분 천주교 신자였는데
순교복자 한덕운 토마스(韓德運, 1752-1802년)의
아들인 한백겸은 성질이 아주 광포하고
주사가 심해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가마를 여는 축하연이 벌어졌을 때,
거나하게 취한 한백겸은 신입교우인
주막집 주인 전씨의 부인에게 행패를 부렸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남편 전씨가 홧김에
천주교 서적을 가지고 곡성 현감을 찾아가
그를 포함해
몇 명을 관가에 고발했다.
곡성 현감은 관내에
천주교 신자가 있다는 사실에 대경실색,
닥치는 대로 교우들을 잡아들였다.
▲곡성 성당 옥터 성지 십자가의 길
곡성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더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들었고,
피신하는 신자들을 따라
탄압의 손길이 퍼져 나가
급기야는 순창 · 용담 · 임실 ·
장성 · 전주 등 전라도 전역으로 확대됐다.
전라도의 모든 옥은 이때 잡힌 교우들로
초만원을 이루게 되는데
전주 감영에만도 240여 명이 넘었다고 전해진다.
정해박해는 여느 박해와 달리
그 기간은 짧았지만 탄압의 정도는 매우 심했다.
두 달간 맹렬하게 계속된 박해는
조정의 태도가 완화됨에 따라 누그러졌지만
얼마나 혹독하고 광범위했던지 전라도 지역에서는
교우들이 집단생활을 전폐하고
심산유곡으로 피신해 생명을 유지하기에 급급했다.
▲곡성 성당 옥터 성지 입구
정해박해 당시 전라 감사
김광문(金光文)이 추위와 더위,
굶주림에 약한 인간의 나약성을
매우 교묘하게 이용해
붙잡힌 교우들의 많은 수를 배교하게 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 때 약
5백여 명의 신자들이 잡혔는데
그들 대부분이 배교했다고 한다.
▲곡성 성당 성모상
하지만 그런 중에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이들이 있어
더욱 빛을 내고 있다.
장계 고을 이 바오로의 누이이며
이명의의 어머니인 이 막달레나는
박해 시초에 곡성에서 체포되어
온갖 고초에도 굴하지 않고
황해도 백천으로 귀양 가
4년여의 유배 생활 끝에 1830년 53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고산(高山)에서
포졸에게 온 가족 13명과 함께 잡힌
이성지 세례자 요한은
무려 9년 동안 옥에 갇혀 괴로움을 당하고
8개월을 병마에 신음하다가 1835년 세상을 떠났다.
또 그의 셋째 아우인 이성삼 요한 역시
그 해 3월에 체포돼 고초를 겪다가
반년이 채 못 돼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들의 행적 중에 일부는
지금도 기록으로 전해 내려와
후손들에게 박해를 뚫고 믿음을 지킨
용맹한 신앙의 무용담을 들려주고 있다.
1802년 한양에서 순교한 복자
이경도 가롤로(李景陶, 1780-1802년)와
1801년 전주에서 순교한 이순이 루갈다의 막내 동생인
복자 이경언 바오로(李景彦, 1792-1827년)도
책과 상본을 전파하다가 붙잡혀
수없는 배교의 유혹과 매질 속에서 순교하였다.
▲곡성 성당 예수성심상
믿음의 자유를 얻은 후
광주교구는 1957년 순교의 현장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신자수가 10명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박해 당시 옥터였던 객사 자리에 대지를 마련하여
1958년 8월 15일 본당 설립에 이어
그해 10월 6일 성당을 준공하였다.
▲곡성 성당 야외제대
2001년 곡성 성당은
성지 조성을 계획을 발표하고
성역화 사업을 본격화하여
이듬해 7월 정해박해 순교성지 기념
‘하늘못’ 축복식을 가졌다.
하늘못은 당시 신앙 선조들이
생계와 신앙 유지를 위해 옹기를 구우며
생활해왔던 삶을 상징하는 옹기 형태의 연못이다.
하늘못 옆에는 자연석 제대를 마련하여
순례객들이 야외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어 정해박해의 진원지이자
옥터 위에 세워진 본당 역사에 걸맞게
2006년 낡고 오래된 성당에 대한
개축공사를 실시해 7월 22일 축복식을 가졌다.
성당 내부를 정해박해를 상징하는
옹기 가마터 모형의 돔형으로 예수님의 갈비뼈를 형상화했고,
쇠사슬에 묶인 예수님 성상을 제대 옆에 설치하여
박해로 순교한 신앙 선조들을 기념하고 있다.
또 정해박해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하는 옥터 전시실도 개관했다.
▲곡성 성당 옥터 성지 표지석과 안내도
2007년 5월 9일
정해박해 180주년을 재조명하는
학술발표회를 개최하고,
12월 20일 승법리 가마터에
기념비와 안내판을 설치하였다.
이어 2008년 10월 12일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성당 마당에 옥사(獄舍)를 복원하고
야외 십자가의 길을 조성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옥터 공원화사업의 일환으로 옥사 앞에
소나무공원을 조성하고 2010년
옥터 앞에 야외제대도 설치하였다.
2011년 10월 16일에는 주차장 설치사업 및
종합관(아가페)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2016년 3월 26일
성당 지붕의 낡은 슬레이트를 철거하고
동판으로 교체하는 등
정해박해 기념성지 조성에 힘쓰고 있다.
▲곡성성당_옥사
1827년 정해박해 때
전주 옥에서 순교한 이경언 바오로와
1839년 기해박해 때까지
12년 동안 전주 옥에 수감되었다가 순교한
김대권 베드로 등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곡성성당_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