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우리는 이렇게 결정하였습니다.” 하고 신자들에게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도들이 무척 부럽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고 싶어 함께 모여
고민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며 투표하고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사심도 선입견도 없이 온전히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맡겨 드리고
그 결정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
가난하고 초라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달하기에는 한참 멀어 보일지라도 예루살렘 사도 회의는
교회 안에서 의사 결정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지를 알려 줍니다.
어제에 이어 사도들의 결정 과정을 되짚어 보면,
바오로 측에서도 양보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코린토 1서에서 그는 올바른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이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규정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전혀 양보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고집하였거나
아니면 누군가 나서서 피를 먹어도 된다고 끝까지 맞섰더라도,
그것이 결코 진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발전된 신학을 전개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당시의 문화에 매여 있는 다른 이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오로도 다른 누구도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집을 부리면서 끝까지 버텼다면 혼자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가장 위험한 일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배척하면서
나만 진실과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그에 따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계속 갈라지고, 진리를 찾는 이들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 바오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끝까지 관철시키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교회 공동체가 자기주장을 이해하고 수용한 뒤
그것을 함께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자제하면서 노력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