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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노동자 성 요셉 /셩 예레미야 예언자

Berardus 2022. 4. 30. 16:57
 
 

 

 5월 1일

노동자 성 요셉

Saint Joseph the Worker  
San Giuseppe Lavoratore
St. Jpseph, Opificis sponsi. B. M. C. Conf
Died:1st century, prior to the Passion, of natural causes
Giuseppe = aggiunto (in famiglia), dall’ebraico
= added (in family), dall’ebraico
 
 
성 요셉은 교회 전체의 주보로 공경받을 뿐 아니라
노동자, 가정, 동정녀, 환자, 임종하는 자의 주보이기도 하다.
교황 비오 11세는 요셉을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자들의 주보로 정하였고(1973년),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나자렛 성가정의 보호자 성 요셉에게
 ’노동자의 수호 성인’이라는 호칭을 부여하였다.
1955년 5월 1일에 교황 비오 12세는 이 날을 노동자 성 요셉 축일로 선포하였다.
 
요한 23세는 성 요셉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보호자라고 불렀다 (1961년).
한국 교회는 성 요셉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더불어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공경한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성 요셉 축일을 예수 부활 후 셋째 수요일에 지내오다가
3월19일로 성 요셉 대축일을 정했습니다.
또한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1956년에 5월 1일을 노동자의 날로 정하시고,
노동자 성요셉 축일을 설정하여 요셉 성인이
 모든 노동 단체의 모범이 되시고 보호자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 성인의 표양을 본받아 활동을 하고 기술을 익혀야 하며, 요셉 성인의 정신으로
자기 책임을 완수하면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세상을 다스리고 번영을 도모하여
영원한 생명의 상급을 얻어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나자렛 성가정의 보호자이신 요셉성인은 자신을 본받아 따르는 모든 이에게
보호와 은총을 누리도록 빌어주시며,
그들의 거룩한 가정을 번영하게 하여 주시리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12월8일.게시판1511번.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배필 성요셉 대축일:3월19일.게시판1669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에서
(Nn. 33-34)
 
우주 안의 인간 활동
 
인간은 자기 노력과 재능을 다하여 자신의 생활을 발전시키려고 언제나 분투해 왔다.
현대에 와서 인간은 특히 과학과 기술의 도움을 받아 그 지배권을 거의 자연계 전체에 확장했고
또 계속 확장하고 있다.
또 무엇보다도 국가들 사이의 여러 가지 교류 수단이 증가함에 따라
인류 가족은 점차 전 세계의 한 공동체임을 자각하며 그렇게 형성되어 가고 있다.
여기서 인간은 한때 초 인간적인 힘에 의존하던 많은 혜택을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전 인류에게 퍼져 가는 이 거대한 노력 앞에서 인간들에게는 많은 문제점이 생긴다.
인간 활동의 의의와 가치는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
개인적 내지 사회적 노력은 도대체 무슨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가?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위탁받아 보존하며
 거기서 종교적 내지 윤리적 분야 의 여러 원리를 찾아내고
있으므로,개개의 문제에 언제나 즉각적인 해답은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근에 인류가 걷기 시작한 행로를 비추어 주기 위해 서 계시의 빛을
 모든 사람의 경험에 결부시키고자 한다.
 
인간이 세기를 통하여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노력해 온 이 거대한 노력은
그 자체가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한다는 것이 신자들에게는 명백한 일이다.
과연,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며 의롭고 성스럽게 우주를
통치하고,하느님을 만물의 창조주로 인식하며 자신과 전우주를
하느님께 바쳐 드리라는 명을 받았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을 인간에게 복종시킴으로써 하느님의 이름이
 전 우주에 빛나도록 해야 한다.
 
이 명령은 또한 일상 노동에도 적용된다.
 자기와 가족들의 생활 유지를 위하여 노동하면서 동시에
사회에 적절히 봉사하는 남녀는 자신의 노동으로 창조주의 사업을 계속하고
 형제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며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성취시키는 데에 개인의 노력으로 이바지한다고 여기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인간이 스스로의 재능과 힘으로 만들어낸 것을 하느님의 권능에 배치된다거나
이성을 가진 피조물을 창조주의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인류의 승리는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증거요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계획의 결실이라고 확신한다.
인간의 능력이 커질수록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간의 책임도 더욱 확대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우주 건설에서 인간들을 외면시키거나 동료들의 복지에 무관심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도록
 강력히 촉구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가톨릭홈에서)-
 
성 요셉과 예수님 (St. Issoire 대성당.프랑스 중부)
- photo by Kolbe ManYoung, CHUNG. SJ
 
찬미가
 
본받을 노동자신 성요셉이여
나자렛 성가정에 숨어계시니
우리는 기쁜소리 높이외치며
겸손된 마음으로 노래하리다.
 
왕족에 맞지않는 검소한생활
태연히 받아들여 묵묵히참고
손으로 심한노동 기꺼이하며
거룩한 아드님을 길러내셨네
 
노동자 거울이신 성요셉이여
땀흘린 노동으로 성화되시고
일터도 성화하는 모범주시려
우리게 생활증거 보여주셨네
 
불쌍한 주린이들 도와주시고
방종자 이끄시며 분쟁막으사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우리교회를
아버지 보호아래 키워주소서
 
삼위로 일체이신 하느님이여
누리의 창조주며 아버지시여
살아서 성요셉을 본받음으로
죽음도 요셉처럼 맞게하소서. 아멘.
 
 
의로운 요셉을 택하시어 성자의 유년기와 소년기를 돌보게 하신 주여,
우리도 형제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게 하소서.
 
땅을 가꾸며 지배하도록 사람들에게 맡겨 주신 주여,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항상 주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도록 가르쳐 주소서.
-(성무일도 청원기도)-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사제의 설교에서
(Sermo 2, de S. Ioseph : Opera 7, 16. 27-30).
 
충실한 양부(養父)이시며 보호자이신 성 요셉  
 
하느님께서는 어떤 한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실 때 다음과 같은 일반 법칙에 따라 하십니다.
즉 특별한 은총을 주시려고 혹은 특별한 위치에 올리시려고
어떤 사람을 택하실 때 그 사람에게 자기 직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은사를 베푸십니다.
이러한 법칙은 특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이시며
세상과 천사들 여왕의 참된 배필이신 성 요셉에게 훌륭히 실현되었습니다.
영원하신 아버지께서는 요셉을 당신의 가장 고귀한 보화이신 외아드님과
성모님의 부양자(扶養者)와 보호자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이 직분을 충실히 완수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착하고 충실한 종아,
네 주인의 기쁨 안으로 들어오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요셉을 그리스도의 온 교회와 관계하여 생각해 본다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아무런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가장 정당한 길로 오시도록 하느님께서 간택하신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교회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받았기에 동정녀께 큰 은혜를 입고 있다면,
동정녀 다음으로 요셉에게도 특별한 은혜를 입고 있으며
그에게 감사와 공경을 바쳐야 합니다.
 
요셉은 구약의 완성입니다.
요셉 안에서 예언자들과 성조들이 받은 약속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예언자들과 성조들에게 약속으로만 주어졌던 것이
이제 실현된 것을 요셉 홀로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계시던 동안 당신의 아버지로서
 요셉에게 보여 주셨던 그 친밀성과 지극한 존경심을
하늘에서도 거부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더 완전히 보여 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자, 네 주인의 기쁨 안으로 들어오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가는 것은 그 사람이 행복한 일이지만 주님께서 오히려
 당신의 기쁨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상징적으로 그 기쁨은 단순히 사람의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사람을 감싸주고
마치 하느님의 끝없는 심연 속에 삼켜지듯 사람을 흡수해 버린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복되신 요셉이여,
우리를 기억하시어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로 여긴 그분께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소서.
또 당신의 정배이시며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의 자비를 얻어 주소서.
그리스도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세세에 영원히 생활하시고 왕하시나이다. 아멘  
-(가톨릭홈에서)-
 
 
교황 비오 12세는
1955년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 축일’에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
노동자 성 요셉’ 축일을 제정하였다.
모든 나라에서 이 기념일을 5월 1일에 지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늘날 이 기념일은 임의적인 것이 되었다.
 
나자렛의 겸손하고 위대한 노동자 성 요셉의 모습은
전 인류의 구원자이며 하느님의 아들이면서도 인간의 삶에 직접 뛰어들어
그 고난에 동참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하여 노동은 하느님의 창조 역사에 동참하고 완성케 하는 신비한 능력을
인간에게 주는 것이라고 노동관이 성립되었고
이것은 인간의 진정한 노동가치에 눈뜨게 해주었다.
 
현대인들은 때로는 폭력을 사용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와 인격의 존엄성을 주장하게 되면서
이러한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사회적 투쟁으로 인하여 자신의 이익에 손실을 보게된 일부 그리스도 신자들이
이러한 노동자들의 사회적 요구를 자주 외면해 왔다.
바로 이 점이 많은 현대인들의 눈에 5월 1일이
마치 교회에 대항하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으로 비치게 된 이유이다.
 
이제 교회는 노동의 현실적 가치를 존중하며, 정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몇 나라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투쟁속에서 노동자 계급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옹호하기 위하여
’노동 축일’을 중요시한다.
또한 신도들에게 성직자들이 최근 들어교황 요한 23세의 교서(Mater et Magistra)나
바오로 6세의 교서(Populorum Progressio)를 통하여
끊임없이 일깨워주려 하는 내용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한 까닭이기도 하다.
 
’노동 축일’ 기간에 우리는 노동자 성 요셉의 보호아래 구원의 상징인 성찬 예식을 갖는다.
성찬 예식은 육일간의 창조속에서 일하신 하느님께서(창세 1-2장)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이루기 위하여 제7일에도 그의 일을 계속하시기 때문에(요한 5,17)
그리고 이제 새로이 하느님의 아들이 된 우리가 동참하는 이 새 창조는
 근본적으로 성찬 예식을 통하여
완성되기 때문에 이 성찬 예식은 자연적 가치이상의 더욱 고귀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성찬 예식은 현대의 기술 사회속에서 그 목적이나 동기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가치를 나타내주기 때문에
’노동 축일’속에서 그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새 창조를 이루기 위한 이 ’새’ 일은 자연적인 법칙을 따르지만,
우리를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느님의 아들의 자리까지 이끌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하느님을 위한 일(요한 6,27-29;골로 3,23-4,1;1고린10,31-33 비교)
또는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행위(성경적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성찬’이 된다)에 대하여 말한다면
신약에서는 인간의 노동은 은총과 그 은총에 활기를 더해주는 사회적 의미에 의하여
이미 ’새 세계’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사도 18,3;20,33-35;에페 4,29 비교)
 
우리들이 성찬 예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시작하신 일에
우리가 더욱 밀접히 참여하도록 허락해줌과 동시에 그것이 하느님의 창조 역사에 동참하는 길이며
모든 노동의 목적은 새로운 왕국의 건설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면서
우리가 인간적인 노동에 헌신하는 것조차 성화시켜 주는 것이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요셉은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더하신다’이란 뜻이다.
교황 비오 12세는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의 날’에 대한 뚜렷한 응답으로
1955년에 노동자들의 수호자 성요셉의 축일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요셉과 노동자들과의 관계는 이보다 휠씬 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예수님을 평범한 인간 생활로부터 떼어 놓지 않으려는 계속적이고 필연적인 노력의 하나로
교회는 처음부터 예수님이 목수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강조했다.  
이 목수의 일에 따른 만족과 고통은 모두 요셉에게서 이어받은 것이 분명하다.
 
인간은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뿐 아니라 창조하는 것에서도 하느님을 닮았다.
인간이 탁자를 만들든지 대성당을 세우든지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손과 마음으로 결실을 거두라는
소명을 받은 것이며,궁긍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창세2,15)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이 창조 사업을 계속하도록 명하셨다.
인간은 가정을 이루거나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참여하는
그들의 노동 안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발견한다.
노동자인 요셉은 우리가 창조의 가장 깊은 신비 안에서
하느님의 창조 활동에 참여하도록 도와준다.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이를 강조했다.
"세상의 구세주이시며 신인(神人)이신 분으로부터 그대와 모든 사람에게로 영이 스며들어 온다.
그러나 그 어떤 노동자도 예수님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노동의 공동체를 이루며 가정 생활을 했던
예수님의 양아버지 요셉보다 더 깊이
그리고 더 완전하게 창조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한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가까이 가고자 원한다면
우리는 오늘날에도 ’요셉에게로 가자.’(창세41,55)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예수의 작은 형제회 소속인 르네 브와이욤은
그의 저서 ’사람의 서리에서’에서 일상적 노동과 성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예수님의 성덕은 가장 일반적인 생활 환경 안에서도 하나의 실재가 되었다.
언어 생활,가정 생활,한 마을의 사회 생활이 성덕이 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이것은 가장 암담하고 단조로운 인간 활동도
하느님 아들의 완덕에 온전히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신비와 관련해서 하느님의 아들에게만 고유했던 이 복음의 성덕은
생계를 위해서 노동을 해야만 하는 가난한 사람의 일상 생활환경에서도
 가능하다는 확신을 내포하고 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사람 서리에서 : -샤를르 드 푸코 신부와 예수의 작은 형제들-
글쓴이: 러네 보아욤 | 옮긴이: 강우일 | 출판사: 분도출판사 | 1995년
 
샤를르 드 푸꼬는 예수께서 나자렛에서 하신
 가난하고 미천한 노동자로서의 숨은 생활을 본받고자 했다.
이 책은 러네 보아욤 신부(작은 형제회)가
작은 형제·자매들의 믿음과 형제적 애덕을 지도·격려하기 위해 보낸 대화체의 편지들로서
사람 서리에서 가난하고 겸손하게 살고자 하는 예수의 작은 형제·자매회의 영성을 잘 드러내 준다.
 
 
성 요셉은 하루하루의 의무에 충실하신 분이었고
오늘날 자신의 손으로 나날의 임무를 장만하지 않으면 안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었다
 

Joseph the Carpenter-Georges La tour - 1645, Louvre, Paris
 
자모이신 교회에서는 예수 부활 후 셋째 수요일을 다년간 성 요셉 축일로 지내던 것을
3월 19일에 지내도록 하고,
그대신 1956년부터 5월 1일을 고정적으로 노동자 성요셉의 표준 축일로 결정했다.
 
성서에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마태 13, 55)라는 말이 있다.
이로 보아 당시 유다인들은 예수를 목수인 요셉의 아들로 생각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성가정의 보호자로 선택된 요셉은 자기 본 직업인 목수로서
 일생을 보내며 성자를 무난히 양육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도 30년간의 나자렛의 사생활에서 목수 일을 하시어
양아버지인 성 요셉을 도와드렸으리라는 것이 수긍된다.
 
과거 어느때보다도 현재처럼 노동 문제가 복잡해진 때는 없을 것이다.
교회에서는 이미 수차 노동 문제에 관한 칙서 즉 사회 질서의 대헌장을 반포함으로써
심각해진 노동 문제를 해결해 주고 노동자들의 앞길을 명시해 주며
철저한 노동 정책을 수립하도록 세계에 호소했던 것이다.
교회의 입장에서 노동의 신성성을 주장하며 교회의 정신에 입각한 노동 정책을 수립하도록 하고
인간의 품위와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인간 본연 목적을 달성시키고자
 여러모로 노력해 왔다.
 
 
여기에서 역대 교황의 유지를 받들어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저 장인(匠人)들과 노동자들이
성 요셉을 자신들이 보호자로 삼고 그의 모범을 본받아 나가기를 원했다.
그 이유는 성 요셉과 또한 예수께서 목수일을 하시고 노동을 좋아하시면서
 자기 정신을 연마했으므로
당연히 목수의 아들로 불려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써 그들의 노동자 사회가 건전히 발전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각 개인에, 각 가정에, 또한 그들의 단체에 항상 같이 계셔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야말로 노동 조합체의 특별한 목적이다.
 
여기에서 그들은 보다 나은 그리스도교적 신자생활을 영위하고 더욱 향상시키며,
하느님의 나라를 널리 전파하며 특히, 공장의 동료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노동 조합체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커감에 따라 비오 12세 교황께서는 1955년 5월 1일,
로마에 노동자들의 모임이 있어 수많은 군중이 베드로 대성전 앞뜰에 모였을 때
그들을 훈시하며 노동 조합체의 결성을 간곡히 요쳥하셨다.
 
그 이유는 현대에 있어서
이것이 장인이나 노동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 교리를 당연히 닦게 하고,
그릇된 사회 조직과 경제적 오류를 피하도록 하며,
또한 교회에서 직공들의 권리나 의무에 대해 설명한 바와 같은
하느님께로부터 규정된 윤리적 질서를 잘 납득해서 좋은 결실을 내며
효과있게 처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처음으로 이 문제에 관해 불변하고
가장 능률있는 원칙을 전파하셨고 또한 교회에 전해 주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의 품위와 원칙은 동일한 것을 형성하며
인간의 마음속에 더 널리 잠재하고 있는 것을 간파하신 비오 12세 교황께서는
노동자 성 요셉의 표준 축일을 설정하고,
 성 요셉이 모든 단체의 모범이 되고 보호자가 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그의 표양을 따라 누구나 활동을 하고 첫째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지상을 지배하며
경제적 번영을 도모함과 동시에
영원한 생명의 상급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 요셉은 나자렛 성가정의 보호자이신만큼
자기와 비슷한 일을 하는 자에게 보호와 은총을 내려 주며
그들의 거룩한 가정을 번영케 해 주리라는 것은 의심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가장 적합하게도 교황께서는 이 축일을 5월 1일에 지내도록 명했으며,
노동자들은 그 날을 집회의 날로 채택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발전이 기대될 것이며 특히 이 날은 목수인 성 요셉에게 봉헌되어
모든 미움과 논쟁은 감소될 것이고
세월이 갈수록 평화가 없는 나라의 사람들도 점점 행복하게 될 것이다.
또한 각국의 지도자들도 각성해 인간 사회가 요구하는
올바른 질서를 현명하게 처리해 나아가게 될것이다.
-(대구대교구홈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노동하는 인간. LABOREM EXERCENS
 
노동을 하여(Laborem Exercens) 인간은 자신의 일용할 양식을 얻어야 하고,
과학과 기술의 끊임없는 진보에 이바지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한 가족인 형제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회의 문화적, 도덕적 수준을 끊임없이 들어높이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노동이란 그 성격이나 환경이 어떻든간에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어떤 행위를 뜻한다.
즉, 인간성 자체로 인하여 그리고 본성으로 타고나 인간이 할 수 있는 수많은 행위들 가운데
노동으로 인식될 수 있고 또 인식되어야 하는 인간의 어떤 활동을 뜻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우주 안에 창조되었으며,
땅을 다스리도록 그 안에 안배되었다.
그래서 태초부터 인간은 노동을 하도록 부름받은 것이다.
 
인간을 다른 피조물들과 구별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노동이다.
다른 피조물들이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행동은 노동이라고 할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노동을 할 능력이 있으며, 오직 인간만이 노동을 하며,
동시에 노동을 통하여 자신의 지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래서 노동은 인간과 인간성을 나타내는 특별한 표시이며,
인격체로 이루어진 공동체 안에 움직이는 개개의 인격체를 나타내는 표시이다.
그리고 이 표시는 인간의 내면적 특성을 결정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본질 자체를 형성한다.
 
 
노동하는 인간, 그리스도  
 
26. 노동을 통하여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느님 자신의 활동에 참여한다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강조하셨다.
나자렛에서 그분을 처음 본 청중들이
 “저 사람이 어떤 지혜를 받았기에 저런 기적들을 행하는 것일까?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하고
놀라워하였던 그 예수님에 의해서 강조되었다.
실로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맡겨진 영원한 지혜의 말씀인 ‘복음’을 말로만 선포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행동으로 실천하셨다.
그것은 또한 ‘노동의 복음’이었다.
 
복음을 선포한 그분 자신이 나자렛의 요셉처럼 노동하는 인간, 즉 장인이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서 노동을 하라는 특별한 명령은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 오히려 어느 기회에 노동과 생활에 대한 지나친 걱정을 금하신 것을 볼 수 있다 -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노동하는 세상’에 속해 있으며 인간의 노동을 이해하고 존중하신다는 것을
그분의 분명한 삶이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참으로 그분은 인간의 노동과 그 여러 형태를 사랑으로 대하셨고,
노동의 여러 형태 안에서
 각기 창조주요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닮은 인간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셨던 것이다.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하고 말씀하신 분,
창세기를 비롯하여 구약의 모든 전통 안에 이미 표현된
노동에 대한 근본 진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가르침 안에 담으셨던 분이
 바로 그리스도 아닌가?
 
 
구약의 성서들은 인간의 노동에 대해
그리고 인간이 수행하는 각각의 직업에 대해 많은 것들을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의사 약제사, 목수 또는 장인,대장장이 - 이 말은 오늘날의 주물공에 해당될 수 있다 -
옹기장이, 농부, 학자, 선원, 건축가, 음악가,목자,그리고 어부 등이다.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찬사는 잘 알려져 있다.
 
하느님 나라의 비유들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끊임없이 인간의 노동에 대해 언급하신다.
즉 목자, 농부, 의사, 씨뿌리는 사람, 관리인, 종, 청지기, 어부, 상인, 일꾼 등의 노동이다.
그분은 또한 여러 가지 형태의 여성의 노동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분은 사도직을 추수하는 사람들이나 어부들의 육체 노동에 비유하신다.
또한 학자들의 노동에 대해서도 언급하신다.
 
 
나자렛 시절 당신의 삶으로써 모범을 보이셨던 그리스도의 노동에 관한 이 가르침은
특히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에서 생생하게 반향되고 있다.
바오로는 자신의 노동하는 직업(그는 아마 천막 만드는 사람이었을 것이다.)을 자랑하며,
사도이면서도 자기가 먹을 것을 벌 수 있게 한 그 노동에 감사하였다.
“우리는 여러분 중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하며 애써 노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데살로니카인들에게 권고와 명령의 형식으로 노동에 관한 그의 가르침을 썼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권고합니다.
 말없이 일해서 제 힘으로 벌어 먹도록 하십시오.”
실제로 “게으른 생활을 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의 일에만 참견하는”
사람들을 보고 사도는 같은 맥락에서 주저없이 이렇게 말한다.
 
“일하기 싫어 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 다른 곳에서 그는 이렇게 격려했다.
“무슨 일이나 사람을 섬긴다는 생각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듯이 정성껏 하십시오.
여러분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상으로 받게 되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방인들의 사도는 인간 노동의 도덕성과
영성에 관하여 그 핵심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사도의 그러한 가르침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가르침”안에서,
그분의 생애와 비유들 안에서 드러나는 신중하고도 위대한
 노동의 복음을 보완하는 중대한 내용이다.
 
교회의 원천 자체이신 분에게서 흘러나오는 이 빛을 근거로 하여,
현대어로 표현되어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교회는 항상 가르쳐왔다.
 
“인간 활동은 인간에게서 나오듯 인간을 향하고 있다.
인간은 활동을 통하여 사물과 사회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또한 자신을 완성해 나간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자기 능력을 기르며 자기를 벗어나 자신을 초월한다.
이 같은 성장은 바로 이해한다면 외적 재산의 축적보다 훨씬 값진 것이다…
따라서 인간 활동의 규범은, 그것이 하느님의 계획과 그 뜻을 따라 인류의 진정한 복지에 부합하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사명을 완전 무결하게 추구하며
실천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간 노동의 가치에 관한 전망,
또는 달리 말해서 이 같은‘노동의 영성’은 올바른 진보의 의미에 관해
공의회의 사목헌장이 같은 항목에서 말하는 것을 충분히 설명한다.
“인간의 가치는 무엇을 가졌느냐에 있지 않고 어떤 인간이냐에 있다.
마찬가지로, 더 나은 정의와 더 넓은 형제애와
더욱 인간다운 사회 관계의 질서를 확립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기술의 발전보다 훨씬 값진 것이다.
이런 기술의 발전이 인간 향상에 물질적 바탕은 마련할 수 있지만
그 힘만으로 인간 향상을 실현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보와 발전의 문제 - 현대의 사상을 지배하는 주제이다 - 에 관한 이러한 가르침은
오직 인간 노동에 관한 확인된 영성의 결실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오직 이러한 영성을 바탕으로 하여 그 가르침은 실현될 수 있고 또 실천될 수 있다.
이것이 ‘노동의 복음’에 뿌리를 박은 가르침이며 또한 하느님의 계획이다.
-(가톨릭홈에서)-
 

 

 

Jeremiah Lamenting the Destruction of Jerusalem-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30.Oil on panel, 58,3 x 46,6 cm.Rijksmuseum, Amsterdam

 

5월 1일

셩 예레미야 예언자


ST. JEREMIAH

San Geremia Profeta

Old Testament prophet.

Born :c.760 BC

Died :stoned to death c.705 BC at age 55 in Egypt; relics at Venice, Italy

(Anatot, Gerusalemme, 650 a.C. - Egitto, 587 ca. a.C.)

Geremia = esaltazione del Signore, dall’ebraico = exaltation of the Getlteman,

dall’ebraico

 

 

예레미야서

라틴어 Prophetia Jeremiae

영어 Book of Jeremia

 

만일 성서에 이 예언자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유다이즘과 그리스도교는 그 종교적 본질 을 아주 달리 했을 것이다.

예레미야(Jere-mias, 기원전 650∼588)가 마음과 인격의 종교를 주창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언자 이사야보다 1세기 뒤에,

그러니까 기원전 650년경 예루살렘 근교의 어느 사제가문에서 출생하였다.

성서는 예레미 야의 생애와 성격을 그 어느 예언자들 보다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예레미야를 3인칭으로 묘사하는 이야기들[傳記]이 성서에 다수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예레미야서의 다음 장(章)들을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예레미야서 19:1∼20:6과 26.36.45.28-29.51-59-64, 34:8-22.37-44

 (이 본문들은 시대적 순서를 따른 것이다).

 

또 다음의 구절들은 `예레미야의 고백록’이라 부를 수 있으니,

예언자가 체험한 내적인 갈등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레미야서 11:18-12:16, 15:10-21, 17:4-18, 18:18-23, 20:7-18. 이 `고백록’은

예언자의 은밀한 체험에서 터져나온 외침으로서 시편의 탄원시의 문체와도 비슷하다.

 

예레미야는 기원전 626년 그러니까

요시야왕 치세 제13년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젊은 예언자로 나섰다(예레 1:2).

그는 유대왕국의 멸망이 예견되었고 드디어는

예루살렘의 몰락을 초래한 비극적 시대를 살고 있었다.

요시야왕의 종교개혁과 주권회복은 유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었지만,

불행하게도 609년에 그 왕이 므기토에서 전사하게 됨으로써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고대종동의 세계는 또다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으니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 612년에 함락됨으로써 바빌론제국이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바빌론왕 느브갓네살은 팔레스티나를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집트는 유대왕국을 사주하여 바빌론의 지배에 항거하도록 하였으니,

느브갓네살은 597년에 예루살렘을 함락하였고 주민의 일부를 유배지로 끌고 갔다.

이집트의 조종에 끝내 놀아난 유대는 또다시 바빌론 세력에 항거하였다.

587년에 바빌론군대는 한 번 더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성전을 파괴하였고

저항세력의 지도자들을 또다시 유형지로 끌고 갔다.

 

예레미야는 이 어두운 시대의 역사적 비극을 모두 지켜 보았다.

그가 이 비극을 좌시한 것은 아니었다.

예언자는 지도자와 민중에게 하느님 말씀의 대변자로 나서서 맹렬히 설교했고 위협했으며

왕국의 몰락을 예고했던 것이다.

다윗의 왕좌를 차지했던 유대의 왕들은 예언자의 이 불칼 같은 경고를 아예 무시했으며

또 군인들은 예레미야가 패배주의를 선동한다고 비난하며

그를 박해하고 고문하며 투옥시키기까지 하였다. 드디어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예레미야는 바빌론 강기슭에 유배가 있던 사람들(시편137)에게서 희망을 보았지만

망명하는 것을 끝내 거부하고 고국 땅 팔레스티나에 머무르기로 하였다.

그의 보호자는 바빌론인들이 임명한 총독 게달리야였다.

하지만 유태인의 한 무리가 총독을 암살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들은 바빌론인들의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예레미야를 인질로 삼아 이집트로 망명하였다.

아마도 예레미야는 이집트에서 소리없이 죽어간 것 같다.

이 험난한 운명의 사이의 드라머는 단순히 사건들만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전생애가 일종의 비극이다.

시애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끝까지 그 말씀에 충실하다 보니

예레미야는 그야말로 `말씀의 고독한 예언자’가 되고만 것이다.

그는 성품이 온순했고 사랑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야훼는 그에게 `무너뜨리고 파괴하며 전복하고 없애버리는’ 사명(1:10)을 주셨다.

그의 예언은 끝없는 불행만을 예고하였다(20:8).

예레미야는 평화를 원했건만 자기 가족과 왕들과 사제들, 그리고 거짓 예언자들과

모든 민중을 반대하여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예레미야는 "온 나라 안에서 싸움과 불화의 사나이로 통한 것"이다(15:10).

그가 이같은 사명을 수행하기 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에레미야는 말씀에 의해 완전히 가루가될 뻔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20:9).

하느님과의 내적인 대화는 온통 고통의 외침이었다.

"무엇 때문에 나의 고통은 끝이 없나이까?!"(15:18)

욥의 저주를 예고한 예레미야의 그 외침은 고백론의 절정이다.

"내가 태어난 그날은 저주받을지어다!"(20:14이하).

하지만 이 고통은 예레미야의 영혼을 정화시켰으니 하느님과의 내밀한 친교를 가능케 하였다.

 

우리에게 이 예언자가 그토록 귀중하고 가까운 인물로 나타나는 것은

새로운 계약을 성문화시켜 예고하기에 앞서(31:31-34)

자신이 먼저 마음의 종교와 내적인 종교를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인격적 종교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종교의 가르침을 심화시켰다.

하느님은 마음과 콩팥을 꿰뚫어 보시는 분(11:20)이요, 각자의 행실대로 갚아주시는 분이다(31:29-30).

하느님과의 우정은 인간의 거짓스러운 마음의 소산인 죄에 의해 끊어진다.

거짓말이 모든 죄의 뿌리란 것을 예레미야만큼이나 강조한 사람은 없다(4:4, 17:9, 18:12).

이 점에 관한 한 예레미야는 호세아 예언자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 같다.

 

율법은 그에 의해 내면화되었으며

또 하느님과의 모든 관계는 마음의 소산임을 그가 밝혔기 때문이다.

예레미야가 인간의 개인적 인격에 큰 관심을 둔 것으로 보아 신명기(申命記)의 영향을 받은 것같다.

물론 그가 신명기에 바탕을 둔 요시야왕의 개혁을 처음에는 환영하였으나

마음의 회개가 없는 제도적 개혁이 무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민중의 윤리적 종교적 삶을 변혁시키기 위하여 내적 인간의 개조없이는 불가능함을

예레미야가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사명은

살아 생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으나

 죽은 뒤의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만 갔다.

마음의 종교에 기초를 둔 `새로운 계약의 사상’은

예레미야로 하여금 유다이즘의 아버지가 되게 하였다.

 

우리는 에제키엘서와 제2이사야서(40-55)와 시편들에서도 그의 영향을 찾아 볼 수가있다.

마카베오 시대의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민족의 수호자들 중의 한사람으로 꼽았다(2마카 2:1-8, 15:12-16).

예레미야는 힘과 물질보다는 영성적 가치를 더 중대시하였고 또한 영혼이

하느님과 맺은 내밀한 관계를 밝혔다 하여 이 예언자는

그리스도교의 새 계 약을 준비한 인물로 통한다.

말씀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과 말씀 때문에 당한 그의 고통은

이사야서 53장의 야훼의 종의 모습을 예고하였으니,

예레미야는 그리스도의 형상(形象)을 앞질러 보여 준 것이다.

예레미야의 영향은 막대하였으니,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의 말씀을 읽고 명상하며 또 해석하였다.

하여 그의 책, 예레미야서는 단번에 쓰여진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서는 시문(時文)으로 쓰여진 신탁(神託)과 전기적 이야기들 뿐 아니라

신명기와도 비슷한 문체로 쓰여진 산문(散文)의 연설들도 많이 수록하고 있다.

그중의 어떤 본문들은 예레미야의 친저(親著)가 아니라

유배 이후의 신명기적 경향을 띤 편집자들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작품들이 예레미야의 신학과 설교의 사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니,

신명기를 알고 있던 예레미야의 제자들과 청중들이 수집한 예언자의 전언(傳言)임이 확실하다.

문제는 예레미야적 전승이 하나의 형태로 전수되지 아니 했다는 것이다.

 

성서의 그리스역본은 마소라 본문보다는 8분의 1가량 짧게 예언자의 말씀을 수록하고 있으니

그 세부묘사도 서로 차이가 있다.

쿰란(Qumran)의 발견은 원래 예레미야서의 두 가지 대본이 히브리말로 쓰여졌음을 전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역본은 25:13의 뒤에 수록된 민족들에 대한 신탁들을

히브리성서의 순서와는 달리 예레미야서의 끝부분 곧 46∼51장으로 옮겨 배치시키고 있다.

이 예언들이 처음에 특수한 문집(文集) 안에 수록된 것같다.

 

어떻든 그 문집의 전체가 예레미야의 전승 안에서 연유한 것이라 볼 수가 없다.

가령 모압가 에돔에 관한 신탁들은 해석의 흔적이 매우 뚜럿하며, 또 바빌 론에 대한 긴 신탁,

50∼51장은 유배시대의 끝에 가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52장은 2 열왕기(列王記) 24:18-25:30 에 병행하는 내용으로서 일종의 역사적 부록이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작은 문헌들이 예레미야서에 삽입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바빌론에 유배가 있던 사람들과 새로 탄생한 유다이즘의 공동체들이

얼마나 예레미야를 존중했는가를 입증하고 있다.

 

편집자들은 여러 가지 사건과 예언을 이중적으로 수록하고 있다.

예레미야서는 시대에 대한 지시사항을 많이 기록하고 있지만 엄격한 의미로

연대기의 순서에 따라 그 본문들을 정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알 고있는 이 책의 무질서한 배치는 오랜 시간 동안의 편집작업이 낳은 결과이다.

또 그 편집과정을 역사적으로 세밀하게 밝히 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36장은 매우 중댜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605년 예레미야는 비서 바룩을 시켜

자신의 소명 초기부터(626년) 발설한 신탁들을 받아 적게 하였다(36:2).

이 신탁들이 적힌 두루마리를 여호야킴왕이 불태웠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불타버린 신탁들을 다시 보완하여 썼다(36:32).

이 문집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일종의 가설에 불과하다.

그 가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아마도 그 문집은 25:1-12을 서문으로 삼고

1∼18 장 안에 들어 있는 605년 이전의 신탁들을 묶었을 것이다.

36:2에 따르면 예의 문집은 25:13-38이 암시하고 있듯이

 민족들에 대한 옛 신탁들도 포함시키고 있는 것 같다.

또 보충문헌들이 문집에 첨가되었으니 그 내용은 605년 이후의 문헌과

 민족들에 관한 다른 신탁들이다.

또 거기에 `고백론’이 삽입된 것 같다.

그 다음에 따로 수집한 문헌으로서 왕들과 (21:11-23:8) 예언자들(23:9-40)에 관한 소책자가

거기에 삽입되었다.

 

예레미야서는 다음의 장들로 구분시켜 볼 수가 있다.

제1부 : 1∼20장. 제 1부는 전반적으로 시대순서를 따르고 있으며 25:1-13로 연장된다.

이 연장부분은 1∼20장의 결론이다. 20장과 25장사이에, 21:1-10과 24장은 왕들과(21:11-23:8)

예언자들에 관한 소책자(23:9-40) 들을 끼어들게 하고 있다.

제2부는 25:13-38에서 시작되는 민족들에 관한 신탁들을 수록하고 있다.

제2부는 46∼ 49장에 와서 다시 연장되며, 또 여기에 바빌론에 관한 신탁(50-51:58)이 첨가되었도 

또다시 전기(傳記)의 소단위 (51:59-64)가 부연되었다.

제3부는 편집자가 `구원의 약속’으로 간주한 본문들(26-35)을 순서없이 수록한 것이다.

제4부는 전기적(傳記的)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본문은 36∼45장에 이른다.

45장은 전기에 대한 예레미야의 비서 바룩의 결론이다.

52장은 예레미야서의 부록에 해당하며 기원전 587∼586년의 참변을 묘사하고 있으며

또 여호야 킴왕의 출감을 보도하고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Jeremiah-DUCCIO di Buoninsegna

1308-11.Tempera on wood, 42,5 x 16 cm.Museo dell’Opera del Duomo, Siena

 

예레미야 입문

 

1. “말씀의 사람”과 고독

예레미야서의 저자로 알려진 예레미야 예언자는 스스로를 외톨이로 소개한다.

“저는 홀로 앉아있나이다”(15,17).

이 말은 예언자가 자신과 외부 사회의 관계를 묘사하는 전형적 표현이다.

예레미야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지 못하고 박해를 받았으며,

심지어 그를 두둔하고 격려해 주어야 할 친지들,

특히 가족들에게서조차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12,6; 20,10).

그는 그들과 함께 혼인잔치에도,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다(16,5-9).

그는 혼인도 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될 수도 없다(16,1-4).

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며,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에집트로 끌려가다가

타향에서 생애를 마치게 된 그의 무덤을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레미야서에서 예언자의 내적 삶에 관한 매우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레미야의 고독은 그의 본성과 전혀 관계가 없다.

그의 고독은, 그를 압도하고 갑자기 그에게 몰려와 그의 존재 전체를 채우며 그를 괴롭히고

그의 의지를 온전히 사로잡은 외적 힘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이 외적 힘은 예언자에게 유다 백성 한복판에서 고독을 행동 양식으로 삼도록 강요한다.

 

이 어찌할 수 없는 힘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었다.

어떤 예언자도 예레미야만큼 하느님의 말씀과 그 실천 방안을 철저하게 알리지 못했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1,4).

이 말은 예레미야가 자신의 담화를 소개하고 규정하는 통상적인 표현이다(1,2 각주 참조).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었나이다”(15,16).

때로는 이 말씀이 파괴자가 된다.

“내 심장이 내 안에서 터지고 / 내 모든 뼈가 떨린다. / 나는 술 취한 사람처럼 /

술에 전 인간처럼 되었으니 / 이는 주님 때문이요 /그분의 거룩한 말씀 때문이다”(23,9).

예레미야는 “불과 같고 바위를 부수는 망치와 같은”(23,29. 그리고 20,9 참조)

이 도발적인 말씀을 일상적 체험이 따르는 환시에서뿐 아니라(1,11-14 참조),

주님의 천상 어전회의에서도 받는다(23,18.22. 그리고 5,1과 각주 참조).

이 어전회의에 예레미야는 예언자의 자격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게다가 주님께서 직접 말씀을 예레미야의 입술에 담아주시고(1,9)

이 말씀이 고집센 이스라엘 백성을 삼킬 때까지(5,14) 지켜보신다(1,12).

때때로 말씀이 그를 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씀이 드물게 그를 찾거나,

다시 그에게 내릴 때까지 형벌처럼 그를 오랫동안 기다리게 만든다(42,7).

예레미야의 삶에서 말씀은 해결의 열쇠인 동시에

 골칫거리요, 흥을 깨뜨리는 자인 동시에 존재 이유이며,

그 자신과 친지들을 갈라놓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사건의 한복판으로

그를 빠져 들게 만드는 전제군주다.

 

우리는 여기서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리고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울여야 했던 노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노력의 흔적은 이 책 곳곳에 들어있는 수많은 대화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기서 예레미야는 예언자로서 자신의 삶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하느님과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그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것들은 현대의 주석가들이 ‘예레미야의 고백’이라고 부르는 대목들이다

(11,18 - 12,6; 15,10.15-21; 17,14-18; 18,18-23; 20,7-13.14-18).

 

이 다섯 고백에서 예언자는

자신의 고립과 소외, 열악한 주변 환경에 대하여 신랄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그는 이런 삶의 조건이 어쩔 수 없는 것이며 그 자체가 예언직의 일부라는 사실을

주님에게서 들어 확인할 뿐이다.

한편 예레미야의 다섯 고백만이 예언자 자신과 하느님 사이에 오간 대화의 전부는 아니다.

이 책에는 처음부터 다른 형태의 대화도 나온다.

예레미야가 성소를 받는 장면에서도 대화가 대부분인데,

여기서 그는 아직 나이가 젊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헛되이 발버둥친다(1,4-10).

그의 예언직을 규정하는 초기 환시들(1,11-14),

그에게 유다 사회에 대한 하느님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하게 해주는 대목(5,1-`6),

이스라엘을 황폐케 하는 가뭄을 그치게 하려고 헛되이 노력하는 대목(14,1―15,9)들도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대화들을 보면 사람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과 고투하다가 결국 승리하는 쪽은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임이 드러난다.

역사적으로 그 전개 과정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든지` - `

예언 체험을 심리학적으로 탐구해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

이 모든 대화는 예레미야가 줄기차게 몰두한 대상이 하느님의 말씀이었음을 증언한다.

 

 

2. 예언직 소명의 진정성

 

예언자의 실존을 뒤흔드는 모든 문제 가운데 예언직에 대한 확신보다 더 큰 문제는 없다.

사실 예레미야만이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은 아니었다.

예레미야서 자체만 보더라도 예레미야와 같은 자격으로 그 곁에서 예언자로서 지위와 특권을

주장하던 사람들의 활동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26,20-24), 아쭈르의 아들 하나니야(28장),

콜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키야(29,21),

그 밖에 수많은 무명의 예언자들(2,8.26.30; 4,9; 5,13.31; 6,13-14; 14,13; 26,7-16; 27,16-18),

바빌론으로 유배 간 예언자들(29,1) 등이 그들이다.

 

예레미야서 본문을 보면 처음에 이 예언자는 자신의 동료 예언자들과의 관계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행동을 할 뜻이 전혀 없었다(14,13-16; 28,6-9; 29,1 참조).

그는 한번에 그들을 ‘거짓 예언자들’로 분류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예레미야의 고독과 관련하여 미묘한 특성을 만나게 된다.

예레미야는 고독을 자초한 적이 없었다.

그는 특정한 몇 가지 윤리적 비판을 제외하고(23,14.17.22; 29,23) 참과 거짓을 구별하고

스스로 참된 예언자라고 여기는 자들 앞에서

자신의 고유한 메시지를 특별히 옹호하는 어떠한 객관적 비판도 내놓지 않았다(28,8은 예외).

예레미야 역시 그의 경쟁자 하나니야처럼 틀릴 수 있다(28,6-9).

하나니야는 당시의 정치와 군사를 책임진 대다수와 견해를 같이하였다(아래 4항 참조).

 

예레미야가 받은 특별한 소명의 진정성은

그가 자신의 삶 한복판에서 하느님과 얼마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달려있다.

하느님께서 그의 메시지에 영감을 불어넣으신 분이라면, 어찌하여 그 메시지에 일관성이 없는가?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파견하셨다면,

어찌하여 그 혼자서 진리를 받아들이고 혼자서 그 진리를 주장해야 했던가?

(여호야킴에 의해 살해된 예언자 우리야 같은 사람도 예레미야를 옹호해 주지 못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에게 임무를 맡기셨다면,

어찌하여 이 예언자는 사람들의 학대를 받아야 하는가?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동료 형제로 또는 자신들의 스승으로 기꺼이 떠받들고 환영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계시에 적합한 인물이 어떤 모습의 인간으로 드러나는가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정신적 갈등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의 고유한 사명에 관한 한

그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는 말씀에 충실히 동화되었고 심지어 그 말씀을 “받아먹기까지”(15,16 참조) 하지 않았는가?

그는 늘 완벽한 성실로 살아가지 않았던가?

그는 자신의 동료들뿐 아니라 원수들을 위해서까지 실제로 참 예언자처럼 중개하지(18,20.

그리고 14,13; 17,16 참조) 않았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그는 고독과 적응 불능과 영원한 반동의 슬픈 주인공으로 드러나는가?

 

 하느님의 단호한 응답은 아무런 설명도, 아무런 정당화도 시도하지 않는다.

그의 모든 불행은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것으로서 갈수록 점점 심해질 것이다(12,5).

불만에 찬 하느님의 일꾼은 그분의 말씀이 다시 들리도록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면서

자신의 길을 되찾고 그 길을 성실하게 걸어야 한다(15,19-21).

다른 예언자들과 관련하여, 그들에게 아무런 임무를 맡기지 않으신(14,14-16)

주님께서는 그들의 거짓을 폭로하실 것이다(23,16).

그러나 예레미야 예언자의 영혼을 뒤흔드는 의심들을 없애버리시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진정 살아계신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구태여 확인시키려 하지 않으신다.

 

예레미야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자신이 예고한 재앙이 실현되는 것을 볼 것이다.

유다인들은 머지않아 자신들의 운명을 반성하게 될 것이다.

몇몇 정통한 신학자들은 예레미야의 신탁들뿐 아니라 그의 예언직과 관련된 전승들까지도

수집하게 될 것이고 마침내 그를 주님의 진정한 예언자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입문 5항 참조)-

 

 

3. 몇 가지 전기적 사료

 

이상의 근본적인 갈등과 비교할 때

 이 예언자의 삶과 연관된 외적 환경은 이차적인 관심사로 밀려난다.

또한 이 환경은 그리 잘 알려진 편이 아니며 주어진 자료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결론 또한 대부분 추론일 뿐이다.

 

1,1에 보면 예언자의 고향은 예루살렘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아나돗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그의 집안은 이곳에 토지를 갖고 있었다

(32장. 그리고 37,12 참조). 그는 사제 가문 출신이었다.

여기서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가 옛날 솔로몬에 의해 아나돗에 유배된 실로의 사제 아비아달의

먼 후손일 수도 있다는(1열왕 2,26-27) 가설을 끌어내었다.

나아가 조상이 물려준 종교적 전통과, 사라진 북부 왕국과 인접해 있는 지리적 조건은

그의 문체와 메시지 내용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다.

 

1,2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기원전 626년에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는데 아직 나이가 어린 때였다(1,6).

많은 사람들이 이 1장 2절과 6절의 자료를 바탕으로 그가 태어난 때를

 기원전 650`?645년경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1,2(25,3에 다시 나옴)의 연대가 후대의 전승에 바탕을 둔 것이고

실제로 그가 성소를 받은 연대를 기원전 609 - 608년으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어떻든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예레미야의

 초기 예언활동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가설이 나온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가설들이다.

예레미야는 기원전 622년 요시야의 개혁을 진심으로 환영했고

 자신의 설교로 이 개혁사업에 협력했을 것이다(11,1-4 참조).

개혁의 결과로 예루살렘 성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성소들이 문을 닫고 수많은 사제들이 할 일을 잃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예레미야의 친척들이 그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11,18-22 참조).

그러나 나중에 요시야의 개혁이 일시적 효과만 내고 끝나는 것을 보고 실망한 예레미야는

유다인들의 불충실을 강도 높게 비난하였을 것이다.

 

이런 가설들은 예레미야가 기원전 626년에야 성소를 받았다는 연대기 자료 때문만이 아니라,

이 책이 요시야의 저 유명한 개혁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22,15-16에

약간의 암시가 있다) 그리 큰 확신을 주지 못한다.

또한 11,1-14를 비롯하여 예레미야서 여기저기에 드러나는 신명기적 용어와 사상은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입문 5항 참조).

결국 예레미야의 메시지에 대한 반발은 그를 통해 전파되었을(이 추측이 맞다면)

요시야의 개혁 정책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의 증언대로 그의 중개를 통한 하느님 말씀의 갑작스런 개입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11,21; 예레미야의 다른 고백들 참조).

 

우리로서는 아무리 그것을 얻으려 해도 예레미야의 초기 예언활동에 대해

불충분한 자료만을 입수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대신 그의 생애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이 책의 뒷부분에서

상당히 자세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기원전 608년에 극도로 악화된 상황을 맞아 예레미야는 성전 어귀에서 설교하는데

그 장면이 26장에 잘 나와있다(7,1―8,3 참조).

기원전 605-`604년에 그는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한 신탁들을

바룩을 통하여 처음으로 두루마리에 적게 하였는데,

그 글이 몇몇 청중이 모인 자리에서 읽혀진다(36장).

기원전 594년 그는 다른 예언자들과 토론을 벌이고 조금 뒤에

바빌론에 끌려간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하는데, 이 편지는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의 정신적 쇄신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29장).

 

기원전 588-587년 예루살렘이 포위된 기간에 예레미야가 시드키야 임금과 그 신하들과 겪은 갈등,

그리고 이 도성이 함락된 뒤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서 펼친 그의 활동상은

32 - 35장과 37 - 44장의 본 내용을 이룬다.

우리는 이런 갖가지 정보가 아무리 자세하다 하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예언자의 전기를

작성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본문 안에서 이런 정보들을 연대기순으로 정확하게 배열할 수도 없다.

이 정보들은 가장 어려운 역사의 현장을 체험한

한 민족과 더불어 고뇌하며 살았던 한 예언자의 실존 안에서 말씀이

어떤 형태로 활동했는지를 밝혀주는

실례들일 뿐이다.

 

4. 여러 해에 걸친 말씀의 봉사직

처음부터 예레미야의 봉사직을 특징지었던 고독은 특이한 종교적 체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고독은 그에게 맡겨진 메시지의 내용에서 나온 결과이다.

이 메시지는, 유다인들이 공동체를 부정하고 창조까지도 철저하게 부정하는

상황과 끊임없이 마주치게 만들었다(4,23-26).

모든 것의 긍정이나 부정은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수용이나 거부에 달려있었다.

 

이 점에서 그의 고독은 정치적 차원을 갖는다.

그의 고독이 지속되고 유다인들이 그의 말을 계속 거부하는 한 그는

우주적 재앙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생존자가 될 것이요,

반대로 그의 말을 듣는 청중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재앙은 비켜가거나

적어도 늦추어질 것이며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형태와 만나게 될 것이다.

예레미야의 껄끄러운 메시지는 근본적인 결정을 명령조로 요구한다.

대부분의 다른 예언자들처럼 그에게도 말씀은 인간의 삶 전체에 영향을 주는 인격적 특성을 지니는

동시에 통교의 매체가 된다.

-(가톨릭홈에서.새번역성서)-

 

 

예언서란 어떤 성서인가요?

 

예언자란?

먼저 ‘예언’하면 우리는 즉시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나 그 주변 문화권에서 일컫는 예언은 그런 것이 아니라

 신의 뜻이나 그 메시지를 해석하고

선포하는 것을 가리켜요.

다시 말해 예언의 중점은 미래에 있을 일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할 일’에 있는 것이죠.

고대 문화권에서는 대개 예언자가 있었고, 신탁을 통해 신의 뜻을 밝히고

기억시키며 중재하는 일을 맡은 그들의 역할은 중시되었어요.

이스라엘에서도 일찍부터 예언자가 있었다고 보아요.

아브라함도 예언자라 불리지만(창세 20,7),

공식적으로 첫 예언자로 꼽히는 이는 모세이지요(신명 34,10).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예언자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때는 왕정시대 이후에요.

왕과 사제 계급이 생긴 것처럼 예언자 층도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들과 별도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나서는 예언자들이 있었어요.

 

예언자의 구분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는

 사제들과 달리 세습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으로부터 영을 받아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었기에, 그들이 참된 예언자인지 거짓 예언자인지를 분별하는 일은

중요하면서도 곤란한 문제였어요.

같은 예언자들끼리 서로 진위를 다툰 대표적인 경우가 아합 왕 때의

 시드키야와 미가야(1열왕 22,13-28),

예레미야와 그를 박해한 거짓 예언자(예레 6,13; 18,18; 20,1-6; 23, 9-40) 들이죠.

결국 예언자의 진위는 그들의 예언이 이루어졌는가 여부와,

설사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된 하느님의 말씀으로 기억되었는가에 따라 갈렸어요.

 

기준은 예언자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예언서를 남겼는가의 여부에요.

가령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위대한 예언자는 아무 글도 남기지 않았지요.

그러나 예언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기원전 8세기 이후에 활약한 예언자들,

이를테면 아모스, 이사야 등은 대부분 예언서를 남겼어요.

그래서 그들을 ‘문서 예언자’ 또는 ‘정경 예언자’라고 불러요.

이들을 활동시기에 따라 갈라보면 아래와 같아요.

1) 유배 이전 :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나훔, 미가, 스바니야, 하바꾹, 예레미야.

2) 유배 기간 : 제2이사야, 에제키엘.

3) 유배 이후: 즈가리야, 말라기, 오바디야, 요엘, 제3이사

 

예언서의 분류

 

그리스 성서와 라틴어 성서에서는 정경 예언자들의 문헌만 예언서라 불러요.

그러나 히브리 성서는 내용을 다룬 시기에 따라 둘로 구분해요.

즉 정경 예언서를 후기 예언서라 부르고,

그에 앞선 시기를 다룬 여호수아부터 열왕기 하권까지를 전기 예언서라 불러요.

그 까닭은 먼저 랍비 전승에 따라 사무엘, 예레미야 등의 예언자를

그 성서들의 저자로 보았기 때문이고,

또 그 성서들에 담긴 역사를 하느님의 예언이 성취된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에요.

후기 예언서는 그 분량의 대소에 따라

대예언서 세 권(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과 소예언서 열두 권으로 분류하지요.

 

 

예레미야서는 어떤 성서인가요?

 

이 책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과 그의 행적을 적은 책이라 하여

그 이름을 따서 ‘예레미야’라 했어요.

후기 예언서 중 이사야, 에제키엘과 함께 분량이 많아 대예언서로 분류되지요.

예레미야는 대략 기원전 640년경에 아나돗의 사제가문에서 태어났어요.

아직 소년에 지나지 않았던

기원전 627년에 예언자로 불림받아, 이후 40여 년 동안 예언자 활동을 했지요.

그의 이름의 뜻인 “야훼께서 던지다, 급히 보내다”처럼,

그가 활동한 시대에 유다의 운명은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처해 있었어요.

예레미야는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길로 회개를 호소하며 하느님의 심판을 알렸지만,

결국 귀담아 듣는 이 없어 처참하게 멸망당하는 조국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는 아픔을 겪었지요.

뿐만 아니라 조국의 배반자, 거짓 예언자로 몰려 여러 차례 죽을 위험을 겪는 등 예언자로서

개인적인 고통도 심하게 받았답니다.

그래서 그를 눈물의 예언자’, 수난의 예언자’라 부르기도 하죠.

 

언제 누가 썼나요?

 

물론 예레미야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서의 뼈대를 이루지요.

예레미야서는 제자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예언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해요(36,4).

그러니까 예레마야가 활동하던 시기에 많은 부분이 쓰여진 거죠. 하지만 예레미야서도

다른 성서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편집과정을 거쳤어요.

예레미야의 예언이 참된 하느님의 말씀임을 깨달은 바빌론 유배기 때

예레미야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들이 그의 말을 수집해서 덧붙였어요.

그래서 예레미야서는 시간 순서대로 되어 있지 못하고 왔다갔다하는 부분이 꽤 있답니다.

 

왜 쓰여졌나요?

 

요시아 왕이 죽은 다음 유다는 동쪽의 신흥 강대국 바빌론의 압력을 강하게 받았어요.

남쪽에는 비록 위축되긴 했지만 여전히 강대국인 이집트가 버티고 있었구요.

유다는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았지만,

왕과 대신들은 이집트에 빌붙어 바빌론과 싸우려고 하였죠.

이러한 혼란기에 예레미야는 먼저 우상을 숭배하고 하느님의 말씀과 법을 무시하는

유다인들의 생활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하느님의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예언하죠.

아울러 그는 성전과 시온에서 하느님을 모시고 있기에 결코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거짓 믿음과

군사외교적인 정책으로 살 길을 찾으려는 지도층의 자세를 비판합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언제 어디서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고

그분의 말씀을 깨어 들으며 그대로 실천하는 삶이고,

이것이 궁극적인 살 길임을 알려주어요.

때로는 바빌론에 항복하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는 가운데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기억하시고 그들과 새로운 계약을 맺어

새 공동체를 이루시는 희망 찬 미래가 펼쳐진다고 알려주어요.

악을 심판하시는 하느님과 새 계약으로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유다 멸망이라는 처참한 역사를 통해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오늘 우리에게도 삶의 자세와 생활양식을 되돌아볼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죠.

-(가톨릭홈에서.성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