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교리]
구원 경륜에서 본 인간의 자유
「가톨릭 교회 교리서」 1739~1748항)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욕망과 죄로부터 해방시켰다
욕망에 매여 살아가는 인간
죄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고통 바라보며
하느님 마음을 받아들여야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일까요,
아니면 본래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일까요?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항상 어떤 욕망에 매여 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 욕망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만약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고 게임만 하겠다면
그 아이는 자유로운 것일까요?
욕망에 얽매인 상태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니까, 내 자유예요”라고 말할 수 있지만,
어른들이 볼 때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노예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욕망의 노예입니다.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인간은 “관능적 쾌락, 세
상 재물에 대한 탐욕, 반이성적 자기주장,
이 세 가지의 욕망에서 자유로웠습니다.”(377)
육욕, 탐욕, 권력욕, 이 세 욕망을 생존 욕구라 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이 세 욕망에 묶여있습니다.
원죄를 범한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죄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노력하면
이 욕망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욕망을 통제할 능력이 없습니다.
만약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힐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해방하러 오셨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입니다.”(요한 8,34)
오직 그리스도만이
“인류를 노예로 만든 죄에서 사람들을 구원”(1741)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욕망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실까요? 당신의 ‘피’를 통해서입니다.
한 소년이 어머니의 죽음을
아버지 탓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모범생이었던 아들은 문제아로 전락합니다.
경찰서에 들락거리지만, 자신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을 소년원에 보내야겠다는 경찰 앞에서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통사정합니다.
아들은 젊은 경찰에게 무릎 꿇고 자신을 위해 비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리고 명문대 장학생으로 입학합니다.
아버지의 피가 아들을 욕망의 늪에서 해방시킨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이처럼
우리에게 해방을 주는 은총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그 은총을 받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2코린 3,17)라고 한 말이 이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죄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죄에서 해방되려면 주님의 고통을 바라봐야 합니다.
얼굴에 큰 모반을 가지고 태어난 김희아씨는
밤마다 주먹으로 얼굴의 점을 지우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자신을 보고 더 가슴 아파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이내 다시는 자기 얼굴 때문에 예수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마음을 받아들일 때야만
내 마음을 옥죄고 있는 죄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라고 말씀하십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그리스도의 마음만이 우리를 동물의 욕망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초대하십니다.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에제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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