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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일 성녀 아가다 동정 순교자

Berardus 2022. 2. 4. 18:01
 

 The Martyrdom of St Agatha-TIEPOLO, Giovanni Battista

c. 1756. Oil on canvas, 184 x 131 cm. Staatliche Museen, Berlin

 

2월 5일

성녀 아가다 동정 순교자


ST. AGATHA

Sant’ Agata Vergine e martire

in prison at Catania or Palermo, Sicily (sources vary) -

martyred c.250 at Catania, Sicily by being rolled on coals

Name Meaning :Greek:good

 

 

불확실한 전설이지만,

그녀는 시실리의 카타리나 혹은 팔레르모에서 태어났고,

그의 집안은 부요하였으며 신심이 깊었고,

하느님께 스스로 정결을 서원하였다고 전한다.

 

어느 황제의 박해 기간에,

그 지방의 집정관이던 퀸씨아노가 그녀를 탐하다가,

그녀를 소유하려는 계략으로 박해를 이용하였다.

그녀가 그의 제안을 거절하자,

퀸씨아노는 온갖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여, 매음굴로 보냈으며,

그녀의 가슴을 도려내어,

그녀가 죽을 때까지 이글거리는 석탄불에 돌리면서 구워죽였다고 전해온다.

 

그녀는 보통 한 쌍의 집게나 접시에 담은 그녀의 가슴으로 묘사되었는데,

후일 이것이 잘못되어 접시 위의 빵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성녀 아가타의 축일에는 빵을 축성하는 관습이 내려온다.

그녀는 간호원들의 수호성인이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시칠리아 출신의 순교성녀인 아가다에 대한 민중들의 공경은,

데치우스 황제 치하시절 그가 순교했으리라 추정되는

 시칠리아 섬의 카타니아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4세기 경부터 그녀에 관한 공경은 전 세계 교회로 확산되어 있다.

로마에는 그녀에게 헌정된 두 개의 대성당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박해자들이 성녀를 매음굴에 끌고가 배교를 강요하였으며

그들이 가슴을 도려내었을 때 사도 베드로가 나타나 치료하였다고 전해진다.

그이름은 로마 성찬 기도(미사경본)에 기록되어 있다.

카타니아의 수호자이며 광부, 간호원, 대장장이, 산악 안내인등의 수호성인이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시칠리아의 성 메토디오 주교의 성녀 아가다에 대한 강론에서

(Analecta Bollandiana 68, 76-78)

 

 

온갖 선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여기에 참석하신 청중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한 거룩한 순교자의 주년제가

 우리 모두를 여기 한자리에 모이게 했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이 순교자는 자신이 치른 훌륭한 투쟁을 볼 때

옛적의 뛰어난 순교자라고 해야 하지만, 매일 매일 성녀에게 월계관을 가져다 주고

성녀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그 신적 기적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투쟁하고 승리하는 것을 볼 때 최근의 순교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가다는 동정녀입니다.

그녀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육신으로 역시 죽음을 맛보신

불멸의 하느님의 말씀 곧 하느님과 나뉨이 없는 아드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신학자인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을 우리의 영적 잔치에 초대한 이 여인은 동정녀요 신부입니다.

사도 바울로의 혼인의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그녀는 한 남편 그리스도와 정혼한 정배입니다.

 

이 동정녀는 자기 양심의 빛과 하느님의 참 어린양의 핏빛으로

자신의 입술과 빰과 혀를 꾸미어 붉게 만들었습니다.

아가다는 그토록 자기를 사랑하던 분이

마치 지금 피에 흠뻑 젖어 있는 것처럼 그분의 죽음을 자기 마음속에

 끊임없이 묵상하고 되뇌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입은 순교의 두루마기는 속속들이 젖어 들여

결코 지워지지 않을 그리스도의 붉은 피의 흔적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들에게 동정녀로서의 증거라는 보화와

끝없는 고백의 말이라는 아름다운 색깔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가다라는 이름 자체가 "선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듯이

아가다는 온갖 선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으로 선하고 착한 여인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하느님과 함께 나눈 그 선을

자신의 정배이신 그리스도께 바치고 그분과 일치되어 있는 우리에게 나누어 줍니다.

 

최고선보다 더 유익한 것이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가다 이상으로 찬미의 노래로써 칭송받을 사람이 또있겠습니까?

 

아가다, 그녀의 선함은 자신의 이름과도 실재와도 어울립니다.

아가다, 그녀는 자신의 고상한 행위로써 좋은 이름을 얻었고

바로 그 이름으로 자신의 행위들이 고귀함을 증명해 줍니다.

아가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이 이름만으로도 모든 이들을 자기에게 열렬히 이끌어 들이고,

자신의 모범으로 자신과 함께 지체없이 선 자체이신

하느님께로 힘써 나아가도록 가르칩니다.  

-(가톨릭홈에서)-

 

St Agatha-ZURBARAN, Francisco de

1630-33. Oil on canvas. Musee Fabre, Montpellier

 

성녀 아가타(선(善)이라는 뜻)는 로마 교회의 위대한

네 동정 순교자 중에서 넷째로 지내는 성녀이다.

이 성녀들의 축일은 다 겨울에 해당된다.

즉 체칠리아는 11월 22일에, 루치아(광채)는 12월 13일에,

아녜스(순결)는 1월 21일에, 아가타(선)는 2월 5일에 지낸다.

 

 

성녀 아가타는 데치오 황제 시대에 순교했다.

성녀는 옛날부터 대단히 존경을 받아

그의 이름은 미사 경본에까지 삽입(揷入)하게 되엇다.

또한 그의 수난의 역사는 순교자들의 옛 기록에 기록되어

 기도문으로 사용하게 되엇다.

 

아가타는 시칠리아 섬의 유명한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그때의 총독 퀸시아노는 그녀에게 결혼을 청했으나 거절당한 후에는

그녀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을 알고 체포해 법정에 끌고 갔다.

 

그때 재판관은 어찌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노예로서 일생을 보내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성녀는 대답하기를 "나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나는 겉으로 종인 것 같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는 것은 가장 높은 귀족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총독은 그녀가 그리스도를 배반치 않는다면 더욱 가혹한 형벌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성녀는 그에게 대답하기를, "당신이 나를 맹수와 같이 포악성으로 위협을 한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것을 진정시키리라는 것을 아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불을 사용하면 그때는 천사들이 나를 위해 하늘에서

 향기로운 장미꽃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라고 했다.

 

아가타는 많은 형벌을 받고나서 마치 잔치에 초대를 받은 것처럼

만면에 희색을 띠고 좋은 기분으로 감옥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기도하면서 자기의 모든 고통을 구세주께 맡겼다.

 

 

다음날 성녀는 재판관에게 다시 끌려나갔을때 그에게

"당신이 만일 형리로 하여금 내 육신을 없애지 않으면 내 영혼은

순교자들과 같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형리들은 그녀를 형벌대에 눕게 하고 뻘겋게 달군 쇠로

그녀의 유방(乳房)을 떼어냈다.

 

이러한 형벌을 받으며 그녀는 이와같이 기도했다.

"나는 정덕에 대한 사랑으로 이와 같은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나의 주님 구세주여, 나의 이러한 고통을 잘 참아 이기도록 도와 주소서."

 

아가타는 총독의 잔혹함에 대해서 책망하기를 "악하고 잔혹한 더러운 폭군이여,

당신 어머니가 당신을 먹여 길러 준 것을

이 가련한 여자에게서 베어내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되지 않습니까?"했다.

 

그녀가 다시 감옥으로 돌아온 다음날 밤에,

점잖은 한 노인(베드로 사도)이 약을 가지고 그녀에게 나타났다.

아가타는 정결의 부끄러움으로 자기 육신의 상처를 그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노인은 "나는 그리스도의 사도이다. 내 딸아, 나에 대해서 의심치 마라"하고 말하자,

그녀는 "나는 세상의 약으로 내 육신을 고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인해 그의 말씀으로 모든것이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는 성 베드로 사도께 온전히 치료를 받고 난 후

"주 예수 그리스도여, 거룩하신 사도를 보내시어

 저의 병을 고쳐 주신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하고 기도했다.

바로 그때 감옥에서는 광채가 밤중에 비추므로 간수들이 놀라며 도망쳤다.

그때 같이 갇혔던 동료들이 도망치기를 권했지만 그녀는 거절하며

"구세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이때, 나를 낫게 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그를

더욱 오랫동안 모시고 싶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나흘 후에 그녀는 또다시 재판관 앞에 끌려나갔다.

그때 그는 그녀의 병이 완치된 것을 보고 놀랐다.

재판관은 전과 다름없이 우상에게 숭배하기를 강요했지만

아가타는 그리스도께 자기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그러므로 총독은 대노하여

 날카로운 유리 파편과 불타고 있는 석탄 위에서 뒹굴게 했다.

이 순간 모든 마을이 대단한 지진으로 진동했고 그 바람에 두 담이 무너져

실비노와 팔고니오라는 총독의 가장 친한 사람들이 눌려 죽었다.

총독은 이로 인해 백성들이 소동을 일으킬까봐

 반쯤 죽은 아가타를 다시 감옥에 가두었다.

 

아가타는 그곳에서 마지막 죽음의 기도를 바쳤다.

그녀는 일어나서 팔을 펴고 구세주께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로 하여금 모든 형벌에서

 승리를거두게 해 주셨음을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히 복된 영광속에 들어가게 해 주소서"하고

 기도하며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죽은 후 1년이 지나서

 가다노라는 마을이 화산 폭발로 어려움에 처하였다.

이교도였던 주민들은 대단히 두려워하면서

성녀의 무덤으로 달려가

 성녀의 수건을 들고 화산의 불꽃을 향해 서서 있음으로써

즉시 재앙에서 구출되었다고 한다.

 

해 돋을 때에 읊는 찬미가는 바로 이 사실을 연상케 한다.

즉 "많은 이교도들이 동정녀의 무덤에 달려가서

 성녀의 수건을 화염을 향해 들었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그들은 화염에서 구출되었고,

구세주께서는 이로써 성녀 아가타 순교자의 공적을 증명해 주셨다"

성녀의 무덤은 지금 시칠리아의 성 가다노에서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고통

 

성녀 아가타의 삶은 신비와 전설에 싸여 있다.

그 역시 다른 많은 동정 순교자들처럼,

수없이 많은 고문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순결을 잃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죽을 때는 고통을 인내할 힘을 주셨음에 감사드렸다고 한다.

 

주어진 고통에 대해 감사한다는 말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머리만 조금 아파도 약 상자부터 찾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을 받아들이려고 하기보다는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는 방법만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영적 성장이나 내면적 성숙은

 대부분 고통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고통을 겪고 있을 당시에는 그 가치를 알아차리기가 힘들지만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고통으로 인해 자신이 훨씬 강해지고

 성숙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통은 우리의 영혼을 제련시키는 불과 같다.

물론 일부러 고통을 찾아 나설 필요는 없다.

굳이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우리 모두에게는 제각기 겪어야 할 고통의 몫이 있다.

그러므로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우리 삶 가운데 들어올 때는

안달하거나 저항하지 말고 고통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영적으로 성숙해져야 한다.

고통은 인생의 교훈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도 성녀처럼 고통을 구원의 수단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나의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

시련을 통해서 성숙했다고 생각하는가?

내 인생에서 겪게 되는 고통을 믿음과 신뢰를 성숙시키는 기회로 받아들이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