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공간 ▒▒/∞·오늘의성인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Berardus 2021. 10. 29. 19:54
 
 

Apostle St Andrew-GRECO, El

1606.Oil on canvas, 97 x 77 cm.Museo del Greco, Toledo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St. Andreas, Ap

St. ANDREW the Apostle

Sant’ Andrea Apostolo

St Andrew the Apostle, the First-Called

(Bethsaida di Galilea - Patrasso (Grecia), ca. 60 dopo Cristo)

at Bethsaida - crucified on a saltire (x-shaped) cross in Greece

Name Meaning: strong, manly

 

 

열두 사도의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

벳사이다 출신의 어부이며 예수를 처음 만나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냈을때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

 

이튿날 형 시몬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를 찾았을 때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 아니냐?

앞으로는 너를 게파라 부르겠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이들 형제는 갈릴리아호수에서 예수님의 부르심 을 받고 사도가 되었다.

 

예수를 뵙게하여 달라는 그리스 사람들의 간청을 들어

필립보와 함께 예수께 말씀드린 사실에서 두드러진 지위를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을 집에 모셨고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이 언제 일어나는지를 예수께 질문했고

5,000명을 먹인 기적에서 한 소년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다고 보고하였다.

 

위경 ’사도 안드레아의 행전’은

 비신화화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전을 간직하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안드레아는 북 그리스, 에피루스 등지에서 선교하였다.

70년경 그리스 파트라스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술에는 십자가를 든 모습이 많다.

 러시아와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다.

-(가톨릭대사전에서)-

 

Nativity with Sts Lawrence and Andrew-ANTONIAZZO ROMANO.

1480-85.Tempera on panel, 142 x 176 cm.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e

 

베싸이다에서 태어났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으나

 그리스도를 따랐고 자기 형 베드로도 주님께로 인도했다.

필립보와 함께 이방인들을 그리스도께 소개했고,

빵과 물고기를 가지고 있는 소년을 지적했다.

전승에 의하면 성신 강림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했고

마침내 아카이아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다고 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또모 주교의 (요한 복음에 대한 강론)에서

(Hom. 19,1: PG 59,120-121)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안드레아는 예수님과 함께 머물며 주님께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후

이 보화를 자신 안에 감추지 않고

급히 자기 형제에게로 달려가 자기가 배운 것을 그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가 자기 형제에게 한 말을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메시아는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배운 것을 여기에서 어떻게 알려 주는지 보십시오.

이 말씀은 한편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승의 능력을 보여 주고

다른 편으로는 처음부터

주님에 대하여 관심을 두고 있는 제자들의 열성과 끈기를 보여 줍니다.

이 말은 그분이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분이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고대하며,

나타나신 후에는 기뻐 용약하며

 이 큰 소식을 즉시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그런 사람의 말입니다.

영신적인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은 형제적 사랑과 우정

그리고 참된 애정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베드로가 지닌 유순하고 단순한 마음에도 주목하십시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즉시 달려갔습니다.

 "그를 예수께 데리고 갔다."고 복음 사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 말을 신중히 검토해 보지도 않고 받아들였다고 해서

누구도 베드로의 경박성을 나무라서는 안됩니다.

 

아마도 그의 동생은

 그에게 이 일에 대해 자세하게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을 것입니다.

간결하게 하기 위해 많은 것을 몇 마디 말로 기술하는 것이 복음 사가들의 특징입니다.

여하튼 복음 사가는 베드로가 즉시 믿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안드레아는 "그를 예수께 데리고 가서" 주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배우도록 주님께 맡겼습니다.

거기에 다른 제자도 있었는데 그 제자도 함께 달려갔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분은 어린양이십니다.

 그리고 이분은 영으로 세례를 주십니다."라는 말을 할 때

이 말이 지닌 자세하고 분명한 뜻에 대한 설명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다 맡긴 것과 같이,

안드레아는 더욱이 자기가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할 능력이 없는 것을 인정하고는,

기쁘고 성급한 마음으로 잠시의 지체함도 없이,

자기 형을 빛의 근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가톨릭홈에서)-

 

*성 요한 크리소스또모 주교 축일:9월13일.게시판1363번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29일.게시판1248번,1842보느1843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어부 요한의 아들인

시몬 베드로(Simon Petrus)의 형제인 사도 안드레아(Andreas)는

공관복음에 의하면 가파르나움 출신이고(마르 1,21-310,

요한 복음에 의하면 갈릴래아 베싸이다 출신으로(요한 1,44) 그 역시 어부였다.

그는 세례자 요한(Joannes Baptistae)의 제자가 되었다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주님을 만났고,

이때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첫 제자 된 후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하였다(요한 1,35-42).

 

얼마동안 그들은 간헐적으로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데,

주님이 갈릴래아로 되돌아 오셨을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시면서

 고기 잡는 일을 그만두게 하셨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스키티아(Scythia)와 그리스 지방으로 전교 여행을 갔고,

조금은 의심스럽지만 비잔티움(Byzantium,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서

성 스타키스(Stachis, 10월 31일)를 그곳의 초대주교로 임명하였다고 전한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불확실하나 가장 오래된 초기 동방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 아카이아(Achaia)의 파트라이(Patrai)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4세기경의 문헌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다고 하나,

중세 말에 덧붙여진 이야기로는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안드레아 사도가 러시아의 수호성인인데,

이것은 그가 러시아에서 설교했다는 미확인 전승에 따른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의 유해 일부가 4세기경에 그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것은 안드레아 사도 유해 관리자였던

성 레굴루스(Regulus, 3월 30일)의 꿈에서 지시된 것이라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성 레굴루스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 성 안드레아가 부르는 곳으로 갔고,

30여 년 동안 그 지역에서 스코틀랜드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그곳에 성 안드레아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래서 성 안드레아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의 국기에 새겨진 X는 수호성인인 안드레아를 상징하는 것이다.

 

성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에 대해서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원래 콘스탄티노플에 있다가 357년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의 지시에 따라

그리스의 파트라이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후 1208년에 이탈리아 아말피(Amalfi)의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옮겨졌고,

15세기에는 그의 두개골이 로마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1964년 9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가

그리스 정교회와 이룬 화해의 표시로

그의 유해를 다시 파트라이로 보냈다.

-(가톨릭홈에서)-

 

Calling of Peter and Andrew-DUCCIO di Buoninsegna

1308-11.Tempera on wood, 43,5 x 46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1세기경에 순교. 어부 요한의 아들,

시몬 베드로의 형제인 사도 안드레아는 갈릴래아 벳사이다 태생으로 그 역시 어부였다.

그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가 되었다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받으실 때 주님을 만났고,

이때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첫 제자된 후, 베드로를 예수께 인도하였다.

 

얼마동안 그들은 간헐적으로 그분을 따라 다녔는데,

주님이 갈릴래아로 되돌아 오셨을 때,

사람낚는 어부가 되라시면서 고기잡는 일을 그만두게 하셨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그는 스키씨아와 희랍으로 전교 여행하였스며,

다소 조금은 의심스럽지만 그가 비쟌씨움까지 가서,

 스타키스 주교를 임명하였다고 전한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불확실하나,

가장 오래된 전승에 따르면, 아카이아의 파트라스에서

 X형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었다고 한다.

 

안드레아 사도가 러시아의 수호성인인데,

이것은 그가 러시아에서 설교하셨다는 미확인 전승에 따른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의 유해 일부가 4세기경에 그곳으로 운구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안드레아 사도 유해 관리자였던 성 룰로의 꿈에서 지시된 것이라고.

기록에 의하면 룰로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 성 안드레아가 부르는 곳을 갔다는 것이다.

 

사실대로, 그는 30여년 동안 그 지역에서 스코틀랜드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그곳의 첫번째 주교가 되었다.

성안드레아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Virgin and Child with St John the Baptist and St Andrew-TADDEO DI BARTOLO

1395.Panel,centre: 114 x 72 cm, wings: 105 x 43 cm each.

Museum of Fine Arts, Budapest

 

성 요한 세례자의 회개를 권하는 불같은 열변도 그렇지만,

그의 준엄과 비할 데 없는 속죄 고행의 생활은 보다 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안드레아도 그의 금욕 극기에 감탄해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과 더불어 그의 제자가 된 것이다.

 

어떤 날의 일이었다. 스승인 요한이 그 근방을 지나가는 어느 성스러운 사람을 가리키며

"이 세상의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십니다."(요한 1, 29)했다.

그는 나자렛의 예수였다.

성요한 세례자를 세상에 약속된 메시아(구세주)인줄 알았는데,

그는 뜻밖에 그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바로 그분이심을 가르쳤다.

 

이튿날 아침, 안드레아와 제베데오의 아들 요한은 또 지나가는 예수를 보았다.

스승으로부터 예수께 대한 깨우침을 받은 두사람은 마음속에 돌연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래서 뒤를 밟아 계속해서 따라갔더니

 마침내 주님께서 뒤를 돌아보시며 무슨 볼일이 있느냐고 질문하셨다.

그들은 "랍비,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했다.

주님께서는 "와서 보시오"하시며 그들을 자택으로 데리고 가시어

 그대로 제자로 간택하셨다.

 

감격에 넘친 안드레아는 잠시도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시종하며

그가 행하는 갖은 기적을 친히 목격하고,

그가 가르치는 진리를 직접 귀로 듣고 덕을 닦아

후일 구속 사업을 세상에 전파하고 진리를 증명할 터전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 동안의 그의 사적은 성서에 두 군데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는,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많게 하여

 남자만도 5천명을 넉넉히 먹인 기적을 행하셨을 때

그 빵과 물고기를 가진 소년을 발견해 주님께 데리고 왔을 때요,

또 하나는 주님께서 수난하시기 수일 전 예수르 뵈옵고자 찾아온 이방인의 요청을

필립보와 함께 주님께 전구했을 때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시오.

밀 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전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요한 12,24)

하시며 희생의 필요성과 존귀함을 열렬히 설명하시니,

안드레아는 그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명심했다.

 

물론 그때는 아직 영안(靈眼)이 열리지 않았을 때요,

그 말씀의 뜻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령이 강림하시자 천상적 지혜를 얻게 된 후에는

그 거룩하신 가르침에 생명을 맡기고 전교활동을 하며

 닥쳐오는 갖은 고난을 감수했다.



그 고난의 시초가 성령 강림 수일 후이며,

그가 다른 사도들과 같이 포박,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구원으로

감옥을 탈출하자, 이튿날 아침에

곧장 예루살렘 성전에 나가 복음을 전하다가 다시 제관장들에게 잡혀

법정에 끌려나가 많은 매질을 당한 뒤 일단 석방되었다.

안드레아나 다른 사도들은 다같이

 예수의 이름 때문에 이 같은 능욕을 받는 것을 마음으로 기뻐하며

만족히 생각했다.

 

이렇게 십자가의 길에 한 걸음 내디딘 안드레아는 주님의 희생의 가르침을 체득하고

최후까지 그 길을 밟아 멈추지 않았다.

44년에 헤로데 아그리를 거쳐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전도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증거했다.

 

The Crucifixion of St Andrew-CARAVAGGIO

c. 1607.Oil on canvas, 202,5 x 152,7 cm.Museum of Art, Cleveland

 

그러던 중 폭군 네로의 박해가 폭발하자 서(西)에서는 성 베드로와 바오로가 순교하고,

동(東)에서는 안드레아가 그리스의 아카이아 주파트라스 시에서 체포되어

에게오 총독에게 심문을 받고 X형 십자가에 못박혀 주님과 같은 최후로 복음을 위해 순교했다.

 

그 형장에 끌려나갔을 때 그는 십자가 앞에 꿇어 양손을 높이 쳐들고

"오, 영광의 십자가여! 너를 통하여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나를 부르시는가!

속히 나를 이 세상에서 끌어올려 주님의 곁으로 가게 해주오"하며

 기쁨에 넘치는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이같이 영광스러운 한 알의 밀이 되어 죽으므로 많은 결실을 가져온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는 357년에 콘스탄티노플에 이송,

1208년에 이탈리아의 아마르피에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St Andrew and St Francis-GRECO, El
1595. Oil on canvas, 167 x 113 cm. Museo del Prado, Madr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