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브리에르의 마슬에서 태어난 그녀는 마리 빅토리아로 영세하고,
J.떼름 신부가 자기 본당에 세운 교사 봉사회에 입회하여 활동하였다.
떼름 신부가 남동 프랑스의 비브레의 선교사로 파견될 때,
그는 데레사와 다른 두 자매로 하여금 라 루베쉭의 성 프란치스꼬 레지스 경당에서
부녀자를 위한 숙박소를 운영토록 하고, 성 레지스 수녀회의 원장으로 그녀를 임명하였다(1829년).
여기서 데레사는 평신도를 위한 피정도 실시하였는데,
1834년에 떼름 신부가 타계하자, 예수회가 이 경당을 맡았으며,
마더 데레사가 원장으로 있는 성 레지스 수녀회원 12명을 선발하여 피정 지도에만 전념토록 하였다.
이것이 세나클에서 피정을 전담하던 성모 수녀회의 모태였다.
1838년, 마더 데레사는 원장직을 사임하였다.
그러나 수녀회가 재정적인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녀는 리용에 새 수도원을 세웠고,
여생을 평수녀로 봉사하면서 지냈다.
데레사는 1970년 바오로 6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혀
성녀 데레사 쿠데륵의 모토는 “좋은 말을 할 수 없거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였다.
데레사가 수녀원에서 살고 있었을 때 그에 대해 거짓으로 고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데레사 쿠데륵은 그 사람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지만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고
그 일로 인하여 무려 13년 동안이나 가장 힘든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다.
그는 죽을 때쯤 되어서 수녀원의 설립자로 인정받았으며 인내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입을 다물 줄 모르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치 두뇌와 입이 바로 연결되어, 머리 속으로 들어간 것은
바로 입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혀를 다스리는 법은 가장 배우기 힘들지만 반드시 익혀야 할 덕목인지도 모른다.
혀야말로 신체의 어느 부분보다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고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고 조절할 수 있다면
그만큼 자제력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배를 보십시오. 거센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크디큰 배라도 아주 작은 키 하나로 조종됩니다.
그래서 키잡이는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 배를 마음대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혀도 인체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엄청나게 허풍을 떱니다.
아주 작은 불씨가 굉장히 큰 숲을 불살라 버릴 수도 있습니다.”(야고 3,4-5)
혀를 무기처럼 사용했던 적은 없는가?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은 말이 아니면 하지 않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이콘]양면 목십자가(兩面木十字架) 팔레히(Palech)양식. 19세기. 高 : 113.5cm
삼횡목(三橫木)으로 기본형을 이루는 러시아식 십자가 전면(前面)의
윗부분에는 구름속에 군림하고 있는 신(神,사바오스Sabaoth)과
그 아래에 위치한 성령(聖靈)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보인다.
맨 첫 횡목에는 수건을 손에 들고 비천(飛天)하는 두 명의 천사가 그려져 있고,
좌우 양 모서리에는 해와 달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횡목의 양끝에는 왼편에 성모마리아와 오른편에 제자 요한(Johannes)를 관찰할 수 있다.
핏기없는 그리스도의 몸 양 옆에는 창과 초(醋)를 바른 막대기가 보이고,
또한 예루살렘 시(市)의 일면이 우리들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 아래로는 아담의 해골이 묻힌 골고다의 암굴(巖窟)이 열려있다.
전설에 의하면 십자가를 아담의 무덤 위에 세웠다고 전한다.
십자가의 다른 후면(後面)의 첫 횡목에는 "최후의 만찬" 장면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성창배 (聖蒼杯)를 볼 수 있다.
둘째 횡목의 왼쪽에는 십자가를 지고가는 그리스도,
오른쪽에는 유다의 입맞춤이라고도 하는 유다의 배반을 그렸고
중심부에는 예수의 부활이 묘사되어 있고,
이 세 장면들의 사이에는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십자가의 수직면에는 기등 위에 앉아있는 닭(사도 베드로의 모욕을 상징), 창, 막대기,
사다리가 보인다
그 아래에는 영원히 잠든 성모마리아를 표현하였다.
희귀하고 색의 처리가 잘 조화된 보존상태가 특히 좋은 작품이다.
-유럽 聖畵(ICON)集 에서-
9월 26일
안티오키아의 성 치프리아노와
성녀 유스티나 순교자
St. Cyprian,St.Justina of Antioch
니코메디아.3세기경.
역사적인 확실한 근거는 희박하나,
치쁘리아노는 안티오키아 사람으로서, 마술과 악마 종교의 신봉자였다.
그는 이런 일 때문에 그리스, 에집트, 마케도니아,
심지어는 인도까지 두루 여행하면서 그의 능력을 과시하고 추종자들을 모았다.
그런데 외교인 청년인 아글레데스란 사람이 안티오키아의 신자이던
미모의 유스티나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치쁘리아노에게
그녀의 사랑을 완전하게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자,
치쁘리아노는 자신의 온갖 예식을 거행하였으나,
유스띠나의 신앙심 때문에 모든 것이 허사로 끝났다.
그는 자기 창고에 있는 모든 무기를 다 동원하여 유스띠나에게 덤비는 악마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자신이 무력해지면서 억누를수 없는
어떤 무서운 힘에 압도 당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자신이 오히려 위험한 지경에 빠진 것이다.
그는 이때부터 악마의 도움을 구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악마가 그를 덮치고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지난 날의 과오를 깊이 뉘우친 치쁘리아노는 십자가를 만들어
악마의 권하에서 빠져나오는 행운을 맛보게 되자,
그는 즉시 에우세비오라는 사제에게 달려가서 교리를 배우고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였다.
그는 온갖 마술 서적을 불태웠고, 자기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희사하였으며,
마침내 아글레데스와 같이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사제가 되었다가,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디오클레씨아노의 박해 때에 체포되어 페니치아의 총독에 의해
티르에서, 유스띠나와 더불어 고문을 받았다.
그들의 신앙과 영향력이 매우 컸으므로, 그들은 황제에게 끌려갔다가,
니꼬메디아에서 모두 참수되었다.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축일:9월16일.게시판1366번
St. Cyprianus of Carthage(c.200-beheaded 14 September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