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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 순교자 / 성녀 데레사 쿠데륵 / 안티오키아의 성 치프리아노와 성녀 유스티나 순교자

Berardus 2021. 9. 25. 18:20

 

 


Beheading of Saint Cosmas and Saint Damian-ANGELICO, Fra.
1438-40.Tempera on wood, 36 x 46 cm.Musee du Louvre, Paris
 
9월 26일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 순교자  

Santi Cosma e Damiano Martire
Sts. Cosmas et Damianus, M
Sts. Cosmas and Damian
Saint Cosmo and Saint Damian
Born:in Arabia
Died:tortured and beheaded c.287-303; relics at Cyrus, Syria
Canonized :Pre-Congregation
Cosma = ben ordinato, bello, dal greco (very tidy, beautiful)
Damiano = domatore, o del popolo, dal greco (domatore, or of the people)
의사,약제사,이발사의 수호성인
 
 
고스마와 다미아노는
아라비아 태생으로 쌍둥이 형제였다고 전해오는데,
그들의 전기는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므로, 전설적이라고 한다.
그들은 시리아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칠리치아의 애게애에서 살았는데,
그들의 의료 기술이 남달리 뛰어나 그 명성이 널리 퍼져서 명의라는 높은 칭송을 듣고 살았다.
또한 열렬한 크리스챤이던 두 형제는 박해가 일어나자
칠리치아의 집정관 리시아느 앞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다가,
신앙 때문에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이들 외에도 그들의 형제이던 안티모, 유프레삐오 그리고 레옹씨오도 함께 처형당하였다.
이들의 순교 후에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그들의 높은 신앙심을 증명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고 전해온다.
고스마와 다미아노는 이발사의 수호자이고,
루가 복음사가 다음의 의사들의 수호성인이다.
 
 
초세기 문헌을 보면, 고스마와 다미아노의 무덤이
시리아의 키로스에 있었고 그들을 기념하여 거기에 대성당을 건립했다는 증거가 있다.
그 후 그들에 대한 공경심은 로마에까지 파급되고 거기에서 전 교회로 파급되어 나갔다.
 

303년 2월 24일 교회에 대한
가장 잔인한 박해자라고 부를 수 있는 로마제국의 황제 디오크레시아노는
돌연 칙서를 내려 전국에 있는 그리스도교 성당을 불사를 것과 즉각 배교할 것을 엄명했다.
과거 40년간은 교회에 대한 별다른 탄압이 없어 교회 활동이 활발해져
상류 계급의 명사들이며,궁중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허다하게
그리스도교를 믿고 각지에 성당을
많이 세웠는데 갑자기 내려진 이런 금교령(禁敎令)에는
 누구 하나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박해의 불길이 일기 시작한 곳은
 제국의 수도인 니코메이다가 있는 소아시아 지방인데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는 그때 순교한 형제이다.
이 두 형제는 아라비아의 명문가 출신이며 어머니 테오다타 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아
신앙이 두터운 이들이었다.
이 두 형제는 의사로서 병에 허덕이는 이들을 구해 줄 뿐 아니라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무료로 치료해 주며
인술의 본령을 발휘했다.
그리고 환자의 육신보다 영혼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그들이 암흑에서 진리의 빛을 받도록 열심히 노력했으므로
하느님께서도 이 박애의 의사들을 사랑하셨음인지,
약보다는 기도의 힘으로 중병이 완치된 기적을 가끔 일어나게 하셨다.
 
 
그들의 자선과 친절에 대한 평판은 날로 퍼져
 그들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은 물론이요,
일반인에게 까지 경애와 칭찬을 받게 되었는데
 이에 반대로 그런 호평을 시기하는 자들의 미움도 받았다.
그러므로 디오클레시아노 황제의 금교령이 내려지자 고스마와 다미아노는 즉시 잡히게되어
소아시아의 남부인 칠리치아 주 애게애의 총독
 리다아스 앞에 끌려가 갖은 형벌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했다.
그러나 본래 신앙이 굳은 두 형제인지라 단호히 거절했다.
그런 그릇된 요구에 응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총독은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그들의 목을 베었으나 본래 그들이 살아 있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듯이 영광스러운 순교를 한 후에도 천국에서 더욱 많은 은혜를
고민에 싸여 있는 형제 자매에게 내려 줌으로써 더욱 많은 존경과
신뢰를 받게 되었다.
 

한두 가지 예를 들자면 그들이 순교한 후 백년이 지나서
유스티니아노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에다 그들을 위한 웅장한 성당을 건축했고,
또 교황 펠릭스 4세는 두 성인을 위한 거대한 성당을 로마에 건립하고
그 제대 앞에는 화려한 모자이크의 사슴을 그려놓고 거기에 황금의 대문자로
’이 대리석으로 건축된 아름다운 하느님의 성전은 순교의 영광을 누린 두 성인에 의해
더욱 광채 찬란하도다’라고 기록했으며,
미사 전례 중 거양 성체 직전에 위대한 순교자들의 전구를 구하는 경문에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를 첨가했으니
이 모두가 성인들의 공훈을 찬미하고 그들을 경모하는 데서 된 것이다.
두 성인은 오늘날 의사와 약제사들의 수호 성인으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그들이 4세기 초경 디오클레시아노 박해 때 시리아에서 순교했다는 것 이외에
그들에 관해 전해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묘지 위에 세워진 교회는 유스티아노 황제에 의해 확장되었다.
두 성인에 대한 공경은 동서양에서 빠르게 퍼졌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콘스탄티노플에 유명한 성당이 세워졌다.
그들의 이름은 아마 6세기경쯤 미사 전문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아라비아에서 쌍둥이로 태어났고,
의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청렴한 사람들’로 불리어 동양에서는 존경받는 사람들이다.
 
그같이 뛰어난 사람들이 박해중에 눈에 띄지 않게 도망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그들은 체포되어 참수되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증거로
 그분의 기적을 뚜렷이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예수님의 행동이 어떤 다른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의 병을 간단히 치유하면서 예수께서 쏟으시는 관심을
 때때로 지나쳐 버리고 만다.
 
’거기에서 나오는’힘은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을 드러내시기 위해
인간역사 속에 결정적으로 뛰어드셨다는 하나의 징표였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은
그의 형제 자매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또 하느님의 구원은 몸과 영혼이 하나로 맺어진
하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 전체를 위한 것임을
琉?볕돛琯湧?생각하게 한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값을 치르고 여러분의 몸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1고린 6,19-20)-
 
성 아우구스띠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329,1-2: PL 38,1454-1455)
 
그리스도의 죽음의 대가로 얻은 순교자의 죽음은 보배롭습니다
 
거룩한 순교자들의 영광스러운 업적은 방방곡곡에서 교회를 꽃피게 합니다.
우리가 방금 노래한 시편의 다음 말씀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 우리 눈으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죽음은 주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보배로운가."
그 죽음은 우리가 보기에 보배롭고 또 주님을 위해서 바친 것이므로
주님 자신이 보시기에도 보배롭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은 많은 죽음들의 대가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죽음으로 숱한 죽음들을 사들이지 않았습니까!
주님이 죽지 않으셨더라면 하나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수난 즉 우리 구원의 시각이 다가올 때 그분이 하신 말씀을 여러분이 들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십자가 상에서 주님은 엄청난 거래를 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주님은, 군인이 창으로 당신의 늑방을 펼치어
그 상처에서 온 세상의 대가가 흘러 나올 때, 우리 속량에 대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신자들과 순교자들이 속량되었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충실성이 증명되었습니다.
즉 그들이 흘린 피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들은 자신들 때문에 지불된 대가를 되갚아
 요한 사도의 다음 말씀을 성취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듯이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서 다른 곳에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높은 자와 한 식탁에 앉게 되거든 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잘 살펴라.
너도 같은 식탁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탁의 주인이 자신이 음식이 되어 주는 잔치는 참으로 성대한 잔치입니다.
자기의 살로 손님들을 먹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하십니다.
그분은 초대하는 분이 되시고 또 음식과 음료가 되십니다.
순교자들은 자기들이 받은 음식과 음료가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바침으로 그만큼 갚아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먼저 값을 지불하시어
순교자들이 당신께 갚아 드려야 할 것을
미리 그들에게 주시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떻게 갚아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내게 주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사오리. 나는 구원의 잔은 받들겠노라."
이것은 무슨 잔입니까? 이 잔은 고난의 잔입니다.그 맛이 쓰지만 구원을 가져다주는 잔입니다.
의사가 먼저 그것을 마시지 않았으면 병자는 두려워 감히 손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수난이 바로 이 잔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의 말씀으로 이 잔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버지,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이 잔에 대해 순교자들이 "구원의 잔 받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고 말했습니다.
 

순교자여, 당신은 수난에서 실패할까 두려워하지는 않습니까?
네,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하신 분이
순교자들 안에서 승리하지 않으셨다면 순교자들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늘 나라의 임금께서는 그들의 마음과 입을 지탱하고 계셨고,
그들을 통해 지상의 마귀를 정복하시어 하늘에서 그들에게 월계관을 주셨습니다.
이 잔을 마신 이들은 복됩니다. 그들은 고통을 다 마치고 영예를 얻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축일:8월28일.게시판1336번.
*나환자들의 목자, 몰로카이의 복자 다미안 사제 축일:4월15일.게시판1713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9월 26일
성녀 데레사 쿠데륵

St. Teresa Couderc
Santa Teresa (Maria Vittoria) Couderc Fondatrice
ST. MARIE VICTOIRE THERESE COUDERC
(Mas de Sablières, 1° febbraio 1805 - Fourvières (Francia), 26 settembre 1885)
Born: 1 February 1805 at Le Mas, France as Marie Victoire Couderc
Died: 26 September 1885 of natural causes
Canonized:1970 by Pope Paul VI
Sisters of the Cenacle. Religious of the Cenacle




프랑스 사브리에르의 마슬에서 태어난 그녀는 마리 빅토리아로 영세하고,
J.떼름 신부가 자기 본당에 세운 교사 봉사회에 입회하여 활동하였다.
떼름 신부가 남동 프랑스의 비브레의 선교사로 파견될 때,
그는 데레사와 다른 두 자매로 하여금 라 루베쉭의 성 프란치스꼬 레지스 경당에서
부녀자를 위한 숙박소를 운영토록 하고, 성 레지스 수녀회의 원장으로 그녀를 임명하였다(1829년).
여기서 데레사는 평신도를 위한 피정도 실시하였는데,
1834년에 떼름 신부가 타계하자, 예수회가 이 경당을 맡았으며,
마더 데레사가 원장으로 있는 성 레지스 수녀회원 12명을 선발하여 피정 지도에만 전념토록 하였다.
이것이 세나클에서 피정을 전담하던 성모 수녀회의 모태였다.
1838년, 마더 데레사는 원장직을 사임하였다.
그러나 수녀회가 재정적인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녀는 리용에 새 수도원을 세웠고,
여생을 평수녀로 봉사하면서 지냈다.
데레사는 1970년 바오로 6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혀 
 
성녀 데레사 쿠데륵의 모토는 “좋은 말을 할 수 없거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였다.

데레사가 수녀원에서 살고 있었을 때 그에 대해 거짓으로 고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데레사 쿠데륵은 그 사람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지만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고
그 일로 인하여 무려 13년 동안이나 가장 힘든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다.
그는 죽을 때쯤 되어서 수녀원의 설립자로 인정받았으며 인내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입을 다물 줄 모르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치 두뇌와 입이 바로 연결되어, 머리 속으로 들어간 것은
바로 입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혀를 다스리는 법은 가장 배우기 힘들지만 반드시 익혀야 할 덕목인지도 모른다.
혀야말로 신체의 어느 부분보다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고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고 조절할 수 있다면

그만큼 자제력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배를 보십시오. 거센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크디큰 배라도 아주 작은 키 하나로 조종됩니다.
그래서 키잡이는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 배를 마음대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혀도 인체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엄청나게 허풍을 떱니다.
아주 작은 불씨가 굉장히 큰 숲을 불살라 버릴 수도 있습니다.”(야고 3,4-5)


혀를 무기처럼 사용했던 적은 없는가?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은 말이 아니면 하지 않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이콘]양면 목십자가(兩面木十字架)  팔레히(Palech)양식. 19세기. 高 : 113.5cm

 

삼횡목(三橫木)으로 기본형을 이루는 러시아식 십자가 전면(前面)의

윗부분에는 구름속에 군림하고 있는  신(神,사바오스Sabaoth)과

그 아래에 위치한 성령(聖靈)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보인다.

 

맨 첫 횡목에는 수건을 손에 들고 비천(飛天)하는 두 명의 천사가 그려져 있고,

좌우 양 모서리에는 해와 달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횡목의 양끝에는 왼편에 성모마리아와 오른편에 제자 요한(Johannes)를 관찰할 수 있다.

 

핏기없는 그리스도의 몸 양 옆에는 창과 초(醋)를 바른 막대기가 보이고,

또한 예루살렘 시(市)의 일면이 우리들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 아래로는 아담의 해골이 묻힌 골고다의 암굴(巖窟)이 열려있다.

전설에 의하면 십자가를 아담의 무덤 위에 세웠다고 전한다.

 

십자가의 다른 후면(後面)의 첫 횡목에는 "최후의 만찬" 장면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성창배 (聖蒼杯)를 볼 수 있다.

둘째 횡목의 왼쪽에는 십자가를 지고가는 그리스도,

오른쪽에는 유다의 입맞춤이라고도 하는 유다의 배반을 그렸고

 중심부에는 예수의 부활이 묘사되어 있고,

이 세 장면들의 사이에는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십자가의 수직면에는 기등 위에 앉아있는 닭(사도 베드로의 모욕을 상징), 창, 막대기,

사다리가 보인다

 

그 아래에는 영원히 잠든 성모마리아를 표현하였다.

희귀하고 색의 처리가 잘 조화된 보존상태가 특히 좋은 작품이다.

-유럽 聖畵(ICON)集 에서-

 

 


9월 26일

안티오키아의 성 치프리아노와

성녀 유스티나 순교자


St. Cyprian,St.Justina of Antioch

니코메디아.3세기경.

 

역사적인 확실한 근거는 희박하나,

치쁘리아노는 안티오키아 사람으로서, 마술과 악마 종교의 신봉자였다.

그는 이런 일 때문에 그리스, 에집트, 마케도니아,

심지어는 인도까지 두루 여행하면서 그의 능력을 과시하고 추종자들을 모았다.

그런데 외교인 청년인 아글레데스란 사람이 안티오키아의 신자이던

미모의 유스티나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치쁘리아노에게

 그녀의 사랑을 완전하게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자,

치쁘리아노는 자신의 온갖 예식을 거행하였으나,

유스띠나의 신앙심 때문에 모든 것이 허사로 끝났다.

그는 자기 창고에 있는 모든 무기를 다 동원하여 유스띠나에게 덤비는 악마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자신이 무력해지면서 억누를수 없는

어떤 무서운 힘에 압도 당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자신이 오히려 위험한 지경에 빠진 것이다.

그는 이때부터 악마의 도움을 구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악마가 그를 덮치고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지난 날의 과오를 깊이 뉘우친 치쁘리아노는 십자가를 만들어

악마의 권하에서 빠져나오는 행운을 맛보게 되자,

그는 즉시 에우세비오라는 사제에게 달려가서 교리를 배우고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였다.

그는 온갖 마술 서적을 불태웠고, 자기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희사하였으며,

마침내 아글레데스와 같이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사제가 되었다가,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디오클레씨아노의 박해 때에 체포되어 페니치아의 총독에 의해

티르에서, 유스띠나와 더불어 고문을 받았다.

그들의 신앙과 영향력이 매우 컸으므로, 그들은 황제에게 끌려갔다가,

니꼬메디아에서 모두 참수되었다.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축일:9월16일.게시판1366번

St. Cyprianus of Carthage(c.200-beheaded 14 September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