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묵상]
2021년 7월 4(일)
[녹] 연중 제14주일
제1독서(에제 2,2-5)
제2독서(2코린 12,7ㄴ-10)
복음(마르 6,1-6)
얄궂은 세상, 하느님의 편이 됩시다!
진리를 안다는 어설픈 선입견 신앙인의 삶에 방해만 될 뿐
성경에 담긴 주님 뜻 이해하고 말씀에 따르는 삶 살아가길
갑갑한 세상, 얼굴을 덮은 마스크가 무더위의 질량을 더 높이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그분 때문에’ 기쁜 삶을 살고 계신지요?
주님의 말씀에 오직 긍정함으로 마음에 쓴 뿌리를 제거하려 노력하시는지요?
이 여름이 덥고 지리해서 더욱 성경말씀에 집중하려 애쓰시는지요?
이야말로 이 땅에서 천국의 행복을 누리는 비결임을 확신하시는지요?
하여 오늘 복음이 들려주는 나자렛 사람들처럼 하느님의 뜻에
괜한 트집을 잡는 미련함을 떨쳐내고 지내시는지요?
성경은 세상의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복된 존재라는 사실을 천명하며 말씀의 포문을 엽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원죄로 잃은 하느님의 모습을 회복하여
하느님 자녀의 본분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임을 누누이 들려줍니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하늘에 닿는 그날까지 하느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언제나 기쁘고 항상 감사한 시간을 살아내는 것임을 수없이 가르칩니다.
때문에 우리는 죄의 악함을 모르지 않습니다.
한편 하느님의 징계가 죄를 깨닫고 죄와 멀어지게 하는
주님의 방법일 수 있으며 영혼에 매우 유익하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막상 자신에게 고통이 오고 아픔이 생기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재앙이라 단정 짓고 하느님 탓을 하는 경우가 무수합니다.
“이 재앙은 분명 주님께서 내리신 것이오.
그런데 이제 내가 주님께 무엇을 더 바라야 한단 말이오?”(2열왕 6,33)라고 말했던
이스라엘 왕처럼 생각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모든 성경말씀을 객관적 관점에서는 얼마든지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결국 스스로의 삶에 적용되는 것은 거부하며 살아가는 셈입니다.
이처럼 진리를 ‘안다’는
어설픈 선입견은 신앙의 삶에서 최고의 훼방꾼입니다
.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 때문에 삶이 경직될 수 있습니다.
이야말로 그날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했던 바로 그 모습인데요. 이래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모든 것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기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힘들고 곤고한 상황도 주님께서 허락하셨기에 끝내
유익하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당신의 일에 온전히 수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약속을 내 생각대로 변질시키거나 내 방법대로
바꾸려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날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영혼을 위해서 애쓰시는 주님의 계획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땅의 안녕과 풍요에 시선이 묶여 있었던 탓에 결국 예수님의 적대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도무지
이를 수 없는 엄청난 말씀을 우리에게 던져주셨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강력하고 엄청나서 오히려 우리에게 무력감을 주고
다만 죄인이라는 사실만 처절히 일깨워줄 뿐이라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 말씀을 고스란히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히브리서 저자의 글에 눈이 번쩍 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믿음인’은 세상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죄와 ‘맞서 싸워야 하는 존재’라는 설명이 가슴을 때렸습니다.
‘믿음인’이 죄와의 싸움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권고를 잊은 행태라는 지적에 영혼이 깨어나는 기분이었습니다.(히브 12,4-7 참조)
성경이 인간의 허물을 숨기지 않고 들려주는 이유가 마음에 파도처럼 밀려들었습니다.
이후, 생각이 고쳐졌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이야기들, 읽기조차 민망하고 추악한 상황들…,
싫고 밉고 알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도 않은 인간의 악행들이
바로 우리를 가르치기 위한 반면교사의 말씀임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이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가 온통 죄와의 치열한 싸움을 예고하시는
주님의 배려라는 사실에 감사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성경을 주님의 심정으로 읽고 주님의 고백으로 들으려 노력합니다.
오직 말씀을 향하여 돌아서고, 그 말씀에 입각하여 살려 애쓰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인간의 죄가 얼마나 뿌리가 깊고 끈질긴지 알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네 조상님들보다 훨씬 굳센 믿음을 살아내기를 기대하실 것입니다.
창세 이후 가장 교양 있고 품격 있고 고상한 역할을 살아 내리라 고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선조들보다 훨씬 많은 교육을 받았으며 도덕적으로도 현명해졌으니 말입니다.
솔직히 그네들처럼 치사하지 않으며 저열하지도 않으니 말입니다.
그날 주님께서는 나자렛 사람들의
완고함을 변화시켜 주지 않고 떠나가셨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서 갖은 힘을 쏟으시는 분,
매일매일 사랑을 배워 연습하며 익히도록 도우시는 그분의 은총을 거부하는
어리석음이 앞날의 지복을 좌우한다는, 따끔한 경고입니다.
우리는 제발 그분을 떠나보내지 맙시다.
성경과 친해져서 그분의 뜻을 온전히 이해해 드립시다.
하여 얄궂게 하늘만 탓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하느님의 편이 되어드립시다.
여름 햇살처럼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장재봉 신부-
△제주 복자 김기량 순교현양비
[한주간 전례]
2021년 7월 5일 (월)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 신심 미사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충남 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 태어났다.
양반 가문이었으나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집안이 몰락하였다.
김대건은 열여섯 살인 1836년 사제가 되고자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길을 떠났다.
1844년 부제품을 받은 그는 선교 사제의 입국을 돕고자 잠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1845년 8월 17일 상하이의 진자샹[金家巷]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고국에 돌아온 김대건 신부는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 사제의 입국 통로를 개척하려다가
1846년 6월에 체포되어 여러 차례 문초를 받고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4년 5월 6일 서울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를 시성하면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정하상 바오로와 함께
한국의 대표 성인으로 삼았다.
한국 교회는 순교자 현양을 위하여 과거 대축일이었던 7월 5일에
성대하게 신심 미사를 드리기로 하였다(주교회의 2019년 추계 정기 총회).
[복음묵상] 마태오 10,17-22
가끔 삶의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그 생활에 적응하게 되고,
적응된 일에만 익숙해져 쉽게 판단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실망스러워 절망하기도 하고,
좋은 결과를 얻었더라도 피곤하고 힘든 과정을 다시 걸어야 한다는 두려움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를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위 사람에게 상처받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였을 때,
열심히 한 일에 대해서 인정받지 못하였을 때,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이들이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우리는 실망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또한 그 길을 가고자 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사제로 살아 온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러한 장벽과 걸림돌에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길을 잃고 헤매야 할지 두려움이 앞섭니다.
넘어지고 쓰러졌을 때, 또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그런 실망과 후회를 견디어 낼 수 있을지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을 하고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전하는 삶 자체가
어쩌면 처음부터 넘어지고 채찍질당하며,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견디어 내라.’, ‘걱정하지 마라.’ 하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늘 걱정이 앞섭니다.
십사 년 전 오늘, 저는 이 길에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어떠한 사제가 되겠다는 다짐이나 창대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던 첫 마음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이 닥치더라도 당당히 맞서 나아가려 합니다.
견디기 쉽지 않을 때마다 첫 마음을 기억하며 예수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첫 마음으로 삶의 어려움을 견디어 내십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2021년 7월 6일 (화) [녹]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9,32-38
저는 평소에 꽤 열려 있는 시각과 사고를 가졌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또한 선입관을 버리고 내 안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잘 바라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트로트 생활 성가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나는 리듬과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박자도 어색하고,
그 자리가 무척이나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머리로는 ‘트로트도 성가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거부하고 있었나 봅니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을 차별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열린 마음을 가졌다는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행동, 말씀과 시각은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이었습니다.
군중은 언제나 예수님을 보고 놀라워하였고,
“이런 일은 본 적이 없다.”며 감탄하면서도 낯설어합니다.
바리사이들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그 낯섦은 예수님에 대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미움으로 발전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심과 더해져 결국
그 낯설고 다른 것을 거부하고 오해하면서 자신의 이기적인 시선과
마음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하늘 나라의 복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하고 스스로 고통과 아픔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희생과 수고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온 마음으로
가난하고 길 잃은 사람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때로는 죽음 앞에 당당해야 하고 두렵지 않은 척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 낯선 일을 나의 일로, 나의 일상으로 만들어 가는 주님의 일꾼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한 당신을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2021년 7월 7일 (수) [녹]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10,1-7
사제의 삶은 ‘보내어지는 삶’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없는 삶입니다.
원하지 않은 곳이더라도 일단 파견되면 자신의 생각과 의향은 접고
보낸 사람의 뜻과 가치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사제는 이러한 생각과 순명의 의지를 가슴 속에 담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제만 그래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파견되는 삶의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미사 전례는 언제나 파견 예식으로 끝마칩니다.
사제가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다짐을 권유하면,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응답합니다.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요?
바로 ‘사도’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가까이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당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시고,
그들은 예수님을 온몸과 온 마음으로 느꼈습니다
. 또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권한을 나누어 주십니다.
당신께서 가지고 계시던 능력, 곧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사도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자신의 능력과 장점 때문에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분에게서 거저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에게서 파견된 사도입니다.
이때 우리의 재능이나 능력이 아닌 그분의 선택과 부르심으로
그렇게 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기도 안에서, 말씀 안에서, 성사를 통하여 늘 그분 발치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분 곁에서 우리는 그분을 알고 그분을 배우고 그분을 느끼며 그분의 힘과 능력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연대하는 용기와 위로하는 마음을 이웃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사도로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
2021년 7월 8일 (목) [녹]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10,7-15
이스라엘 성지 순례는 복음서의
평면적이고 문자에 머무는 이야기를 입체적인 그림으로 만들어 줍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여러 차례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성지 순례를 떠나기 전에 순례가 그저 단순한 여행이 되지 않도록 많은 것을 준비하게 됩니다.
순례의 주제를 정하고 공부도 하면서 묵상과 성경 통독으로 순례를 기다립니다.
순례를 할 때에도 주제를 깊이 생각하며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같은 장소와 건물을 보더라도 늘 새롭게 다가오며,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아주 가깝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이런 순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파견되어, 그분과 함께 떠나는 순례의 여정입니다.
그 여정은 늘 같은 일상의 반복일지 모릅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며 같은 일을 하는 일상 말입니다.
때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이유를 찾지도 못하며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보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순례의 여정에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주제를 정해 주십니다.
순례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순례의 기준이며 가치, 그리고 방식입니다.
첫째는 ‘소유에서부터 자유로움’입니다.
소유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탐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미리 채우려는 마음보다는 감사하고 나누려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머무름’입니다. 이것은 함께 있는 것이며 동감하는 것이고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고통도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도 서로 나누며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집착과 미련에서부터 자유로움’입니다.
집착과 미련은 성공과 좋은 결과만을 가지려는 욕심입니다.
자기만족과 성공을 위해서 더 큰 아픔과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놓고 떠날 수 있어야 새로움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일상이라는 순례에서
길을 잃고 헤매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에서부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먼저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주제들에 집중해 보십시오.
그분께서 함께 걸어 주실 것입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2021년 7월 9일 (금) [녹]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10,16-23
강론과 강의를 하며 신자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나누라고, 견디고 참아 내라고, 가난하고 없는 이들에게
더욱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이라고 하는 것이 신자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제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 신자들에게는 한 번 더 고민해야 하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기꺼이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안녕과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투신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신념만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임지고 의무를 다해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불의와 타협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하고 세상의 가치에 따라서 살아야 하기도 합니다.
옳지 않은 일을 보고 침묵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와 복음의 가치는 같지 않습니다.
복음의 가치대로 살아가다 보면 세속적인 면에서 대개는 부족하게 받을 것입니다.
성공보다는 후퇴와 실패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숙명입니다.
박해의 삶, 스스로 손가락질과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삶,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아이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예수님의 가치를 위해서는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용기와 강단 있는 삶, 그러한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아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와 기준으로 살아왔다는 죄책감으로,
고통받고 아파하시는 예수님을 일상에서 외면하였다는 미안함으로 스스로 미워하고 박해합니다.
그래서 아프지만, 그 박해와 미움은 우리의 몫이기에 이 아픔을
두려워하지도 멀리하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비워진 자리는 채워 주실 것이며 상처 난 자리에는 약을 발라 주실 것입니다.
서로 함께 용기를 주며 보듬어 안아 주십시오.
-(최종훈 토마스 신부)-
2021년 7월 10일 (토) [녹]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10,24-33
강의를 끝마치고 나면 스스로 강의에 대한 평가를 합니다.
내용은 어떠하였는지, 강의에 참여한 이들의 반응은 좋았는지 반성하는데,
그 평가는 언제나 박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제가 채우지 못한 것은 하느님께서 채워 주셨다고 믿으며 주님의 은총을 청합니다.
또한 사소한 내용을 말하더라도 대단하게 받아들여 주는 신자분들이 있기에 감사합니다.
이러한 반성 가운데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열정입니다.
얼마나 진심으로 강의를 준비하였는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삶의 이야기로 다가갔는지,
그리고 최선을 다하였는지 되돌아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한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정의를 부르짖으며 옳은 일에 나서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행하려는 노력들이 부끄럽고 어색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할지 의심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가르치시는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그분처럼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겨 드리고 의지하는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때로는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고 외치는 것이 오지랖이 넓은 것 같고 어색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외면하고 숨고 피하며 살아갑니다.
주님께 맡기는 삶은 우리의 두려움을, 어색함과 창피함을,
그리고 나약함과 죄스러움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 봉헌으로 더 많이 채워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오로지 사랑과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바람과 희망만 있다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세상 속에서 당신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 자신이 귀한 존재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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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조만간 장마도 시작된다고 합니다.
또한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19로 부터
벗어나는 가 싶더니만 다시 강화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Berard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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