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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십자가는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손잡고 가는 친구

Berardus 2020. 10. 15. 07:21
[생활 속 영성 이야기]

십자가는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손잡고 가는 친구
함께 나이 들어가는 시간의 아름다움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처럼 주님! 저의 이 고통이 필요하시다면 이 고통으로 연옥 영혼들을 불쌍한 연옥 영혼들을 구원하는 데 쓰이길 봉헌합니다.

한가위 맞을 준비를 하면서 송편을 주문해 여러 곳에 나눔을 하였다. 어린이집 원아 가정과 많은 분들에게 건강한 추석을 보내시라고 인사드리면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안 계시는 추석을 느끼게 되었다. 20년을 넘게 추석 전에 아버지께 송편을 갖다 드렸다. 알록달록 예쁘게 포장한 송편을 받으시고는 늘 “어린이집 애들이 만들었나?”하고 들뜬 목소리로 물어보셨다. “아버지 그 꼬맹이들이 어찌 만들겠노. 나도 잘 못 빚는데”하고 대답하면 아버지는 항상 웃음으로 “그렇제?”하시면서 “애들한테 잘해라…. 야단도 치지 말고 귀하게 대해라. 절대 혼내지도 말고, 진짜 어려운 직업을 택한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들한테 잘해라. 나도 자식들 야단 안치고 키웠다”하시면서 송편을 꼭 아이들이 빚어서 보낸 것처럼 아낀다고 안 드시고는 침대 머리맡에 두셨던 모습이 소중히 떠오른다. 이렇듯 떠난 이는 남은 이에게 “잊지 마라”라고 그리움을 선물하고 가나 보다. 순간순간 선물 보따리가 펼쳐져 가슴 시린 보고 싶음을 느끼게 한다. 작년 여름, 긴 투병 생활이 힘드셨는지 입맛이 없다며 며칠을 짜증을 내시고, 하루에도 몇 번을 오라고 부르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도 아프겠지만 둘째 딸도 아프다.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해서 이렇게 몸이 힘들어도 나는 ‘이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하고 하루하루를 사는데 아버지는 왜 이렇게 짜증을 내시냐”고! 그 시간에 아버지의 기도가 필요한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처음으로 아버지 앞에서 울음을 보였다. 그때 아버지 표정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깜짝 놀라시면서 숙연한 표정…. 언제부턴가 나는 잠도 잘 못 자고 맛도 못 느끼면서 먹지도 못한다. 아마도 10년은 넘은 듯하다. 잠을 거의 못 자면서, 밥을 먹으면 목에서 딱 음식물이 걸려 머리까지 아픈 고통에 먹는 것이 두려운 시간이 되어버린 일상…. 병원에서는 위내시경 결과 이상이 없다는 말만 매년 반복할 뿐이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 유도제 또한 나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출근하는 몸 상태가 꼭 야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상태처럼 힘든 시간들 속에서 꾸르실료 봉사할 때가 최고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3박4일의 봉사 기간이 너무 황홀해서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몰랐고 먹어도 음식물이 목에 걸리지 않아 체하지 않았기에 나에겐 몸이 소통되는 시간이었다. 어차피 못 자는 밤이기에 몇 발자국만 가면 성전이라 성체 조배를 맘껏 할 수 있었고, ‘이렇게 못 자는 이 순간마저도 저의 살아계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 찬미 영광 드리며, 불쌍한 저를 봉헌합니다’하고 성전에서 눈물짓던 고요의 시간들…. 봉사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일주일씩 못자고 못 먹을 때는 몸도 흔들리고 체력적으로 힘들어 많이 우울하고 하느님을 원망할 때도 있었다. ‘제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다고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아직도 이 고통이 끝나려면 멀었습니까?’하고 깜깜한 밤에 남편이 깰까 봐 소리 죽여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묵주기도를 바칠 때 눈물이 막 흐르면서 깨닫게 되었다. 이 고통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임을….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주님께서 뜻이 있어 주신 십자가이니 그냥 기쁘게 묵묵히 지고 따라가야 함을 온전히 느끼면서 동생 수녀에게 배운 기도가 생각났다. ‘주님! 저의 이 고통이 필요하시다면 이 고통으로 연옥 영혼들을,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하는 데 쓰이길 봉헌합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여전히 못 자고 못 먹는다. 하지만 나의 고통이 헛되지 않음을 믿기에 예전처럼 우울하지는 않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면증과 못 먹는 시련들에 웃음이 날 때가 많다. 그냥 기쁘다. 하루 종일 하품을 달고 살아도, 속이 메슥거리는 것이 싫어 늘 배고파 허기가 져도 난 기쁘다. 그냥 자꾸 기쁘고 모든 것이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감사하다. 아마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서 둘째 딸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고 계시는가 보다. 아버지보다 둘째 딸이 더 아프다는 투정을 가슴에 품고 가셔서는 이리도 기쁜 삶을 선물해 주시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