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영성 이야기]
가장 확실한 노후 준비는 부부 사랑
함께 나이 들어가는 시간의 아름다움
마지막에 남을 우리 두 사람은 그때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
지금 더 많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는 부부가 될 거라 생각하면
늙어 가는 것이 두렵기보다 설레고 기다려진다
석 달 전
시어머니께서 무릎 수술을 하셨다.
오랫동안 고생하시다가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수술을 하셨는데 경과가 좋아 다행이다.
아직은 불편하긴 해도 잘 걸어 다니신다.
어머니 수술이 결정되고 나서 아버님은 혼자서
전철을 타고 병원까지 두 번 사전 답사를 하셨다고 한다.
입원하면 매일 다녀야 하니
미리 경로를 파악해 놓으신 거다.
실제로 일주일 입원해 계시는 동안
아버님은 매일 전철을 타고 병원에 다니셨다.
퇴원하고 나서도 아버지는
어머니의 다리 역할을 묵묵히 해내셨다.
어머니는 평생 아버님께 최선을 다하셨으니
이제 아버님이 해 주실 차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85세인 아버님이 귀찮고 힘든 일을
마다않고 하는 모습은 보는 자식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시부모님은 나에게
노후 생활 롤 모델이다.
다섯 자식을 잘 키우셔서
모두 부모님께 나름대로 잘하고 있고,
연금으로 생활하시니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 없이 노후를 보내신다.
평생 깊은 신앙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는 생활을 해오셨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어렵지만
매일 노인정에 다니시며 이웃과 친하게 지내신다.
영어 교사를 하셨던 아버님은 퇴직 후에도
꾸준히 영어 공부와 독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55세에 시작한 그림이
취미를 넘어 초대 작가 반열에 오르셨다.
무엇보다
본받고 싶은 것은
두 분의 관계성이다.
한창 자식 키우고 공부시킬 때는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고
당신 취미 생활에만 몰두하셨다고
어머니는 가끔 혼자 고생하셨던
과거 얘기를 하며 아버님을 원망하지만,
지금은 집안일을 적절히 분담하고 계신다.
밥과 설거지는 아버님이 하시고
반찬은 어머니가 하신다.
청소는 아버님이, 빨래는 어머님이 하신다.
그런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다.
서로에게 뭐든 해 줄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 평화로워 보인다.
두 분 삶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때가 아닐까 싶다.
살면서 닥쳐왔던 모진 고생과 고통을
치열하게 겪어 내시면서 두 분 사랑은
점점 단단해지고 완성되어가는 것 같다.
평화롭게 노후를 보내시는 부모님이야말로
자식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고 은총이다.
얼마 전
ME 선배 부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20~30년간 ME 안에서 살며
여러 가지 봉사를 하셨던 선배님들은
하나같이 나이 들어갈수록
ME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고 하셨다.
배우자가 곁에 있어 줘서 고맙고,
비록 서로 늙어 가도 점점 더 좋아지고
배우자 존재 자체가 감사하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서로 사랑하며 함께 늙어가는
부부들 모습은 나에게 큰 희망이 된다.
결혼을 기피하고 이혼이 흔한 세상에서
부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배우자보다는 아이가 더 중요하고
아이만이 부부의 유일한 존재 이유인 것처럼
살아가는 부부들을 볼 때마다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무엇으로 살아갈까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혼인한 자녀 삶에 깊이 개입하며
양육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도 부부 중심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실천하고 있다.
아이들 넷을 키우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열심히 키워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도움을 요청하거나 의견을 구할 때
부모로서 필요한 도움을 주지만
결정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노력하지만
서로가 공감하는 선에서 하려고 한다.
결국 마지막에는 우리 둘이 남을 것이다.
그때 서로 소중히 여기고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
지금 더 많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시부모님과 선배 부부들처럼 우리 부부도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는
부부가 될 거라 생각하면 늙어 가는 것이
두렵기보다는 설레고 기다려진다.
이것이 열심히 살아 낸 우리 부부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마지막 선물이 될 거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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