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하느님이 우리에게 빛을 비출 때
부활 제6주일
제1독서(사도 8,5-8.14-17)
제2독서(1베드 3,15-18)
복음(요한 14,15-21)
예수 승천 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다른 보호자, 성령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전제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진리 실행할 힘 주시는 ‘진리의 영’
제자들 안에 머무르는 성령의 힘으로 복음 선포 사명 완성.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긴 동굴을 지나 밖에 나오니
세상은 온통 푸르름, 꽃이 만발합니다.
꽃, 꽃, 꽃!
오랫동안 실내에 두었던 텃밭 상자의 상추와 치커리,
로즈마리도 햇볕을 쬐고 나니 놀랍게 푸르고 단단해졌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햇빛과 바람을 받아들이기만 했는데도
식물이 광합성 작용으로 변화됐습니다.
이 모습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빛을 비출 때 일어나는
우리 영혼의 광합성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합니다.
아멘!
■ 복음의 맥락
오늘 복음은
지난 주일에 이어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사랑과
가르침을 나누는 장소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예수님의 떠나심으로 산란해진 제자들의 마음
(부활 제5주일)을 위로하고 예수님이 떠나셔도
그들이 그분 일을 계속 하도록 성령의 선물을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이어질 주님 승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을 준비하는데,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성령 약속에 대한
다섯 개 담화 중 첫 번째입니다.
■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이제 떠나시는 예수님은
아버지께 청하시어 ‘다른 보호자’를
제자들에게 보내셔서 그들의 동반자가 되게 하십니다.
(요한 14,16)
‘청하다’라는 동사는 단순한 간청이 아니라
간절한 갈망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아버지의 아들이 되게 하는 것은
꾸준한 기도, 중요한 고비에서 그분 자신을
아버지께 온전히 내어맡기며 일치를 이루는 기도입니다.
아들의 순종을 보시고 항상 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아버지는
이제 예수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요한 14,26)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시는 것은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실 것입니다.
(요한 15,26;16,7)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성령을 받아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요한 20,22)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주도권으로
성령께서 세상에 오시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을 받는데 맞갖는 자세를
갖출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삶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전제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기 위해 선행을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가 선해집니다.”
-(마틴 슐레스케, 「가문비 나무의 노래」)-
▲미국 뉴욕 시어파크 시릴과 메토디우스 성당의
‘성령’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 아버지께서 다른 보호자를
‘보호자’는 그리스어로
파라클레토스(Paràkletos)입니다.
요한 복음서에만 나오는데
(요한 14,16.26;15,26;16,7;1요한 2,1)
‘가까이 불린’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 문학에서 원래 법정 용어로 사용했고
피고인 옆에 앉아서 그를 변호하는 변호자를 가리킵니다.
이 말에는 ‘위로자’라는 실존적인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힘든 순간에 어려움을 겪을 때,
근본적인 고독을 느끼며 세상에서 혼자라고 느낄 때
옆에서 우리의 나약함을 함께 짊어지는 ‘위로자, 협조자,
돕는 이, 보호자’를 뜻합니다.
제자들은 그들의 믿음을 적대시하는 세상에 어떤 변호자도,
위로자도 없이 고아처럼 버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은 ‘성령’을 다른 복음서와 달리
사용하는데 성령에 관한 여러 표현은
성령이 누구신지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을 말합니다.
공관복음서에는 성령의 활동이
예수님의 직무에만 해당됐다면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 승천 후
제자들의 활동까지 확장됩니다.
요한의 성령 개념은
유다 전통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주님과 백성 사이에서 ‘변호자, 중재자,
위로자’ 역할을 한 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요한은 유다 전통에서 이것을 가져와
자신의 복음서에서 적절하게 사용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 청하시는 이 보호자는 ‘다른 보호자’입니다.
첫째 보호자는 이제 떠나시는 예수님이시고
‘다른 보호자’, 곧 성령은 그분 청으로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동반자입니다.
■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예수님은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도 부르십니다.
이 영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지난 주 복음에서 예수님은 토마스에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의 영은 아버지와 같은 사랑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는
예수님 안에 있는 제자들 곁에 머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1요한 4,16)
우리와 ‘함께’ 우리 ‘곁에’ 머무시는 분은
몇 시간 후에 ‘우리 안에’ 계실 것입니다.
‘진리의 영’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전달한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영이 새로운 진리를 계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진리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하면서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의지,
영감, 실행할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고 양들을 모으는
예수님 직무를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여전히 예수님의 일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 계명을 지킬 때에만
그들의 소명을 완성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들 안에 머무시는 성령의 힘으로
세상 끝까지 그리고 종말까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확장시킬 것입니다.
성령의 약속에 대한 예수님 말씀이
교회 역사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돼 가는 것을
제1독서와 제2독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계획대로 복음은 예루살렘을 거쳐
사마리아에까지 전파되고 사도들은
사마리아인들에게 성령의 세례를 베풉니다.(1독서)
성령 안에 머무는 사람들은 고통 가운데서도
성령이 불어넣는 희망과 인내와 용기와 온유함으로
그리스도를 용기 있게 증언합니다.(제2독서)
하느님 아버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우리 내면 안에 함께 사십니다. 감사합니다.
성삼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우리 삶을 헛되게 살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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