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빈 무덤은 영원한 생명의 문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
제1독서(사도 10,34ㄱ.37ㄴ-43)
제2독서(콜로 3,1-4 또는 1코린 5,6ㄴ-8)
복음(요한 20,1-9 또는 마태 28,1-10)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삶 살았던 마리아에게만 보여주신 부활 계시
‘사도들의 사도’라는 영적 지위도 빈 무덤 사건은
증거의 의미 아닌 영원한 생명 바라보는 영적 체험
주간 첫날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저희 마음에
희망의 등불을 밝혀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빈 무덤’ 사건은
‘부활이요 생명’(요한 11,25)이신
주님께 대한 믿음과 부활의 희망을 새롭게 합니다.
신종 바이러스가
돌풍을 일으킨 사순 시기는 특별합니다.
‘무지의 구름’ 아래 죽음의 공포에 떠는
병든 세상의 민낯을 보았고,
반면에 재난의 극복을 위해
불철주야 사투하는 의료진과 봉사자들의
인내와 희생에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조용한 봉사로 함께 하면서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힘(1요한 5,4)임을 알고
주님의 영원한 자애에 희망을 봅니다.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베드로가 행한 설교(제1독서)는
나자렛 예수님을 알고 있는 초기교회공동체에
그리스도에 관한 전형적인 가르침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됨을 봅니다.
베드로의 증언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역사적 현존과 복음을 보존하고
일치를 이룬 교회의 전통을 충실히 이어갑니다.
사도들은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전문가입니다.
베드로는 성삼위께서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공생활, 그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성찬의 전례, 생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말씀과 성체를 모시고
천상생명에 참여(제2독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는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말라”(콜로 3,2)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는 마음에 간직해야 할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영도자”(사도 3,15)이십니다.
‘영혼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고”(사도 10,43),
다시 오실 때 그분과 함께 하느님의
현존에 함께하는 ‘영광’(콜로 3,4)을 누릴 것입니다.
▲전주교구 개갑순교성지 안 십자가의 길 제15처인 빈 무덤 주제 부활동산.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오늘의 복음에 나오는
‘빈 무덤’ 사건은 네 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요한 20,1)” 하고 전합니다.
마리아의 첫 반응은 “누가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릅니다”라고
두 번이나 말합니다(요한 20,2.13).
인간의 이성으로
부활의 신비를 어찌 알겠습니까.
첫 새벽에 여자 혼자 문밖에 나가는 것도 이례적입니다.
“마리아야!”(요한 20,16)하고 이름을 불러주신
주님을 만나 뵙고서야 부활의 진리에 경탄합니다.
마리아는 일곱 마귀의 악령에 시달리다
치유의 은총을 입었고, 자기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든 인물(루카 8,2-3)입니다.
마리아는 주님 따라
골고타 십자가의 길을 걸었고,
십자가상에서 숨을 거두시고,
무덤에 묻히시는 모습을 지켜본 뒤,
돌아가 향료와 향유까지
준비(루카 23,49.55-56)합니다.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삶을 산 그녀만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부께로 올라가신다는
특별한 계시를 받습니다.
마리아는 주님 분부대로 제자들에게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말씀을 전합니다(요한 20,17-18).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도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한 마리아에게
‘사도들의 사도’(교황 베네딕토 16세, 2006)란
영적 지위를 부여합니다.
마리아가 무덤에 간 때는
주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입니다.
주간 첫날은 안식일 다음 날인
‘여덟째 날’입니다,
주님 부활로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여신
하느님을 찬송하며 부활 팔일 축제를 지냅니다.
‘주님이 마련하신 날’(화답송)인 주일은 은총의 날이기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의 생명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은 주일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마리아의 전갈을 받은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중
애제자(요한)가 먼저 무덤에 도착했으나,
뒤에 도착한 베드로가 먼저
무덤 안으로 들어가 조사를 합니다.
요한은 잘 포개놓은 수의를 보고 믿었습니다.
성탄 때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의
포대기와 빈 무덤에 개켜있는 수의에서
강생의 신비와 부활의 진리를 깨닫습니다.
제자들이 발견한 빈 무덤은
부활의 직접증거는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
다시 살아나야 한다.” 하신 성경 말씀
(수난과 부활 3회 예고;
요나의 표징; 사도행전 2,32)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요한 20,9).
그리스도 강생과 십자가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믿고
고백하는 우리는 성경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빈 무덤 사건은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하늘 위에 있는 걸 바라보는
자기발견의 영적 체험입니다.
“영은 생명을 주나 육은 쓸모없다.”
(요한 6,63) 하신 말씀을 되새깁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
그리스도(요한 1,14)이십니다.
십자가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듯이 말씀도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친교로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돕는 사랑의 삶이 영원한 생명의 문을 향한
여정임을 깨닫고 하늘 위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와 성사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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