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미사]
사도 1,14 참조
제자들은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네. 알렐루야.
전능하신 하느님, 파스카 축제를 마치는 저희에게 너그러이 은혜를 베푸시어,
저희가 그 신비를 삶으로 증언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사도행전의 마지막 단락은
바오로 사도가 황제의 판결을 받으러 로마에 도착했음을 전해 준다.
카이사리아에서 배를 타고 로마로 오는 도중에 폭풍을 만나 위험에 처했을 때,
천사가 바오로에게 나타나 그가 황제 앞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바오로도 로마에 무사히 도착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야 복음이 “땅끝까지”(사도 1,8)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1독서).
한편 요한 복음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른 제자에 대해 묻는다.
예수님의 대답은 단호하다. “너는 나를 따라라.” 그저 그뿐이다
(복음).
<바오로는 로마에서 지내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8,16-20.30-31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갔을 때,
바오로는 자기를 지키는 군사 한 사람과 따로 지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17 사흘 뒤에 바오로는 그곳 유다인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이 모이자 바오로가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백성이나 조상 전래의 관습을 거스르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도,
예루살렘에서 죄수가 되어 로마인들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18 로마인들은 나를 신문하고 나서
사형에 처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나를 풀어 주려고 하였습니다.
19 그러나 유다인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나는 내 민족을 고발할 뜻이 없는데도 하는 수 없이 황제에게 상소하였습니다.
20 그래서 여러분을 뵙고 이야기하려고 오시라고 청하였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희망 때문에 이렇게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30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31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11(10),4.5와 7(◎ 7ㄴ 참조)
◎ 주님, 올곧은 이는 당신 얼굴 뵈오리다. (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은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하늘에 있는 주님의 옥좌에서, 당신 눈으로 살피시고,
당신 눈동자로 사람들을 가려내신다. ◎
○ 주님은 의인도 악인도 가려내시고, 그분의 얼은 폭행을 즐기는 자를 미워하신다. 의로우신
주님은 의로운 일을 사랑하시니, 올곧은 이는 그분 얼굴 뵈오리라. ◎
요한 16,7.13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의 영을 보내리니,
그분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 알렐루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0-25
그때에 20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
21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23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 이 제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말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24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5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주님, 성령을 보내시어 저희 죄를 모두 용서하시고,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거룩한 신비를 합당히 거행하게 하소서.
우리 주.......
<승천의신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영광의 임금이신 주 예수께서는 죄와 죽음을 이기신 승리자로서,
(오늘) 천사들이 우러러보는 가운데,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으며,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
세상의 심판자, 만물의 주님이 되셨나이다.
저희 으뜸이며 선구자로 앞서 가심은,
비천한 인간의 신분을 떠나시려 함이 아니라,
당신 지체인 저희도 희망을 안고 뒤따르게 하심이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즐거워하며,
하늘의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 거룩하시도다! …….
요한 16,1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성령이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리라. 나에게서 받은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시리라.
알렐루야.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이 성사로 저희가 옛 계약에서 새 계약으로 건너갔으니,
저희의 기도를 자비로이 들으시어, 옛 악습을 버리고 거룩한 마음으로 새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주 …….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혹시라도 예수님께서 내가 아닌 다른 제자를 특별히 총애하신다고 해도
그것은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나는 이미 죽고 다른 제자는 살아 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그것을 바라신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주님을 따르는 데에 결코 장애가 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안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황제의 판결을 받으러 로마에 도착하여 집에 갇혀 있습니다.
하지만 갇혀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에게 반대를 받는다 해도,
또 총독이 그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자기가 계속 죄인 취급을 받는다 해도 그에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가 후대의 선교사들이 하듯이 그렇게 선교사 파견 예식을 하고 축복을 받으면서 떠났든,
죄인으로 호송되었든 그것은 그에게 상관이 없습니다.
더욱이 그것이 ‘방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끝납니다.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그의 앞날은 불확실합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그가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오로지 어떤 식으로든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의 중심인 로마까지 도달했다는 것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여기에서 멈추고 그다음에 전개되는 상황은 더 이상 쓰지 않습니다.
이러저러한 많은 일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가 주님을 따르는 데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데에 ‘방해’ 사유가 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심 없이 사도들과 같은 담대함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기를 청해 봅니다.
각 개인에게는 주님에게서 받은 고유한 소명이 있습니다.
바오로에게는 그리스도교의 개척자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한 위대한 선교사였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주님의 양 떼인
하느님의 백성을 부양하고 다스리는 목자의 모습이 돋보입니다.
요한에게서는 그리스도의 증인의 모습이 강조됩니다.
이처럼 베드로 사도가 주님의 양 떼를 양육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그의 소명이었다면,
요한 사도는 장수하면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을 증언하는 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소명과 능력은 서로 다릅니다.
또한 각 개인에게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고유한 길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서로 다르고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길과 나의 길을 비교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위험한 일입니다.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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