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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성 토마스(토마) 사도

Berardus 2022. 7. 2. 14:57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 CARAVAGGIO.
1601-02 Oil on canvas,107x146cm Sanssouci,Potsdam.
 
요한20,24-29
24 열 두 제자 중 하나로서
 쌍동이라고 불리던 토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었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토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도 같이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 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27 그리고 토마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28 토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29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7월 3일
성 토마스(토마) 사도,

Saint Thomas the Apostle
San Tommaso Apostolo
(Didymus; the Twin; Apostle of India; Doubting Thomas )
Born :unknown
Died :stabbed with a spear c.72 in India
Tommaso = gemello, dall'ebraico
(Palestina - India meridionale (?), primo secolo dell’èra cristiana )
 

성 토마스 사도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이
당신 자신을 열어 보이시는 주님의 인도에 따라
 마침내 고백하게 되는 믿음의 여정을 잘 보여 준다.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스는 자기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매우 비판적이고 태도가 분명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
그분께서 예루살렘에서 겪으시게 될 운명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우리도 함께 가서 그와 생사를 같이합시다."(요한 11,16)하고 말하기도 하고,
마지막 만찬 때에는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요한 14,4)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요한 14,5)
하고 머뭇거림 없이 묻기도 한다.
 
이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하고 응답하신다.
 
그러나 토마스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가 없을 때 사도들에게 나타나셨다는
 사도들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를 믿게 하려면 부활하신 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바로 그분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표징이 필요하다.
여드레가 지나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이 표징을 보쳐 주시자 토마스는 확신에 찬 믿음을 고백한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요한 20,28) 토마스의 이 신앙 고백은
 온 교회의 신앙 고백이 된다.
 
인도 서남단 지방인 말라바르(Malabar)의
그리스도인들은 토마스 사도를 그 지방에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를 세운 사람으로 알고 있다.
시리아 교회들도 말라바르인들의 전례를 받아들여이 날에 성 토마스 사도를 경축한다.
이 날은 토마스 사도의 유해 일부를 인도에서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시리아의 에데사(Edessa)로 옮긴 날이다.
우상숭배를 하는 교도들의 창에 맞아 순교하였으며,
6세기경부터 이날을 축일로 지냈다고 한다.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정말 하느님이 계실까 하고 한 번쯤 의심해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는 정말 한 번도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없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면
 그것부터 거짓말일지 모른다.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던 성 토마스도 우리와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의심을 마음속에 감출 수 있지만,
그가 주님을 의심했던 사실은 성서에 기록되어 수천 년 동안 전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토마스의 의심 덕분에 당대인들도 남의 말만 듣고 무턱대고 믿어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다.
나중에 다른 제자들에게서 예수님이 부활하여 나타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예수님의 상처 자국을 직접 만져 보기 전에는 절대로 믿을 수 없다며 부인하였다.
그 일이 있은 지 8일 후 놀랍게도 예수님이 토마스에게 나타나셨고
 당신의 상처를 직접 만져 보도록 허락하셨다.
우리는 토마스 사도처럼 예수님을 직접 만져 보는 특권을 누릴 수는 없지만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의심의 껍질을 벗어버릴 수 있다.
토마스는 예수님을 만져 보고 나서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복음서에 대한 강론에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열두 제자 중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자리에 빠져 있던 사도는 토마뿐이었습니다.
그는 돌아와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번 더 오시어 이 의심하는 제자에게 늑방과 손을 내보이시고
거기에 남아 있는 상처에 손을 대 보도록 하셨습니다.
그 상처의 흔적이 토마의 불신앙이라는 상처를 고쳐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 사건이 여러분에게 보여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뽑힌 제자가 그 자리에 없다가 돌아 온 후 그동안 생긴 일에대해 듣고 그것을 의심하며
또 의심하면서 늑방에다 손을 대보고 이렇게 대어 본 후 믿게 되었다는것이
모든 것이 우연히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지않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섭리로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놀랍게 역사했습니다.
 
그 의심하는 제자가 스승의 육신이 받은 상처에 손을 대었을 때
우리 하느님께서는 불신앙이라는 상처를 고쳐주셨습니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 토마의 불신앙은 믿는 제자들의 신앙보다 더 유리했습니다.
사도 토마가 주님의 상처에 손을 대보고 믿게 되었다는 것을 볼 때
우리 영혼은 온갖 의심에서 벗어나 신앙이 견고하게 됩니다.
 
의심하면서 주님의 상처에 손을 대는 이 사도는 부활의 참된 사실을 보여 주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토마가 손을 대어 보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라고 외치자,
예수께서는 "토마야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은 우리가 바라는것의 보증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확증입니다." 라고
 사도 바울로는 말했습니다.
신앙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확증해 준다는 것은 명약 관화한 일입니다. 보이는 것은
신앙으로 믿는 것이 아니고 지식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토마가 자기 눈으로 보고 손을 댈 때,
왜 주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하고 물어 보십니까?
그가 눈으로 본 것과 신앙으로 믿는 것은 서로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토마라는 사람은 자기 눈으로 하느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눈으로 한 사람을 보고 신앙으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라고 하면서 하느님을 고백하였습니다.
눈으로 보고 믿었습니다. 인간을 보고 자기가 보지 못한 하느님이심을 고백 했습니다.
 
다음에 따라오는 말씀은 크나큰 기쁨을 샘솟게 합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실 때
우리를 특별히 염두에 두셨던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지 않고도 영으로 믿는 사람은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에 행위가 뒤따르도록 해야만,
여기서 주님께서 우리를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신다고 할 수있습니다.
실상 믿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만이 참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사람에 대해 성 바울로는
"그들은 하느님을 안다고 말은 하지만
 행동으로는 하느님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도 야고보는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덧붙입니다.
 

Christ and Doubting Tomas-VERROCCHIO,Andrea del
1476-83 Bronze,height230cm Orsanmichele,Florence.
 
"너희들은 가서 만인을 가르치라."
사도들이 예수의 이 유언을 받들어 세계 도처에 나가 전교했는데,
그 중 우리 동양과 가장 인연이 깊은 분은 성 토마스 사도이다.
디디모(쌍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성 토마스는
 12사도 중의 한분이지만, 언제 그리고 어디서 사도로 뽑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는 으뜸 사도 성 성베드로와 같이 갈릴레아 출신으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고,
예수께서 전교를 시작하실 때에 그의 제자가 되어 사도의 반열에 들었으며,
항상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않고 봉사하는 영광을 얻었다.
 
토마스의 훌륭한 점은 그의 강직한 기상에 있다.
예컨대 주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려고 베다니아에 가시려 하실 때
다른 사도들은 모두 만류하기에 바빴다.
그 이유는 베다니아에 적 바리사이들이 이미 망을 쳐 놓았고, 주님의 일행이
 그 망 안에 걸려들기만 하면 여지 없이 잡혀 생명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마스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함께 가서 그와 생사를 같이 합시다"(요한 11, 16).
 
최후 만찬 때에도 주님께서 이별을 고하시자,
 다른 사도들은 비통에 잠겨 말 한 마디도 내지 못했는데,
토마스 만은 조금도 안색이 변함이 없이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 지
 그 길을 알고 있다."하신 주님의 말씀에
’주님, 저희는 주님이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하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주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하는 답을 주신 것은
 바로 그때였다(요한 14, 1-7).
 
그리고 토마스는 주님과 더불어 게세마니동산에 갔는데, 주님께서 잡히시자
다른 사도와 같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더구나 그는 혼자서 어디론지 피했으므로, 주님께서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셨을 때에도 그 현장에 없었으며, 그래서 주님을 뵈올 수가 없었다.
 
그것뿐이랴! 제자들이 주님을 보았노라 해도 쉽사리 믿으려 들지 않았다.
이것은 나쁜 의미로 해석하면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선의로는 무슨 일이든지 철저히 조사 규명하지 않고서는
마음을 놓지 못하는 철두철미한 성격이라고 하겠다.
그는 다른 사도들에게 말했다.
"나는 내 눈으로 그 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보고,
내 손을 그 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물론 그가 주님의 부활을 전적으로 믿지 않으려는 심사는 아니었다.
다만 믿기에는 증거가 조금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하튼 의심을 품었으므로 다른 사람들 같이
평화와 기쁨을 마음에 맛볼 수 없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토마스는 꼭 주님을 뵙고 싶은 생각에서 다른 사도들과 같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런지 8일만에 다시 주님께서 나타나셨고, 토마스를 향해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하고 말씀하셨다.
 
그때 토마스는 한 마디도 입밖에 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할 뿐이었다.
주님께서는 그를 은근히 나무라시며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하고 말씀하셨다(요한 20, 24-29).
 
그 후부터 그는 다른 사도와 떨어지지 않고 예수 승천하실 때며,
또 성령이 강림하실 때에도 항상 같이 있었다.
그리고 성령 강림 후 일동이 전교에 나서게 되자 토마스는 멀리 동양지방 쪽으로 향했으며,
처음에 파르시아 인에게 복음을 전했다.그가 그 후 어디까지 갔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 당시 이미 로마 제국은 인도와 무역통상이 있었으므로
아마 그는 인도로 가서 마드라스의 교외 밀라포르에서 전교했다는 전설은 그리 근거없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토마스는 그 열심한 전교때문에 우상숭배 교도들의 증오를 사게 되어 창에 맞아
다른 사도들처럼 훌륭한 순교를 했던 것이다.
그의 유해는 시리아의 에데사에 이송되어 지금도 그곳에 보존되고 있다.
그는 1972년에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인도의 사도로 선언되셨다.
 
 
가엾은 토마!
그는 20세기 동안을 ’의심 많은 토마’라는 오명으로 낙인이 찍힌 채 평가되어 왔다.
그는 주님을 의심하였지만 또한 믿었다.
그는 신약 성서 안에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는 가장 확실하고도
진실된 신앙 고백을 했으며, 그와 같은 신앙의 표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종말에 이르기까지 즐거이 바치게 될 하나의 기도가 되었다.
또한 그는 예수님시대에서부터 20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 이르기까지 이따금 찬사를 받게 하는 소인이기도 하다.
 

"토마야,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토마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도망간 것으로 보아
어쩌면 그가 예수님과 함께 죽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은 충동적인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를 불성실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그런 뜻을 밝힌 것은 라자로가 죽고 난 뒤, 예수께서 베다니아로 갈 것을 제의했을 때였다.
베다니아는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었으므로
 예수님의 제의는 바로 그들이 적 한가운데를 통과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 때 토마는 다른 사도들에게 "주님을 따르자,
 그리고 그와 함께 죽자."라고 말했다.
 

토마는 성급한 사람이고 여러 면에서 베드로와 비슷하며
’천둥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필립보와도 유사한 점이 많다.
그의 어리석은 질문은 모든 사도들의 연약함과 이해 부족을 대변해 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과장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치 없는 사람을
 선택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간적인 허약함은 "은총은 인간의 창의가 아니라 신의 선물이다." 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은총은 허약함을 지닌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허약한 인간을 용기있고, 신심 깊고,
 사랑스러운 하느님의 모상대로 변화시키는 것은 하느님 자신이다.
 

성덕에 나아가기 위해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것과 똑같은,
가난과 순명과 죽음에 이르는 자기 희생과 봉사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도들이 희망을 가지고 그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회는 그들 자신의 시련과 고통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통만으로 부족했던 것을 보충했다.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5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