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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복자 파치빗코

Berardus 2022. 6. 7. 19:23

6월 8일
복자 파치빗코

    Bl.Pacificus of Cerano
    Beato Pacifico da Cerano

    Cerano, Novara, 1426 - Sassari, 1482
    Pacifico = mansueto, mite, significato evidente
    = mansueto, mild, meant obvious 

    빠치피꼬 라모따는 피에몬트의 노바라 출신으로서, 그가 어렸을 때에 부모가 선종하였다.
    따라서 그는 노바라의 베네딕또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후, 21세 되던 해에 프란치스칸이 되었다.
    그후 사제가 된 그는 주로 이태리 내에서 설교자로서 활동했는데, 이것이 성공함으로써 선교사로서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또 그는 윤리신학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고, 1475년에는 이를 발간하였다.
    1480년, 그는 체라노의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이것은 곧 죽음을 의미할 정도로 크리스챤에 대한 적대심이 강한 지역의 선교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르디니아로 갔을 때 중병을 얻어서 운명하고 말았다.
    그의 유해는 자신의 유언에 따라 체라노에 안장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세베리노 지역 출신의 파치빗코 성인은
    어린시절부터 삼촌 신부님께서 돌봐주셨다.
    17세때 포라노 수도원에 입회했고 사제가 된후 교육사업에 헌신했다.

    그는 특히 유명한 강론가로 알려졌지만
    불행히도 35세때 중풍으로 전신마비, 청각장애등 육체적인 고통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성인은 초자연적인 은총의 힘으로 마지막까지 훌륭한 생애를 살았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 윤리신학 ◆ 
    한자  倫理神學 
    라틴어  theologia moralis 
    영어  moral theology
     
     
    윤리신학은 윤리적 문제들을 신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가톨릭 교회와 서구 및 라틴 계통에서는 윤리신학(moral theology)이라고 부르고,
    북구와 영미 계통에서는 그리스도교 윤리학(Christian ethics)이라고 부른다.
    윤리문제를 신학적으로 연구한다는 말은 연구의 기본이나 과정을
    계시진리(啓示眞理)의 의거해서 알아본다는 의미다.
    즉 인간의 윤리성은 인간의 자율(自律)도 타율(他律)도 아닌 하느님과의 응답적 관계에서 보는 것이다.
    즉 인간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부르심과 응답, 소명과 책임이란 관점에서 보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윤리신학의 대상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행위만이 아니고,
    하느님은 인간에게 무슨 사명을 주셨으며,
    바로 살기 위하여 어떤 가치질서와 의미를 주셨는지 알아보고, 계시된 이 진리들이 시대와 문화여건에서
    어떻게 표현되었으며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는 어떻게 살아 왔으며 가르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는 것이다.

    윤리신학은 하느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서와 성서를 충실히 보관하고 전담하며 해석해주는
    교회의 가르침을 기초로 해야 하는 것도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윤리신학은 성서학과 교의신학(敎義神學), 교회법과 수덕학(修德學) 및 윤리학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또 공동으로 연구되어야 함을 알고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St. Francis - ZURBARÁN,Francisco de
    c. 1660 Oil on canvas, 65 x 53 cm Alte Pinakothek, Munich
     
    작음과 형제애의 영성
     
    프란치스꼬회의 공식명칭은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이다.
    이 명칭은 바로 프란치스칸 영성을 요약해 주고 있다.
    작음(minoritas)과 형제애(fraternitas)를 바탕으로해서 복음적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이 작음의 정신은 그 안에 가난과 겸손이라는 덕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작은형제들은 가난하시고 겸손하신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의 삶을 본질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가난한 자가 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하나가 되며
    그들로부터 복음화되고 복음화시키는 것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인식한다.
    또한 가난한 자들처럼 일과 노동을 통해 땀흘려 일하고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며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처럼 하느님께 신뢰하며 복음적 불안정의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일과 노동은 생계유지의 제일차적인 수단이며 나머지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존하며
    그분이 보내주시는 은인들의 애긍을 통해서 살아가게 된다.
     
    형제애의 정신은 사랑과 순종을 전제로 한다.
    프란치스꼬는 수도회 개념보다는 형제회 개념을 더 중시하였다.
    우리 모두는 맏형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들이라는 것이다.
    이 형제애는
    "어머니가 자식을 기르고 돌보는 이상으로 형제들 상호간에 기르고 돌보는 정신"이다.
    이러한 형제애는 가난 안에서도 기쁨이 넘치는 공동체를 가능케 한다.
    형제 상호간의 사랑과 애정어린 순종은 기쁨의 영성을 프란치스칸 영성의 특징적인 요소로 부각시켜 준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체험되는 형제애는 신분계급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로 확장된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크리스챤이든 이교도이든 원수이든 강도이든 성한 사람이든 병자들이든
    모든 이가 한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로서 받아들이도록 해 준다.
    더 나아가 프란치스꼬가 그랬듯이 이 형제애는 자연과 우주 만물에 대한 사랑으로 더욱더 확장된다.
    바로 우주적인 형제애, 만인의 형제가 되는 것이 프란치스칸 형제애의 본질이다.
    - '간추린 프란치스칸 영성'- 작은형제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