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생년월일은 명백하지 않으나 4세기초로 생각되며, 출생지는
시리아 동부에 있는 니시비스 시였다.
그의 참회록을 보면,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훌륭한 그리스도교적인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간한 장난꾸러기였던 모양이다.
가난한 백성의 소중한 소를 몽둥이로 때려 산중으로 쫓아버린 후
맹수에게 잡혀 먹었는지 소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는 여행을 떠나 어느 죄인과 함께 체포되어
죄도 없으면서 감옥에 투옥되기도 하고 고문을 받기도 하는 등
갖은 환난을 당했다.
이에는 아무리 거칠었던 그도 대단히 공포심을 가졌던 모양이다.
그가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이 환난은 전에 지은 악행에 대한 보속이다.
그러나 곧 무죄로 석방되리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
그는 다음날의 재판에서 같이 체포된 다른 남자가 제 자신의 범죄를 자백해 에프렘은
사건과 하등 관계없음을 증명했으므로 그는 즉시 석방되었다.
이제까지 하느님의 섭리에 여러 가지 의심을 품었던
에프렘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깊이 느껴지는 바가 있어
세속을 떠나 광야로 가서 은수 생활을 시작하고
기도와 성서 연구 등에 몰두하며 세월을 보냈다.
이것은 마침 소아시아의 니케아에서
그리스도교의 제1차 공의회가 소집되었을 때의 일이다.
경건한 에프렘은 니시비스의 주교 성 야고보의 눈에 띄어 회의에 동행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신앙의 대가라고 할 만한 세계 각지의 주교들의 풍채를 접하고
얻은 점이 적지 않았다.
그 뒤 그는 또한 니시비스도 돌아와서 야고보 주교로부터
그곳 교회의 보속된 어느 학교의 교직을 받게 되었는데,
곧 페르시아 왕 사볼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그 마을을 점령했으므로
그도 에데싸라는 곳으로 피난했다.
당시 에데싸에는 이단편과 가톨릭편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었는데, 에프렘은 이단편에서 아주 쉬운 노래를 작성해
이를 사람들에게 부르게 함으로써 이단의 확장에 노력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시재(詩才)를 발휘해 이에 대항하고자 구세주에 대한,
성모께 대한, 또한 축일에 대한 아름다운 시를 지어서 소녀 성가합창단에게 성전이나
다른 곳에서도 이를 노래 부르게 하여 호교를 위해 공헌했다.
이 일은 삽시간에 부근에 소문이 나서 길을 걸으면서도
그 노래를 부를 정도였으니 얼마나 진리의 보습에 공헌했는지 가히 알 것이다.
또한 그는 언변도 좋아서 그의 강론 시에는 많은 청중이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으므로 종종 강론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된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입으로 선을 권해도 행동이 이에 따르지 않으면
도저히 남을 교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 에프렘은 결코 자선 행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특히 373년 에데까 시내에 무서운 페스트가 발생해 맹위를 떨쳤는데,
이에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들어 백성들은 병으로 신음하고
혹은 허기로 우는 자가 사방에 꽉 차 있었으므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간호하고,
수치를 참아가며 부호의 가정을 방문하여 난민구제를 위해 힘썻던 것이다.
그리고 전염병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는 부근의 산속에 들어가 성서를 주해,
기록하며 경건히 그 날 그 날을 보내며 고요히 선종 준비를 했다.
그의 선종의 해는 출생한 연월일과 마찬가지로 확실치 않다.
다만 모든 점에서 추측컨대 379년이었으리아 생각되며,
다만 그의 선종일은 6월 9일이라 명백히 알려져 있다.
그의 장례식에는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도 추도의 강론을 행하고
고인의 유덕을 칭찬해 “그는 성인과 같았다”고 말하며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그의 전구를 구했다.
교회는 그에게 교부(敎父)라는 존칭으로 부르도록 했다.
또한 그가 남긴 수많은 시가(詩歌)는 지금도 사제의 성무 일도서에 포함되어
가톨릭 전례의 일부로 사용되며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신심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음악이 없는 전례란 상상하기 어렵다.
음악은 웅장한 대성당의 성탄 전야 미사에서 소성당의 조촐한 새벽 미사에 이르기까지
장소에 관계없이 전례를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또한 아름다운 성가는 우리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고 영혼을 정화시킨다.
4세기경 시리아에서 살았던 성 에프렘은 당시 이단자들이 수금에 맞춰 부르던 노래 가사를
가톨릭 교리에 맞게 고쳤으며 공식적인 전례에 사용할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성령의 하프’라고 불렀다.
여러 세기 동안 많은 음악들이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작곡되었다.
성가는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고 기도 생활을 향상시킨다.
만약 당신이 헨델의 메시아나 모차르트의 레퀴엠처럼
종교적인 바탕 위에서 작곡된 곡들을 좋아한다면 그 곡들로 영혼의 빈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가 말한 것처럼 “천국은 음악이다.”
어떤 종류의 음악을 즐겨 듣는가?
통속적인 음악보다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음악을 자주 듣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6월 9일
복녀 안나 마리아 타이지
Bl. Anne Mary
Bl. Anne Marie Taigi
Blessed Anna Maria Taigi, Matron (AC)
Beata Anna Maria Taigi Mad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