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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성녀 프란카 비살타 / 복녀 알다(알도브란데스까)

Berardus 2022. 4. 25. 18:13


 


[이콘]주무시지 않는 눈. 팔레히(Palech)화파. 제작년도 1797. 32x27.5cm

 

이 성화(Icon)의 주제 (主題)를

 금색의 글씨로 그림의 윗 가장자리에 다음과 같이 써넣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이다."

이 문장은 시편 121편에서 인용한 것으로

어린 그리스도를 어린 사자에 비유한 기독교 생리학자들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잠자리에 누운 그리스도의 왼쪽에 성모를,

오른쪽에 대천사 미카엘을 묘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의 양편 윗 모서리에는 해와 달이 보인다.

그림의 가장자리 네모서리를 축소화적인 금장식으로 정교하게 꾸몄으며,

아랫 가장자리 중앙에 있는 성화의 제작년도를 기입한 빨간색의 글씨판의 가장자리를

바로크 액자처럼 금 장식으로 꾸몄다.

 

매우 희귀하고 장식적인 묘사법을 사용한 회화적 수준이 극치에 달한 작품이다.

-유럽 聖畵(ICON)集에서-


 



4월 26일

성녀 프란카 비살타


St. Franca Visalta, OSB Cist. Abbess (AC)

Santa Franca di Piacenza

Born:1170 at Piacenza, Italy

Died :1218

Canonized:by Pope Gregory X (cultus confirm‎‍‍!!ed)

Franca = libera, dall’antico tedesco = free, dall’antico German

 

 

프란까 비잘따가 피아첸짜의

성 시로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에는 불과 7세였고, 14세 때 서약하였다.

어린 프란까이지만 다른 모든 자매들에게

올바르게 순종하는 법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신심과 극기에서도 뛰어났다.

그 후 원장으로 피선된 그녀에게 한 동안은 모든 일이 잘 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 더 많은 세월을 중상과 모략으로 고생하였고 또 심적인 번민으로 괴로움을 당하였다.

그녀는 시토회의 규칙을 따르는 엄격한 가난을 지켰고,

밤마다 성당에 가서 기도하며 지내는 시간이 자는 시간보다 더 많았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녀는 이미 7세때

 하느님께 스스로 자신을 봉헌했고 어린나이에 베네딕도 수도원에 입회했다.

성 시로(S. Siro)의 베네딕도 수녀원의 원장이었다.

성녀는 수도회의 개혁과 조국의 안녕을 위해 헌신하셨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베네딕도 성인의 십자가

 

아빠스. 

라틴어 abbas.영어 abbot.

여성형은 `아빠티사’ 라틴어 abbatissa, 영어 abbess

대수도원장. 의전 사제 수도회와 대수도원의 장에 대한 호칭이자 직함.

동방 수도원에서 수도자들이 자신들의 지도자이자

 영성적 스승을 `아빠’(abba)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하였다.

이 말은 특히 성 베네딕토의 수도 회칙에 의해 서방 수도원에 소개되었다.

이를 분류해 보면, 그 수도원 내에서만 완전한 재치권을 향유하는

 일반 아빠스(abbas regularis de regimine),

수도원이 속해 잇는 특정 지역 전체의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에까지

실제적 자치권을 갖는 면속 아빠스,

한수 족의 장을 가리키는 총아빠스, 근대에서 베네직토 연합회의 장을 가리키는

 수석 아빠스 등이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아빠스"란 무슨 뜻인가?

『베네딕도 규칙서』를 따르는 수도회들 즉 베네딕도회, 시토회, 트라피스트회 등과

아우구스띠노 엄률수도회 들 일부 특정 수도회에 속한

 자치 수도원의 원장을 일컫는 명칭이다.

 

아바스는 「아버지」「원로」「장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집트나 시리아 등 동방지역에서는 「영적 아버지」「영적스승」「사부」의 의미로

은둔 또는 독거 수도자들의 스승을 일컫는 데 사용되었다.  

 

아빠스는 수도원의 최고 장상으로서 교회의 상급 장상(superior major)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빠스는 수도원과 관련된 일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며,

재산 관리권, 입회자 청원자 수련자들을 받아들이는 권한도 가진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아빠스는

『한번 아빠스가 되면 영원한 아빠스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종신직이다.

즉 수도원장직에서 퇴임해도 아빠스의 명칭은 그대로 보유하는 것이다.

새로 선출된 아빠스는 일반적으로 주일이나 축일에 지역주교에 의해 축복된다.

주교직과는 달리 아빠스직은 서품도 아니고, 성사도 아니며,

 아빠스들 사이의 「성사적 연대성」도 없다.

 

*성 베네딕도 아빠스(서방 수도생활의 스승) 축일:7월11일.인창동성당게시판1267번.

*에집트의 성 안또니오 아빠스(공동체 수도 생활의 스승 혹은 시조,

사막의 교부)축일:1월17일.게시판1572번.

*성 골룸바노 아빠스(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주보성인.프랑스의 뤽세이우 및

 이탈리아의 보비오 대수도원장)

 축일:11월23일.게시판1486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시토회 세 창립자
*성 로베르토 축일:4월29일.
*성 스테파노 하르딩 축일:4월17일.
*성 알베릭 축일:1월26일.


시토회
라틴어  Ordo Cisterciensis  영어  Cistercians(O. Cist.)    
  1908년 프랑스 부르군드지방 시토(Citeaux)에서

성 로베르토(St. Robertus de Molesme, ?~1111)가 설립한 수도원에서 시작된 수도회.

회의 이름은 모원의 지명에서 비롯되었다.

성 베르나르도(St. Bernardus de Clairvaux)의 기여로 크게 발전하였으며,

곧 서부유럽으로 확산되어 13세기 중엽에는 680여 개의

 소속대수도원들이 있었다.  


  은수적(隱修的)인 수도회의 생활양식으로 교회, 제구(祭具), 제의(祭衣) 등

이 매우 소박하며 성 베네딕토의 회칙을 기초로 한 규범을 준수하여 단식,

침묵, 단순노동 등이 매우 엄격하게 준수되었다.

1119년 교황 갈리스도(Callistus) 2세에 의해 인가된

 ‘사랑의 헌장’(Charta Caritatis)이 회헌이 되었으며 이런 시토의 규정들은

 다른 중세수도원들, 특히 의전수도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17세기에 시토회에 각 국가단위의 구심점들이 형성되자 시토에 있는 수도원은

 국외 시토회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엄격한 회칙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운동이 시작되어

 이것은 라 트라프(La Trappe)의 수사들에 의해 실현되었다.
  1902년 레오(Leo) 13세 때 트라피스트회는 시토회에서

 ‘엄률 시토회’로 분리하여 독립하였고,

이전의 시토회는 ‘성 시토회’로 존속하였다.

1898년 시토 대수도원이 복구되었을 때 엄률을 채택하였으며

 로마에 거주하는 시토의 아빠스는 엄률시토회의 총장이 되었다.

 현재 11개 수족에 1,318명의 회원이 있다(1983년 교황청연감).


트라피스트회 
라틴어  Ordo Cisterceinsium Reformatorum  영어  Trappists  


   1098년 프랑스의 시토(Citeaux)에 세워진 수도회,

즉 시토회 중 ‘엄률(嚴律) 시토회’의 주요 수도회.

 1892년 시토수도원이 모원(母院)으로 회복될 때까지

 라 트라프(La Trappe)가 엄률 시토회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1664년 랑세(A.J. Le B. de Rance)에 의해 개혁의 물결이 일게 되었으며

이 때 ‘트라피스트’란 이름이 생겨났다.
  이는 이전의 시토회의 성격을 보유하면서 더욱 엄격성을 추가한 회였다.

 트라피스트의 생활은 ‘기도와 참회, 침묵과 노동’으로 요약된다.

현재 85개 수도원에 3,100명의 회원이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수도생활(修道生活, 라:vita religiosus,영:religious life)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교인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수도생활은 바로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이다.

수도생활이란 그리스도를 보다 철저하게 따르기 위하여 자기를 포기하는 삶이다.

이 자기포기는 보통 가난, 정결, 순명의 세가지 서원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수도자(religiosus)라 하며,

남자는 수사(修士), 여자는 수녀(修女)라고 한다.

 

다양한 수도회들

역사 : 교회 초창기부터 재산을 포기하고 독신을 지키며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

개인의 욕망을 포기한 동정녀들과 금욕자들이 있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수도 생활이 시작된 것은 4세기 이후부터이다.

수도생활 운동은 교회의 세속화에 대한 하나의 반동으로 일어났는데

당시 열심한 신자들은 도시를 떠나 사막과 광야로 들어가 특수한 삶의 양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 중 에집트의 성 안또니오(Antonius)가 대표적 인물로서

그는 은수생활의 창시자이자 모든 수도자들의 아버지라 불리운다.

초기 동방 수도생활은 외딴 곳에 홀로 사는 은수생활과 함께 모여 사는 공생수도생활,

그리고 서로 가까이 모여 사는 반은수생활 등 세가지 형 태가 공존하였다.

이 동방 수도생활은 서방에 영향을 미쳐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이 생겨났고,

이 규칙서는 이후 서방 수도생활을 지배하게 되었다.

 

수도승생활(修道僧生活, 영: Monastic life , Monasticism)

수도생활 초기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적인 수도생활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를 더욱 철저히 추종하고 오로지 하느님을 찾기 위하여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사막이나 광야로 들어간 은수자들이나 독수자들의 삶의 전통을 잇는 수도생활을 말한다.

 

수도승생활을 하는 수도자를 우리말로 수도승(修道僧)이라 하는데

수도승(Monachus, Monk)이란 말은 원래 불교 용어이지만

일반적으로 쓰이는 수도자(Religious)라는 개념에 포함되면서도

승려적 생활전통을 따르는 수도회들에 속한 수도자를 따로 지칭할 때

그리스도교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은 그리스어 ’monos’(홀로)에서 유래했는데 원래 ’결혼하지 않은 자’

또는 ’독신자’란 의미에서 ’홀로 사는 사람을’나타내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광야에서 살던 ’은수자’(Hermit, Eremita)나

 ’독수자’(Anchorite, Anachorita)를 가리켰는데

점차 그 의미와 내용이 발전하면서 후에는 ’회수도승’(會修道僧. Cenobite, Cenobita)까지

포괄하는 단어가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수도승’이라 할 때 일반적으로 까말돌리회, 실베스트로회, 발롬브로사회,

올리베따노회 등 베네딕도회 연합에 속한 수도회들,

시토회, 트라피스트회, 카르투시오회에 속한 수도자들을 일컫는다.

 

베네딕도회

성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남녀 수도회들(congregations)의 연합체(confederation)를 말한다.

그 종류로는 솔렘 연합회, 수비아꼬 연합회, 몬떼까시노 연합회,

오딜리아 연합회, 올리베따노 연합회,

까말돌리 연합회, 실베스트로 연합회, 발룸브로사 연합회 등이 있다

시토회와 엄률시토회(트라피스트)는 베네딕도 수도규칙을 따르지만

 베네딕도회에는 속하지 않는다.

 

성 베네딕도(480-560년경)는 이탈리아의 누르시아에서 탄생하였다.

그는 진실로 하느님을 찾고자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비아꼬 동굴에서 3년 동안 은수생활을 한 후,

몬떼까시노에 수도원을 세우고, 거기서 수도규칙서(Regula Benedicti : RB)를 저술하였다.

이 규칙서는 이후 서방 수도승생활의 초석이 되었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회홈에서)-

 


 

  

 

[이콘]그리스도 임마누엘. 모스크바.17세기. 31.5x27cm. 1781년에 세공된 은판장식

 

그리스도 임마누엘의 모습은

표상의 성모상과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에 있는 부속화(附屬畵)로서

볼이 통통하고 부드러울 뿐만아니라 황홀한 얼굴과 대부분

금발의 아기 예수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 소개된 그림은 머리와 어깨부분에 한정되어 있다.

등근 두상(頭像)은 세심하게 손질된 머리털로 덮여 있으며,

이마가 과장되게 높고, 진한 눈썹이 멀리 뜬 눈을 덮고 있으며 눈자위가 강조되어 있다.

 

감시원은 스테판 벨킨(Stephen Belkin)이며

18세기 중엽에 살았던 제작자의 성명을 약한 A.0.P 가 찍혀 있는 이 성화는

현재 모스크바의 국립역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유럽 聖畵(ICON)集에서-

 

 

 

[이콘]표상의 성모. 러시아 야로슬라브(Jaroslavl)화파. 18세기. 60x51.5cm

 

콘스탄티노플의 블라헤르린지역에는

귀중한 유물인 성모의 머리수건이 보존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성화(Icon)와 후에 파괴된, 기도하는 성모를 묘사한,

은혜를 베푸는 종교화는 성모성화의 전형 (典型)으로서 그 시원적 (始原的)인 주제였으며,

수즈달 시민들에 의해 점령당한 노프고로드시를 구출(1170년)한 이후로는

러시아에서 표준 성화로서 특히 경배되었다.

이 점령 광경 자체가 호평받는 성화의 주제로 다루어졌는데,

"성벽의 성모"라고도 불리우며, 이것은 바로 그곳에 이 성화를 세웠던 사실에 연유한다.

표상의 성모는 노프고로드시의 수호신으로 되었다.

 

성모는 기도드리는 자세로 팔을 올리고 있는데,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녀의 가슴에는 광륜(光輪)속에 그리스도 임마누엘이

한 손에 성서 두루마리를 들고 다른 손은 축복을 내리며 올리고 있다.

 

관람자 측에서 볼 때에 그림의 왼쪽 가장자리에는

 성 게오르기오스와 로마의 마카리오스(Makarius),

오른쪽에는 페르시아의 성 야고보와 기독교의 바보를 자처한

오누프리오스가 묘사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성모상은 성서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 전래되었다.:

"하느님 자신의 표상으로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되며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다."

 

성모의 머리수건과 의복의 단은

금실로 짜였으며 아름답고 색깔이 장식적인 이 성화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상반신만 묘사되는 것을 ’즈나메니에’라고 하고,전신이 묘사되는 것을 ’빠나기아’라고 한다.

-유럽 聖畵(ICON)集에서-

 

*성 게오르기오스(제오르지오) 축일:4월23일,게시판1725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4월 26일

복녀 알다(알도브란데스까)


Bl. ALDA(Aldobrandesca)

Beata Alda (Aldobrandesca) da Siena Vedova

Siena, 28 febbraio 1245 - Siena, 26 aprile 1309

Alda = estremamente bella, dal celtico =mextremely beautiful, from the celtico

 

성녀 알다는 훌륭한 가문의 부인이었으나,

자식없는 과부가 되자, 시에나 외곽에 있는 조그마한 집으로 은신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잔에

 자신의 고행을 담으려는 뜻으로 수많은 고행과 자선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우리 주님께서 지상에 사시던 모습을 환시로 보았다.

 

이에 자극을 받은 그녀는 이 세상을 완전히 등지기로 결심하였지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감출줄 몰랐기에 병원에서 지내며 그들을 도왔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