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그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9,29-31.33; 50,15-26ㄱ
그 무렵 29 야곱이 아들들에게 분부하였다.
“나는 이제 선조들 곁으로 간다.
나를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의 밭에 있는 동굴에 조상들과 함께 묻어 다오.
30 그 동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맞은쪽 막펠라 밭에 있는 것으로,
아브라함께서 그 밭을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에게서 묘지로 사 두셨다.
31 그곳에 아브라함과 그분의 아내 사라께서 묻히셨고,
그곳에 이사악과 그분의 아내 레베카께서 묻히셨다. 나도 레아를 그곳에 묻었다.”
33 야곱은 자기 아들들에게 분부하고 나서,
다리를 다시 침상 위로 올린 뒤, 숨을 거두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
50,15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
“요셉이 우리에게 적개심을 품고,
우리가 그에게 저지른 모든 악을 되갚을지도 모르지.” 하면서,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게 하였다.
“아우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분부하셨네.
17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네게 악을 저질렀지만,
제발 형들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니 아우님은 그대 아버지의 하느님의 이 종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게.”
요셉은 그들이 자기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듣고 울었다.
18 이어 요셉의 형제들도 직접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아우님의 종들일세.”
19 그러자 요셉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20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1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부양하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이야기하였다.
22 이렇게 해서 요셉과 그 아버지의 집안이 이집트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요셉은 백십 년을 살았다.
23 그러면서 요셉은 에프라임에게서 삼 대를 보았다.
므나쎄의 아들 마키르의 아들들도 태어나 요셉 무릎에 안겼다.
24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25 요셉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하면서 일렀다.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
그러고 나서 26 요셉은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단락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독서 마지막 부분에서 생략된
창세 50,26의 말씀을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요셉이 백열 살에 죽자,
사람들이 그의 몸을 방부 처리하고 관에 넣어 이집트에 모셨다.”
이렇게 하여 히브리말 원문에서
창세기의 마지막 단어는 “이집트에”가 됩니다.
아브라함에서 요셉에까지 이르는
성조들의 역사가 “이집트에”라는 말로 끝나는데,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모세가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하고
그 땅을 바라보며 느보 산에서 눈을 감는 것과 비슷하게
오늘 오경의 마지막 부분도 그렇게 끝을 맺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은 이렇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창세기는 그 약속이 분명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합니다.
자신의 시신을 막펠라 동굴로 가져가라는 야곱과
그의 아들 요셉의 유언은,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의심 없는 믿음과 전폭적인 신뢰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리라는 표지가 바로 막펠라 동굴입니다.
아브라함이 히타이트 사람들에게서 샀던 이 한 조각 땅은,
성조들의 무덤으로 사용된 작은 땅에 불과하지만
그가 가나안에서 소유한 최초의 땅으로서
하느님의 약속을 보증하는 희망의 근거가 됩니다.
이미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 있다면 믿음의 여지는 없었겠지요.
하늘 나라가 완성될 때에도 믿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약속에 대한 희망을 말합니다
. 그것이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살았던 성조들의 신앙이었고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믿음일 것입니다.
약속의 땅과 하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시련을 예고하십니다.
국가 권력을 쥔 통치자들은 물론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의 박해가 뒤따를 것이지만,
“이때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련과 박해를 겪어야 하는
고통스럽고 당혹한 상황에 직면하여 당황하게 될 때,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말씀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