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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주님이 그립습니다

Berardus 2021. 11. 23. 06:05

[말씀묵상]

주님이 그립습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제1독서(다니 7,13-14)

제2독서(묵시 1,5ㄱㄷ-8)

복음(요한 18,33ㄴ-37)

 

허세 부리는 빌라도에게 자신의 진리와 자비 보여주신 예수님
신앙인의 사명은 죄와 죽음이라는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
주님을 그대로 반영하는 사랑의 그림자 되어 그분 닮은 삶 살길

 

위령 성월을 맞으면 어릴 적,

왠지 엄숙하고 갈앉았던 성당의 분위기를 추억하게 됩니다.

가령 맨 앞줄에 전용석을 가지셨던 할머니들의 뒷모습에서 엿보이던 간절함이랄지,

위령 성월에 세상을 떠나면 하늘 문이 활짝 열려서 곧바로 천국에 들어간다던

큰 수녀님의 속삭임도 곁인 듯 가까워지곤 합니다.

물론 신학적 근거는 없지만 저는 온 교회가 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바치는 호소를 하느님께서 외면하실 리가 없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더욱 위령 성월의 기도에 마음을 모읍니다. 그리고 삶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려 노력했던 분들을 기억하며 기립니다.

오늘 빌라도는 주님을 향해서

“나는 유다인이 아니잖소?”라며 무시하며 비웃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하찮은 세상 권세로 허세를 떠는 빌라도에게

당신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십니다.

밉살맞은 빌라도에게도 진리를 감추지 못하는 주님 모습에서

새삼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신 사랑에서 배제하지 않는 주님의 자비심을 봅니다.

죄인을 온통 껴안아 품으시는 그분의 진실함을 만납니다.

이렇게 거짓말을 모르는 분의 순수를 그리다가

문득 2019년에 세상을 떠나신 삼촌 신부님이 떠올랐습니다.

늘 천진한 표정으로 지내시던 삼촌 신부님의 삶은 지극히 소박했음에도

세상을 떠나신 후에 전해 듣는 이야기가 감동이기에 그렇습니다.

여태, 함께했던 본당 가족들로부터 신부님의 삶을 따라 살고 있다는 고백을 듣게 되니,

해맑은 아이처럼 낮은 삶을 사셨던 삼촌 신부님의 진정한 승리라 생각됩니다.

얼마 전에도 삼촌 신부님의 옛 본당 신자분의 얘기를 들었는데요.

택시를 타면 항상 기사님께 팁을 주시는 삼촌 신부님께 이유를 여쭈었더니

“예수님과 늘 함께 있으니까 예수님 몫을 챙겨드리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시더랍니다.

이후 그 자매님도 줄곧 팁을 주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매사에, 예수님과의 동행을 기억하는 참 좋은 방법을 배운 무딘 조카는

세상을 떠난 후에 남은 이들에게 간직된 그리움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선물해주신 주님의 향기라 싶었습니다.

지난여름, 세상을 떠나신 본당 자매님은

교회 일에 충실하셨고 레지오 활동에도 매우 열심이셨습니다.

레지오 장을 치르는 게 소원이라서 더 열심을 내는 것이라고 늘상 말씀하셨는데요.

삶의 막바지,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시 퇴원을 해서

병자성사를 받으실 만큼 열정적인 믿음인이셨지요.

그런데 자녀 중에 신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레지오 장을 청하지 않아서 자매님의 평생 바람을 이루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그분을 위한 연미사가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습니다.

이야말로 믿음인의 ‘불상사’라 싶었습니다.

두초 디 부오닌세냐 ‘빌라도 앞에 선 그리스도’ (1308~1311년).

신자들에게 “이제부터 하루에 1000원씩 5년 정도 모으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장례미사와 백일미사를 준비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천국 길을 예비하자고 당부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긍정해주셨는데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이후에 본당 미사에서 그 자매님을 위한 연미사가 계속 봉헌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이 소속되었던 레지오 단원들이, 자매님을 기억하는 많은 교우분이

그 자매님을 위한 연미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모아주고 계신 것입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하루하루가 감격입니다.

쉼 없이 봉헌되는 자매님의 연미사에서 제 영혼은 대책 없이 화사해지곤 합니다.

이 복되고 복된 일을 소문내는 심정, 이해되시지요?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알면서 지은 죄, 몰라서 지은 죄,

무의식적으로 행한 죄까지도 속속 드러날 ‘그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에서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일은 죄와 죽음의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죄와 죽음에 관한 논의를 꺼립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죄와 죽음의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사안을 외면하도록 영혼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긴박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죄의 감옥에서 신음하는 세상에 그분의 생명과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선물해 줄 의무가 생겼습니다.

성경은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히브 10,1)라고 증언합니다.

이렇게 그림자는 참모습이 존재할 때 생기는 것이고

그림자는 실제로 ‘있는’ 것만을 반영한다는 점을 부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주님을 그대로

반영하는 사랑의 그림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 헤아립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그림자가 되어 그분 닮은 삶을 살아냄으로

이 세상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어집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나 항상

사랑과 연민으로 우리 곁에 계신 그리스도 왕을 찬미해 드리는 오늘,

그분이 그립습니다. 그리운 마음에 그분의 사랑이 차오릅니다.

벅차오른 마음을 시편 마지막 구절에 실어 봅니다. “숨 쉬는 것

모두 주님을 찬양하여라.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