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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

Berardus 2021. 11. 8. 18:21

 


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Dedication of Saint John Lateran

Basilica San Giovanni in Laterano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라테라노에 대성전을 세워 봉헌한 것을기념하는 날이다.

전승에 따르면 12세기부터, 바로 오늘(11월 9일) 이 기념 행사를 해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로마에서만 이 축일을 지냈는데,

나중에 로마 전례를 거행하는 모든 교회가

"전 세계와 로마의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머리"인 이 대성전의 봉헌을 기념하여,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가 기록한대로,

"사랑의 전 공동체를 이끄는" 베드로좌에 대한 존경과

 일치의 표지로서 이날을 기념하게 되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축일:10월17일.게시판1424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성전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 안에 살기를 바라십니다.

성령 안에서 열심히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모인 공동체가

 바로 하느님의 참된 성전입니다.

 

Basilica San Giovanni in Laterano

 

현재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서기까지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성당으로

모든 성당들의 어머니였던 이곳은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요

로마의 주교좌 성당(Catedrale)이기도 하다.

 

성당은 그리스도교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313년)에 의해 공인되자

교황 멜키아데가 교회를 일으키고

또한 교황들의 관저로 사용하기 위해 짓기 시작한 것인데 이를 위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근처의 병영과

 풀라우지 라테라노(평민 가문으로서 집정관을 지냈으며

이 일대의 소유지를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기증함)의

 소유지인 이곳을 기증했다.


<라테란 성당>이라는 명칭이 이에서 비롯되었음은 물론이다.

처음 성당은 구세주인 그리스도에게 헌정되었으나 여러번 손상을 입어 오다가

896년에는 드디어 지진으로 붕괴되는 불운을 겪는다.

결국 905년에 다시 개축을 본 성당은

 이후로 세례자 요한과 사도 요한의 두 성자에게 바쳐지는데

특기할 것은 이곳에서 1300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 Boniface VIII, 1235-1303. 재위 1294-1303)에 의해

사상 처음으로 성년의 선포를 보게 된 것이다.

 

1307년 교황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간 후로 성당은 거의 방치상태에 놓이게 되고

1308년과 1360년에는 또다시 화재까지 입는 비운을 당한다.

그러다가 교황 인노센트 10세(Innocent X, 재위 1644-1655)때

1650년의 성년 행사를 앞두고 그 준비로 보르미니에게

 개축을 명해 오늘날에 이른다

 

현재의 성당 정면은

 알렉산드로 갈릴레이의 작품인데 꼭대기에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 제자들과 교회 박사들의 상이 서있고 내부의 현관 왼쪽에는

최초의 그리스도교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의 대리석 상이 모셔져 있다.

 

길이가 130미터나 되는 내부는 그리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나

대신 장엄, 엄숙한 맛을 전해주고 있다.

중앙 제단은 특히 <교황의 제단>이라 불려 지는데 여기에는

성 베드로가 예배를 보던 테이블이 보관되어 있다.

때문에 이 제단에서는 오직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단 바로 위 천개에는 은을 입힌

 성 베드로(오른쪽)와 성 바오로(왼쪽)의 흉상이 모셔져 있고

제단 밑에는 교황 마르티노 7세의 무덤이 있다.

제단을 중심으로 해서

 양쪽 벽으로는 알렉산드로 알가르디의 작품이 부조되어 있는데 내용은

신약성서(오른쪽)와 구약성서(왼쪽)의 일화들이다.

이 위에는 다시 선지자들의 초상이 있고 그 밑의 벽감들 속에는 장엄한 규모를 띤

열 두 사도들의 대리석상이 들어 있는데 이는 건축가이며

 조각가인 보르미니의 설계에 의한 것이다.

 

성당의 후진(Abside)을 압도하고 있는 거대한 모자이크화는

야고보 또리티와 야고보 다 까메리노의 작품으로

 1288년과 1294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인데

그리스도교의 신자 생활을 암시하는 것으로서

 그 의미는 매우 깊다.


 희년의 문

 

성당에는 또한 사상 처음으로 성년을 선포하는

 교황 보니파시오의 모습이 담긴 벽화가 보존되어 있는데

성당으로 돌면서 오른쪽 첫 벽 기둥위의 벽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지오또의 작품이다.

이 외에도 성당에는 13세기 초에 지은 부속 수도원이 딸려있다.

 

 

라테라노 대성당 - 도메니포 폰타나. 1585-1590년. 인그레이빙

 

로마의 4대 성당의 하나로 가장 오래 된 건물이다.

로마의 라테라노 궁전에 인접한 최초의 바실리카식 대성당이며

 성 조반니 대성당이라고도 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교황 성 멜키아데스에게

 라테란 궁전을 기증 할 때 함께 세워 준 성당으로,

324년 교황 성 실베스테르 1세에 의해

 구세주 그리스도께 봉헌되어 그리스도교의 으뜸 교회가 되었다.

1307년 교황이 아비뇽으로 옮겨갈 때 까지 역대 교황의 주거지였으며

이곳에서 대관식,착좌식을 했고 이곳에 묻혔습니다

 

전세계 카톨릭 교회의 총본산으로,

 로마의 4대 성당의 하나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바티칸의 산 피트로 성당(성베드로성당)보다 격이 높고

 치외법권이 인정되고 있다.

896년에 지진으로 파괴됐다가 1838년에 재건되었고,

원래 이 곳에 있었던 초기 그리스도교 유물들은

 모두 바티칸 박물관에 옮겨졌다.

 

이곳에서는 신, 구교 일치를 위한

 라테라노 공의회가 1123, 1139, 1179, 1215년과 1512년 등

다섯 차례에 걸쳐 개최되었다.

이곳에는 1851년에 복구된 교황의 권좌가 있으며,

 위에는 최후의 만찬때 사용 된것으로 전해지는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이 사용했던 낡은 나무 제대가 보존돼 있다.

 

중앙 교황 제대의 천개 양식은 15세기의 고딕 양식이다.

여기에는 성 바오로과 베드로의 머리 및

카타콤바에서 가져온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교황 마르띠노 5세의 무덤을 이 제대 앞에 둔 것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묶여 채찍질당하시던

기둥을 옮겨온 공적 때문이라고 한다.

 

제대 왼쪽에 성체를 모시는 경당이 있었는데,

그곳에 예수께서 최후만찬에서 사용한 식탁이 보존되어 있어,

성 목요일에 교황이 집전하는 만찬 미사는 이곳에서 봉헌된다.

 

요한 대성당은 1304년 프랑스 아비뇽으로

 교황청이 옮겨갈 때까지 1천년 동안 교황청으로 사용되었으므로

’교황의 성당’ 이라고 불리며,

성당에 부속되어 있는 라테라노 궁전은 1843년 교황 비오 11 세에 의해

예술 박물관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1929년의 라테라노 조약도 이 궁전에서 체결되었다.

 

 

Legend of St Francis: 6. Dream of Innocent III-GIOTTO

1297-99.Fresco, 270 x 230 cm.Upp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1209년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프란치스코가 제출한 회칙’생활양식’이

너무나도 이상적이며 엄격하다하여 인가를 거절하였으나,

그날밤 꿈에 쓰러져가는 라테라노대성당을

작은 프란치스코가 어깨로 부축하여 세우는 것을 보고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이 교회를 쇄신 시킬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회칙과 회를 구두로 승인하였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성 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게시판1403번.

*성 프란치스코 오상 축일:9월17일.게시판1369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성 콘스탄티누스 축일:5월21일,게시판1773번.
*성녀 헬레나 황후 축일:8월18일.게시판1320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당 오른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빌라도의 명령을 받고 돌아가시던 날

몇 번씩이나 모욕과 고통을 받으며 오르내리셨다는 전설이 담긴

스칼라 산타라는 28층계로 된 계단이 있다.

 

많은 신자들은 여기에서 무릎을 꿇고 깊은 존경을 바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계단은 콘스탄티노 황제의 어머니였던

 성녀 헬레나가 로마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San Giovanni in Laterano

 

현재의 건물은

 1649년에 완성된 바로크 양식으로 입구 쪽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상과

높이 6m의 그리스도 상, 성인들의 상이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교황의 거소로 사용되었던 라테라노 궁전이 교회에 인접해 있는데

궁전 앞 예배당은 스칼라 산타 Scala Santa성스러운 계단이라고 불린다.

432∼440년에 건립한 것으로, 모자이크와 상감세공(象嵌細工)으로 되어 있다.

내부는 1646∼1650년에 F.보로미니가 전면적으로 개장(改裝)하였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이 성당은 콘스탄티노 황제가 희사한 땅으로 밀찌기

아레 교황(311∼314)이 세운 것이라 한다.  

성당을 짓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콘스탄티노 황제의 둘째 부인이며

마쎈지오의 누이동생인 파우스타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마쎈지오의 막강한 힘으로 세워진 이 성당은 중앙부가 이중의 기둥으로 만들어져

구세주 그리스도, 세례자 요한, 선각자이며

제 4복음서를 쓴 사도 요한에게 봉헌되었다.


    

 

콘스탄티노 대성당은

455년 반달족의 침입으로 빼앗겼다가 후에 성 레오 교황 때 다시 되찾았다.

그러나 896년에 지진으로 파괴됐다가 905년에 세르지오 3세 때 재건되었다.

그후 니콜로 4세 때에 와서 많은 단장과 장식을 했으나

1308년과 1361년 사이에 두차례 걸쳐 화재로 소실됐다가

우르바노 5세와 그레고리오 11세 때 각각 재건된 수난의 건물이기도 하다.

 

정면은 클레멘테 12세 때 복구된 것으로

 로마예술의 극치라고 불리울 만큼 훌륭한 모습을 하고 있다.

레오네 13세 때 동쪽 끝 반원형 부분을 복구하기 시작해서 1885년에 완결을 했다.

 

정면은 알렉산드로 갈릴레이의 작품으로

 커다란 돌기둥에 의해 아치형으로 구분돼 있다.

지붕 위에는 14명의 사도와 성인들이 십자가를 들고 계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있는 조각이 있다.

내부는 중앙부와 이중의 기둥으로 돼있고

 천장에는 팔을 넓게 편 교황의 조각이 있다.

 

중앙부 12개의 정교한 돌기둥과 성상은 보로미니의 설계로 된 것이고

그 윗부분의 신약, 구약의 장면을 묘사한 조각은

1659년 알렉산드로 알가르디의 설계로 만들어진 것이다.

 

양쪽 측면부는 클레멘테 8세 때 완전히 개조한 것으로 이것은

쟈코모 넬라 포르타와 카발리에레 다르피노의 작품이다.

제대 아래는 시모네 기니가 만든 마르티노 5세의 무덤이 있다.

 

성체실과 끝부분은 1288년과

1294년 자코포토리티와 자코포 다 카메리노가 조각한 것으로

윗 부분에는 구름 위에서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과

중앙에는 4복음을 상징하는 강가에서 갈증난 양과 사슴에게 물을 주는 모습이 있다.

 

그밖에도 프레스코는 조토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고

 1300년에 성년을 선언한 보니파치오 8세 상과

마르티네쯔 추기경 기념관과 오른쪽에 있는 카사티 추기경의 무덤은

 이사이아다 피사의 걸작품들이다.

조각들 가운데서 코르시니성당은 갈릴레이의 작품이며 이 부속성당에는

안또니오 몬따우티의 삐에타상이 있다.

성당 앞에 있는 성 죠반니 광장에는 440년 시스또 3세가 새로 짓고

1637년에 우르바노 8세가 지금의 모양으로 다시 지은 성세소가 있다.

 

광장 중앙에는 이집트의 화강암으로 된 첨탑이 솟아있다.

이 화강암은 콘스탄티노 2세가 이집트의 테베에서 배로 실어온 것이다.

이 첨탑은 로마에서 가장 높고 오래된 것으로 높이가 기초를 포함해서 47m나 된다.

원래 이것은 막시모 원형 경기장에 방치돼 있던 것을

시스또 5세가 이리로 옮겨와 1588년에 복원해서

라테라노 성당 앞에다 세운 것이다.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12월27일.게시판814번,1540번.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6월24일.게시판1238번,1836번.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 복자품에 올라

-바티칸 대성전 광장 30만명 모여 ’축하’

 

[바티칸시티=외신종합]평화신문에서

 

마더 데레사가 복자품에 오르던 19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광장에는 30만의 인파가 운집, ’빈자들의 어머니’

’살아 있는 성녀’ 데레사 수녀의 시복을 축하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데레사 수녀 시복식을 자신의 교황직 25년을 기념하는

마지막 행사로 거행함으로써 데레사 수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드러냈다.

 

데레사 수녀의 시복 선언문을 낭독한 교황은

마더 데레사가 선종한 9월5일을 데레사 수녀 축일로 기념할 것을 선포했다.

그 순간 베드로 대광장에 모여든 30만여명의 군중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이로써 교황은 교황직 25년 동안 복자 1319위를 탄생시켰다.

 

시복선언문 낭독 후 인도 전통 무용과 음악 공연이 이어지고,

시복시성식에서 복자나 성인의 유해 일부를 봉헌하는 관례에 따라

사리를 입은 젊은 여성들이 마더 데레사의 혈액을 제단에 봉헌했다.

이 유해는 20일부터 라테라노 대성전에 보관됐다.

 



11월  9일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


Beata Elisabetta della Trinità Catez Carmelitana
Bl. Elizabeth of the Trinity
Born: Sunday 18 July 1880 in a military camp in the diocese of Bourges,

France as Elizabeth Catez
Died: 9 November 1906 of Addison's disease, a hormone disorder
whose side effects are painful and exhausting; her dying words:
I am going to Light, to Love, to Life!
Name Meaning: worshipper of God
Beatified: 25 November 1984 by Pope John Paul II
Canonized: pending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

(E. Trinitatis, 1880∼1906). 가르멜 수도회 수녀.

 

프랑스의 부르제 부근에서 태어나 4세 때 육군장교인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어머니는 엘리사벳에게 훌륭한 그리스도교 교육을 시켰다.

 


14세 때 동정녀(童貞女)가 될 것을 맹세했고

21세 때 디종의 가르멜수도회에 입회, 2년 후인 1903년 허원(許願)을 하였다.

1904년 11월 엘리사벳은 유명한 기도문구를 지었다.

 


1905년의 부활절을 앞두고

성 바울로에게서 삼위일체의 영광을 찬양하는 자신의 사명을 찾아냈다.

엘리사벳은 1906년의 그리스도 승천절과 그보다 조금 뒤의 두 차례에 걸쳐

하느님과의 일치로 들어가는 영감을 체험하는 은총을 받았다.

-(가톨릭대사전에서)-

 


삼위일체의 엘리사벳(Elisabeth)은 1880년 7월 18일
프랑스의 부르주(Bourges) 근처에서 태어나 4세 때 육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여의었고,
아빌라의 테레사(Theresia ab Avila)의 저서에 심취할 정도로
열심한 신자였던 어머니에게 충실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14세 때 동정녀가 될 것을 서약한 그녀는,
1901년 8월 2일 디종(Dijon)의 카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여 1903년 첫서원을 하였으며,
이듬해 11월에는 “삼위일체께 바치는 기도”라는 기도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1905년 부활절을 앞두고 사도 바오로(Paulus) 안에서
삼위일체의 영광을 찬미하는 자신의 성소를 발견하는 영적 체험을 한데 이어,
이듬해 주님 승천 대축일과 그 후 얼마 안 있어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영적인 은총을 체험하였다.


엘리사벳은 약 9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 고통스러운 병고를 치르다가
1906년 11월 9일 디종 수녀원에서 사망하였으며,
1984년 11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다.

-(가톨릭홈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얻었다.

왜냐하면 하느님 친히 천국이시고 그 하느님께서 내 영혼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깨달은 날 부터 나는 확실히 광명을 얻었고,

이 비결을 나의 모든 사랑하는 자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다."

 

-성삼의 엘리사벳 수녀.

'침묵하는 영혼'에서(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8. p.17참조)-

 


1904년 엘리사벳은 성삼께 영광을 드리는 훌륭한 기도문을 지었다.

 

오! 내가 흠숭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내가 완전히 자신을 잊고 내 영혼이 이미 영원 속에 있는 것처럼

변함없고 고요하게 당신에게 몰두하게 도와 주소서.

아무것도 내 평화를 산란케 하거나 당신에게서 나를 끌어내지 않게 하소서.

 

오! 불변의 내 주여!

그러나 매순간 내가 당신의 깊은 신비 속으로 더욱 깊이 뚫고 들어가게 하소서!

내 영혼에 평화를 주시고, 영혼이 당신의 천국이 되게 하시며,

당신의 소중한 거처가 되게 하시고 당신의 안식처가 되게 하소서.

내가 당신을 거기에 홀로 두지 않고 거기에 있으면서

생생한 신앙으로 온전히 당신에게 몰입하여

당신을 흠숭하고 당신의 창조활동에 완전히 복종하게 하소시!

 

사랑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의 그리스도여, 당신을사랑합니다.

기꺼이 당신 성심의 신부가 되겠습니다.

사랑으로 인해 죽을 때까지

 기꺼이 영광으로 당신을 덮어드리고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약함을 깨닫고 나를 당신 자신으로 감싸주시고

내 영혼을 당신 자신의 온갖 활동과 동화시키기를 간청합니다.

나를 당신 안에 잠그시고 나를 완전히 소유하시며

내 삶이 오직 당신 자신의 빛이 되도록 나로 하여금 당신을 대신하게 하소서

흠모자요, 복원자며, 구세주로서 내 영혼에 들어오소서.

 

내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이여!

당신에게 온갖 것을 배우도록

 당신에게 귀기울임으로 내 삶을 보내고 순종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온갖 어둠, 온갖 고난, 온갖 무력함을 통해

나는 당신을 항상 간직하고 당신의 번쩍이는 빛 아래 거하기를 열망합니다.

오! 내 사랑스런 별이시여!

나를 꼭 붙드시어 당신의 빛을 떠나 방황하지 않게 하소서!

 

오! 태워버리는 불이신 사랑의 영이시여!

나에게로 내려오시어, 바로 내 안에서 말씀이 다시 육화됨으로써

내가 그분에게 또다른 인간성이 되고 이로써

 그분이 당신의 신비를 새롭게 하게 하소서.

 

오! 아버지시여.

당신은 불쌍하고 보잘것 없는 당신 피조물을 굽어보시고 감싸주시며

그에게서 오직 당신의 온갖 기쁨을 두신 저 사랑스런 당신 아들만을 보십니다.

 

오! 나의 "성삼",

모든 것, 지복, 무한 고독이며 그안에서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광대 무변이시며,

나는 나 자신을 당신의 먹이로서 당신께 드립니다.

내가 당신의 빛 속에서 위대한 당신의 심연을 관상할 때까지 당신 안에 묻히도록

당신은 내 안에 묻히소서!

 

-가톨릭 전통과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분도출판사 p.356-359 참조) 

 


[이콘] 구약성서의 삼위일체 - 안드레이 루블레프.

111.76x140.97cm.1411년경.모스크바 트레챠코프미술관

 

전체적으로 볼때 성부의 무릎과 성령의 무릎이 마주 보고 있는데

이는 커다란 잔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희생의 잔을 중심으로 삼위가 둘러 있으며,

비가시적인 틀을 이루고 있는데 그틀은 하느님의 신성이 내재한 단일성을 표시하며,

천상의 만돌라(님부스,신성한 빛과 영광,하늘을 의미)를 암시한다.

 

성자는 잔의 한가운데에 있다.

 

성자는 두 손가락으로 강생을 통한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희생양이 되시는 당신의 사명을 암시하고 계시며,

왼쪽의 성부는 축복하시는 손짓으로 성자를 격려하고 계신다.

그 반대편의 성령은 식탁 아래의 열린 사각형을 가리키며

이 거룩한 희생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희생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 사각형은 동서남북의 모든 창조된 세상을 상징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집으로 가는 좁은 길, 즉 고통의 길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삼위는 똑같은 권위를 지녔음을 나타내는 권위의 지팡이를 들고 계시며,

모두 천주성을 뜻하는 푸른빛의 옷을 입고 계신다.

 

★삼위일체는 모든 종교적 체험.모든 신학. 모든 사회적 행위의 원천이다.

우리가 존재의 충만함,

모든 현존하는 것의 목적과 그 의미를 탐구할 때

 발전하게 되는 것은 바로 하느님 즉 삼위일체이다.

 

그자체의 충만함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안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일에로 들어가는 것이며,피조물인 인간의 신화를 선취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신적인 생명,삼위일체의 지고한 생명에로 참여하는 것이고,

베드로 성인의 말처럼 "신적인 본성에 참여하는자"가 되는 것이다.★

 

이 화면의 그림은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이콘으로

러시아의 안드레이 루블레프의 1425년 작이다.

1551년 스토슬라브 교회회의에서는 삼위일체을 그릴때는

 이 루블레프의 유형을 따르도록 규정하였다.

(만돌라: 그리스도의 성변화와 지옥의 정복-지옥의 영혼을 구하는 일과 같은

 신적인 계시의 원천을 표현하고자 사용되는 하나의 방법이다.)

 

구약성서의 삼위일체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는 시간에 있어 시작도 없고 마침도 없다.

성자는 니케아 신경에 따르면 온 세계 이전에 성부로 부터 낳음을 받았다.

더군다나 성령은 성부로 부터 발출했다.

삼위일체의 이콘이 표현하고자 추구하는 것이 이 영원성이다.

 

성서의 삼위일체의 하느님과

 우리와의 첫 만남은 창세1,26의 창조설화에서 발견되는데,

성부께서는 "우리자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신다.

 

두번째 만남은 마므레의 떡갈나무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세명의 천상 방문객들이 나타나

아들 이사악의 탄생에 관해 소식을 전해 준 18장에서 나타난다.

동방교회에 있어서 이 삼위일체의 첫 현시는 오순절,

바로 그날에 충만하게 드러날 약속의 시작이다.

옛계약은 새 계약의 예표이며, 그 새 계약은 삼위일체 교리에서 완성 된다.

 

만약, 주의 세례 축일에,

거룩한 삼위일체의 현시를 외적인 감각만으로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세례자 요한은 성부의 목소리를 듣고, 성자를 보고,

 비둘기 형상으로 강림하는 성령을 보았을 것이다.

오늘 하느님의 아들에 의해 회복된 성령의 은총이 인간 전 존재에 주어진 빛으로서

 인간을 신화(deification)시키고 있다.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화사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는 지는 해를 향하여 석양을 바라보며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신 하느님을 찬양하나이다.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함이 마땅하나이다.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여,

그러므로 세상은 주님께 영광을 바치나이다.

 

만과의 ’화사한 빛’성가 중

 

출처:이콘-신비의 미.편저 장긍선 신부

 

*삼위일체 대축일: 게시판1797번.

*[이콘]신약성서의 삼위일체:1796번

*[이콘]구약성서의 삼위일체:179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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