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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말씀묵상] 2021년 5월 9(일) [백] 부활 제6주일

Berardus 2021. 5. 8. 07:02

[금주의 말씀묵상]
2021년 5월 9(일) [백] 부활 제6주일

제1독서(사도 10,25-26.34-35.44-48)

제2독서(1요한 4,7-10)

복음(요한 15,9-17)


기도, 하늘을 움직이는 ‘리모컨’

사랑 실천은 주님이 내리신 사명
자선 베푼 이방인에게 사도 보내
이웃 위한 기도에 축복 내리시고
사명 지킨 이들에게 은총 주시네


한동안 분주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읽을 요량으로 밑줄을 긋고 책 귀를 접었던

묵은 책들을 정리했거든요.

쌓인 책을 다시 꺼내 읽는 일은 극히 드무니

‘과시용’에 불과했다는 자책이 일었던 겁니다.

이참에 간소한 삶으로 한발 디딘 느낌에 홀가분했습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이 많은 책들이 삶의 버팀목이었다 싶더군요.

좋은 글을 읽으면 나도 좋은 글을 쓰고 싶었고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요.

더러 젊은이의 욕망이기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글을 갖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바라본 적도 꽤 많았으니,

이 헌 책들은 제 꿈의 조각이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냥 폐지로 넘기는 게 아쉬웠습니다.

궁리 끝에 신자분들과 나눌 생각을 가져봅니다.

‘헌 책’을 드리는 게 조심스럽지만 제 나름의 검증을 거친 책인 만큼

읽는 분들께도 은혜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헌 책 속, 갈피에 숨어있는 아름답고 귀한 글들이

새로운 향기로 피어나기를 원해 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명령하십니다.

“서로 사랑하여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그러고 보니 사명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가 묵직이 다가오는데요.

한문의 使(사)는 사람의 목에 칼이 걸린

형상이며 命(명)은 목숨을 뜻합니다.

사명이란 목숨을 걸고 꼭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의미인데요.

“서로 사랑하여라”는 주님의 명령은 흘려들어서도 안 되고

허술히 지나칠 수도 없는 엄청 중요한,

꼭 실천해야 하는 의무라는 걸 명심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 신자들의 ‘기도 보고서’입니다.

초대교회가 주님께서 주신 명령을 목숨 걸고 지켜낼 수 있었던 저력은

오직 기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증언으로 가득하니까요.

덕분에 우리는 초대교회 신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을 불문하고 모여서 기도드렸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는데요.

특히 오늘은 제 1독서의 인물, 코르넬리우스에게 주목해 봅니다.

성경은 ‘이탈리아 군대의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가

어떻게 하느님을 알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하느님을 향한 깊은 신심으로 온 집안이

하느님을 경외하도록 하여 함께 기도하며 지냈다고 증언합니다.

더해서 이방인이었던 그가 유다 백성에게 두루 자선을 베풀었으며

성실하게 주님의 뜻을 실천했던 인물이라고 전합니다.

베르나르도 카발리노

‘성 베드로와 코르넬리우스 백인대장’(1640년대) 그날,

주님께서는 이 독특하고 어여쁜 이방인의 신심에 감동하시어

부랴부랴 천사를 파견한 것이라 싶습니다.

서둘러 이웃 동네에 머물던 베드로 사도를 특파하신 것이라 싶습니다.

그날 주님께서는 이방인

코르넬리우스를 방문하라는 깜짝 사명을 베드로 사도에게 내리셨습니다.

그 명령은 베드로 사도가 어안이 벙벙해 할 만큼 의외의 것이었는데요.

이처럼 주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순수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오늘 우리를 통해서 온 세상이 “깜짝 놀라” 탄성을 지를 바로

그 일을 이루려 하신다는 걸 일깨워주십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의 기도를 몹시 기다리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요. 그날 베드로 사도가 시장해서

약간 분심이 들었다는 사실도 재밌는데요.

그러고 보면 우리의 기도가 밤을 지새우는

열심한 기도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라 싶습니다.

버릇처럼 입에 붙은 기도를 암송하는 것에 그친다 해도 괜찮다 싶습니다.

그분께서는 봉헌되는 기도를 모두, 전부,

깡그리 당신 은혜로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니 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늘을 움직일 수 있는

기도의 리모컨을 선물하셨으니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를 세우는

축복의 열쇠가 우리 손안에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간절하고 진솔한 기도는

악에 갇혀 신음하는 세상 영혼들을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묶인 것을 풀고 꽉 잠긴 문을 열게 합니다.

전혀 일면식이 없던

코르넬리우스와

베드로 사도를 맺어주신

그분께서는 오늘 우리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전혀 모르는 누군가를 기도로 돕길 원하십니다.

이웃을 위한 우리의 기도 때문에 천사를 파견하고 싶어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베드로 사도처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선교의 장을 넓히길 원하십니다.

부활 제6주일, 골라낸 책무더기를 보며

예수님의 사랑이 떠올랐습니다.

먼지 앉고 때 묻어 꼬질꼬질한 헌 책 같은 우리를 추하다하지 않으시는 분,

누더기 같은 우리 삶의 옹이를 속속들이 읽고 살펴 털고 씻고 헹구어

새롭게 단장해 주시는 분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우리의 낡은 삶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죄를

꼼꼼히 털어내고 고쳐 새 사람이 되게 하심에 감격하였습니다.

성모성월입니다. 은혜의 때입니다.

스스로 생각에 갇혀 웅대한 그분의 꿈을 외면하지 않기 바랍니다.

기도의 사명에 충실하여 주님의 사랑에 젖어 드는 은총을 누리기 원합니다.

하여 성모 어머님께 기쁨을 드리는 귀한 자녀로 돋움하시길 축원합니다.

-장재봉 신부-



[한주간 전례]

2021년 5월 10일 (월) [백]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요한 15,26─16,4ㄱ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진리의 영’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진리의 영’은 보호자, 변호자, 협력자, 인도자,

위로자라는 의미를 지닌 ‘파라클레토스’의 다른 표현입니다.

이 진리의 영은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도와주시는 ‘보호자’이시며, 억울함을 대변해 주시는

‘변호자’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도록

필요한 순간에 나를 도와주시는 ‘협력자’이시고,

인생의 길에서 방황할 때 나침반이 되어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하시는 ‘인도자’이십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위로자’이십니다.

믿음을 통하여 진리를 품으신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과 함께하는 삶의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성

모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기꺼이 “예.”라고 대답하시면서

당신의 신앙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기꺼이 인류의 구세주를 품으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곰곰이 되새기며 살아가신

성모님의 삶은 세례와 견진 성사를 통하여 성령을 받은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열어 이웃에게 애덕을 실천하며,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기쁨의 삶이 되도록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도록 이끄시고,

진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시며,

성모님과 같은 참된 신앙인의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

2021년 5월 11일 (화) [백] 부활 제6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요한 16,5-11

우리가 주님을

구세주로 모시게 된 경로는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오랜 천주교 신앙이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세례를 받았고,

어떤 이는 친구나 지인의 권유로,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의지로 홀로 성당을 찾아가

예비 신자 교리를 공부하여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방법과 과정이 어떻든 우리는 ‘당신 백성에게 당신을 알리신

’(『가톨릭 교회 교리서』, 204항 참조) 하느님께

다양하게 응답하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감옥에 갇힌

바오로와 실라스에게 세례를 받은 간수와

그의 가족은 특별한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며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시고 기뻐합니다.

이렇게 어떠한 경로든 세례를 받은 모든 이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2코린 5,7) 살아갑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시련을 겪고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어려운 여정을 걸어가신 성모님과 함께,

또한 많은 신앙의 증인의 모범을 통하여

‘우리 믿음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히브 12,2 참조) 충실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보내신 우리의 보호자,

성령께서 그분의 은총으로 우리 신앙을 굳건하게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가 ‘주님에게서 흩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실 것’(요한 11,52 참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께 기도하며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

거룩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예수님께 다가가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2021년 5월 12일 (수) [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요한 16,12-1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

하시는 분이시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

(요한 8,28)고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곧 성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성자의 것이며,

성령께서는 이 모든 것을 성자에게 받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성부에게서 성자로, 성자에게서 성령으로 이어지는

이 심오한 일치의 신비는 세 위격이지만 하나이신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우리도 당신 안에

사랑으로 일치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요한 4,16)라는 말씀을 통하여 드러내 주시고,

삼위께서 사랑 안에 온전히 일치하여 하나가 되시듯,

하느님을 찾는 모든 이는 사랑을 통하여

그분 안에서 하나가 되리라고 일깨워 주십니다.

그래서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아테네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르며 일치하려고 애쓴다면 이는 바로

충만한 주님의 은총 안에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주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밝아질까요?

주님 사랑 안에 머무는 자녀들이 많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평화롭고 사랑 가득할까요?

숨을 쉬어 보십시오. 들숨과 날숨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살아가게 하시는 하느님을 날마다 의식하며 산다면

이 세상은 그런 나 때문에 더 밝게 빛나고,

아름다우며, 평화롭고 사랑 가득한 기쁨의 땅으로 변할 것입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2021년 5월 13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요한 16,16-20

성모님께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하느님을 알고

체험할 수 있도록 언제나 우리를 이끄십니다.

또한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께 믿음을 고백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희망을 품고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오늘은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파티마에서

세 명의 어린 목동에게 발현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세 명의 어린 목동에게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충만하기를 바라셨고,

우리가 평화의 주님께 돌아오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성인들보다 성모님을 신앙의 모범으로 더 깊이 공경하고

사랑을 드리는 것은 바로 성모님께서 오롯이 당신의 생애를 주님께 바치셨고

우리를 특별히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목동 프란치스코는

“제가 무엇보다 좋아한 것은 성모님께서 우리 마음에 밝혀 주신

그 빛을 통하여 우리 주님을 뵙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너무도 사랑합니다.”

(『루치아 수녀의 회고록』)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의 고백은 하느님의 빛이 우리 안에 머물고

우리를 보호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느님을 소홀히하고,

그분의 창조물을 훼손하며 점점 사랑에 무감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님의 현존을 알리시며 그분을 사랑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남을 위하여 기도하며 도울 수 있도록 우리의 차가운 마음을

뜨거운 열정과 사랑으로 채우게 이끌어 주십니다.

아름다운 계절 5월 성모 성월에 다른 이들,

특히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쁨입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

2021년 5월 14일 (금)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마티아 사도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사도로 뽑힌 인물로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유다의 자리를 넘겨받는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부터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 목격한 이로

예수님의 일흔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마티아 사도의 활동과 죽음에 관해서 확실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예루살렘에서 선교 활동을 펼친 데 이어 이방인 지역,

특히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하였다고 전해 온다.

[복음묵상] 요한 15,9-17

주님을 따르기로 마음먹은 사도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들의 첫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뜨거운 무엇인가를 느꼈고

이분이야말로 구세주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들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였으며,

나중에 자신들에게 돌아올 부와 명예에 대한 자리싸움

(마르 10,37 참조)을 하기도 하고, 마침내는 죽을 상황에 있는

스승을 버리고 달아나기도(마태 26,56 참조) 하였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

나의 생각을 예수님의 생각이라 밀어붙이며 행동하고,

때로는 신앙이 부담스럽고 힘들다고 느껴지면 달아나기도 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던 첫 마음은 어디에 갔나요?

정채봉 시인은 ‘첫 마음’이라는 시에서 “세례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라고 자신의 신앙 체험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첫 마음을 유지하고 간직하기에 우리는 너무 나약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잘 아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하십니다.

첫 마음을 되찾는 길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청하고

또 다른 이들이 용서를 청하면 그것을 받아 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참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2021년 5월 15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복음묵상] 요한 16,23ㄴ-28

오늘 미사의 본기도는

우리가 날마다 간절히 바쳐야 할 기도입니다.

“주님, 저희에게 언제나 옳은 일을 가르쳐 주시어,

저희가 날마다 더 옳은 일에 힘쓰며,

파스카의 신비를 온전히 실천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이가 날마다

더 옳은 일을 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끊임없이 베푸시는 자비,

주님의 사랑인 은총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에게 모든 것에 앞서

가장 옳은 일인 당신의 복음을 선포하기를 바라십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며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당신 집에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일’을 합니다.

하느님의 일이란 하느님 구원 업적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놀라운 기적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끄는 것이며,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길로 초대하는 것이고,

주님께서 몸소 가르쳐 주신 사랑을 실천하고 전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은 주님을 전하는 모든 이, 우리의 부모님, 형제, 친지,

그리고 우리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 모두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그분과 일치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 줍니다.

주님과 일치한 이들이 바치는 기도를

하느님께서 어떻게 들어주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기도란 바로 주님의 제자들이 온전한 믿음과

사랑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성부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도 믿음과 사랑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 ‘항구함’을 잃어버리고

많은 시련과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주님께 ‘항구함의 은총’을 얻으려면

하느님께서 열어 보여 주시는 것을 받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노력은 바로 다른 이들을 위한 배려와 관심과 사랑의 실천에서 드러납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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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초 기념일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었습니다.
또한 5월은 성모성월입니다.
성모님과 함께
모두 모두 행복한 5월되시길 기도드립니다.

 

-Berard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