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사도는 자랑하려고 하면 자랑할 것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지만
일생 동안 자기 몸을 찔러 대는 가시 때문에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몸에서 이 고통이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으나
주님께서는 그가 “자만하지 않도록” 이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힘이 자기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자기 약점을 자랑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모두 달갑게 받아들입니다.
약할 때가 오히려 강할 때라는
바오로 사도의 신념은 오늘 복음에서도 입증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공중을 나는 새가 아무 걱정 없이 날아다니고
들의 나리꽃이 활짝 필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먹고 자고 입는 것을 걱정하면서
한평생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세상살이 걱정에 찌들려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위로와 용기를 주십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내일의 계획을 세우는 것을 금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기쁨을 모두 빼앗아 가는 근심과 두려움을 갖지 말라는 것이지요.
근심 걱정은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건강에 해롭기까지 합니다. 그렇지요?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귀한 생명을 주셨다면,
목숨을 이어 나가는 데 필요한 것을
모두 주시리라는 것은 당연한 믿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만히 앉아 있는 새가 아니라
공중을 힘차게 나는 새에 대해서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공중을 힘차게 날면서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새는
내일을 걱정해서도 안 되고, 또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분께서 친히 마련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말씀대로 하느님께서는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는다 하더라도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오늘도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아 나서는
하루가 되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