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대화와 상생, 공익 지향하는 노동조합 (「간추린 사회교리」 305~309항)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권 지킬 수 있도록 도와
국내 노조 조직률 10%에 불과
취약 노동 계층 위해 장려 필요
노사 이분법 편가르기 삼가야
■노조는 불필요하다?
노사갈등은
첨예한 문제이며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도
노사문제는 대립의 역사로 흘러 왔습니다.
노동조합이 과격하다고 인식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반대로 사업하는 분들을 자본가,
악덕 기업주라며 나쁘게 보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들은 너무 극단적입니다.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일부 노조의 파업과 투쟁,
지나친 정치 관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분명히 대기업, 고임금 노조의
일부 편파적 행보도 비판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선진국처럼 노조의 경영참여도 전무합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노조활동이 제한받는 경우가 많으며
국제노동기구(ILO) 2014년 발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노동권 등급은 최하 수준인 5등급입니다.
■ 노동조합에 대한 올바른 인식 필요
헌법 제33조에서도 보장된
노동 3권을(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계층과 신분처럼 노동자와 사업자를 나눠
서로를 적대시하는 사고 또한 올바르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의 지혜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노조 조직률과 중산층이 함께 줄어들고
노조 조직률과 상대적 빈곤율이
서로 반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만 봐도
노조 조직률은 건강한 사회를 위한 중요한 척도입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노조 조직률은 낮지만
단체 협약 적용률이 각각 60%, 90%이기에 상대적 빈곤율이 낮습니다.
한국인의 노조 가입률이
타국에 비해 낮다는 것과
(북유럽의 경우 평균 70%),
노조 가입률이 낮은 나라는
노동 환경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노동조합의 결성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톨릭교회도 명백하게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이야기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 305항)
■ 노동조합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익집단으로서 역할 해야.
무엇보다 노동조합은
미조직화된 취약 노동 계층을 위해 필요합니다.
기간제 근로와 비정규직을 포함한 미숙련,
저학력 노동자, 어린이와 청소년,
노년층과 여성과 장애인,
외국인들은 노동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데다
빈곤과 고용불안까지 겪기에
반드시 노동조합이 필요합니다.
또한 노동환경 자체도
기술발전과 함께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의 결성을 통해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안전망과
제도적 보호를 강화해야 합니다. 그
리고 노동조합은
공익집단으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특정조합의 기득권 층만이 아니라
고용이 불안한 모든 사회적 약자들도
혜택과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나아가 건강한 노사발전과 노동조합 문화의
정착 및 사회적 상생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교도권은
다양한 직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결사나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와 관련하여 존재하는
노동조합의 근본적인 역할을 인정한다.”
(「간추린 사회교리」 305항. ‘노동조합의 중요성’ 중)
|
[사회교리] 노동의 본질인 사랑 (「간추린 사회교리」 266항)
[사회교리]
노동의 본질인 사랑 (「간추린 사회교리」 266항)
노동은 사랑을 전하는 성사적 행위
자본주의 따라 이윤만 추구한다면 인간 가치는 소모품으로 전락
선익과 나눔의 길 선택해야
■ 노동의 본질은 사랑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세상을 사랑으로 돌볼 사명을 주십니다.
(창세 2,15).
베네딕토 성인은 “기도하며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동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의 영광과 축복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밥을 지어주는 것은 노동이면서
동시에 사랑을 전하는 성사적(聖事的) 행위입니다.
이처럼 노동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간추린사회교리」 266항)
그런데 사람의 교만함과 타락으로
하느님과의 친교가 상실됐듯이
노동의 본질이 왜곡되면서
지금 이 세상도 많은 어려움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 하느님의 모상인가, 소모품인가?
가톨릭교회는
자본주의를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의 위험을 경고해 왔습니다.
“인간과 사회를 위해 선익을 추구한다면
자본주의는 좋은 제도이지만
인간과 사회를 경시한다면 자본주의를 반대한다.”
(「간추린 사회교리」 335항)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소외입니다.
이윤추구와 성장, 비용과 생산성만 생각하면
인간은 소모품에 불과합니다.
(「복음의 기쁨」 53항 배척의 경제 참조)
사람이 일하다 죽거나
다쳐도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이유도,
대량 정리해고와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의 증가가 가능한 것도
자본주의의 역기능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밥을 지어주는 것은
노동이면서 동시에 사랑을 전하는 성사적 행위다.
이처럼 교회는 노동의 본질이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이미 많은 이들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처음부터 불평등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심과 잘못된 제도 때문에 세상이 망가진 것임을.
그래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불평등의 확산과
인간소외의 위험을 막기 위해
대안이 될 만한 경제모델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이윤만을 추구하는 전통기업과 달리
사회적 가치와 공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은
‘리코노미’(Reconomy)라 통칭되는 협동경제,
전환경제, 공유경제를 추구하며
지역의 균형발전과
생태환경을 감안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입니다.
영국 토르네스의 ‘리퍼버드 유기농 농부들’,
미국 오클랜드의 ‘지속가능한 경제법센터’,
브라질 산타크스두술의 ‘메르쿠스’와 같은
기업들은 이런 변화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 우리가 추구할 가치란?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 왔습니다.
근현대사의 굴곡과
아픔을 딛고 이뤄낸 쾌거이기에 더욱 값집니다.
그러나 성장만 보고 달려 왔던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도 많습니다.
바로 사람이 소중하다는 가르침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할 때입니다.
사람이 소중하다는 가치 아래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제도와 틀이 아무리 훌륭해도 결국
그것을 만들어 가는 주체는
우리이며 그 원리는 ‘사랑’입니다.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과 사람에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경제와 기업활동, 한 인간의 삶에서
사랑이 최우선 목적이 돼야 합니다.
그 사랑이란 타자와 함께하고,
선익과 평등을 지향하며
사리사욕보다 나눔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노동의 본질과
하느님이 창조하신 좋았던 세상을 회복하는 참된 길입니다.
“사랑의 실천을 최종 목표로 삼는
인간의 노동은 관상의 기회가 되며,
영원한 날을 간절히 염원하며
부단히 깨어 바치는 신실한 기도가 된다.”
(「간추린 사회교리」 266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