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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좋은 몫’의 선택

Berardus 2019. 7. 19. 09:22

[[말씀묵상] ]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좋은 몫’의 선택 연중 제15주일 제1독서(창세 18,1-10ㄴ) 제2독서(콜로 1,24-28) 복음(루카 10,38-42) 7월의 셋째 주일은 주님의 창조질서 보전에 유익한 몫을 선택하여 더위에 땀 흘리고 있는 농민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농민 주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빼앗기지 않을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2)고 격려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친교로 주님의 뜻을 따라 각자의 소명에 충실할 부름을 받았습니다. 의인 아브라함이 마므레에 살던 시절 한 여름 대낮에 주님께서 그를 방문하십니다.(제1독서) 아브라함이 신비한 세 사람의 그룹 지도자에게 ‘나리’라고 호칭하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주님인 줄 몰랐습니다. 두 분은 나중에 시중드는 ‘천사’로 밝혀집니다.(창세 19,1) 천막 입구에 앉아있던 아브라함이 달려 나가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하고 경외하며 모십니다. 발을 씻으시게 물을 떠오는 겸손한 봉사를 합니다. 가족들은 한 말 가량(3 measures, seahs)의 밀가루를 반죽하여 빵을 굽고, 원기를 돋우도록 우유와 치즈로 요리한 송아지 고기로 상차림을 합니다. 주님께서는 한해 뒤에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 축복하십니다. 아브라함은 99세 때 하느님과 할례 계약(창세 17,1 이하)을 맺었습니다. ‘아들의 약속’이 이루어진 후 그는 주님의 흠 없는 증거자가 됩니다. 사라는 이 말을 듣고 ‘어찌 아이를 낳을 수 있으랴, 내 남편도 나도 늙은 몸인데’ 하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듬해 아브라함은 아들의 이름을 이사악(Isaac, 주님의 미소)이라고 짓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직무인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의 일꾼’이 된 소명을 고난 속에도 기쁘게 수행합니다.(제2독서)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 육신으로 채운다”(콜로 1,24)는 표현은, 십자가의 수난에 역사의 예수님께 부족함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사도가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 고난에는 위선자들의 소행은 물론 종말에 일어날 환난도 포함됩니다. 바오로 서간에 드러난 특색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고 구원의 신비를 알리는 일입니다. 구약시대에 감추어져 있던 그리스도의 신비가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기에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선포는 모든 민족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원수를 사랑하기까지 ‘완전한 사람’(마태 5,48)으로 굳건해지는 성화의 길임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이 소명에 교회의 성도’들이 모범이 되어주기를 당부합니다. ▲프란체스코 바사노의 ‘그리스도와 마리아와 마르타’. 오늘 복음(루카 10,38-42)에서 예수님은 자매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마리아(동생)는 주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경청합니다. 혼자 손님접대에 부담을 안고 불안해하던 마르타(언니)는 주님께 다가가 동생이 자기를 도와주도록 일러주시라고 청합니다. 주님께서는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복음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가족 제도와 남녀 성별차이라는 당시의 문화적 특성을 감안할 때, 예수님께서 두 여인을 가르치는 일은 놀랍습니다. 마리아는 오빠 라자로(요한 11장)와 제자들을 포함한 남자들의 공간에 함께했음이 분명합니다. 남자는 자발적으로 참석할 수 있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경우에만 부름을 받게 됩니다. 복음의 메시지에 대해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리아가 주님과 마주하는 천상의 상태를 미리 맛보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아무도 앗아갈 수 없는 지혜를 갈망하고, 시중드는 일에 바빠서 천상적 말씀에 관한 지식을 놓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내적 잠심(기도)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2014; 암브로시오 루카복음서주해, 1720) 수도원 전통 가운데 가장 빛나는 일은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로 이해합니다. ‘기도와 말씀봉사에만 전념’하겠다는 사도들의 결심(사도 6,4)처럼 매일 성경을 읽고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수행을 우선합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회칙에서 “기도하고 일하라”고 합니다. “복음은 세상의 바이러스를 이겨낼 항체”(2017.12)라고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신앙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상으로 자라난다고 가르치십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서 침묵 중에 말씀을 경청하는 관상기도에 열정을 보입니다. 임마누엘 예수님 곁에서 친밀한 우정을 쌓고 침묵 속에 말씀을 경청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몫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도 이러한 만남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과주의와 생산성이란 잣대로 업적을 평가하는 오늘날 주님의 말씀 묵상과 충실한 기도의 힘은 참으로 값진 무기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너무 많은 일에 매달려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활동주의는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말씀의 경청과 사랑의 봉사는 어느 것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흔들림 없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기도 속에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일이 우선이며,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좋은 몫의 선택이요 소명입니다. 마더 데레사 성녀의 말처럼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충실한 믿음은 바로 기도의 열매입니다. 아멘!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