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르타가 없었으면 예수님 일행은 진지도 드시지 못하셨을 텐데 …….
과연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을 어제 복음과 연결시켜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어제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 관한 비유를 통하여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면,
오늘 마르타와 마리아에 관한 말씀은 첫째 계명인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중요성,
곧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 곧 음식을 준비하는 데 몰두하였기에
그분의 말씀을 들을 겨를이 없었고,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이러한 행동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물론 마르타의 헌신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어찌 그 정성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외적인 봉사 활동은 과소평가하시고
관상이나 기도 생활을 더 높게 평가하셨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 복음은 손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올바르게 모시고 섬기는 적절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요.
곧 지나치게 필요 이상의 음식을 준비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그분을 제대로 대접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 말씀은
마르타와 마리아의 관계에 국한시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에 함축된 뜻은 마르타가 방해받지 않고 음식 준비를 잘할 수 있었듯이,
마리아도 방해받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필요한 일’이란 음식을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는 마르타에게
당장 필요한 일을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마르타적인 것과 마리아적인 것, 모두가 필요합니다.
활동과 봉사에 성실하다 보면 묵상과 기도 생활을 소홀히 할 수도 있기에,
두 가지가 중용을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는 말씀을
마르타와 마리아의 관계를 떠나 다른 경우와 연결시켜 생각한다면,
말씀을 듣고 말씀 안에서 주님을 만나며 그 말씀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가장 “필요한 것” 한 가지가 아닐까요?
말씀을 듣는 것이 원천과 출발점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의 행위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