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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성 마르첼리노와 성 베드로 순교자 / 니코시아의 성 펠릭스 수도자

Berardus 2022. 6. 1. 16:51

6월 2일

성 마르첼리노와 성 베드로 순교자


Saints Marcellinus and Peter

Santi Marcellino e Pietro
San Marcellino Martire
Marcellino, diminutivo di Marco = nato in marzo, sacro a Marte, dal latino
San Pietro Martire
Pietro = pietra, sasso squadrato, dal latinom. 304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 박해시 이들의 순교에 대한 기록은

형집행인으로부터 그 기록을 입수한 성 다마소 교황이 전해준다. 

그들은 어떤 숲에서 참수형을 받아

비아 라비카나의 앗 두아스 라우로스라는 묘지에 묻혔다.

교회에 평화가 왔을 때 그 무덤 위에 대성당을 세웠다.



오리게네스 사제의 순교 권고사에서

(Nn. H. E. PG. H,618-619)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같이 당하고 있으니

그의 위로도 같이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옮겨 감으로써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다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가지 않고

아직 죽음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죽음의 어둠에서 나와

소위 말하는 살아 있는 돌로 지은

생명의 빛이 비추는 건물에 들어간 이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셨으니"

우리도 그분을 위해 우리 생명을 바칩시다.

그런데 우리가 생명을 바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또 우리의 순교를 보고 감화를 받게 될 이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가 자랑할 시간이 왔습니다. 성서는 말해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에 대해 자랑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가져 오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가지고 오며

끈기는 희망을 가지고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쁘게받아들입시다.


우리가 많은 위로를 받기 원한다면 많은 고난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애통하는 이들도 위로를 받겠지만

아마도 같은 정도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다 똑같은 정도의 위로를 받는다고 하면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이들은

참여하는 고난의 정도에 따라 위로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확신에 찬 사도의 다음 말씀에서 이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은총의 시기에 나는 너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봉사 때문에

경비병에 둘러싸여 패배자처럼 하지 않고

승리자처럼 엄숙히 사형대로 끌려 나가는 날보다

더 은총이 넘치는 때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으뜸들과 권세들을 완전히 눌러 이기고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를 거둡니다.

그들은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므로 그분이 고통을 통하여 얻은 것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세상을 하직하는 날말고 구원의 날이 또 있단 말입니까?

"나는 간청합니다. 우리가 하는 전도 사업이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여러분은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은 조금도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온갖 인내심으로 무슨 일이나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일하십시오."

다음의 말씀을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십시오. "이제 내 바랄 것이,주여, 무엇이오니까?

내 소망, 그것은 당신께 있나이다."      

-가톨릭굿뉴스홈에서-

 

 

성령칠은  

 

성령이 베푸는 7가지 은혜는 개인의 신앙을 성숙시켜 견고하게 해주고

덕을 닦을 수 있는 자세를 키워주는 은사입니다.

칠은 중에 지혜(sapientia, 슬기)·이해(inteleetus, 깨달음 또는 통달)·의견(consilium, 일깨움)·지식(scientia, 앎)의 은혜는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덕으로 나아가도록 인간의 지성을 준비시켜 주고,

용기(fortitudo, 굳셈), 효경(pietas, 받듦 또는 공경)· 두려워함(timor, 경외)의 은혜는

인간의 의지를 굳세게 해줍니다.

그리고 칠은은 대신덕(향주삼덕)과

윤리덕(사추덕)을 닦도록 도와줍니다.

 

용기 굳셈 / 열매:기쁨.온유

이 은사는 신앙 생활 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떤 위험이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고 부동한 신뢰심을 지니고 덕을 실천하도록 성령이 영혼에게 주는 힘입니다.

이 은사가 작용할 때 신자들은 성령으로부터

직접 나오는 내적 충동에 의해 행동하게 되고

다른 덕행들도 영웅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덕행이건

그것이 완성되려면 용기의 은사가 필요하고

은총의 상태에 항구하기 위해서도 이 은사가 필요합니다.

이 은사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있어

미지근함을 극복하고 열렬히 하느님을 섬기게 하며,

유혹이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덕의 실천에도 놀라운 활기를 줍니다.


또한 인내심을 갖고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고

지혜롭게 극복하도록 해주며 갖가지 위험이나 적을 만났을 때

담대하고 굳세게 처신하도록 해주고

크고 작은 일들을 충실히 영웅적으로 수행하도록 합니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성령강림대축일(이동대축일)2004.5.39.2005.5.15:게시판1790번 




성마르첼리노(303년 순교)와 성베드로 순교자(304년 순교)


마르첼리노와 베드로는 로마 경전의 성인에 속하기에

충분할 만큼 교회의 기억에서 두드러진 인물들이다.


그들의 이름은 우리의 성찬 기도 제1양식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마르첼리노는 사제였고 베드로는 구마자였다.

그들은 디오클레시아노 황제의 박해중에 참수되었다.

다마소 교황은 그들의 사형 집행인이 이야기한 내용을 전해 준다.

즉 두 순교자는 어떤 숲에서 참수형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들이 묻혀 있는 로마의 묘지 위에 대성당을 세웠다.

그들의 죽음에대한 보고서를 근거로 하여 수많은 전설이 흘러 나왔다.

이 사람들에 대하여는

거의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이들의 이름이 우리의 성찬 기도안에 들어있으며 그들의 축일이 제정되어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교회가 그들을 존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한때 온 교회에 걸쳐서

힘찬 격려를 해주었으며 신앙의 궁극적 단계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순교자들은 자기 피를 흘림으로써

믿음과 사랑의 최고 증거를 보였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보다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교회는 언제나 믿었다."(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50항)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다마소 1세 교황 축일:12월11일.게시판1518번.

*성녀 헬레나 황후 축일:8월18일.게시판1320번.

*성 콘스탄티누스 대제 축일:5월21일.게시판1773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성 마르첼리노는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 시대에

로마에서 활동하던 가장 뛰어난 사제이고,

성 베드로는 구마자로 알려져 있다.

이분들이 많은 개종자를 얻었는데,

그들 가운데 간수장 아르테미우스의 아내와 딸이 포함되어 있었다.


순교자들은

이들 모녀의 신앙을 돈독히 하도록 노력하던 중에 체포되어,

실바 느그라 숲으로 끌려가서 참수치명 하였다(304년).

 이분들의 순교는 그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전해 오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교황 다마소가 이분들의 묘비명을 세웠고,

콘스탄틴 황제는 그 무덤 위에 교회를 세웠으며

그의 모친 성녀 헬레나를 안장토록 조처한 것으로 보고 두 분 순교자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높은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따름이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성녀 헬레나 황후 축일: 8월18일.게시판1320번.
*성 콘스탄티누스 대제 축일:5월21일.게시판1773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마르첼리노는

디오클레시아노 박해 때에 로마의 뛰어난 사제였고,

같이 순교한 성 베드로는 구마자였다.

이들은 새로운 개종자와 더불어 신앙을 돈독히 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개종자중 어느 간수의 아내와 딸 때문에 체포되어

고문받고 니그라라는 숲에서 참수되었다


그들의 유해는 귀부인인 루실라와 피르미나에 의해 몰래 옮겨져,

라 라비카나의 성 티부르시오 카다콤바에 안장되었다.

교황 다마소는 그들의 묘비명을 세웠고, 콘스탄틴 황제는 그 무덤에 성당을 지었다.

-부산교구홈에서-

 


6월 2일(6월 1일)

니코시아의 성 펠릭스 수도자


San Felice da Nicosia Religioso Cappuccino

Nicosia, 5 novembre 1715 - Nicosia, 31 maggio 1787 

Beatified:papa Leone XIII, 12 febbraio 1888.
Canonized:Papa Benedetto XVI, 23 ottobre 2005
Felice = contento, dal latino

  


키프로스(Cyprus) 섬 니코시아에서 태어난 시칠리아(Sicilia) 사람인 그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이었다.

20세 때 카푸친회의 입회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고행하며 지내다가,

그 후 7년 뒤에야 미스트레타 수도원에 들어가서 펠릭스란 이름을 받았다.

  


그는 주로 엄격한 고행과 탁발에서 큰 덕을 쌓았고, 이웃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하였다.

또한 육체는 물론 영적인 병을 앓는 사람을 치유하는 놀라운 은사가 그에게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회개하였다.

 

60세가 지난 후에도 그는 여전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간구하고 병자를 치료하였으며 노동을 계속하였다.

허가 없이 행한 일은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순종하면서 살다가

72세의 일기로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그는 1888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가톨릭굿뉴스홈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게시판1403번.
*성프란치스코의 거룩한 상흔 축일:9월17일.게시판1369번.

 


성 펠릭스는 72년 동안 수련기 1년을 제외하곤 이태리 시실리에 있는

지리학 센터 부근의 Demone 계곡에 위치한 니코시아의 고향 마을에서 살았다.

 1715년 11월 5일에

구두 수선공인 아버지에게서 야고보라는 세례명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은 매우 가난했기에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으나 가지 못하고

구두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구두를 잘 만들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장인에게 어린 견습공으로서 보내졌다.

아버지는 그가 능숙한 구두 수선공이 되어 명성을 얻고 고객들을 확보함으로써

가족의 생계가 잘 보장되길 바랬다.

 그의 가족은 매일 기도와 전례에 참석했다.

가족들은 고된 일과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매일 저녁 가족을 위해 묵주기도를 했다.


기적의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일요일은 기념할 만한 특별한 날이었다.

가족들은 카푸친 작은 형제들에 의해

지도되는 Cappuccinelli로 알려진 성체회의 회원으로 등록되었다.  

그는 성장하면서 내적 고요에 머무는 것을 습득했고,

“주님의 사랑을 위해서”를

자주 반복하는 기도와 포기하고 수긍하는 태도를 계발시켰다.

성당의 저녁 종이 울릴 때, 그는 그의 동료들을 기도로 이끌곤 했다.

그가 그의 직업을 그만두었을 때 그가 쓰던 구두 수선 탁자는

“야고보가 일하던 장소”로서 존경받을 만큼 그는 높은 존경심을 받았다.

-[다음에 계속]-카푸친카페에서-

 

*카푸친작은형제회 성인들 Capuchin Franciscans:

비테르보의 성 크리스피노(축일:5월21일(19일),게시판1773번.1891번)
단순성과 기쁨.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1587년.축일:5월18일.게시판1770번.1166번)
만디츠의 성 레오폴드 사제(축일:5월12일,게시판1759번,1890번)
라코니의 성 이냐시오 수도자(축일:5월11일.게시판1757번)
신앙을 수호하다 순교한 식마린겐의 성 피델리스 사제(축일:4월24일.게시판1727번,1119번)
빠르잠의 성 곤라도 수도자(축일:4월21일.게시판1722번)
성 요셉 레오네사(축일:2월4일.게시판1601번)
꼬를레오네의 성베르나르도 수도자(축일:1월12일(19일),게시판1564번)
아크리의 복자 안젤로(축일:10월30일.게시판1444번)
성 세라피노(축일:10월12일.게시판1417번,691번)
캄포로쏘의 성 프란치스코 마리아(축일:9월20일(25일)게시판1384번)
오상의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축일:9월23일.게시판1379번)
복자 오피다의 베르나르도(축일:8월26일(23일)게시판1334번)
복자 아가탄젤로와 카시아노 동료순교자(축일:8월7일.게시판1305번)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 사제 학자(축일:7월21일.게시판1283번)

니코시아의 성펠릭스 수도자(축일:6월2일.게시판1794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카푸친은 기도의 교사로서

 

플라비오 로베르또 형제(o.f.m.cap. 전 총봉사자)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기도의 사람이기도 하고, 기도의 교사이기도 했다.

첼라노의 토마스는 우리에게 프란치스코가

"기도하는 사람이기 보다는 기도 그 자체가 된 사람이었다"


(2 첼라노 95)고 이야기해준다. 

성 보나벤뚜라는  프란치스코가 그 기도 안에서 찾게 된 관계를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한다.


 "현시를 봄으로써 그분의 영혼이 녹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상처들이 항상 그 눈앞에 있게되는

그 만큼 그리스도님의 수난에 대한 기억은

그 정도로 긴밀하게 그 분의 마음에 되새겨 있었다.........

프란치스코가 자기가 그 숨은 보물 ,

그 값진 밝은 진주를 찾아냈다고 느끼게 되었다......."(대 전기 1.4)


프란치스코의 둘레에 있는 이들을

따뜻하게 하는 불은 기도의 결과인 그 불이었다: 

그 불을 다른 사람들이 매력적인 것으로 보아서 그 불은 그들을 이끌어

프란치스코를 기도의 선생님으로 삼아 그에게 찾아가게 하였다.

그러나 타인과 그 개인 경험을 나눌 수 있기 전에

프란치스코의 기도는 발전하여 성숙해져야 했다.


고상 앞에서 바쳤던 그의 첫 기도에서 우리는 건전한 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님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

제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 주소서".

이 초기 때에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님으로 가득 차게 되었는데

 "사실 예수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사로잡으셨다..."(1 첼라노 115) 

 ’주의 기도 풀이’에 이르렀을 때에는

프란치스코의 기도가 조금씩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자기에 대한 근심은 타인과 함께 기도하는 것으로 변모되어 있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지극히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

모든 이를 당신은 사랑하도록 저희이 힘이 닿는 대로 그들을 이끌어...

저희 몸과 같이 저희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노래"에서 그 기도의 사회적 일면은 더욱 더 깊게 된다.


맨 처음으로 서방 그리스도의 영성에서

자연의 요소들은 "형제 자매" 라는 친밀한 용어로 묘사되는 존경을 받는다.

프란치스코는 그와 함께 기도하도록 온 누리(우주)를 초대한다.

같은 주제는 1221년의 회칙 23장에 영향을 끼친다.

형제들의 기도에 달려있는 그 기쁨은 그들과 함께 노래하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싶어했던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되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코와 그 첫째 형제들은 교회에 새롭고 놀라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즉 그들은 수도승원에서만 찾게 되었던 그 기도와

하느님께 대한 그 경험을 장터에 가져 나갔다.

프란치스칸 샘들에서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은

어떻게 은둔을 찾았다가 그 은둔의 열매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주었느냐는 여러 개의 예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기도는 흘러 넘쳐서 다른 사람들을 향했다.

그들은 하느님께 접근하는 것에 관하여 새 교훈을 세상 만민에게 가르쳐 주었다.

프란치스코와 그의 제자들이

다른 이들에게 남겨 준 가르침의 초점들은 다음과 같다.


1. 하느님께 완전히 점령되도록 우리는 은둔의 분위기를 창조할 필요가 있다. .

(은둔소를 위해 쓰신 회칙; 제1회칙 7장, 인준 받은 회칙 5장과 8장,2 첼라노 96)

2. 기도는 사람이 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이 되는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종들은 기도나

어떤 올바른 일에 항상 종사해야 합니다"(제 1회칙 7장)

3. 정신적 기도와 관상은 길러질 일이다.(보나벤뚜라 대 전기 4장3절)

4. 형제들의 첫째로 가는 성소는 기도하는 것이다.

   일과 학문은, 이들이

"거룩한 기도와 거룩한 신심의 영을 끄지 않을 그 만큼만"

(인준 받은 회칙5장, 안또니오 성인에게 보내신 편지) 허가 되어있다.

5. 기도는 인간 수고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 또는 선물이다.(제 1 회칙 17장)

6. 깨끗한 마음과 단순한 의향은 기도 생활에 있어서 깊어질 조건이다.

(인준 받은 회칙 5장,제1회칙 22장)


프란치스코는 이 교훈들을 형제들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말로써 가르쳤다.

그러나 이 가르침들을 가장 많이 입증하는 것은 그가 살았던 기도 자체였다. 

프란치스코가 기도와 은둔에 집중한 바로 그것은

16세기의 카푸친 개혁의 회원들이 가장 소중히 여긴것이었다.

첫 카푸친 형제들이 알바치나에 있는

산타마리아 델라콰렐라라의 성지에서 1529년에 모였을 때에

그들은 기도와 관상과 관련되어 있는

프란치스코의 가르침과 생애의 전면에 온전히 집중하였다.


"은둔 생활 양식의 더욱 작은형제들의 회헌"은

공동체를 도전하며 정신적기도에 4시간을 지내게 하는것이었다.

이러한 생활의 틈새를 마련하기 위해 성무일도는

노래와 장식없이 바쳐야 했고, 과도한 음성기도는 피해졌다.

형제들은 외딴곳에 살아야 했으며

개인기도와 신비적 관상은 개혁의 중심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수도생활의 관상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은

포쏨브로네의 루도비꼬의 개인적인 인격과

가말돌리회의 은둔 수사들의 영향을 드러낸다.

 

로마에 있는 성 에우페미아 수도원에서

1645년 11월에 형제들이 다시 모였을 때에

관상과 봉사의 조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기도가 아직도 그들의 생각에서 우선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기도가 형제들의 영적인 교사이므로 ,그리고 신심의 영이 미지근해지지 않도록...

우리가 미지근하고 미온적인 이들을 위해서는 적어도 2시간의 기도를 제정하는데

과연 참으로 영적인 형제들은 늘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1535년 회헌 41조)

알바치나 문서에서 보게 되는 4시간의 묵상을 의무적인 2시간으로 줄였으며

은둔-관상의 일면을 수도회의 사도적 부르심과 균형에 두려는 노력이 있었다.

 

관상은 형제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설교하는 이들로,

신적인 친밀감에 성장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이들이 될 능력을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활동주의에 대한 조심은 언제까지나 카푸친회 은사의 특성으로 남게 될 것이다.

다음의 원칙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카푸친 전통의 일부로 재확인 될 것이다.

 

카푸친은 자기 자신이 기도함으로써 기도의 교사가 될 줄을 배운다.

1536년의 문맥의 대부분은 아직도 우리 현 회헌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복되신 예수님 친히 그들로 하여금 그냥 말로만이 아니고 훨씬 더 많이 실행으로,

사랑의 충만에서부터 말하게 자극시키실 수 있도록 설교자들은

그 예수님을 그들의 마음에 새겨서

그분께 평화로운 점유권을 드리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

카푸친들이 반종교 개혁의 운동에 이바지한 초점은

영적 쇄신을 이루려는 그들의 노력이었다.

그들은 개인 기도와 관상의 교실에서 배웠던

그 교훈들을 말과 모범으로서 설교하고 가르쳐 주었다.

 

21세기의 카푸친들도 그 똑 같은 초점을

현대 세상에 전해 주기를 계속해서 소원하고 있다.

이것은 1973년에 떼제에서 확인 되었는데 거기서 제3차 수도회 전체 공의회는 다음의 구절들을 긍정했다.

"성령의 자극을 받아서 기도는 인간 마음의 지극한 필요를 표현하는 것이며,

사랑의 호흡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6조)

"형제들은 어디서나 신자들 가운데와 특히

우리 형제회들과 온 프란치스칸 가족에서 일하게 될

특별히 수련을 받은 기도 및 영성 생활 고무자들을 필수적으로 경험하고 있다"(24)

1982/1990년의 회헌은 이 모든 점을 모으기도 하고 확장하기도 한다.

"기도 , 특히 내적인 기도의 영을 하느님 백성 가운데서 극진히 기릅시다"(56조 6항)

"우리는 그 분의 사랑의 증인들로서 모든 이들을

하느님께 대한 찬미에로 초대하여 평화와 참회를 전하면서

 세상을 두루 다닙시다"(46조 7항)

현대 세상은 카푸친이 품는

다음의 가장 깊은 소망을 이루어짐에 준비된 상태로 있다:

즉 기도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 할 줄도 가르치려는 그런 소망 말이다 

-(카푸친작은형제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