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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예수 성심 대축일 / 성녀 요안나 아르크(잔다르크)동정 / 성녀 밥띠스타 바라노 동정

Berardus 2022. 5. 29. 15:51


예수성심대축일


Sacred Heart of Jesus
Sacro Cuore di Gesù
(celebrazione mobile) - Solennità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는 축일로,


성체성사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첫 금요일에 지낸다.

이 축일은 중세에 이르러 일반화되기 시작하여,

1856년 교황 비오 9세가 예수 성심을 공경할 것을 권장하면서

예수 성심 축일을 라틴 교회 전례력에 도입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축일로 지내게 되었다.

 

1955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사제들이

복음 선포의 직무를 되새기고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예수 성심 대축일을 "사제 성화의 날"로 정하였다.

오늘 우리는 사제들을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가톨릭굿뉴스홈에서- 



예수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는 대축일이며

성체 성혈 대축일 주간의 금요일에 지켜집니다.

예수 성심께 대한 공경은 중세기에 와서 상당히 일반화되어

성 요한 에우데스는 예수 성심 신심과 그 축일 제정의 신학적이고

전례적인 기초를 확립하기에 이르렸습니다.

또한 1673년 12월 27일,

프랑스 방문회 수녀였던 성녀 마르가리따 마리아 알라코크에게

예수님께서 발현하시어 성심 공경과 성심 축일의 제정을 요청하시게 되어,

성심께 대한 신심이 공적으로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성 요한 에우데스 사제 축일:8월19일,게시판1322번.

*성녀 마르가리따 마리아 알라코크 축일:10월16일.게시판1423번.

*성녀 파우스티나(하느님 자비 주일)축일:10월5일.게시판1405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이후 1856년 교황 비오 9세는

전세계 교회에서 예수 성심을 공경할 것을 지시하고

예수 성심 대축일을 제정하였습니다.

1899년 교황 레오 13세는 이축일의 전례상의 등급을 높이고

온세계를 예수 성심께 봉헌하였습니다.

또한 1928년 교황 비오 11세는

이축일을 8부 축일(이것은 1960년에 폐지됨)로하고

회칙’극히 자비로운 구원자’를 통하여

예수 성심 축일을 위한 기도문과 취지를 규정하고

세계를 예수성심께 봉헌하는 예절을

매년 그리스도 왕 축일에 경신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한편 축일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1956년 비오 12세는

예수 성심 공경에 관한 회칙을 발표하여

예수 성심 공경을 더욱 구체화하였습니다

 

1969년 이래로 대축일로 지켜지고 있는데

그 날짜가 성체 성혈 대축일 주간 금요일로 지정된 것은

예수 성심이 성체성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995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이날을 사제성화의 날로 정하여

사제들이 완덕에로 나아가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중세와 고대이래 신비가들에게 있어 예수의 상처난 옆구리가

그들 묵상의 열렬한 대상이 되기는 하였지만

성심 축일이 생겨난 것은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노르망디 사제 요한 에우데스가 맨 처음 성심 축일 미사를 드린 것은

1672년 10월 20일이었다.

 

몇 년 후(1675) 빠레이-르-모니알(Paray-le-Monial)의 성모 방문회 수녀

마르게리트-마리 알라꼭크(Marguerite-Marie Alacoque)가 받은

주님의 계시가 이 신심을 널리 퍼지게 하는데 공헌하였다.

 

성심 축일이 퍼져나가면서 수많은 전례문도 함께 퍼져나갔다.

1672년부터 1840년 사이에 프랑스의 교구들과

수도회들이 사용하고 있던 전례문은 30가지가 넘었다.

1765년부터 1970년 사이에 로마는 이 가운데 네 개를 인정하였다.

이 네 개의 미사 전례문 가운데,

폴란드와 포르투칼에 넘겨준 "Miserebitur" 미사(1765),

비오 6세가 베네치아와 오스트리아 및 스페인에 넘겨준

"Egredimini" 미사(1778)가 있다.

 

비오 9세는

"Miserebitur"로써 성심 축일을 라틴 교회 전체에 퍼뜨렸으나,

일부 지방에 고유한 것으로 되어 있는 시간전례와 "Egredimini" 미사도 남겨 두었다.

1929년 비오 11세는 새 미사 경문(Cogitationess)과 시간전례 기도문을 만들었다.

마침내 1970년에 "Cogitationess" 미사를 고치고

여기에 삼 년 주기의 독서 9개를 붙였다.

 

교황청이 인정한 네 개의 미사 외에

"예수 성체 성심" 축일 미사도 있었는데,

이 축일은 이를 요구하였던 모든 교구를 위해 1921년 인정된 것으로서,

1960년에 폐지되었다.

전례문이 여러 가지가 있음으로 해서

이 축일의 주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잡아내기가 어렵다.

 

이러한 다양한 전례문들 안에는,

성 요한 에우데스와 성녀 마리게리트-마리 알라꼭크가 주도한

근대 성심 신심을 특징짓는 두 가지 흐름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함에 대해 감사 드리는 것(에페 3,8)과,

관통된(상처 입은) 성심을 뉘우치는 마음으로 관조하는 것(요한 19,37)이다.

 

"Egredimini" 미사(성탄 감사송)는 첫 번째 흐름을, "

Miserebitur" 미사(십자가 현양 감사송)는 두 번째 흐름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비오 11세의 명에 따라 만들어진

미사 경문과 시간전례 기도문에 뚜렷이 드러나는 것 역시 속죄의 정이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홈에서-

 


1.예수 성심 공경의 의의
 
예수의 성심을 공경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때문에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심장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고

우리 죄를 아파하시는 예수님의 인격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기관이고,

예수님의 영혼에 그리고 천주 성자위(聖子位)에 결합되어 있어 

공경의 대상이 된다.

마음의 상태를 제일 먼저 드러내는 기관이 심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즐거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 슬픈 마음,

기쁜 마음이라는 말을 쓰고 심장을 이런 마음의 상징으로 삼는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신자들은

성심을 열심히 공경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확고히 다지고

많은 냉담자를 회개시켰으므로 예수성심 대축일 감사송에서

"모든이가 구세주의 열리신 성심께로 기꺼이 달려가

끊임없이 구원의 샘물을 펴내나이다"하며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그 열정이 십자가를 선택하게 하였고

그분의 끊임없는 사랑이 성사 안에서 우리를 끌어당기며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있다.
 
성 보나벤뚜라는

"십자가 위에서 잠드신 그리스도의 늑방(심장)에서 교회가 생겨나고,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419, 37)"라는

성서 말씀이 성취되도록

하느님의 성의(聖意)는 한 병사가 창으로 그 거룩한 늑방(심장)을 헤쳐 열어

우리 구원의 대가인 피와 물이 훌러나오도록 했다.
 
그분 성심의 은밀한 샘에서 흘러나온 이 피와 물은

교회의 성사에 은총의 생명을 베풀 힘을 주었고,

이미 그리스도 안에 사는 이들에게는

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 게 하는 생명수가 되었다"

(생명의 나무에서)고 했다.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축일:7월15일.게시판1274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2. 예수 성심 공경의 중요성
 
예수 성심을 믿는 마음으로

열성을 갖고 생활하는 데 있어서 그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내적 신심으로서의 정신적 측면이다.
 
(1) 그리스도를 깨닫고 알기 위해 주의 생애, 수난, 성체를 깊이 묵상하면서

주의 성심을 사랑하도록 힘써야 한다.
 
(2) 예수 성심을 사랑해야 한다.

성심의 사랑은 특별히 성체성사에 담겨 있으니

성체 앞에서 조배드리고 묵상하고 기도함으로써 공경해야 할 것이다.
   
예수 성심을 믿고 생활하는데 있어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외적 신심이다. 
외적 신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몇가지만 알아보면, 


(1) 예수성심 대축일 :

성체성혈 대축일 후 금요일을 축일로 정하고 배반 당하신 성심을 위로한다. 
매달 첫 금요일에 미사에 참여하면서

예수의 수난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팽개쳐져 있는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보상하는 지향을 두고 영성체하기를 아홉달 동안 계속한다.
 
(2) 성시간 : 죽음의 고통에서 고민하신 예수의 수난에 관하여

묵상하거나 합당한 기도를 바친다.
 
(3) 예수성심 성월에는

특별히 예수 성심께 자신과 가정을 봉헌하고 기도를 바친다.

예수 성심은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므로 우리 모두는 예수 성심을 공경해야 한다.

 

특별히 성체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은혜와

그리스도의 마음과 일치할 수 있는 생활을 하도록 주님께 청해야 하겠다.

 


3. 예수성심의 약속
 
1674년 성년 말가리다 마리아

알라꼭(축일:10월16일)이 성체조배를 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성심을 열어 보이시고 
죄인들의 냉담과 배은망덕을 탄식하시면서

"적어도 너는 온갖 힘을 다하여 죄인들의 배은을 보속하라"고 부탁하시면서, 
그방법으로 자주 영성체하고 매달 첫 금요일에 영성체할 것과

성시간을 가질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다음의 약속을 하셨다.
 
 - 내 성심을 공경하는 자들의 지위에 요긴한 은총을 준다. 
 - 저들의 가정에 평화를 준다.
 - 저들의 모든 근심 걱정중에 위로를 준다. 
 - 저들이 살아 있을 때와 특히 임종시에 저들의 의탁이 될 것이다. 
 - 저들이 경영하는 모든 사업에 풍성히 강복할 것이다. 
 - 죄인들은 내 성심에서 무한한 인자의 샘과 바다를 얻을 것이다. 
 - 열심한 자는 빨리 완덕에 나아갈 것이다. 
 - 내 성심 상본을 모시고 공경하는집안에 강복할 것이다. 
 - 사제들에게는 극히 완악한 마음이라도 감화시키는 은혜를 줄 것이다. 
 - 내 성심 공경을 전파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내 마음에 새겨 없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 누구든지 9개월 계속하여 첫 금요일에 영성체하는 사람에게는

    마지막 통회의 은혜를 주어 은총 지위에서 죽게 할 것이다.  
 


 4.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의 올바른 정신
 
이 신심의 참 뜻은 예수님의 구원적인 그 사랑에 대해 보답하기 위해

우리가 애정을 갖고 성심을 공경하며 사는 데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그의 인성이 갖고 있는 사랑 전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적인 사랑을 갖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인간들을 구하시고자 하는 신적인 사랑을 갖고 계신 분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수난 당하실 때

그분의 마음을 한없이 커다란 고통을 맛보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고 애통해 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죄를 통회하고 보속함으로써,

그 고통을 감해 드리고 위로해 드린다는데 
이 신심의 뜻이 있는 것이다. 
이 신심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성심을 닮아가는데 그 뜻이 있으며

성서를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는 것이 올바른 신심이라 하겠다.
  


5.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행위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은

한마디로 예수님 마음에 대한 우리의 신심행위이다. 
신심은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예수님의 구원적인

그 사랑에 대하여 보답하기 위해

우리가 애정을 갖고 성심을 공경하며 사는데 있다.

신심행위는 하느님의 신비와 하느님과 관련된

어떤 창조적 실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경함으로써

하느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행위이다.
 
교회사를 통해서 사도시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에서 각종 신심행위가 태동하여

교회 쇄신과 신자들의 영성생활의 활성화에 기여하여 왔다.
 
신심행위는 성사가 아닌 예배행위이며

이를 전례와 관련시켜 볼 때

준전례적인 행위와 비전례적 행위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성체성사와 연관된 성체현시, 고백성사와 연관된 말씀의 전례 등

성사집전의 연장적 성격을 띤 신심행위들이다.
 
이와 달리 후자는 로사리오 기도,

십자가의 길 등 성사집전과 무관한 신심행위들이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항상

하느님께 대한 예배를 지향하는 한 전례와도 관계를 지니지만

엄격히 말해서 전례는 아니고 전례에 비하여 2차적인 예배행위이다.
 
예수성심 성월의 신심행위에는

성시간, 신자들의 기도와 희생, 보속 등이 있고

특별히 교회에서는 성월기도로

"예수성심께 천하만민을 바치는 기도"를 바칠 것을 권장한다.
   


1) 예수성심 봉헌
 
예수성심 봉헌은 그리스도의 인성의 측면에서 감성적,

이성적 사랑의, 그리고 신성의 측면에서 신적인 사랑,

즉 사랑의 상징인 그리스도의 심장을 봉헌의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여

인격 전체를 예배하는 신심행위이다.
 
그 내용은

(1) 그리스도의 구속사랑을 모방하고

(2)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을 봉헌하며  
(3)구속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에 참여함으로써 죄의 보속을 행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성심강림 후 둘째주일 다음 금요일에

교황 비오12세가 권고한 보속행위를 하면서 예수성심 축일을 지내고, 
매월 첫금요일에 보속의 정신으로 미사참여, 영성체, 성시간을 가지며,

그리스도왕 대축일마다 자신의 봉헌, 예수성심 호칭기도,

가정봉헌 기도를 바친다.

  

 
2)성시간
 
성시간은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의 하나로서

한시간 동안 특별히 겟세마니에서의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하며 지내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와 함께 단 한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마태 26, 40)라고 한 

성서말씀에 근거하여 시작된 성시간은 

성체현시와 예수 수난에 대한 묵상, 장엄기도, 성가, 성체강복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공동체에 의해서 또는 개인적으로 이루어 진다.

 

*성주간. 성목요일:게시판1696번.1702번,1703번.

*성체 현시대의 주보 성녀 글라라 축일:8월11일.게시판1312번.1313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6. 예수성심과 성모성심
 
성모성심은 예수성심과 성격이 매우 다르다.

예수성심은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인간은 배은하기 때문에

모욕된 사랑에 대하여 보속하는 사랑이 그 목적이다.
 
그러나 성모성심은 하느님가 예수께 대한 성모 마리아의 사랑이 그 목적이다.
 
"성모 마리아는 우리 마음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꼐 바치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힘쓰시는도다"라고 한

성 프란치스꼬 살레지오의 말씀처럼

성모성심은 성총의 모친이시므로 자기 눈물로 우리를 낳으시고자 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

 

성모의 보혈로 된 예수성심에는 성모의 품성이 담겨있고
성모성심에는 천주성신의 전능으로 된 예수성심의 품성이 들어 있다

< 발췌 : 디다케 1993년 6월호 >
-가톨릭굿뉴스홈에서-



예수성심께 천하 만민을 바치는 기도


 

○ 지극히 어지신 구세주 예수님,
   주님 앞에 꿇어 경배하오니
   저희를 굽어살피소서.
●저희는 이미 주님의 백성이오니    
   언제나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나이다.
   주님과 하나 되고자
   오늘 저희를 주님의 성심께 봉헌하나이다.
○주님을 일찍이 알아 모시지 못한 사람도 많고
   주님을 알고도 주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주님을 떠난 사람도 많사오니
●지극히 인자하신 예수님,
   이런 사람들도 다 불쌍히 여기시어
   주님의 성심께 이끌어 들이소서.
○주님께서는 목자이시니
   주님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을 보살피시고
   이미 주님을 떠난 사람들은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어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
●옹졸한 고집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나
   불목하여 갈린 사람들도 부르시어
   저희가 모두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한 우리에서 한 목자 밑에 살게 하소서.
○주님, 거룩한 교회를 평화의 깃발로 세우시고
   모든 나라에 참된 평화를 주시어
   온 세상 어디서나 입을 모아
   저희를 구원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원히 찬미와 영광과 흠숭을 드리게 하소서.
◎ 아멘.
○ 예수 성심.
● 이 세상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사제들을 위한 기도

○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
주님을 본받으려는 사제들을 지켜주시어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소서.


● 주님의 영광스러운 사제직에 올라
날마다 주님이 성체와 성혈을 이루는 사제들을
언제나 깨끗하고 거룩하게 지켜주소서.


○ 주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사제들을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 사제들이 하는 모든 일에 강복하시어
은총의 풍부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 저희로 말미암아
세상에서는 그들이 더없는 기쁨과 위안을 얻고
천국에서는 찬란히 빛나는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 아멘.
 

5월 30일 성녀 요안나 아르크(잔다르크)동정


St. JOAN of Arc St. Joanna ad Arc, V Santa Giovanna d’Arco Vergine Born:6 January 1412 at Greux-Domremy, Lorraine, France Died:burned alive on 30 May 1431 at Rouen, France Beatified:11 April 1905 by Pope Saint Pius X Canonized:16 May 1920 by Pope Benedict XV Name Meaning:God is gracious 프랑스 동레미의 시골 농부인 쟈크 다크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다섯 자녀의 막내이나, 어려서부터 열심하였다. 13세 때에 그녀는 처음으로 초자연적 환시를 보았는데,
밝은 빛이 내리 비치는 중에 신비스런 목소리를 들었다고 묘사하였다. 세월이 감에 따라, 그 목소리는 성 미카엘,
성녀 가타리나 그리고 성녀 마르가리따의 소리라고 확신하게 되었고, 자신의 사명은 도팽을 도우므로써
프랑스를 구하는 것으로 계시가 밝혀졌다. 처음에는 프랑스군 사령관인
로베르 드 보드리꾸르가 비웃었으나, 그의 의혹은 그녀의 예언이 적중하므로써 제거되었으나, 1429년에 프랑스군이 오를레앙 교외의 헤링 전투에서 패퇴한 것이다.
이때 사령관은 그녀를 도팽에게 보냈는데, 챨스 6세의 아들인 그는
백년전쟁에서 영국인들에 의해 프랑스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녀는 그가 못된 인물인줄 알았으나, 계시에 따라 그에게 순종하였고,
그는 또 그녀의 사명을 인정하게끔 되었다.
그러나 프와티에의 신학자들은 그녀가 이단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으나,
시험적으로 오를레앙 방어를 맡기는데 동의하였다. 그녀는 흰 갑옷을 입고서
프랑스군에 최초의 승리를 안겨주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영국군의 대파 등등 연전연승에 거두었다. 1429년, 챨스가 라임스에서 챨스 7세로 대관할 때 그녀는
왕 옆자리에 앉았으나, 그때부터 왕은 더욱 방자해져서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그녀는 독자적으로 군대를 모으고 활동하다가,
콩피에뉴 교외에서 포로가 되어 영국군에게 돈으로 팔렸다. 그녀는 자신을 이단으로 모는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 틈새에서 자신의 환시가 마귀의 짓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사기극을 벌인 당시의 지도자들은 그녀를 끝내 화형에 처하기로 결정하고, 1431년 5월 30일, 루앙에서 처형하였다. 교황 갈리스또 3세(1455.4.8;4.20-1458.8.6)가 그녀의 무죄를 선언하였고,
1920년에야 시성되었다.
그는 프랑스의 제 2의 수호성인이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9월29일.인창동성당게시판1392번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가타리나 축일:11월25일.게시판1491번. *안티오키아의 성녀 마르가리타(마리나)축일:7월20일.게시판게시판1281번. 성교회의 수많은 성녀중에서 특별히 유명한 성녀이다.
태생지 프랑스에서는 "조국의 성녀" 라고 부른다. 성녀는 1412년 1월6일 프랑스 동부 무조강가의 돔레미 마을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당시 프랑스는 백년전쟁으로 국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영국군의 점령으로 프랑스 영토는 모두 함락당하는 순간에 이르렀다. 그때에 요안나는 20세였다. 어느날 자기 집 뜰 앞마당에 있을 때 갑자기
큰 광채가 보이면서 하느님의 소리가 들렸다. "조국을 구하라. 성당에 나가라" 그리고 또 여러번 미카엘 대천사가 나타나서
"이는 하느님의 뜻이다. 순명하여라" 하고 일러주었고 또한 성녀 카타리나와 성녀 말가리다가 자주 발현해서 요한나를 위로하며 격려하였다. 요안나의 사명은
오를레안의 성을 적군의 포위에서 구출 할것과 국왕 카를로 6세를 계승할 젊은 태자를 렌스에 인도하여 대관식을 올리게 해주는 일이었다.성녀는 국왕과 신하의 불신과 백성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신앙으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사명을 이룬다. 마침내는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온갖 수모와 고난 끝에 화형을 받게 된다.
1920년 교황 베네딕도에게 시성식을 갖게 되었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잔다르크 즉 아르크의 요안나는
교회의 많은 성인 중에서도 특별히 유명한 성녀이다. 그의 태생지 프랑스에서는 가끔 이 절세의 여걸을 조국의 성녀라고 부르며 언제나 그 나라의 자랑으로 삼고 있다.
성녀는 1412년 1월 6일 프랑스의 동북 뮤즈 강가에 있는 동레미하는 한 마을에서 어느 농가의 넷째 딸로서 태어났다.
소박한 부모는 땀을 흘리며 노동함을 함으로써 간신히 자녀들을 양육했다.그 당시는 마침 백년전쟁이 일어나
프랑스는 커다란 국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적인 영국군은 아침에 요새 하나를 점령하고
저녁에는 성 하나를 함락시키는 식으로 점차 침략의 손을 폈고 프랑스의 영토는 매우 줄어들어,나라의 운명은 마치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았으나
구원은 바야흐로 도래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구원을 가져오게 한 이야말로
순결하고도 경건한 한 소녀 요안나였던 것이다. 1424년 요안나가 20세 때의 일이다.그녀가 자기집의 뒷마당에 있노라니까
갑자기 커다란 광채가 보이고 그와 동시에 "요안나야, 점잖고 신심을 두텁게 하고 교회에 가보아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놀라며 무서워 떨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세 번이나 있은 다음 그녀는
그 소리의 주인공이 성 미카엘 대천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천사는 또한 "그대는 이 국난의 시기에 있어서 일어나
조국을 원수의 손에서 구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하고 말했다. 요안나가 근심하며 "저에게는 도저히 그러한 힘이 없습니다.
첫째 그러한 것을 듣기만 해도 무서울 지경입니다..."하고 말하니 미카엘 대천사는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므로 순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고 대답했다. 또 거기에 두 동정녀도 나타나서 번갈아 그녀에게 힘을 돋우어 주는 것이었다.
이는 성녀 가타리나와 성녀 마르가리타였는데, 이 두 분은 그후도 자주 나타나서 요안나를 격려했다. 요안나는 될수 있는 데까지
그들을 본받으려고 우선 동정 서원을 발하고, 온전히 하느님께 몸을 바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준비를 시작했다.즉 그녀는 소녀들이 하는 오락을 멀리하고
종종 묵상하며 현세의 사람이나 물건에 애착을 단절하려고 힘쓰고 자주 기도하고 성사를 받았던 것이다.
그녀가 하느님께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인 1428년 5월의 일이었다.그때부터 그녀는 어떠한 장애가 있어도 결코 주저하는 바가 없었다.
그녀의 임무는 우선 오를레앙의 성을 적군의 포위에서 구출하고,부왕 가롤로 6세의 뒤를 이은 젊은 태자를
라임스에 인도해 대관식을 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그녀는 무엇보다고 먼저 시논에 있는 태자를 알현하고
신탁(神託)에 의해 프랑스의 위기를 구출할 뜻을 여쭈려고 생각했으나,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그녀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미친 자’라고 그녀를 여러가지로 저주하며 욕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열심히 설득을 시키며 말 한 필과 부하 수명을 얻어
시논을 향해 출발했다.
도중에서의 위험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그녀는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으므로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리하여 요안나는 태자의 궁전에 들어가서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사실을 조용히 말씀 드리고가 하오니 죄송하오나 사람을 물리칠 수 없습니까?"하고 말했다.그
러나 여기서도 그녀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태자는 여러가지로 질문해 본 결과 명백히 대답하는
그녀의 태도에 침범할 수 없는 위엄과 확신이 보였으므로 그녀가 과연 하느님께로 부터 온 자인가 실제로 알아보기 위해
그녀를 오를레앙에 파견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같이 당지(當地)로 가게 된 요안나는
백성들의 환영을 받게 되었다.오를레앙은 이미 오랫동안 적군의 포위를 받고 함락은 거의 시간 문제였던 것이다.또한 아주 젊은 소녀 요안나가 이러한 위기에 처하여
군을 진두 지휘하는데 있어서 백전연마의 노장군 못지않은 솜씨를 목격하자 사람들의 놀라움과 감탄은 말할 수가 없었다.
장군들 중에는 요안나의 구국의 사명을 의심하여 그녀를 질투하며
갖은 방법으로 방해하려고 한 자도 있었다.
그러나 백성과 군인들은 그녀를 맞이하여 사기가 높아졌다. 요안나는 우선 군기(軍紀)를 엄수케 하고,
아울러 장병 일동에게 고해와 성체 양 성사를 받도록 명했다. 그리고 나서 적군을 향해 진격을 개시했는데 거기에 참가한 군인은
다만 고해 성사로 죄의 더러움을 씻은 이들 뿐이었다. 요안나는 몸에 백색의 갑옷을 두르고 쥐색의 말을 타고 오른손에 검을 잡고
왼손에는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기록한 기를 들고 언제나 진두에 서서 지휘했는데, 그녀의 기세는 대단해서 싸우면
반드시 이겨 삽시간에 오를레앙의 포위를 해제케 하고 태자에게 "빨리 라임스에 돌아오십시오"하고 권고했다.
그러나 태자는 연약한 처녀의 훌륭한 공훈을 시기하는 중신들이 자꾸 붙잡으므로 요안나의 말을 따르기를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요안나는 태자를 재촉해 부하 장병과 더불어 그를 모시고 적군의 수중에 있는 라임스를 향해 떠났다.
적군은 요안나가 접근하자마자 놀라 당황하며 도주하여 라임스 시의 문은 즉각 태자를 맞이하기 위해 열려졌던 것이다. 이튿날 태자는 그 시의 주교좌 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하고
가롤로 7세로서 왕위에 올랐다 .그때 요안나는 전의 거룩한 기를 한손에 들고 줄곧 왕 곁에 있었으나,식이 끝나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기쁜 눈물을 흘리며 "국왕 폐하, 이것으로 하느님의 뜻은 온전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오를레앙의 위기를 구출할 것과 폐하를 이곳에 모시고 대관식을 거행하여 정당한 프랑스 국왕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
이 두 가지를 명하신 것이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를 보고, 들은 군중들도 저절로 그녀의 심중을 알아주는 듯이
다같이 감격의 눈물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요안나의 사명은 이제는 끝났다.
그녀는 사람들이 만류하는 대로 그저 군중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녀의 행운은 지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련하게도 영국군의 손에 체포되어 이단자, 마술사라는 누명까지 씌워져
마침내 고문까지 받았다.이렇게 포로로 있기를 4개월, 허무한 풍설로 말미암아 그녀를 화형에 처한다는 선고가 내려졌으나
요안나는 조금도 마음의 흔들림 없이 일체를 하느님의 성심께 의탁하고 태연한 빛으로 형장에 나아갔다.그녀의 고결하고도 가련한 태도에는
무지한 형리까지도 눈물을 자아냈다고 한다. 벌써 그녀를 둘러싼 장작더미에는 불이 질러졌다.활활 타오르는 화염,
하늘을 덮는 검은 연기, 그속에서 요안나가 부르짖은 초후의 말은 ’예수!"라는 한 마디였다.
그리고 영국군의 한 병사는 그녀가 숨이 끊어졌을 순간 흰비둘기 한마리가 불속에서 훨훨 날아
하늘 높이까지 올라가서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 진부는 어떻든 간에 그녀의 순결한 영혼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안나가 귀천한 때는 1431년 5월 30일이고,
그녀의 나이 겨우 20세였다.
그녀는 1920년 교황 베네딕토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녀는 프랑스의 제2의 수호 성인으로 기념제는
매년 조국 프랑스에서 특히 오를레앙과 라임스의 두 도시에서 성대히 거행된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전쟁 잔다르크로 더 잘 알려진 요안나는 14살 때
대천사 성 미카엘과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가타리나, 안티오크의 성녀 마르가리타 등 성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6살 때 전쟁에 참가해 오를레앙을 구해 내고 황태자를 옹립해야 한다는 소명을 느꼈으며 놀랍게도 그것을 해냈다.
그러나 결국 체포되어 영국으로 압송되어 갔고 거기서 화형당했다. 우리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그 소리는 작고 조용하지만 내면의 소리가 요구하는 것은 엄청난 세력과의 전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곤 한다.잔다르크도 그 소리를 외면하려고 했다. 그는 말을 탈 줄도 몰랐고 싸울 줄은
더더욱 몰랐기 때문에 군대를 이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자 이런 소리가 들려 왔다.
“하느님이 친히 너와 그 군대를 지휘하실 것이다.” 우리는 관료주의와 억압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항변하면 서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거대한 힘에 맞서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소리가 옳다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이런 확신을 가진다면 잔다르크처럼 깃발을 들고 전진할 용기가
우리에게도 솟아오르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의 힘으로 잘못된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맡은 일을 잘 수행하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5월 30일(31일)
성녀 밥띠스타 바라노 동정


Blessed Baptista Varano - Poor Clare
Beata Camilla Battista da Varano Clarissa Francescana
Camerino, 9 aprile 1458 - Camerino, 31 maggio 1524

Born: 9 April 1458 in Camerino, Macerata, Italy
Died: 31 May 1524 in Camerino, Macerata, Italy of natural causes
Beatified : 7 April 1843 (cultus confirm‎!!ed)  



프란치스칸 삶과 사상15호 '성 글라라 수도회의 성녀와 복녀' 125-126쪽에서


 성 밥띠스타 바라노(Baptista Varano)동정

   카메리노의 카밀라 바라노(Camilla Varano Camerino)는1458년 4월9일 이탈리아의
Camerino/Umbria 에서 그 곳의 영주인 공작의 딸로 태어났다.

1481년 Urbino의 성 글라라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1482년에 서원을 했으며

후에 고향에 수도원을 새로 설립하고

성 글라라의 회칙을 철저히 지키는 수도원장으로 봉사했다.
  1505년 Fermo에 새 수도원을 창설했다. 성녀는 아버지와
세 오빠가 황제의 명령으로 살해당하는

가적의 불행과 함께 자신도 귀양살이를 하면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그분께 봉헌하는 삶을 살았다.

영성 생활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1524년 5월31일 귀천했고 축일은 5월30일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성인품에 올렸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사랑하는 자매들이여, 영적 게으름과 냉담함의 잠에 빠져들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여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그러므로 저는 그대에게 이런 권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회개하여 보속하려는 열렬한 갈망의 불이 항상 그대 안에서 꺼지지 않게 하고,

그대의 모든 점에 있어서 그대가 좋아하며 원하고 생학하는 것을 먼저 행하기보다는

장상의 뜻을 따르는 보속을 실천하십시오.

만일 그대가 이 일에서 성실하면 그대의 마음을 환히 보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큰 은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대 마음이 항상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하십시오.
   그대의 눈을 열고 이 세상에서
주어진 짧고도 짧은 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에 힘입어 언제나 깨어서 열심히 살아가십시오. 사도와 함께 이렇게 말하도록 하십시오.

이른 아침부터 깨어서 당신께 나아가는
"내게 대한 주님의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1고린 15,10)」

-성 바라노의 글에서-



   카메리노(Camerino) 경의 외동딸인 카밀라 바라니(Camilla Varani)는 10살 때 몬테갈로의 성 마르코(Marcus)의 강론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마르코에게 수많은 편지들을 보내면서 그녀의 영성생활을 그분에게 맡겼다.

마르코가 수난에 대하여 강론할 때는 수많은 군중이 몰려들었다.

어린 소녀 카밀라는 매 금요일마다 구세주의 사랑을 묵상하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놀라운 영적 진보를 가져왔다.

그녀의 부친은 카밀라에게 라틴어를 비롯한
모든 학문을 가르쳤고 좋은 혼처 구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녀는
오로지 회개생활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점차적으로 수도생활을 열망하게 되었다.

1481년 그녀는 드디어 클라라회의 수녀복을 입고 이름을 밥티스타(Baptista)로 하였으며,

즉시 수난에 대한
신비적인 계시를 받기 시작하였다. 장상의 명에 따라 글로 표현한 것이

“예수의 괴로운 마음의 고통 ”이란 책이다.

또한 그녀는 성령의 놀라운 은총에 관한 책을 썼으며,

수도회의 규칙에 따라 철저히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

그녀의 부친이 딸을 가까이 두고 싶어서 세운 카메리노 수도원은 클라라회의
영성의 산실 가운데 하나이다.

1843년에 그녀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다.
-가톨릭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