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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교리] 혼인성사 / (「가톨릭 교회 교리서」1621~1637항)

Berardus 2022. 2. 3. 08:25

[교회교리] 

혼인성사 

 

 (「가톨릭 교회 교리서」1621~1637항)

 

가정 안에서 하느님 은총 흘러야 참된 성화 이뤄진다

혼인의 목적 ‘상호 간의 성화’
부부 사랑이 자녀에게 확장돼
하느님 은총 흐르게 될 때
참된 부부 성화 이룰 수 있어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성가정’. 가정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이 흐르게 되어야 참된 성화가 이뤄진다.

혼인 예식에서 신랑 신부의

‘자유로운 합의’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강요되거나 상대에게 속아서 합의한 경우 그 혼인은 무효입니다.(1628 참조)

자유로운 합의만이 하느님 은총을 불러들이는데,

하느님 은총은 곧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사랑이십니다.

그 성령께서 혼인의 전례적 거행이 “성사적 행동”(1622)이 되게 하십니다.

혼인의 가장 큰 목적은 바오로 사도가

“신자 아닌 남편은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해졌고,

신자 아닌 아내는 그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진다”(1코린 7,14)라고 하듯,

하느님 안에서 상호 간의 성화(聖化)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의 성화는

부부의 사랑이 자녀에게로 흐르지 않으면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혼인이 유효하기 위해 꼭 필요한 또 다른 서약이

‘자녀출산의 의무’입니다.(1652 참조)

자녀를 낳아 잘 기르고 주님께 봉헌하겠다는

의도가 없다면 그 혼인도 무효입니다. 자

녀를 낳지 않으려는 의도가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혼

인 합의로 오시는 성령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의 친교이신 성령”(1624)이십니다.

확장되지 않는 친교는 없습니다. 확장되지 않는 사랑도 없습니다.

부부 사랑이 자녀에게로 확장되지 않으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자녀가 받는 어머니의 사랑은 남편과 함께 성숙시킨 사랑의 열매입니다.

2018년 6월 1일자 조선일보에 ‘내겐 짐, 아들엔 힘.

전 남편을 어떡하지?’란 제목으로 실린 사연이 있습니다.

한 사내아이를 둔 이혼한 어머니의 사연입니다.

중학생 아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자퇴하겠다며 어머니의 속을 썩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바닥에 누워 천장만 쳐다봅니다.

이것을 보는 어머니의 속은 썩어갑니다.

아들이 초3 때 이혼하였지만 엄마의 노력으로

아들도 잘 성장하는 듯 보였습니다.

특별한 문제도 없었고 관계도 좋았으며 통장엔 돈도 쌓여갔습니다.

싱글 맘이 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기까지

마음속에 엄마에 대한 원망을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울어도 봤지만 본척만척합니다. 자신이 더 아픈 것입니다.

혼자만의 싸움에 지칠 때면

가끔 이혼한 남편이 생각났습니다.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고 무관심한 가장이었지만

그런 남편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남편에게 연락합니다.

아이의 마음이 지독한 감기에 걸렸으니

아들과 자신 사이에 잠시만 서 있어 달라고 청했습니다.

남편이 집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남편은 특유의 무심함으로 깔끔하게 아이와 소통하고

큰 소리 안 내고도 아이를 학교에 잘 보냅니다.

가끔은 오후에 같이 외출도 합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두 남자가 함께 텔레비전이라도 보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 편안함 속에 한 번 결혼에 실패했는데,

이젠 이혼에도 실패하는 게 아닌지 궁금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 마리아 홀로 떨어진 포도주를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단절된 어머니가 자녀에게 주는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도주를 기대하는 사람에게 맹물을 주는 격입니다.

그러면 원망만 돌아옵니다.

은총은 받는 것과 흘려보내는 것을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와 교회 관계에서도 그렇듯 가정 안에서도

하느님의 은총이 흐르게 되어야 참된 성화가 이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