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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성 사바 아빠스

Berardus 2021. 12. 4. 20:59

 


[icon]옥좌에 좌정한 그리스도.Le Sauveur en Gloire.15c (ICONES DE TVER 에서)

 

이 유형은 세상의 운명을 능가하여 관장하는 구세주이며,

창조주의 신성한 위엄이 나타난다.

옥좌에 좌정하여 그의 오른손으로 강복하며, 왼손에는 두루마리나 성서를 들고 있으며

데에시스(Deisis)에서 성모와 세자 요한의 사이에 배치된다.

 

타원형의 후광과 두개의 굽은 정사각형이 교차된 8각의 별(영원한 미래를 상징

-이 별 모양의 후광은 ’예수의 거룩한 변모 성화’에서도 볼수있다)로 주위를 장식한다.

 

주님을 둘러싼 원형의 후광은

주님이 좌정하신 옥좌를 둘러싸고 있으며 케루빔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두번째 정사각형의 네 모서리에는 세상의 네 끝을 향하고 있으며

네 복음사가의 상징 동물이 그려져있다.

-(’이콘.신비의 미’에서-장긍선신부 편저)-




12월  5일

성 사바 아빠스


ST. SABBAS

San Saba Abate

San Saba Archimandrita Abate

Mutalasca, Cesarea di Cappadocia, 439 - Mar Saba, Palestina, 5 dicembre 532

 


체사레아의 카파도치아 교외 무탈라스카에서 어느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성사바는

부친이 알렉산드리아로 전근됨에 따라 삼촌의 도움으로 자랐다.

숙모의 학대를 이기지 못한 그는 불과 여덟살의 나이로 다른 삼촌에게 도망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삼촌들이 집안 재산에 대한 소송 문제로 괴롭히자,

이번에는 고향에서 가까운 어느 수도원으로 피신하였다.

456년,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 테옥티스토의 지도를 받으며 수도생활을 하다가,

30세 때에 성 에우띠미오의 제자가 되어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스승이신 성 에우띠미오가 운명하시자 그는 예리고와 가까운 사막에서 혼자서 4년 동안 지냈는데,

이때부터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함으로, 483년에는 일종의 수도공동체인 "라우라"를 형성하였다.

150명이나 되는 제자들의 요구 때문에 그는 하는 수 없이 예루살렘의 총주교로부터 사제가 되었는데,

에집트와 아르메니아에서 제자들이 계속 몰려 들었기 때문에 또 다른 수도원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팔레스티나 지방의 모든 은수자와 독수자 그리고 회수자들의 지도자로 임명되었으나,

그 권한을 행사한 사실은 없다고 한다.

그는 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음식물을 섭취했을 따름이다.

 

또한 사막의 은수자였지만 정통 교리 수호를 위하여 헌신했는데,

오리게네스파와 그리스도 단성론을 특히 배격하였다.

531년, 91세의 고령인 그는 콘스탄티노블로 가서 사마리아인들의 봉기에서

주민들을 보호하려는 운동을 전개할 만큼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진 은수자였다.

이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자신의 후계자를 선임한 뒤에 운명하였다.

그는 초대 수도자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며, 동방 수도회의 창설자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부산교구홈에서)-

 

 

팔레스티나에서 탄생. 깊은 산속에서 기도생활을 결심했다.

밧줄과 사다리로만 통할 수 있는 그런 깊은 동굴에서 은수자의 삶을 살았다.

수많은 은수자들이 몰려 왔다. 성인은 수행자를 위한 여러 공동체를 창설했고 1년에 몇번 모였다.

그러나 은수자의 삶은 어려웠다.

이단자와 맞서 싸워야 했고 여러번 아랍야만족과 싸웠고 수없이 고난을 당했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 교외

무탈라스카(Mutalaska)에서 어느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성 사바는

부친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전근감에 따라 삼촌의 도움으로 자랐다.

숙모의 학대를 이기지 못한 그는 불과 여덟 살의 나이로 다른 삼촌에게 도망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삼촌들이 집안 재산에 대한 소송 문제로 괴롭히자,

이번에는 고향에서 가까운 어느 수도원으로 피신하였다.

18살 때인 456년 그는 예루살렘의 파사리온 수도원으로 옮겨

 성 에우티미우스(Euthymius, 1월 20일)의 제자가 된 성 사바는,

그에 의해 와디 무켈릭(Wadi Mukelik)에 있는 성 테옥티스투스(Theoctistus)의 수도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17년을 보냈다.

 


478년부터 예루살렘 남동쪽의

 와디 엔나르의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스승이신 성 에우티미우스가 운명하시자 그는 예리코(Jericho)와 가까운 사막에서

 혼자서 4년 동안 지냈는데, 이때부터 제자들이 모여 들기 시작함으로

 483년에는 일종의 수도 공동체인 '마르 사바 라우라'를 형성하였다.

 150명이나 되는 제자들의 요구 때문에 그는 하는 수 없이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이집트와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제자들이 계속 몰려들었기 때문에

 또 다른 수도원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팔레스티나 지방의 모든 은수자와 독수자

그리고 회수자들의 지도자로 임명되었으나,

그 권한을 행사한 사실은 없다고 한다.

그는 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음식물을 섭취했을 따름이다.

또한 사막의 은수자였지만 정통교리 수호를 위하여 헌신했는데,

오리게네스파와 그리스도 단성론을 특히 배격하였다.

 

 

531년 고령인 그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가서

 사마리아인들의 봉기에서 주민들을 보호하려는 운동을 전개할 만큼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진 은수자였다.

이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자신의 후계자를 선임한 뒤,

532년 12월 5일 94세의 고령으로 마르 사바(Mar Saba)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초대 수도자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며,

동방 수도회의 설립자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톨릭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