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영성 이야기]
스님의 묵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가을 산사(山寺)에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행사를 시작하려면 몇 시간이 남았지만
출연자들이 리허설을 하느라 줄지어 기다리고,
대웅전 앞에 설치된 가설무대 위의 플래카드를 보니
내로라하는 가수들 이름도 적혀 있다.
아직 조금 따가운 가을볕을 가리기 위해 쳐 놓은 천막 아래에는
마당을 가득 메운 의자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도 개울 옆 정자 하나를 잡아 기타를 튜닝하고 화음을 맞춰 보았다.
우리 중 아무도 전문 음악가는 아니지만 포콜라레운동의 젊은이들이 만든
젠 노래는 삶이 녹아 있는 곡들이라 가사만으로도 선물이 되기에,
그분들을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서로 간의 일치를 보여 주는 데에 의미를 두기로 하였다.
무엇보다 주지 스님의 초대가 간곡하였기 때문이다.
스님과의 만남은 한 회원의 소개로 시작되었는데,
우리는 마침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그 만남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포콜라레운동에서 시도하는 대화 채널 중에서
세 번째는 다른 종교와의 대화로서,
이는 1977년 끼아라 루빅이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템플턴상을 수상한 뒤 여러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더욱 활성화되었으니,
모든 이가 하나 되기를 갈망하는 ‘일치의 영성’에서는 이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성교회도 다른 종교와 이루는 대화에 대하여,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우러나는 ‘생활의 대화’,
범종교적 기구를 통해 공동 협력이 이루는 ‘활동의 대화’,
전통과 신학 등에 정통한 이들이 이끌어 가는 ‘전문인들의 대화’,
각 종교의 경전이나 신앙의 빛을 따라 생활한 경험을 나누는
‘종교적 경험의 대화’가 있으리라고 전망하므로, 개인이나 공동체적으로
이 대화를 위해 노력함이 당연할 것이다.
어느 해부터 주위의 불교도들에게
‘부처님 오신 날’을 기억하고 축하 인사를 보냈더니
그 간단한 인사 한마디에 매우 기뻐들 하였다.
제주도에 갑작스레 예멘의 무슬림들이 몰려왔을 때는
가까운 이들과 함께 생필품을 모아 보내며,
그곳 수녀님을 통해 전달받은 선물로써 그들이 가톨릭 신자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런 일회적인 접촉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대화를 통해
서로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기회가 온 것이다.
스님을 뵈러 몇몇 회원과 함께
처음으로 절에 갔을 때 스님은
우리를 위해 직접 만드셨다면서 묵주를 하나씩 주셨다.
평소에 염주를 많이 만드시는데 바로 그 재료로
아름답게 팔찌 묵주를 준비하신 것이었다.
그러고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색깔을 권하셨다.
나는 그렇게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공유할 만한 점을 발견한 것이 무척 기뻤다.
묵주와 염주를 돌리며 바치는 기도문은 다를지라도 종교인이라면
누구든 초월자를 찾고, 크신 존재 앞에 자신을 낮춰
그분의 가르침에 귀 기울일 줄 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새삼스러웠다.
사실 여러 보편 종교의 가르침도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황금률’에 기초한 때문이다. 그러므로 함께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시작한 만남을 키워 가면서 우리 지역에서 열린
마리아폴리라는 모임에 스님과 불교도를 초대하여 일부 시민들과
선문답을 나누는 자리도 마련하였다.
그리고 스님께서도 젠 노래를 좋아하셔서 산사 음악회에 우리를 초대하신 것이었다.
드디어 음악회가 시작되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잎은 황금색으로, 나무는 헐벗고, 바람이 휘몰아치니 하늘은 말하듯 하네.
인간의 생은 단지 순간뿐이라고…. 너 홀로 아니니 네 주위 보라
네 사랑 원하는 많은 형제를. 어찌 네 삶을 헛되이 사나?
왜 참된 삶을 너 살지 않나?….” 박수가 한참 계속되었다.
관객들도 가톨릭 신자들이 산사 음악회에 참석했음을 신선하게 여기는 듯하였다.
먼 길이라 서둘러 돌아와야 했지만 일행들도 모두 뿌듯해하였다.
팬데믹으로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있는 이 대화가 얼른 다시 시작되어,
각자 신앙의 정체성을 선명히 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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