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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아레오파고의 성 디오니시오 주교 순교자

Berardus 2021. 10. 2. 18:18
 
 


 

10월  3일

아레오파고의 성 디오니시오 주교 순교자


San Dionigi l’Areopagita Discepolo di S. Paolo

ST. DIONYSIUS

m. 95 c.

 


사도행전 17:34

몇몇 사람이 바울로 편이 되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 중에는 아레오파고 법정의 판사인 디오니시오를 비롯하여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그 밖에도 몇 사람이 더 있었다.

 

 

사도행전 17:23~34의 기사에 나오는 인물이다.

사도 바오로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대한 설교를

아테네의 아레오바고(군신의 언덕) 법정에서 행하였을 때,

그에게 호감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중에 디오니시오 판사와 다마리스라는 여자는 후일

사도 바오로에 의하여 개종하고 크리스챤이 되었다.

 

특히, 코린토의 성 디오니시오의 말씀에 따르면,

판사 디오니시오가 아테네의 첫 주교가 되었으며,

또 그는 95년의 도미씨안의 크리스챤 박해 때 화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의 순교록은 그와 파리의 성 디오니시오 주교 순교자(축일:10월9일,258년?)를

혼돈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바로 잡았다.

 

 

[이콘] 성령강림.러시아화파. 17세기. 57.1x91.4cm

 

네 복음사가들은 자신들의 복음서를 손에 들고 나타난다.

그러나 나머지 사도들은 가르침의 은사를 받고 있다는 표징으로써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비록 공관 복음사가들이(마태오,마르코,루가) 이 사건에 출석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사도 바오로는 확실하게 출석하지 않았지만,

성령의 내주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지체가 되는 전체 교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여기에 현존하고 있다.

 

바오로와 베드로는 둥근 자리의 윗부분에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앉아 있다.

복음사가들은 그들 뒤편에 각각 두사람씩 앉아 있다.

그리고 베드로와 바오로 사이의 공간은 보이지 않는 신비체의 머리인

그리스도의 자리이다.

 

이 이콘의 제일 윗 부분은

 12개의 섬광을 가진 천상 만돌라가 각 사도들의 머리 위에 임하고

 12개의 불혀의 강림을 묘사한다.

이 불혀들은 세례자 요한의 예언을 상기시킨다."그는 너희를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다."(사도3,11)

 

동방교회의 성령강림 이콘에는 성모님이 묘사되지 않는다.

다만 주님의 제자들이 반타원형으로 앉아 있으며,

그 한가운데의 열린 공간은 성령께서 머무시는 새로운 내적 공간을 상징한다.

그 한가운데는 왕관을 쓴 이가 흰 천을 들고 서 있다.

왕의 이름은 코스모스로 전 세계 인류의 대표자로서 그 어둠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러한 어둡고 해방을 갈망하는 세상에 성령이 임하셔야 함을 나타낸다.

12개의 두루마리를 지닌 그의 손에 걸친 하얀 천은 그들의 가르침으로

 전 세상에 빛을 가져오는 열두 사도를 의미한다.

 

성령강림의 이콘은 그리고 이날의 대축일 전례는 신자들로 하여금 바벨의 혼돈과

 성령강림으로 시작된 조화,일치 사이에 대조를 상기시킨다.

-이콘.신비의 미(편저 장긍선신부)에서-

 

*성령 강림 대축일聖靈 降臨 大祝日 Pentecostes pentecost:인창동성당게시판1209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사도행전 해설

생활성서 1999년 11월호「하느님과 사람의 말씀」

인천가톨릭대학교 신교선가브리엘신부님홈에서 http://bible.byus.net

 

사도행전 이끎말

 

■사도행전은 어디에 속하나?

지금까지 신약성서 맨 앞부분에 나오는 네 복음서를 보았다.

이제 신약 전체에서 단 한 권밖에 없는 ’사도행전’을 보자.

이는 복음서에도 서간에도 속하지 않는 그 나름대로 독특하고도 유일한 문학양식을 띠고 있다.

사도행전은 단순히 사도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베드로의 순교 이야기 또는 바울로의 최후 이야기 등이 반드시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 말씀과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한 복음서와 서간들 사이에 자리잡고있는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인 성령께서 사도들을 중심으로

초대교회를 어떻게 이끌어가시는가를 생동감있게 보여준다.

 

■사도행전 전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구절은?

1장 8절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뿐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이 구절 안에 사도행전 전체 내용이 함축되어있다.

복음선포는 지리적으로 크게 네 단계를 거쳐 온 세상에 전파된다:

   첫째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도행전 2-6장

   둘째 유다 지방에 두루 퍼지면서           5,16; 8,1

   셋째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                  8,4-25

   넷째 온 세상 끝에 이르기까지             10-11장; 13-28장

 

■사도행전 저자가 가장 하고싶었던 말,

끝까지 마음에 간직해 두었던 말은? 사도행전 맨 끝에 나오는 표현이다.

당시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로 압송되어온 바울로는 "방해받는 일 없이

 아주 자유롭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쳤다."(사도 28,31).

저자는 세상 끝까지 복음이 선포되었음을 이같이 장엄하게 선언하면서 사도행전을 맺는다.

그토록 사도 베드로에 관해, 사도 바울로에 관해 상세히 전하던 저자가

그들의 최후에 관해 무겁게 침묵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의 최후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들을 선택하신 주님, 부활하신 분은

그들에게 어떤 장애도 다 극복할 힘을 부여하신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초대교회 사도들의 주님은 2000년대를 열어갈 신앙인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러한 힘과 용기와 영을 주시는 분이다.     

 

■사도행전을 쓴 저자는 누구인가?

교회전승에 따르면 루가복음서를 쓴 루가가 사도행전까지 저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루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

루가는 예수님과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인물도 아니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발현을 직접 체험한 초대교회의 인물도 아니었다.

루가복음서와 사도행전 전체 내용을 분석해 볼 때 루가는 본디 유다인이 아니라

외교세계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인물로 간주된다.

그는 고등교육을 받은 당대 최고 수준의 문필가였다.

 

■루가는 사도행전을 언제 썼는가?

그는 로마제국의 예루살렘 침입, 곧 예루살렘 멸망(기원후 70년)을 이미 지나간

과거의 사건으로 되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있다:

"예루살렘이 군대에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 황폐가 다가온 줄 아시오...

예루살렘은 이방민족들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짓밟힐 것입니다."(루가 21,20-24).

따라서 루가복음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한 얼마후인 기원후 80년 경에,

또한 사도행전은 그 이후인 85-90년 경에 집필되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루가복음서 및 사도행전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티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어느 곳에서 쓰여졌음은 확실시되지만 정확한 집필장소는 알 수 없다.

 

■누구를 위해 썼는가?

루가는 외교문화권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집필한다.

이로써 그는 하느님 구원이 유대인들로부터 시작하여 뭇 민족에게 이르렀음을 널리 선포하고자 한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한지 이미 50여 년이 지난 루가 당대에는 교회의 참신앙을 둘러싼

갖가지 문제로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고조되고있었다.

이에 루가는 독자들에게 교회의 원천을 깨우쳐주어 확실성과 신뢰성을 심어주고자 노력한다.

 

■복음서를 쓴 목적은 무엇인가?

루가는 복음서 머리말에서 자신에 앞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부활을 전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이들 이야기를 많은 이가 다루었다"(루가 1,1).

이제 루가는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모든 일을 맨 처음부터 꼼꼼히 살펴서 순서대로 적어 드리고자

" 복음서를 집필했음을 밝힌다(루가 1,3). 아울러 그는 이 복음서를 "데오필로님"에게 헌정한다.

이는 비단 데오필로에게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말로써

 이 책이 공적으로 보다 폭넓게 읽혀지기를 바란다는 표현이다.

 

■루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은 결국 하나의 작품인가?

그렇다. 앞에서 설명한 루가 1,1-4은 결국 신약성서 전체의 근 1/4에 해당되는

 두 책 전체의 머리말로 볼 수 있다.

사도행전 첫 구절에서 루가는 앞서 저술한 복음서를 상기시키면서 이 두 번째 책 역시

 첫 번째 것과 마찬가지로 데오필로에게 헌정한다고 밝힌다:

"데오필로님, 첫번 책에서 저는 예수께서 처음부터 행하고 가르치신

모든 일을 다루었는데.... "(사도 1,1).

 

■예루살렘의 의미는?

두 작품 안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로 떠오르는 곳은 예루살렘이다.

루가가 보는 예루살렘은 성서의 말씀대로 모든 일이 완성되는 곳,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며 발현하고 승천하는 거룩한 장소이다(루가 13,33; 19,28-24,53).

구약에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뵙고 기도하고 찬미하며 탄원하던 곳이요

그분의 현존을 체험하던 곳이며 다윗·솔로몬 이래로 그분의 성전이 자리잡은 거룩한 장소이다.

루가복음서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하느님이 이루시는 인류구원 위업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는 거룩한 곳이다.

루가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지상 여행 목적지가 예루살렘이라면,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은 사도들의 출발점이다.

하느님 말씀은 바로 그곳으로부터 사작하여 사도들을 통하여

 세상 끝까지 힘차게 퍼져나간다(사도 1,8).

 

■두 작품을 따로 떼어 읽어도 될까?

그래도 된다. 그렇지만 함께 읽는 편이 훨씬 낫다. 루가복음서는

 한 작품의 전반부요 사도행전은 그 후반부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가복음서를 읽고 이어서 사도행전을 계속 읽어가야 저자의 신학을

올바로 또 일관성있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

두 작품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나 문체의 측면에서뿐 아니라 낱말 사용이나

 길이를 보아도 둘은 같은 저자의 작품임이 뚜렷해진다.

무엇보다도 이들 사이에 공통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용된 어휘(語彙) 수 사용된 낱말 총수

마태오 1,691 18,305

마르코 1,345 11,242

*루가 *2,055*19,428

요한 1,011 15,416

*사도행전 *2,038*18,382

신약성서전체 137,490

 

이 도표에서 우리는 루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의 경우 어휘력뿐 아니라

낱말 총수 곧 길이까지도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천가톨릭대학교 신교선가브리엘신부님홈에서 http://bible.byu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