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1,5.8-20
5 아브라함에게서 아들 이사악이 태어났을 때,
그의 나이는 백 살이었다. 8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9 그런데 사라는 이집트 여자 하가르가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이 자기 아들 이사악과 함께 노는 것을 보고,
10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세요.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11 그 아들도 자기 아들이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이 일이 무척이나 언짢았다.
1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와 네 여종 때문에 언짢아하지 마라.
사라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다 들어주어라.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13 그러나 그 여종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14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 하가르에게 주어 어깨에 메게 하고는,
그를 아기와 함께 내보냈다.
길을 나선 하가르는 브에르 세바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
15 가죽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 여자는 아기를 덤불 밑으로 내던져 버리고는,
16 활 한 바탕 거리만큼 걸어가서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았다.
‘아기가 죽어 가는 꼴을 어찌 보랴!’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17 하느님께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래서 하느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가르를 부르며 말하였다.
“하가르야, 어찌 된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18 일어나 가서 아이를 들어 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9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 하가르의 눈을 열어 주시니,
그가 우물을 보게 되었다.
그는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우고 아이에게 물을 먹였다.
20 하느님께서는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
그는 자라서 광야에 살며 활잡이가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마귀들도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고 무서워 떤다고 강조하면서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치는데(야고 2,17 참조),
오늘 복음의 마귀들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이 마귀들은 남들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분의 신성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자기들을 쫓아내실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만
구원하고는 아주 멀고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마귀들이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그 돼지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점은 마귀들의 파멸을 뜻합니다.
유다인들에게 돼지는 부정한 짐승이었습니다.
물 또한 때로는 생명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이 문맥에서는 혼돈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여하튼 오늘 복음의 마귀들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답은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라는
마귀들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자기들을 위하여
자기들과 함께 계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그분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
오히려 자기들을 방해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과 함께 있기보다 부정한 돼지 떼와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 눈으로 하느님을 뵙고도 구원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궁금한 점이 남아 있습니다.
이 상황을 목격하고 예수님께
자기들의 고장에서 떠나가 달라고 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도 혹시나 내 소유인 돼지를 잃지 않으려고
예수님께서 제발 멀리 가 주시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