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콘]요한의 참수- 러시아.야로슬라브화파.18세기.개인소장.
세례자 요한이 날개를 단 모습이나 또는 낙타 털옷을 입고 서 있는 모습으로
한 손에는 참수된 자신의 머리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있으며
그 발치에는 참수 치명 하는 광경이 그려져 있다.
세례자시여,당신은 진리를 위해 투쟁하셨으며
육신을 취하시고 나타나시어
세상의 죄를 물리치신 하느님을
저승에 있는 이들에게도 기쁨으로 전하셨도다.
(1월7일 성 세례자 요한 축일 아뽈리띠기온 중)
-이콘의 신비에서.편저 장긍선신부-
[이콘] 세례자 성 요한(Johannes)과 그의 생애.42 x 34cm. 러시아.19세기.
이 성화의 한 중앙에 있는 화면 안에는 세례자 요한이 천사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왼손에 들고 있는 쟁반에는 그의 잘리운 목이 놓여 있는데 그는 목베임을 당했고,
살로메를 통해서 그의 목이 헤롯왕에게 전달되었다.
쟁반 이외에 왼손에는 펼쳐진 기록 문서를 들고 있다.
성화 가장자리를 그의 생애와 고난의 길을 묘사한 장면들로 에워싸고 있다.
성화 윗 부분에는 왼손에 지구공을 들고 있는 성부의 모습이 구름 위에 묘사되어 있다.
St John the Baptist-JACOPO del SELLAIO
about 1485,Tempera on canvas, 157 x 79,5 cm.Museum of Fine Arts, Budapest
8월 29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Martirio di San Giovanni Battista
Decollatio St. Joannis-Baptistae
JOHN the Baptist
beheaded c.30 at Machaerus; buried at Sebaste, Samaria
문장은 가냘픈 십자가.slender cross이며,
이름의 뜻은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다"(God is gracious)이다.
동방교회에서는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1월7일),
요한 탄생 대축일(6월24일.게시판1238번,1836번),
수난(8월29일),요한의 잉태(9월24일)등을 축일로 지내고 있으며
매주 화요일에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
수난 축일이 언제부터 탄생 축일과 분리되어 기념하는지 불분명하지만,
성 예로니모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하루 거리 떨어진
세바스테에 그 유해가 안장되고 성전을 세움으로써
공식화 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성 요한 세례자는
사제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의 아들이며, 예수의 사촌(루가1:36)이다.
세례자로 불리는 것은 예수에게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하느님의 권위에 의해서 세례의 새로운 의식,’회개의 세례’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마태 3:13-17, 마르1:9-11, 루가 3:21 이하).
그의 출생, 석녀(石女)의 잉태,어머니 태내에서 이미 성령이 충만함, 할례(割禮), 명명(命名) 등이
천사(가브리엘)에 의해 성전(聖殿)에서 그의 부친 즈가리야에게 고해졌다(루가1).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서 예수에 의해 증명되고(루가 7:28) 태어나면서 부터 평생을
나지르 사람으로서 바쳐진 수행자(修行者)이며,
메시아의 선구자(先驅者), 선지자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루1:17, 마17:12이하).
청년시절에 황야에서 기도와 고행으로써 자신을 준비하고 부름 받을 때를 기다렸다(루1:80).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재위:14∼37)의 재위 15년째인 28년에 하느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자,
그는 베타니아의 요르단 계곡으로 갔다(요한 1:28).
그리고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으니’(마태 3:2),
죄를 용서받기 위해(루가3:3)’회개의 세례’를 받을 것을 전달하였다.
요한의 세례에는 원죄(原罪)를 사해줄 힘은 없다.
이 세례는 내심의 영성(靈性)을 상징한 것이며, 이것을 받으려면 내심의 개선을 필요로 한다.
이 세례는 하느님 나라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회개에 의한 준비단계로서,
죄의 고백도 포함되어 있었다(마태 3:6).
그는 선교(宣敎)의 초기부터 자기는 메시아가 아니라면서,
장차 오게 될 메시아의 증인이 되었다(루가3:15-18,요한1:19-28).
그는 장차 오게 될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마련하였다.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사양 한 요한에 대해,
그리스도는 "모든 정의는 완수해야 한다"(마태3:14)
(예수는 죄인인 인류의 대표자로서 죄 인처럼 세례를 받아야 하며,
그것은 구세주로서 완수해야 하는 의무라는 뜻)고 말하고
요르단강에서 요한으로부터 영세하였다.
[이콘]날개달린 세례자 요한. 그리스.1600년경.루브르박물관
요한은 자기 제자와 어떤 유다인이 세례에 관해 의논했을 때, 제자들에게 답하여,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신랑과 신랑의 친구의 비유를 가지고 그리스도에 관해 증명하고,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25-30)고 말하고 그의 선교를 끝마쳤다.
그후 갈릴래아 분국(分國)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의 결혼에 대해 그 부도덕함을 비난했다가
체포되어 사해(死海) 동쪽 마케르스성(城)의 감옥에 투옥된 후 참수당하였다.
(가톨릭대사전에서)
*성 즈가리야와 성녀 엘리사벳 부부 축일:11월5일.게시판735번,1455번.
Salome with the Head of St John the Baptist-CARAVAGGIO.
c.1607. Oil on canvas, 90,5 x 167 cm. National Gallery, London
성 베다 사제의 강론에서
(Hom. 23: CCL 122,354. 356-357)
*성 베다 사제 학자 축일:5월25일.게시판1181번,1783번.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으심의 선구자
주님의 탄생과 복음 선포와 죽으심의 복된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투쟁에서 하늘까지 놀라워 할 만한 용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지혜서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그가 사람들 눈에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해도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의 탄생일을 축제의 기쁨으로 경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는 자신의 수난으로 이 날을 거룩히 하였고 자신의 붉은 피로써 빛나게 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주님에 대해 이미 증거한 것을 순교로써 확인하였으니
우리는 오늘 그를 영적 기쁨으로 기념하고 마땅히 공경해야 하겠습니다.
복된 세례자 요한이 감옥의 사슬을 견디어 내고 자기 목숨까지 바치게 된 것은
우리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박해자가 그를 보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라고 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리스도 친히 "나는 진리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진리를 위하여 자기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앞서 태어나고 설교하며 세례를 베풂으로써 장차 탄생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세례를 베풀려 하시는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과 같이,
그분을 앞서 수난당함으로써 미래 그분이 당하실 수난을 예시했습니다.
이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은
오랫동안 감옥의 사슬을 견디어 낸 다음 자기 피를 흘려 생애를 마쳤습니다.
자유와 천상 평화의 복된 소식을 전했던 그는 악인들에 의해 사슬에 묶였습니다.
빛의 증인으로 이 세상에 와 빛 자체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빛을 발하면서 불타오르는 햇불이라는 말을 듣는 명예를 얻은 그는
감옥의 어둠 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구속주께 세례를 베풀 특권을 받고
성자께서 말씀하신 성부의 음성을 들으며
또 성자께 성령의 은총이 내리는 것을 보게 된 그는 자신의 피로써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행복을 보상으로 받으리라는 확신을 지닌 그런 사람에게는
영원한 진리를 위하여 일시적인 고통을 당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가볍고 바람직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죽음은 본질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요한에게는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팔마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라는 사도 바울로의 말씀은 여기에 잘 맞는 말씀입니다.
바울로는 또 뽑힌 이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당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부터 받은 특권이라고 말합니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겪고
이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Panel. Bob Jones University Collection, Greenville
천박한 명예심을 가진 왕의 술취한 맹세,유혹적인 춤,왕비의 증오에 가득 찬 마음이
한데 어울려 요한 세자의 순교를 불렀다.
이 위대한 예언자는 그를 앞서간 수 많은 구약 시대 예언자들의 죽음을 슬퍼했다.
거부와 순교,’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잘못을 나무라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고 그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이 위대한 예언자는 구세주를 맞이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이었다.
그가 주장했던 유일한 권능은 야훼의 성령이었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그분은 나보다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마태 3,11)
성서는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따랐으며 그에게서 위대한 힘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결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들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는 그의 부르심이 준비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
때가 왔을 때, 그는 그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었다.
"다음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다시 그곳에 서 있다가
마침 예수께서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하고 말하였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갔다."
-(요한 1,35-37) -
그리스도가 가는 길을 가리켰던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과 인간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의 단순한 생활양식은 지상의 소유로부터 완전한 초월이었다.
그의 마음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부르심과 하느님께 집중되어 있었다.
하느님의 은총을 확신하는 그는 심판,회개,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용기를 가졌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귀를 기울여야 할 부르심이 있다.
아무도 요한의 사명을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는 그 같은 사명의 부르심을 받고 있다.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소임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 의 지위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위를 통해 다른 이들이,
예수님이 하느님이심을 아는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한한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구원의 무한한 은총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
"그 제자들은 요한을 찾아가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요르단강 건너편에 계시던 분이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바로 그분인데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몰려가고 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요한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은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 앞에 사명을 띠고 온 사람이라고 말하였는데
너희는 그것을 직접 들은 증인들이다.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도 옆에 서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가 들리면 기쁨에 넘친다.
내 마음도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3,26-30)-
Beheading of St John the Baptist-DANTI, Vincenzo.
1569-71.Bronze, height: 243 cm.Baptistry, Florence
[성서의 인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세례자 요한 - 허영업신부.평화신문606호
세례자 요한처럼 당시의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인물도 드물다.
세례자 요한이 활동한 시기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가
그야말로 희망이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암흑기였다.
이때 홀연히 나타난 세례자 요한은 그야말로 한줄기 빛이었으며
마지막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일으킨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철저하게 고통으로 점철된 비극의 인물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사제인 즈가리야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 사이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태어난 늦둥이었다.
그는 예수님과 인척이며 약 반년정도 먼저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콘]세례자 요한, 6세기 경
두번째로 오래된 이콘으로, 세례자 요한 왼쪽으로는 그리스도가,
오른쪽으로는 성모 마리아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향해 보고 있다.
■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요한이 사람들 앞에 나섰을 때 그의 말과 행동은
모든 이스라엘들의 마음속에서 폭발적인 힘과 에너지로 나타났다.
그의 출현에 대한 충격은 삽시간에 전 이스라엘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요한이라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갈 정도로 시원하다니까.”
“정말이야, 그분의 거칠 것 없는 말씀을 들으면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지는 기분마저 들더라구요.”
사람들은 요한의 말을 들으러 구름처럼 요르단 강으로 몰려들었다.
그의 선포는 너무나 힘있고 분명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그의 가르침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늘 외치던 메시지였다.
그러나 당시의 바리사이파나 율법학자들,
그리고 사두가이파나 열혈 당원들이 외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들 모두의 주장과 가르침은 조금씩 달라도 한가지 공통적인 것은
율법에 대해서는 열성적이고 하느님의 주권과 왕권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은 당시의 종교, 정치 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했다.
요한은 예언자라는 점에서 당시의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른 이들은 미래에 이스라엘이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메시아에 대한 고대를 선포한 반면,
요한은 철저하게 재난과 멸망을 예고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면 처참하게 멸망할 것이다.”
그의 이런 선포의 목적은 이스라엘이 회개하도록 하는데 있었다.
요한은 죄인으로 구분되는 그룹, 즉 창녀, 세리, 군인들뿐 아니라 율법학자,
바리사이에게도 회개를 호소했다.
자신들은 의인이라 자처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 요한이라는 놈의 정체는 뭐야?”
그의 말은 지나칠 정도로 혹독하고 독설에 가까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러나 그의 말은 설득력 있었고 위엄이 있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심지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소문마저 생겨났다.
요한은 백성들의 지도자인 사두가이파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말했다.
“너희는 겉과 속이 다르고 백성들에게 짐만 지우는 놈들이다. 너희는 독사의 자식들이다.”
“뭐라고, 당신 말 다했어?”
심지어는 유다의 왕인 헤로데까지도 호되게 질책했다.
요한은 헤로데가 자신의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처로 맞아들인 일과 그 밖의 잘못된 일을 비판했다.
이 소식이 헤로데의 귀에 들어가자 그는 노발대발하여 화를 가눌 수가 없었다.
“여봐라, 요한이란 발칙한 놈을 옥에 가두어라!”
결국 요한은 왕에게 미움을 사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요한이 주장한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이들이 인격적으로 회개하는 것이었다.
백성의 지도자나 왕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모여들었다.
“저희들이 회개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들이 회개하려면 먼저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시오.”
요한이 베푸는 세례는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회개의 표지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세례운동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일반 백성들에게 많은 인기와 존경을 받았던 요한은
당연히 정치 세력의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요한은 헤로데 왕에게까지 서슴없는 말을 하여 참수를 당하고 만다.
■ 지도자는 비판의 소리 경청해야
세례자 요한은 명예나 권력을 탐하지 않고
정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옳은 소리를 외쳤던 에언자였다.
그의 용기는 당시 사람들 뿐 아니라 오늘에도 깊은 인상을 준다.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옳은 소리를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높은 자리나 명예를 누릴 때는 더욱 그렇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는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때로는 침묵을 지키는 소극적인 행동은 악을 동조하고 방조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사람들은 비판의 소리를 듣기 싫어 한다. 오히려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박해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는 귀에 역겨운 비판의 소리를 들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과 재앙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도자들은 비판의 소리를 겸허하게 귀 기울이고
달콤한 소리만을 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The Virgin Appearing to Sts John the Baptist and John the Evangelist-DOSSI, Dosso
1520s.Oil on wood transferred to canvas, 153 x 114 cm.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구약시대에는 국민을 학대하고 향락에만 흐르는 폭군이 있으면
하느님께서는 곧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에게 경고하셨다.
예컨대 아하즈왕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충고 같은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폭군들은 그 잘못을 고치지 않고 오히려 충고해 주는 사람들은
독사와 같이 미워하며 그 생명을 빼앗는 일이 허다했다.
주님의 선구자요 구약의 최종의 예언자인 성 요한 세례자도
이러한 비운의 희생자 중 한 분이었다.
주 예수게서 공생활을 시작하셨을 때, 헤로데 아티파스라는 자가
로마 제국의 승인을 얻어 유다 분국의 왕위에 올랐다.
이는 저 베들레헴에서 무죄한 아기들을 학살한 헤로데의 아들인데,
부전자전이라 이도 역시 성격이 잔악무도해 그 정실 왕비인 베드이누의 왕 알레타스의 딸을 버리고
동생인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말할 수 없는 비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런데도 보통 모세의 율법을 엄격히 이행한다는 바리사이나 그의 사람들도
왕의 위엄을 두려워해 누구하나 맞대고 충고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러한 때에 감히 왕의 궁전에 나타나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기탄없이 충고한 분은 곧 성 요한 세례자였다.
주님의 길을 바르게 하고 그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한 사명을 띠고
빈부 귀천이나 남녀 노소의 구별 없이 다만 회개하는 길로 인도하던 이 고행자(苦行者)는
오직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죄악을 책할 따름이요,
상대자의 신분 여하는 안중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요한의 충고에
양심의 가책을 받은 것은 왕 자신보다도 헤로디아쪽이었다.
그녀는 왕을 꾀어 곧 요한을 체포해 마케루스 시외에 있는 헤로데 성의 지하 감옥에 유폐시키게 했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그를 죽일 것을 왕에게 재촉했으나 헤로데는 요한이 위대한 예언자요,
국민의 존경을 받는자임을 알고 그 반동이 두려워 이를 승낙치 않았다.
그런데 마침 헤로디나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 왕이 생일을 맞아 왕궁에는 성대한 축하연이 벌어졌고,
각국의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귀빈들이 늘어앉았다.
그때에 헤로디아는 자기가 데려온 딸 살로메로 하여금 헤로데 왕이
가장 기뻐하는 일장의 무용을 하게 했다.
눈썹과 눈이 바르고 몸맵시가 아름답게 균형 잡힌 그녀의 율동은 축하연에
모인 사람들을 매혹케 하고
그들의 마음을 흡족케 했던 것이다.
무용이 끝나자 사방에서
우뢰와 같이 울려나온 박수 갈채의 소리에 헤로데도 면목을 세워준 기쁨을 못 누르고
"참 잘 했다. 잘 했어. 네 소원을 말해 보아라. 무엇이든지 들어 주마.
네가 청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주겠다. 내 왕국의 반이라도 주겠다” 하며 굳을 약속을 했다.
무엇을 청할지를 모르는 살로메는 그의 어머니와 의논했다.
헤로디아는 지금이야말로 요한의 생명을 빼앗을 기회라 생각하고
살로메의 귀에다 이렇게 무서운 말을 전했다.
“요한 세례자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가져다 주십시오”하고 청하게 했다.
벌레도 죽일 줄 모르는 딸의 입에서 설마 이런 참혹한 말이 나올 줄은 몰랐던
헤로데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만장의 빈객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주겠다”한 약속을 어기는 것은
왕으로서의 체면을 상실할까봐 내심 후회하면서도 하는 수 없이 경비병을 시켜서
옥중에서 요한의 목을 자르게 하고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 살로메에게 주었던 것이다.
성 예로니모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헤로디아는 딸에게서 그 머리를 받자 증오에 가득 차
바늘로 그 혓바닥을 무수히 찔렀다 하니, 이 얼마나 가공스러운 여성이었던가!
이와 같이 주님께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가장 큰 인물이라는 절찬을 받은
요한 세례자는 정의를 위해 귀중한 최후를 바쳤다.
이는 또한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거룩한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끝까지 주님의 제자로서 적합한 죽음을 했다고 할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제자들은 그 유해를 거두어 근처에 있는 묘지에 정중히 매장했는데,
후에 사마리아에 있는 엘시세오 선지자의 무덤에 합장했다.
또 그의 머리는 각지에 이송되어 처음에는 시리아의 에메사에, 다음은 콘스탄티노플에 보존되었으나,
1204년에는 프랑스의 아미안 시에 이송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례자 요한 (데에시스의 일부)
러시아.노브고로드화파.15세기말.트레차코프미술관
유다의 유명한 역사가 요셉 플라비오에 의하면, 악왕 헤로데는
전처의 아버지 알레타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로마 황제 카리쿨라에게 왕위를 박탈 당하고
그 후 헤로디아와 살로메와 같이 갈리아 지방에 유배가서 쓸쓸한 일생을 마쳤다 하며,
살로메는 살얼음 위를 거닐다가 빠져 얼음에 목이 졸려 죽었다 한다.
*데에시스 첫째는 그리스어로 '데오마이' 라는 말은 기원(기도)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그려지며, 두번째는 '데이시스' 의 둘이라는 말은 두 사람, 즉 성모와 세자 성 요한이 주님을 향해 서 있게 그린다는 것이다.
St. John the Baptist-GRECO, El
c. 1600.Oil on canvas, 111 x 66 cm.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San Francisc
[프리실라 카타콤바] Priscilla Catacomb. 선한 목자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면서 부터 회화도
하느님과 성자를 주제로 하여 그리게 되었는데
그 기법이나 재료는 고대보다 매우 진보되고 복잡하였다.
로마 근교에서 수없이 발견되는 카타콤바에서는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초기 예술의 정수가 잘 보여지고 있다.
이들 카타콤바에는 이교도들이 무덤에 장식하였던 그림들도 보여지나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물고기나 십자가 또는 착한 목자,
요나의 이야기등 성서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 그림에서는 이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나 성모(오란스형),
그리고 그밖의 여러 성자들의 초상도 그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도 유다이즘의 영향이 완전히 사라진것이 아니었으므로
인물보다는 물고기,십자가,빨마가지(종려나무)등 상징물이 더 많았다.
-이콘의 미. 편저 장긍선신부-
8월 29일 성녀 사비나 순교자
Santa Sabina Martire
St. Sabina of Rome
연대 미상(127년경)
성녀 사비나는 과부였는데,
시리아 출신인 그녀의 여종 세라피아로부터 크리스찬 신앙을 배우고 개종하였다.
성녀 세라피아(St. Serapia.축일:7월29일)는
하드리안 황제의 그리스찬 박해 때에 순교하였고,뒤이어 사비나도 순교의 월계관을 받은 것이다.
프리실라 카타콤바의 프레스코화. 성모 마리아.2세기. 로마.
이 유형의 성모님의 자세는
두팔을 위로 벌려 들어 올리시고 기도를 드리시는 모습인데
아기 예수는 묘사되지 않는다.
이러한 성모님의 자세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있어 생소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구약과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모두에게 알려져 있었던 기도의 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도 이러한 자세로 기도했고 초대 교회 사람들도 그러했음을
카타콤바의 벽화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제들도 미사 중에 이러한 자세로 기도를 드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초세기부터 알려졌던 오란스 형으로 그려진 성모 이콘은 4세기 경에 비롯되었는데
그후 성모 이콘의 전형으로 그 시원적인 주제가 되었다.
이 이콘은 많은 동방교회의 성당들의 지성소 위에 만들어지는
작은 반원형의 돔(Apsis)에 많이 그려지는데
이 작은 반원형의 돔은 성당 중앙의 카다란 돔과 이어져 있어
중앙 돔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계되어 하느님의 나라와 지상(인간)을 일치시키는 분이시며,
하늘의 문이라고 칭해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모 찬가인 아카피스토스의 2절에서
"기뻐하소서, 당신은 하늘의 사다리
당신에 의해서 주님은 내려 오셨다.
기뻐하라, 하늘의 다리여.
지상의 사람들을 하늘로 인도하소서" 라고 칭송 되어지고 있다.
오란스 형의 성모는 ’플라티테라’(platitera)라고도 불리우는데
이러한 호칭은 옛 찬가의 다음 구절에서 근거한다.
"가브리엘은 찬미합니다. 기뻐하라 동정녀여!
이 세상의 만물의 창조자는 거룩한 궤이신 당신에게 머무십니다.
성왕 다윗도 노래합니다.
당신은 하늘보다 넓은 분(Plati tera ton ouranon)이시며,
창조주를 품으신 분이십니다.
-이콘의 미. 편저 장긍선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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