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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Berardus 2021. 8. 12. 17:14



8월 13일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Sts. Pontianus, Pap. et Hippolytus, C. M M
Saints Pontian and Hippolytus
235년 순교 로마
 
두 사람은 사르데냐 광산에서
심한 학대와 극도의 피로로 기진맥진한 채 신앙을 위해 죽었다.
한 사람은 5년 동안 교황의 지위에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18년 동안 대립 교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화해하고 죽었다.

성 폰시아노 교황 순교자
San Ponziano Papa e martire
230-235 제18대 교황
성 폰시아노 교황은 로마인 칼푸르티우스의 아들로 로마에서 태어나
230년 7월 21일에 교황 성 우르바노 1세를 계숭하여 교황위에 올랐다

그는 시편을 노래로 부르게 하고, 임종자에게 ’고백의 기도’를 바치게 하며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로 인사하였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알렉산드리아의 위대한 신학자
 오리게네스의 파문을 인준하는 종교 회의를 열었다.
232년에 로마 교회 회의(Synodus 시노드)를 소집하고
알렉산드리아의 회의에서 공포한
오리게네스의 파문(데메트리오 주교가
오리게네스의 사제 서품을 무효라고 선언한 사실을 말한)을 재확인했다.

그는 235년 로마 황제에 의해 추방되었으며,
로마에서 다른 후계자가 선출된 수 있도록 교황직을 사임했다.
235년 막시미노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신학자이자 대립 교황이었던
 히폴리토와 함께 사르디니아로 유배되었다.

이곳에서 235년9월28일 교회에
 새로운 목자를 맞이할 수 있게 교황직을 사임한 첫 교황이다

그는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부적당한 사르데냐 섬으로 보내졌고 그곳의 혹독한 생활로 죽었다.
그와 함께 화해하고 죽은 이가 히폴리토이다.
그의 시신은 교황 파비아노에 의해 로마로 되돌아와서 장엄한 의식에 따라
 성 칼리스토 지하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는 갈리스토 묘지 안의 주교들을 위한 특별 묘소에 제일 먼저 묻힌 주교였다.
그의 유물은 쁘락시다 성당에 보관되어있다.

-우표로 보는 성인전에서(최익철신부)-


성 히풀리토 사제 순교자
Sant’ Ippolito Sacerdote e martire
Hippolytus of Porto
로마의 사제로서 히폴리토(이 말은 ’말을 풀어 놓다’란 뜻임)는
 
처음에 교회보다 자신이 더 거룩하다고 자만했다.
그는 제프리노 교황을 공공연히 비난했는데,
 이는 교황이 자신을 칼리스토 부제의 손 안에 든 도구라고 부른
 어떤 이단을 철저하게 배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폴리토는 스스로 이 이단을 옹호하는데로 기울어졌다.

칼리스토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히폴리토는 칼리스토가 참회자들에게 너무도 관대하다고
그를 비난했으며,자신은 추종자들에 의해서 대립 교황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교회가 속세와는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하며,
그가 이끄는 집단이 바로 적합한 집단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세 사람의 교황 통치 기간이 계속되는 분열 상태에서 살았다.
235년에는 그도 사르데냐 섬으로 추방당했다. 이 사건을 전후해서
그는 교회와 화해했으며 유배지에서 폰시아노 교황과 함께 사망했다.

히폴리토는 엄격주의자였으며,
희랍 정교의 교리와 예식조차도 충분히 정화되지 않았다고
비판한 열렬하면서도 비타협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콘스탄티누스 시대 이전의 가장 중요한 신학자인 동시에
 많은 저술을 남긴 종교 작가였다.
그의 저서들은 우리가 알 수 있는 2,3세기의 로마 전례와 교회 조직에 대한 지식의 원천이다.
그의 작품들은 많은 성서 주석들과 이단에 대한 논증법,세계 역사를 내포하고 있다.

3세기의 작품인 성인의 대리석 조각상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1551년에 발견되었다.
한쪽 면에는 부활절을 계산한 도표가 새겨져 있고, 다른 면에는 224년까지
 부활절 계산이 어떻게 행해져 왔는가의 목록이 새겨져 있다.
교황 요한 23세는 그 조각상을 바티칸 도서관에 비치했다.
 


 학덕이 뛰어난 로마의 사제였던
  성 히폴리토는 성 이레네오의 제자이고, 초대 교회의 저명한 신학자였다.
(성 이레네오 주교 축일:6월28일,인창동성당게시판1247번)

그는 교황 성 제피리노를 공공연하게 비난했는데,
그것은 로마에서 퍼지기 시작한 그리스도론적인 이단,
특히 모라르키아니즘(Monarchianism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의 각 위격을 부인하는 이단)과 성부 수난설(Patripassianism)을 단죄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교황과 히폴리토는 서로 주장을 달리 했다.
결국 히폴리토의 주장이 교리적으로 타당했다.

교황 성 갈리스토 1세가 217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히폴리토는
 자신의 추종자들에 의해 반교황으로 등극하고,
갈리스토의 후계자인 교황 우르바노와 폰시아노를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이런 이유로 인해 그는 막시미노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교황 폰시아노와 함께 사르디니아로 추방되었는데, 여기서 교황과 화해했다.
그는 사르디니아에서 운명했으나,
그가 당한 고문끝에 죽었으므로 순교자로 간주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그의 업적은 "모든 이단을 반박함"이란 저서이다.
이외에도 그는 다니엘서와 아가에 대한 주석을 했고, 사도적 전승이란 책을 저술했다.
그의 시신도 교황 파비아노에 의해 로마로 운구되어 비아 티부르티나의 묘지에 묻혔다.
로마 교회는 4세기부터 이 두 순교자들을 공경해 왔다.
 

 
히폴리토는 정통 교회를 강력하게 옹호하였으며,
 그의 지나친 자만도 겸허한 화해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
그는 공식 이단자가 아니라 지나치게 엄격한 규율가였다.
그는 개혁자로서
 또 순수주의자로서 전성기에 배울 수 없었던 것을 투옥당한 동안
 고통과 고독 속에서 배웠다.
교황 폰시아노와 함께 순교했다는 것이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리스도께서 마치 유능한 의사처럼 인간의 허약함을 이해하신다.

그분은 무지한 자와 잘못을 저지른 자들이 그분 자신의 길인
 진리의 길로 돌아오도록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믿음으로 사는 이들을 쉽게 찾아 내시고,
순수한 눈과 거룩한 마음의 소유자도 쉽게 찾아 내시며,
문을 두드리고자 하는이에게 즉시 문을 열어 주신다.
그분은 이방인도 경멸하지 않으시고,
거세된 남자도 인간 이하로 제쳐 두지 않으신다.

태초에 있었던 여인의 불순종 때문에 여성을 미워하지도 않으시며
남성의 죄 때문에 남성을 거절하지도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은 모든 이를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고자 원하시며,
모든 이를 완전한 인간인 성인이 되도록 초대하시고
우리 모두를 구하고자 원하시면서 우리 모두를 지켜 보신다.
-(히폴리토, ’그리스도와 반그리스도에 관한 논문’)-
 


성 치쁘리아노 주교 순교자의 편지에서
(Epist. 10,2-3.5: CSEL 3,491-492. 494-495)

무너질 수 없는 신앙

지극히 용감한 형제들이여, 내가 무슨 말로 여러분을 칭송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찬사의 말로 여러분의 영혼의 굳셈과 신앙의 충실성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을 때까지 혹심한 시련을 견디어 왔으며,
고통 앞에서 굴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이 여러분 앞에서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괴롭힘이 아닌 순교의 월계관이 여러분의 고통을 끝맺게 해주었습니다.

박해자는 끈질기게 고통을 주었지만
 여러분의 견고한 믿음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다만 하느님의 사람들을 더 빨리 주님께로 보냈을 뿐입니다.

관객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싸우는
이 천상 투쟁과 영적 전쟁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네들은 하느님의 종들이 이 세상의 무기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신앙인을 보호하는 믿음의 무기를 가지고서
자유에 넘친 목소리와의 순수한 정신과 거룩한 힘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이들은 고통을 가하는 이들 보다 더 강하게 보였고,
 매를 맞아 찢기운 사지는 때리는 찢는 형구들을 이겨내는 것 같았습니다.

잔인하게 때리고 또 때려 이제는 몸이 산산조각이 나 매를 맞는 것이
그들의 몸이 아니라 상처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채찍들도 그들의 무너질 수 없는 신앙을 굴복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박해의 불덩어리를 식혀 버리고
그 유혈로써 지옥의 불을 죽이기 위해 피를 흐렸습니다.
당신 군사들의 충실성과 열성의 이 증거는 주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고귀하고도 엄청난 광경이었겠습니까?
성령께서 우리에게 시편에서 말씀해 주시고 동시에 권고해 주십니다.

"갸륵할쏜 주님의 눈에, 성도들의 죽음이여."
피를 대가로 하여 불사 불멸을 알고 덕행의 궁극적 증거로서
주님의 월계관을 받는 이죽음은 참으로 보배롭습니다.
신앙의 보호자이시고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받을 능력과 마음가짐에 따라
 힘을 베푸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시고,
또 이렇게 훌륭한 종들 안에서 얼마나 기꺼이 투쟁하고 승리하셨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순교자들이 투쟁할 때 함께 계셨고 당신의 이름을 위해 싸우고
그 이름을 옹호한 그들을 북돋아 주시고 굳세게 하시며
 또 그들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한 번 죽음을 이겨내신 그분은
이제 우리 안에서 언제나 승리를 거두고 계십니다.
하느님 자비의 영예로 빛나고
 우리 시대에 순교자들의 영광스러운 피로 빛나는
 우리교회는 참으로 복됩니다.

교회는 과거에 형제들의 선업으로 희게 빛났고
 이제는 순교자들의 피로 붉게 빛납니다.
교회는 꽃 중에 백합도 있고 장미도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지극히 고귀한
 이 두 가지 꽃의 영예를 얻으려 애써야 하고 두 가지 중 하나,
즉 선업이라는 흰 화관이나 순교라는 장미꽃의 붉은 화관 중
 어느 하나라도 얻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