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라는 한마디가 눈에 크게 들어옵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말보다도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착함이 바르나바 사도의 두드러진 면모였던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이 어떤 사람들을 착하다고 하는지 살펴보니,
과연 바르나바는 그런 말을 들을 만합니다.
사도행전에 소개된 그의 착함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로, 바르나바는 말하자면 “보내면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안티오키아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착한 바르나바는 성령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바오로 사도와 함께 선교 여행을 떠납니다.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의 뜻을 받아들이고
아무런 조건 없이 선뜻 자신을 내어 줄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데,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둘째로, 그는 다른 사람을 옹호하고 성장하도록 키워 줍니다.
회심한 바오로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다른 사도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믿지 않지만 바르나바는
그를 받아들이고 다른 이들을 설득하였습니다.
아울러 안티오키아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다시 그가 나서서 타르수스에 가서 바오로를 데려옵니다.
성령의 파견을 받아 둘이 선교 여행을 떠나지만
이제부터 주도권은 바오로에게 넘어갑니다.
“바르나바와 사울”이 이제 “바오로와 바르나바”로 바뀌고
바르나바는 보조적인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제2차 선교 여행 때는
요한 마르코를 데려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바오로와 충돌합니다.
바오로는 마르코가 중간에 복음을 전하러 함께 다니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더 이상 그를 데려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함께 데리고 갑니다.
그래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
여하튼 바르나바는 마르코 문제로 바오로와 불편한 관계였지만,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사도 15장)
그가 바오로를 위해 중재해 주면서 인내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착한 사도 바르나바! 그는 ‘파견된 사람’인
‘사도’의 모범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미사 입당송과 본기도의 청원 내용도 바르나바가 착한 사람이고
성령이 충만한 복된 사람이며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한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이렇게 착하고 훌륭한 사도가 우리에게 있어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우리도 착한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