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우리는 사람 같은 천사와 천사 같은 사람을 만납니다.
토빗기에서 라파엘을 만나는 이들은 그가 천사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토빗이 아들 토비야에게 유언을 하고 자신이 맡겨 둔 돈을 찾아오라고
아들에게 심부름을 보내면서 그와 동행할 사람을 찾고 있을 때
라파엘 천사가 나타나 길잡이를 하겠다고 자청합니다.
이때 토빗과 토비야는 그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라파엘 자신도 그가 누구인지 묻는 토빗에게
“저는 어르신의 동포로서 대하난야의 아들 아자르야입니다.
”(5,13)라고 대답합니다.
아자르야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도우심”을 뜻합니다.
과연 그는 천사였을까요, 사람이었을까요?
토빗도 길을 떠나는 아들 토비야에게
“너의 동포인 이 사람과 함께 가거라. ……
그분의 천사께서 너희가 안전하도록 동행해 주시기를 빈다.”(5,17)고 말합니다.
라파엘은 사람이었을까요, 천사였을까요?
토빗기에는 눈길을 끌 만한 커다란 기적과 같은 내용은 거의 소개되지 않습니다.
여행 도중에 라파엘 천사는
토빗의 시력을 되찾아 주려고 사용하게 될 물고기의
쓸개와 염통과 간으로 약을 마련하였는데
그의 모습은 그저 한 사람의 약사처럼 보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사실을
“동포” 가운데 한 사람이 낯선 길을 떠나는 토비야에게
천사가 되어 준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히브리말로 라파엘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치유”를 뜻합니다.
토비야가 사라의 남편이 되어 줌으로써
그 여자에게서 악귀를 쫓아내고 치유의 기쁨을 주었듯이,
우리도 살아가면서 고마운 분들을 수없이 만나게 되는데,
이분들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천사가 아닐까요?
그 천사들 덕분에 우리는 낯선 이 세상의 길을
희망을 가지고 힘차게 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나도 다른 사람의 작은 천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런데 복음에서는 봉사보다는 가장 높은 자리를 탐하면서
명예와 명성을 얻고자 안간힘을 다하는 율법 학자와,
하느님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신뢰로
생활비 모두를 헌금한 과부의 모습이 비교됩니다.
자신을 위하여 조금도 남겨 두지 않고 어리석고 무모할 정도로
모든 것을 봉헌한 과부의 정성과 믿음은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아울러 율법 학자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명예나 존경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인정해 주는 것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