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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의 만남] “강론(homily)”이란?

Berardus 2020. 1. 23. 01:17

[말씀과의 만남]
“강론(homily)”이란?


▲프란치스코 교황이 1월 9일 바티칸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아침 미사 거행 중 강론을 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 강론의 중요성 어떤 이가 이런 농담을 했다. “신부님, 강론 참 좋았습니다. 3분밖에 안 걸렸네요. 짧은 강론치고 안 좋은 강론이 있겠습니까?” 너무 긴 강론을 지루해하는 신자들의 악의 없는 농담이겠지만 진지한 반성도 필요하다.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사목자의 장황한 강론이나,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조금의 지루함도 참지 못하는 신자들의 무성의함 모두를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신앙생활에 있어서 강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황은 모든 이가 성경을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중대한 책임(자의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5항)이 목자에게 있다며, 특히 여기에서 강론이 고유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교황은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강론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왜냐하면 강론은 ‘거의 성사나 다름없는 특성’(142항)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강론은 ‘성령을 강렬하고 기쁘게 체험하는 일’이며 쇄신과 성장의 지속적인 원천이신 하느님 말씀, 위로하시는 하느님 말씀을 만나는 것(135항)이다. 그래서 실제로 강론은,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의 아름다움을 접하고 자신의 일상생활을 이에 비추어 보는 유일한 기회다. (자의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5항) ■ 강론이란 무엇인가? 그러면 강론이란 무엇인가? 강론(homily)과 설교(sermon)는 어떻게 다른가?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강론을 “설교를 뜻하는 한국 천주교의 고유 용어”라며 설교와 거의 유사한 뜻으로 풀이한다. 「전례사전」은 “강론이라는 용어는 주로 미사 동안 설교하는 것을 가리키며 사제들과 부제들에게 유보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새 가톨릭 백과사전」(New Catholic Encyclopedia) 제13권은 설교를 ‘교회 기능과 관련된 모든 훈화나 연설’로 정의해 설교를 더욱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용어로 설명한다. 교회법 767조는 1항에서 “강론은 설교의 여러 형식 중에서 탁월한 것으로 전례의 한 부분”이라고 규정했다. 이와 같은 설명들을 정리해 보면, 강론은 설교와 동의어로 섞어서 사용해도 크게 문제는 없지만, 구체적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에는 전례의 거행을 배경으로, 전례의 한 부분으로 말씀을 해설하는 것은 강론이고, 그 외의 성경 해설, 신앙과 도덕, 전례에 대해서 전례 거행의 밖에서 이뤄지는 것은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강론이 전례의 한 부분이기에, 미사 중 사제나 부제만이 복음을 낭독할 수 있듯이, 강론 역시 원칙적으로는 사제나 부제에게만 유보된다. 동시에 회중과 함께 거행하는 주일과 의무 축일의 모든 미사 중에는 강론을 생략할 수 없으며, 평일에도 강론을 하도록 권장된다.(교회법 767조 2항) ■ 성찬의 전례를 지향하는 강론 교회의 전통 안에서, 강론을 전례 안에서 이뤄지는 그리스도교적 설교의 한 형태로 수립한 사람은 3세기 오리게네스로 알려져 있다. 이후 동서방 교회를 막론하고 전례 안에서 강론은 더욱 보편적이고 원숙한 경지로 발전돼 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례 자체의 한 부분으로서,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를 이어주는 강론의 고유하고 중요한 직무를 재인식했다.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Sacrosanctum Concilium)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론은 구원의 역사 곧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 신비는 우리 가운데에 특히 전례 거행 안에 언제나 현존하고 또 작용한다.”(35항) 정리하면, 강론은 거행하고 있는 전례의 배경이나 그 전례문에서 출발하는 설교로서, 구원의 메시지 즉 파스카 신비와 삶의 도덕적 원칙들을 청중의 삶과 연결지어 가르침으로써,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성찬례에 충만하게 참여하도록 준비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