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 우리 소명의 원천
연중 제3주일
제1독서(이사 8,23ㄷ-9,3)
제2독서(1코린 1,10-13.17)
복음(마태 4,12-23) 예수님의 공생활 ‘첫 시작’ 요약하며 인품과 활동 소개
이민족들의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 선포하신 예수님
죽음과 어둠에서 사람 살려내는 몫으로 제자들 부르심
돌봄이 필요한 양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마음으로 치유.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 27,1)
인생에서 어둠을 비추는 빛,
따라서 걸어야 할 길을 발견했다면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 맞는 ‘하느님의 말씀 주일’에
하느님 아드님의
공생활 시작을 경청합니다.(마태 4,12-23)
예수님의 ‘시작’은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우리 소명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 복음의 맥락
예수님은 광야에서 몸소
악마의 유혹을 체험하십니다.
“행동에 앞서 마음을 가다듬는 수렴의 시간,
필연적으로 임무수행을 준비하기 위한
내적 투쟁”(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기간입니다.
(마태 4,1-11)
이제 예수님은 요한이 넘겨지자
요한과 같은 운명을 피하기 위해
작고 멸시 받는 변방인 갈릴래아로 물러가시어
그곳에서 당신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마태 4,12-13,58)
마태오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공생활 ‘첫 시작’을 요약하며
자신이 보는 예수님의 인품과 활동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세상의 역사를 바꾼 예수님 활동이 중요한 동사,
‘선포하시다, 부르시다, 가르치고 고쳐주시다’로 표현됩니다.
■ 예수님이 선포하시다
예수님 가르침의 막이 열린 곳은
‘이민족들의 갈릴래아’였습니다.
갈릴래아 호수 서쪽 해안에 위치한
카파르나움은 상업 중심지이자 세관이 있던 도시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니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는 데는 적합한 장소입니다.
마태오는 갈릴래아에서 하늘 나라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마태 4,16)에게 떠오르는 빛으로 소개합니다.
제1독서는 오늘 복음과 연결되는데
이사야서의 ‘임마누엘의 책’(이사 7-11)에 속한 본문입니다.
마태오는 이사야 예언자가 기원전 733년
아시리아 황제 티글랏 필레세르 3세에 의해 정복된
이 땅의 해방에 대해 한 예언이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공생활로 성취됐다고 해석합니다.
예수님 설교의 기본적인 내용을
종합적으로 요약하는 말은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입니다.
“회개하여라”는 정신과 마음의 변화,
보는 눈과 듣는 귀,
삶 전체를 하느님께 되돌리라는 요구입니다.
회개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첫 조건입니다.
마태오는 오늘 복음 바로 뒤에 이어지는
산상설교(마태 5-7장)에서 예수님이 전하시는
하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보여 주고,
이어 8-9장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는지 보여 줍니다.
▲두초 부오닌세냐의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부르심’.
■ 예수님이 부르시다
두 부르심 장면
(마태 4,18-20,21-22)은 같은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걸어가시다가,
눈여겨보시고 부르십니다.
눈은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갑니다.
하느님 아들 예수님 시선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굽어보시는
하느님 아버지 시선을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부유한 율법학자가 아니라
갈릴래아의 가난한 어부들을
유심히 바라보시고 그들을 첫 제자로 부르십니다.
“따라오너라”라는 말은 원래
“뒤를 따라간다”는 말로
복음서의 전문적인 제자직 용어입니다.
부르심의 주도권은 항상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첫 제자들에게 부르심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사명을 처음부터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사람을 낚는 것은 어둠과 죽음에서
사람을 살려내는 일입니다.
제자들은 이 사명을 위해서
예수님 공생활 동안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그분 가르침을 들으면서,
그분 마음에 기대면서
계속 그분에게서 수련을 받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직접 사람을 낚기 위해 파견될 때
그들 편에서 부르심의 의미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파견된 사람은 예수님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항상 하느님 섭리에 의존해야 합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자기 선호에 따라 복음 선포자를 따라가며
분열된 코린토 공동체 신자들에게 자기 소명을 상기시킵니다.
자신이 “인간의 말 재주가 아니라
십자가의 힘으로”(1코린 1,10) 복음을 전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신자들이 그들 부르심의 원천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잊어버리면서 영적인 어둠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망각한 공동체는
하느님 집이 아니라 온갖 분열과 자기 자랑과
이기적인 야심과 파벌로 형성된 인간들의 모임이 돼 갑니다.
■ 예수님이 가르치고 고쳐주시다
이제 예수님은
부르신 제자들을 데리고 온 갈릴래아로
선교 여행을 다니며 어떻게
사람을 낚아야 하는지 직접 교육하십니다.(마태 4,23)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고쳐 주시면서 사람들을 낚으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병자치유는
목자 없는 양 같은 사람들,
안내자와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가엾이 여기시는
예수님 마음에서 흘러나옵니다(마태 9,35).
예수님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목자로 불리시던
아버지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흩어진 양들을 돌보도록
파견된 메시아-목자이십니다(에제 34,23).
■ 성경 읽기, 수행의 여정
“성경은 읽는 이와 함께 자랍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오랜 세월 좌충우돌과 우여곡절과
어둔 밤을 거쳐 제가 배운 것이 있다면
성경 읽기는 사랑의 행위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충실함, 꾸준함, 경청,
응답이 사랑을 유지시키듯이 성경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사랑과 경배의 정신이 깊어진다면
그분 말씀을 더욱 쉽게 알아들을 것 같습니다.
결국, 성경읽기는 하느님 자녀로서 하느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 마음을 알아듣고
응답하기 위한 진지한 수행의 여정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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