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5월12일
성 판크라시오 순교자
Saint Pancras
St.Pancratius
San Pancrazio Martire
Died:beheaded c.304 at Rome
Pancrazio = lottatore, dal tipo di sport greco
=lottatore, from the type of Greek sport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의 박해 시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보며,
그의 무덤은 비아 아우렐리아에 보존되어 있다.
심마쿠스 교황은 그의 무덤 위에성당을 세웠다.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
(Sermo 17 psalmun Qui habitat, 4, 6: Opera omnia 4, 489-491)
환난중에 나는 그와 함께 있다.
"환난중에 나는 그와 함께 있다."라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내가 환난말고 다른 무엇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그분은 또 "나는 그를 구하여 영화롭게 하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 내 행복은 하느님 곁에 있는 것"이고,
그에 더하여 "내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일"입니다.
"환난 중에 나는 그와 함께 있다"
."내 기쁨은 사람의 자녀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주께서는 말씀하신다.
따라서 주님은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마음 상한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우리와 함께 계시고자 내려오십니다.
또 "우리가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때"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여정의 동반자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도록 우리가 노력한다면
후세에 본향에 들어가게 하실 그분은 지금 우리의 길이 되시듯이
그때 우리의 본향이 되실 것입니다.
주여, 나에게는 당신과 함께 환난을 당하는 것이
당신 없이 다스리고 당신없이 화려하게 지내고 당신 없이 명예를 즐기는 것보다 낫습니다.
주여, 나에게는 환난 중에 당신과 더 밀접히 결합되어 불가마 속에서 당신을 모시는 것이
비록 하늘 나라라 할지라도 당신 없이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
"나에게는 천국 외에 무엇이 있고, 지상에서 당신 외에 또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금은 용광로 속에서 단련되고 의로운 사람은 환난의 시련 속에서 단련됩니다."
주여, 당신은 그 곳에 그들과 함께 계십니다.
당신이 옛적에 세 젊은 이들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이 있는 바로 그 곳에 계십니다.
우리가 왜 두려워 하고 왜 설레이며 왜 이 불가마에서 도망쳐야 하겠습니까?
불은 맹위를 떨칩니다. 그러나 주님은 환난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맛서겠습니까?"
더욱이 그분이 우리를 구하시는데 누가 그분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겠습니까?
우리를 그분의 손에서 탈취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데 누가 망신시킬 수 있겠습니까?
"나는 오랜 세월로 그를 가득 채우리라." 이 말은 흡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목말라 하며 무엇이 그를 즐겁게 해주는지를 알고 있다.
그는 금이나 은 덩어리를 기뻐하지 않고 쾌락이나 지식의 획득
또는 어떤 세속적인 품위도 즐거워 하지 않는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손실로 여겨 내던져 버리고 쓰레기로 여긴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비워버리고 자기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에다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허락치 않는다.
그는 자기가 누구의 모상으로 지음받았는지 알고 있고
얼마나 큰 것을 이룰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가장 큰 것을 이룰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가장 큰 것을 잃어버림을 뜻하는
그런 작은 것에 대한 집착을 피한다.
그러므로 나는 참된 빛으로써만 충족될 수 있고 그 영원성으로써만 충족될 수 있는 사람을
"오랜 세월로 가득 채우리라."
실상 그 지속은 끝이 없도 그 광채는 쇠함이 없으며 그 만족은 결코 싫증이 나지 않는다.
(가톨릭홈에서)
시리아 태생인듯한 그는
일찌기 양친을 여의고 고아가 되어 로마에 살던 삼촌에게 맡겨졌다.
그는 여기서 삼촌과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는데, 이때 그는 불과 14세의 나이였다.
그는 디오클레시아노 황제의 크리스챤 박해때 로마에서 참수치명하였고
, 칼레포디우스 묘지에 안장되었다.
런던에 있는 성 판크라시오 철도역은 우리가 그에 대해 거의 아는것이 없는
초기 그리스도인 순교자에게서 그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의 박해중에 14세의 어린 나이로 순교했다고 한다.
그는 후에 그의 이름이 붙은 공동 묘지에 묻혔다.
교황 대그레고리오는 그곳에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세웠고,
베네딕토회 회원인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영국에 오자 그는 자기가 세운 첫 교회에
판크라시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철도역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판크라시오는 와이스먼 추기경의 소설인 ’파비올라’에서 소설화 되어 나타난다.
독일 농부들은 이름이 비숫한 세 성인들,
즉 판크라시오,세르바시오,보니파시오를 그들의 축일이 5월 12,13,14일인데도
계절에 맞지 않게 날씨가 싸늘하다 하여 ’차가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또다시 그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지만 그의 생애와 죽음이
교회의 기억 속에 지금까지 고이 간직되어 온 또 한분의 성인을 보았다.
자세한 내용은 아득히 사라졌거나 갖가지 환상적인 전설과 뒤섞여 있다.
그러나 단 하나의 확고한 사실은 남아 있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었다는 것이며,
그의 영웅적인 생애는 그 당시의 교회를 통하여 영감의 물결을 보내 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느낌을 함께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다.
"너희는 잡혀서 박해를 당하고 회당에 끌려가 마침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며
나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야말로 너희가 나의 복음을 증언할 때이다.
이 말을 명심하여라. 그때 어떻게 항변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말라.
너희의 적수들이 아무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주겠다."(루가21,12-15)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축일:8월20일.게시판1324번.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축일:9월3일.게시판1346번.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축일:5월27일.게시판1183번.1783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순교성인이시며 이태리에서는 모든 가톨릭 액션 단체에 가입된 젊은이들의 주보성인이시다.
디오클레지아노 황제의 박해 기간 중 순교한 이 소년에 대한 기념은
그를 기념하기 위한 달력에 특별히 기록되어 있다.
그에 대한 추앙은 교황 심마코가 순교자의 묘지로 적당한 아우렐리아로에
그를 기념하는 교회를 세우면서부터 확대되었다.
어린 소년들의 주보성인인 방그라시오는 그리스도 신자의 증거는
그리스도와 형제들과의 결합에서 온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믿음 안에서 소년들을 보호하는 문제는 오늘날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소년들이 믿음을 잃게 되는 주요 원인은 교회 공동체가
좀더 진지하고 개방적이며 포용력 있는 태도로 소년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시리아(Syria) 또는 프리지아(Phrygia) 태생인 듯한
성 판크라티우스(Pancratius, 또는 판크라시오)는
일찍이 양친을 여의고 고아가 되어 삼촌인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5월 12일)와 함께 로마(Rome)에 와서 살았다.
그는 여기서 삼촌과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는데 이때 불과 14세의 나이였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14세의 어린 나이로
고문을 당하고 로마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
순교 후 그의 시신은 아우렐리아(Aurelia) 가도에 있는
옥타빌라(Octavilla)묘지에 안장되었다.
성 판크라티우스는 특별히 영국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캔터베리(Canterbury)의 주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5월 27일)가
그의 첫 번째 성당을 성 판크라티우스에게 봉헌하고 성인의 유해를 모셨기 때문이다.
그는 중세 후기 14명의 수호자들 중 1명으로 여겨졌으며,
신생 국가와 청춘 남녀들의 보호자이자 병자들의 협조자로 공경을 받았다.
그의 유해는 로마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여러 교회에 나뉘어 보관되어 있다.
참고자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네레오와 성 아킬레오 형제,
성녀 도미틸라 동정, 성 판크라시오 동료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98-100쪽.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1권 - '판크라시오',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5년, 8843쪽.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판크라시오 순교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114-115쪽.
(가톨릭홈에서)
성 네레오와 아킬레오 형제,성녀 도미틸라,성 판크라시오 동료순교자
Sts. Nereus and Achilleus, Domitilla and Pancratius
교회내에서는 네 명의 성스러운 순교자를 함께 기념한다.
그들의 천국에 개선한 날짜는 동일하지 않지만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박해의 희생자라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네레오 및 아킬레오 두 형제는
1세기 중엽 로마 군대에 들어가 시내 경비의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황제의 명령으로 마음에도 없는 참혹한 형벌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때도 종종 있었으므로
이에 싫증을 느껴 군대를 떠나 황제의 근친 프랄비아 가문의 공주 도미틸라의 시종관이 되었다.
그리고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성 베드로 사도에게서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 내려온다.
도미틸라는 네레오 형제의 한결같은 부지런한 봉사에 감탄하여 살펴보고
그들이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이처럼 훌륭한 행위로 이끄는 종교가 그리워져,
그 형제들에게 자기도 신앙에 들어가리라는 뜻을 나타냈다.
형제들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주인의 말에 기뻐하며 그 즉시 공주를 교황에게 모시고 가서
교리를 연구하게 하고 세례까지 받게 했다.
도미틸라 공주는
예전에 아우렐리아노라는 귀족 청년과 약혼을 맺었는데 그는 이교도였다.
그리하여 네레오와 아킬레오 형제는 결혼을 하면
혹시 공주의 구원 사정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하고
매우 염려하여 성의껏 공주에게 충고하자
공주도 그 위험을 깨닫고 아우렐리아노와의 혼인을 파기하고
평생 동정을 지킬 결심을 하고 클레멘스 교황으로부터 동정 서원의 뜻인 머리수건을 받았다.
자기 가족중에서, 또 로마의 명예로운 군인 중에서 금지된 그리스도교를
봉행하는 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 황제 도미시아노의 놀람은 어땠을까?
도미시아노 황제는 즉시 도미틸라와 네레오 형제를 불러들여 배교하기를 명했으나
신앙이 견고한 그들이
듣지않자 황제는 그들을 본시아라는 섬으로 귀양 보냈다.
갖은 영화 속에서 아무 불편 없이 도회지 생활에 익숙했던 도미틸라에게 있어서 이 유배는
얼마나 적적하고 고독했는지!
그러나 그녀는 일체의 모든 불편을 사랑하는 하느님을 위하여 잘 참아나갔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는 점차 더 심해갔다. 보신아 섬에는 미누디오 루포라는 사말이 와서
신자들을 압작하기 시작했으나 도미틸라와 네레오 형제 세 사람은 결코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다만 "교회를 위한 것이라면 생명을 바쳐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네레오 형제는 고문을 당했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며
마침내 테라치나라는 섬으로 다시 귀양가게 되어 그곳에서 순교했다.
도미틸라 공주에 대해서는 약손자 아우렐리아노가 다시 설득해 보기 위해
레오도라와 에우프로시나라는 두 부인을 로마로부터 보내 온갖 감언 이설로 유혹을 했으나
역시 그녀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주 편에서 그들 두 부인을 신자로 개종시켰기에
루포는 그들 세사람을 테라치나에 보내어 그곳에서 한 집에 몰아놓고
불에 태워 죽였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도미틸라 및 네레오 형제의 유골은 후에 로마에 옮겨져 프라비아 가문의 묘지에 매장되어
교회 신자들의 존경을 많이 받게 되었다.
성 판크라시오는 디오클레시아노 황제 시대에 청형되어 순교한 소년이다.
그는 교회에서 옛날부터 특별히 존경을 받아왔고, 로마에는 지금도 그에게 봉헌된 성당이 있어
추기경좌의 높은 격식(格式)이 마련되어 있다.
판크라시오는 소아시아의 피리지아에서 태어났다.
양친을 여의고 고아가 된 후 백부 디오니시오와 함께
로마에 가서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학자의 소개로
마르첼리노 교황을 알현하고 교회의 진리를 깨달아 세례를 받
고 열심한 신자가 되어, 겨우 14세 때에
꽃이라면 봉오리와 같은 홍안의 미소년으로서 용감히 피를 흘리며 신앙을 증명했다.
그는 칼레포디우스 묘지에 안장되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성 네레오와 성 아킬레오,성녀 도미틸라 축일:5월12일.게시판1155번,1758번.
축일: 5월 12일(7월30일)
만디츠의 성 레오폴드 사제, 제1회
San Leopoldo Mandic O.F.M. Cap.
Saint LEOPOLD BOGDAN MANDIC
The Saint of Confession
Castelnovo di Cattaro (Croazia), 12 maggio 1866 - Padova, 30 luglio 1942
Born: 12 May 1866 at Castelnuovo, Dalmatia (Bosnia-Hercogovina) as Adeodato
Died: 30 July 1942 at the Friary, Padua, Italy of esophogial cancer
Beatified: 2 May 1976 by Pope Paul VI
Canonized: 16 October 1983 by Pope John Paul II
Leopoldo = che si distingue, dal tedesco(that it is distinguished,
from the German)
Name Meaning: the God-given one (Bogdan)
성 레오폴드는
1866년 5월 12일 카스텔노보에처 태어나, 카푸친 형제회에 입회했다.
영웅적인 희생 정신으로 일생을 거의 고백소에서 보냈다.
고해성사 때 그의 훈계는 사람들에게 용서와 위로, 빛을 주었다.
그는 하느님께 동방 형제들의 회귀와 교회의 일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1942년 7월 30일 파도바에서 선종하였다.
(작은형제회홈에서 www.ofm.or.kr)
"We have in heaven the heart of a mother,
The Virgin, our Mother,
who at the foot of the Cross suffered as much as possible for a human creature,
understands our troubles and consoles us."
- Saint Leopold Mandic,Capuchin
1866년 5월 12일 달마티아(Dalmatia)의
카스텔누오보에서 태어난 성 레오폴두스 만딕(Leopoldus Mandic,
또는 레오폴도)은 매우 작은 키에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겸손함,
침착함, 하느님의 현존 앞에 자신의 전부를 내놓을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지녔었다.
그는 우디네(Udine)의 카푸친회에 입회하여 1884년 수련기를 보내고
,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와 베네치아(Venezia)에서 수학한 후
1890년 사제품을 받으며 레오폴두스라는 이름을 받았다.
동유럽에서 선교를 하고자 했던 그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그는
베네치아 지방에서 소임을 받았으며 파도바에서 40년 동안 살게 되었다.
인종과 종교가 다른 지역에서 성장한 그는 교회의 완벽한 일치로의 재건을 꿈꾸고 노력했다.
유명한 아르스(Ars)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annes Maria Vianney)처럼
성 레오폴두스의 특별한 은사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었다.
자신을 ‘새장에 갇힌 새’로 표현했듯이 그는 고해신부와 영적 지도자로서 활동했다.
1962년 성 레오폴두스의 복자품에 관련된 결의문에서
라라오나(Larraona)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분의 일상은 이러했다. 아침 일찍 미사를 지낸 후 고해소에
하루 종일 앉아 고백을 들었다. 어떠한 불만도 없이
40년 동안 이 소임을 충실히 해냈다.”
그는 용서와 평화를 증진하는 중심이 되었고,
그의 삶은 화해의 성사(고해성사)의 중요성과 이 성사를 통해
지상 여정에서 얻게 되는 안식의 중요성에 대해 사제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그의 시복 시성은 단기간에 추진되었다. 당시 교회법은 후보자가 복자품에 오르기 전에
50년이 경과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지만,
성 레오폴두스의 성덕이 너무도 명백해서 30년이 조금 지난 197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이어 1983년 10월 16일 같은 교황에 의해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가톨릭홈에서)
1976년 5월 2일 교황 바오로6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983년 10월16일 시성하셨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홈에서 www.capuchin.or.kr
"작은 형제들의 회칙과 생활은 순종 안에, 소유 없이, 정결 안에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 인준받은 회칙 1:1
“우리의 생활의 모든 상황에서
복음을 최고의 법으로 따르고
구원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으면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처럼 우리 마음에서 새깁시다.” -카푸친 회헌 1:6
성 프란치스코가 세웠던 작은 형제회의 최후의 개혁으로서
1528년 교황님의 인준을 받은 카푸친 작은 형제회는
기도와 가난과 더욱 작음으로써
성 프란치스코와 초기 동료들의 생활양식을 할 수 있는 만큼 닮으려고 했다.
형제애 - 카푸친들은 형제들이다
“너희는 모두 형제이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다.” 마태오 23,8-9
한 분 뿐이신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수도회로서 우리 카푸친들은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대로 모든 피조물의 맏형이 되신
가난하시고 겸손하시며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하는 형제들이다.
사실 우리 형제회를 하나로 묶어 주시는 분께서는 주님의 성령이시다.
그래서 같은 부르심을 받은 우리 수도회의 모든 회원들은
사제든 평수도자든 차별 없이 형제라고 불린다.
참 형제로서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고,
어려울 때 서로를 도와주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 서로를 위로한다.
성 프란치스코는 우리 형제애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형제들은 어디에 있든지 어디서 만나든지 한 가족임을 서로간에 보여 줄 것입니다.
그리고 신뢰심을 가지고 필요한 것을 서로간에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자기 육신의 자녀를 기르고 사랑한다면,
각자는 자기 영신의 형제들을
한층 더 정성되이 사랑하고 길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준받은 회칙, 6:7-8
우리의 형제애는 우리 자신들에게만 제한되있지 않으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피조물에까지 퍼져야 하는 것이다.
위계적이고 왜곡된 권위에 기초한 사회 제도들과 인종 차별, 민족간의 분쟁,
빈부간의 계층갈등, 노동력 착취, 생태계의 파괴 등에 찢어진 세상에
우리가 무엇보다도 이바지할 점은 바로 우리의 복음적 형제애이다.
관상 - 하느님께 기도하는 형제들이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태오 6.6;8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 작가는,
프란치스코를 기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스스로가 곧 기도 자체인 사람으로 묘사했다.
이는 카푸친 형제들의 생활 목적이기도 하다.
개인의 관상기도와 공동체의 전례기도는
우리 카푸친들의 생활양식과 모든 사도직을 가능하게 한다.
카푸친 회헌에서 기도에 대한 다음의 내용을 읽을 수 있다.
“하느님께 드릴 기도는 사랑의 호흡으로서, 성령의 활동에서부터 비롯하여
그 활동으로 마음에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내면적인 사람은 귀담아듣는다.” -회헌 6:45
우리 카푸친들의 관상기도는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매일매일 자연과 인류역사, 다른 사람들과 자기 자신의 양심,
성서에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담아 듣는 기도라는 뜻이다.
이 관상기도를 제대로 실천하기 위하여 침묵과 고요와 충분한 시간과 고독이 필요하다.
이런 조용한 분위기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음성에 응답하여,
그분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서부터 부르짖는 소리로 “아빠, 아버지”라고 기도를 바치신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과 성체에 대해서 자주 묵상하여
마음으로부터 불타 오르는 사랑으로 사랑 자체이신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도록 노력했다.
그리스도의 육화와 수난, 성체에 중심이 되는 우리 카푸친들의 기도도
프란치스코의 기도처럼 마음의 기도 또는 정신적 기도가 되어야 한다.
이런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긴밀히 체험하며 그분과 깊은 관계를 맺게 한다.
이 긴밀한 체험과 관계는 전례 시간 외에도 침묵 속에서 바치는 개인기도 시간으로 길러진다.
(카푸친작은형제회홈에서)
http://blog.daum.net/solelylove